최근 수정 시각 : 2025-03-30 15:52:35

E. T. A. 호프만

E. T. A. 호프만
E. T. A. Hoffmann
파일:E._T._A._Hoffmann,_autorretrato.jpg[1]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본명 에른스트 테오도어 빌헬름 호프만
Ernst Theodor Wilhelm Hoffmann
필명 E. T. A. Hoffmann[2]
에.테.아. 호프만
출생 1776년 1월 24일
프로이센 왕국 쾨니히스베르크
사망 1822년 6월 25일 (향년 46세)
독일 베를린
학력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
직업 작가, 작곡가, 법조인, 화가
서명
파일:Hoffmann_Signature.gif
1. 개요2. 생애3. 대표 작품4. 평가5. 기타

1. 개요

독일의 작가, 작곡가, 법조인.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호두까기 인형으로 유명하다.

2. 생애

프로이센 왕국쾨니히스베르크에서 법관이었던 아버지 크리스토프 루트비히 호프만과 어머니 루이제 알베르티네 되르퍼 사이에서 세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2살 되던 해, 부모가 별거하게 되자 흐프만은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서 지내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가를 꿈꿨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다. 이후 호프만은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법관 시보 및 법관으로 공직 생활을 한다.

1806년 나폴레옹 군대가 바르샤바 지역을 점령하면서 호프만을 비롯한 프로이센 공무원들은 대거 자리를 잃게 된다. 이에 호프만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베를린에 가서 일자리를 알아보았으나 소득이 없었고, 결국 밤베르크로 가서 극장의 악단 지휘자, 음악 비평가, 작곡가, 화가, 소설작가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면서 입에 풀칠하는 수준으로 살아간다. 일이 생각처럼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아 가족과 친구들에게 손을 벌리거나 때로는 굶주리기도 하며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호프만은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1814년 나폴레옹군이 패전하면서 호프만은 법관으로 복직하여 베를린 고등 법원에서 일하게 된다. 다시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된 호프만은 낮에는 판사로 일하고, 밤에는 작곡과 글쓰기에 전념하며 이전보다 더욱 활발한 활동으로 문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다. 이 무렵, 그 유명한 "호두까기 인형"(1819)도 집필한다.

말년에 온몸이 마비가 되는 병[3]에 걸린 와중에서도 구술로 작품을 이어가다가 1822년 46살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3. 대표 작품

  • 칼롯풍의 환상적 작품집 Fantasiestücke in Callots Manier 1814/1815
    • 금 항아리 Der goldne Topf
  • 악마의 묘약 Die Elixiere des Teufels 1815
  • 밤 풍경 Nachtstücke 1816/1817
    • 모래 사나이 Der Sandmann
    • 이그나츠 데너 Ignaz Denner
    • 적막한 집 Das öde Haus
  • 브람빌라 공주 Prinzessin Brambilla 1820
  • 세라피온의 형제들 Die Serapionsbrüder 1819/1821
  •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 Lebens-Ansichten des Katers Murr 1819/1821

4. 평가

독일 낭만주의 소설은 호프만으로 대표된다. 그의 무시무시한 스토리텔링 기법은 ‘유럽적인 것’이 되었다.
토마스 만
호프만의 작품은 ‘고급 미학의 교본’과도 같다.
샤를 보들레르
호프만은 문학작품 속 ‘언캐니(uncanny)’를 이야기할 때 비교할 상대가 없는 최고의 대가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나는 호프만을 통해 진정한 문학의 유일한 원천이 인생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배우게 되었다.
프리드리히 헤벨
누구든 호프만을 읽으면서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다.
로베르트 슈만
호프만의 작품이 뿜어내는 기이함이 머리를 어지럽히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머리가 없는 자일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스무 권으로 이루어진 섬뜩한 절규와 다름없다.
하인리히 하이네
독일 문화사에서 호프만에 견줄 만한 이는 지금껏 없으니, 가히 전무후무한 일이다. 믿을 수 없게 걸출하고,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한 인물이 바로 E. T. A. 호프만이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은 위대한 책이다. 그리고 호프만은 중요한 독일 작가들 중 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읽고 또 읽어야 할 것이다.
한스 마이어

5. 기타


[1] 호프만 자신이 그린 자화상이다.[2] 호프만은 사람들에게 E. T. A.의 "A"가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아마데우스"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즉 E. T. A. Hoffmann는 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의 약자인 것.[3] 루게릭병으로 추정된다. #[4] 박경리 작가도 "소세키는 표절 작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5] 다만, 당시 문학계가 외국 작품을 카피하는데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으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소설 자체도 나쓰메 소세키가 나름의 표현을 덧붙였기 때문에 참작할 여지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연재 당시, 표절의혹을 받자 나쓰메 소세키가 급하게 소설을 마무리한 것은 그가 표절이 나쁜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