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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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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GO  황혼의 사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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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예고편3. 줄거리4. 원작소설과 영화의 차이 및 작품의 주제 해석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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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경선 따윈 내가 없애주마
(国境線なんか俺が消してやる)
"No soy Coreano, ni soy Japones, yo soy desarraigado."
(나는 한국인이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다. 나는 떠다니는 일개 부초다)[1]

2001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 나오키 상을 수상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GO>를 영화로 각색했다.

감독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년)로 유명한 유키사다 이사오. 각본은 쿠도 칸쿠로.

주연은 쿠보즈카 요스케, 시바사키 코우, 오다케 시노부, 야마자키 츠토무 등.

2. 예고편


3.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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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안경을 낀 한 학생 정일(호소야마다 다카히토)이 지하철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선배(야마모토 타로)의 지시로 사자머리의 남학생이 열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선로로 난입하여 열차를 멈추더니 열차 진행방향인 다음 역으로 뛰기 시작한다. 이후 다음 역의 선로에 도착해 승강장에서 개찰구를 지나 미리 대기하던 선배의 오토바이에 탄 스기하라(쿠보즈카 요스케)는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다가 수풀이 펼쳐진 임야에서 철조망을 건너지 못하고 잡힌다.

조선학교에 다니던 스기하라는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학교의 분위기가 싫어 일본 학교로 전학을 간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는 조센징이라고 시비를 거는 불량배들을 눕히고 일진이 되는데[2][3], 이 과정에서 야쿠자의 아들 카토를 건드리는 바람에 죽을 뻔한 위기에 빠졌다가[4], 카토와 친구가 되는 것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는 등 위태위태한 학창 시절을 보낸다.

스기하라의 아버지 히데요시는 파칭코를 운영하고, 어머니 미치코는 야키니쿠집에서 일한다.[5] 하와이에 가고 싶다며 조선적에서 한국 국적으로 옮기려고 한다. 아버지 쪽 가족은 스기하라 아버지의 동생이 재일교포 북송에 참가해 북한으로 넘어갔을 정도로 조선적 중에서도 북한을 지지하는 쪽인데, 국적 문제 때문에 조선적으로는 어디를 나가보기에도 힘든 상황이라 바꿀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되도록이면 조선적을 가진 채로 한국을 갈 수는 없냐며 한국 대사관 직원과 싸우기도 한다.[6]

아버지가 고집하는 민족 정체성에 신물이 난 스기하라는 한국인이 되기로 하고 조선학교를 떠나 일본 학교에 온 것이었고, 일본인 여자애 사쿠라이와 처음 만나 교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민족학교 시절 친구들과의 교류는 그것대로 잘 이어오고 있었는데, 어느날 똑똑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던 스기하라의 민족학교 친구 정일이 엄청난 걸 봤다며 전화로는 아니고 직접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만나기 전 처음 스기하라를 봤던 지하철 승강장에 있다가 치마저고리를 입은 민족학교 여학생(미즈카와 아사미)를 향해, 어서 고백하라며 넌 거절당하면 사람도 아니라고 발리송 칼을 쥐어주고 건드리는 일본 불량학생들을 막다가 칼을 맞고 쓰러진다. 죽기 전 처음봤을 때처럼 달리는 스기하라의 환영을 보면서 민족학교 여학생이 절규하는 도중 숨을 거둔다.

정일의 죽음을 접한 스기하라는 장례식으로 향하여 그의 어머니로부터 정일이와 친하게 지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그의 여동생에게 짧은 목례를 한다. 이어 복수하러 가야한다는 조선학교 학생들의 주장에, 스기하라는 넌 정일과 친하지도 않았고 정일은 복수를 원하지 않았을 거라면서, 정일의 죽음을 이용해 날뛰고 싶은 구실을 찾지말라고 일갈한다. 그러자 그는 조선인의 명예나 자존심도 없냐는 말에 그런게 있다면 너한테 판다고 말하고는 멱살을 잡히다가, 경적을 울리며 발인하는 영구차를 보고 다들 멈춘다.

이후 방황하던 스기하라는 정일이 불량배를 상대로 보여준 용기를 떠올리며, 사쿠라이를 만나 관계를 맺기 전에 자신이 한국인임을 밝힌다. 그러자 사쿠라이는 어릴 적부터 주입받은 인종적 편견[7] 때문에 관계를 거부하고 스기하라를 떠난다. 홀로나선 스기하라는 자전거를 탄 경찰이 자판기에서 음료를 마시려는 걸 도와주고는 경찰이 신분증을 요구하자 그를 기절시켰다가, 경찰이 깨어나서야 왜 기절시켰는지 자이니치로서 신분증이 없으면 범죄로서 적발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해준 후, 서로 회포를 풀고 헤어진다.

집에 도착한 스기하라 앞에 아버지가 풀이죽어 북한에 간 동생이 죽었다며 우는데, 택시를 타고 아버지와 돌아오던 스기하라는 언제까지 그런 것에 매달리고 살거냐며 짜증을 내고, 전직 프로 권투 선수 아버지와 스파링을 해 신나게 얻어맞는다.[8] 그리고는 "국적 따윈 옷 같은 것이다. 바꾸고 싶다면 바꾸면 그만인거다."며 민족 정체성에 대한 고집을 버린 아버지와[9] 약간은 화해하게 된 스기하라는 아버지의 펀치로 이빨이 빠지고 만다.

크리스마스날, 집이 정전이 된 동안 집전화가 울리는데 사쿠라이로부터 전화를 받은 스기하라가 라쿠고를 들으며 그녀를 처음 만났다고 생각했던 날에 갔던 학교로 향한다. 어머니한테 너 이빠져서 어떡하냐는 말을 넘기고, 학교로 간다.

자신을 기다리던 사쿠라이에게 향하며, “난 누구지? 난 누구냐고? 자이니치? 재일한국인? 이 나라 사람이 아니라고?“ 외치면서 ”나는 나야. 국적 인종은 상관없고, 너희들이 뭐라고 해도 나야.“라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그러자 사쿠라이는 안좋은 일이 있었는데 마침 학교내 농구코트에서 다른학교와 농구시합도중 팀원들이 자신을 의도적으로 따돌린 것에 화가 난 스기하라가 같은 팀에게 이단옆차기를 날리다가 잡혀서 웃었다며, 그때 그 눈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해주고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둘은 학교를 나가서 어디라도 가자고 학교를 니서면서 영화는 끝난다.

4. 원작소설과 영화의 차이 및 작품의 주제 해석

참고로, 영화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원작 소설을 함께 읽는 것이 좋다. 소설과 영화의 표현 기술 차이 때문에 소설은 지문이나 내면 묘사 등을 통해 상세히 설명되지만 영화는 과감히 생략해버린 부분이 적지 않다. 사실 소설에서 설명하듯 영화에서 설명하려고 하면 상영 시간의 태반이 주인공의 독백으로 채워질지도 모르니 감독의 판단이 옳은 부분이긴 하다. 반대로 영화의 경우 영상과 대사를 통해 직관적으로 재미를 던져주는 부분이 많은 것이 장점.

다만, 영화에서 생략된 부분 때문에 작가의 주제의식을 명확히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위의 줄거리 설명 같은 경우도 소설판과 함께 보면 좀 다르게 읽히는 부분이 많으니 참조할 것.
  • 스기하라의 아버지 히데요시가 조선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만든 심경의 변화가 영화에서는 거의 생략되었다. 원작 소설의 내용에 따르면 '하와이에 가고 싶어서' 국적을 바꾼 게 아니다. 평생동안 자신의 신념에 따라 조선적을 가지고, 북한을 조국으로 여기면서 살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북한이 완전히 몰락함에 따라 그런 신념을 자신을 억누르는 짐이자 행동을 제약하는 족쇄처럼 느끼게 된 것. 그런데 아들(스기하라)이 성인으로 사회에 진출할 시기가 가까워지자, 그런 짐과 족쇄를 아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들에게 '자유로운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 자신부터 조선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것이다. 부인(주인공의 어머니)이 하와이에 가고 싶다고 조르던 것은 그런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 계기 정도이지, 진짜 하와이에 가고 싶어서 국적을 바꾼게 아니다.
  • 위 내용의 연장선상에서, 하와이에 다녀온 뒤 여행 중 찍은 사진을 현관 바로 앞에 떡 걸어놓는 것 역시 아버지 나름대로 정치적 고려 끝에 나온 행동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조총련에서 탈퇴하고, 상당한 기부금을 내면서 민단에서 자기 자리를 얻기도 했지만 상당한 자산가인 히데요시가 빠져나가는 것을 조총련이 달갑게 볼 리 없고, 따라서 예전부터 히데요시와 친하던 사람들을 자꾸 보내서 다시 돌아오라고 설득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한 것. 그래서 조총련 내에서 퇴폐적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는 하와이에서 찍은 사진을 현관 바로 앞에 떡 걸어놓음으로써 옛 친구나 동료가 집을 방문하더라도 다시 조총련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는 자신의 각오를 표현한 것이다. 말하자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알고 그냥 뒤돌아서 나가라고 걸어놓은 일종의 축객령이다. 이런 아버지의 행태에 대해 스기하라는 '자기 자신의 문제 때문이었다면 아버지가 평생 사귄 친구들을 저렇게 잔인하게 내쫓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생각하게 된다. 즉, 미래가 없는 조총련이 자식(주인공)을 얽어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평생 동안 쌓아온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포기하면서까지 무리하게 관계 단절을 서둘렀다는 상징이다.
  • 스기하라가 일본인 학교로 진학한 것 역시, 아버지에 대한 반발감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아버지는 스기하라가 일본 학교에 진학하자 가족의 국적을 바꾸는 식으로 후원하는 인물에 가깝다. 또한 결말에서 히데요시가 '스페인에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역시 갑작스럽게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원작 소설 내용을 보면 억압적인 재일 조선인 사회차별적인 일본 사회 모두에 넌더리가 난 스기하라가 '노르웨이로 이민가겠다'고 발광하기 시작하자[10] 스기하라에게 비꼬듯이 스페인어 문장을 한 마디 들려준다. 요컨데, 히데요시 자신도 젊은 시절에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자신 때문에 방황했고, 그 때문에 한국도 일본도 아닌 다른 나라로 도망치고 싶어 스페인어까지 공부했었다는 것[11] 이 때 히데요시가 스기하라에게 들려주는 문장이 바로 "노 소이 코레아노, 니 소이 하포네스, 조 소이 데사라이가도"("no soy coreano, ni soy japanes, yo soy desarraigado")로써, 히데요시 세대의 고민과 좌절, 그리고 작품의 주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장이다. 한국어판에서는 "나는 조선(한국)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닌, 떠다니는 일개 부초다"라고 쓸데없이 멋을 부려 의역해놓았지만 스페인어 문장의 의미를 그대로 번역하면 대략 "나는 한국인이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다. 나는 뿌리가 뽑혔다." 내지는 "나는 (고향이나 가족, 나라와) 유대가(인연이) 끊어졌다." 라는 지극히 직설적이고 처절한 의미인 것. 특히 스페인어를 단 한마디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사전 한권만 가지면 쉽게 해석할수 있을 정도의 단순함이 강렬한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는데, 일단 '나는 떠다니는 부초다'와 같이 비유적으로 돌려말하는 것이 아니라 딱 잘라 '유대가 끊겼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자신의 고통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문장이며 또한 앞 주석에서 제시한 가능성처럼 히데요시가 정말 젊은시절 이민까지 생각하면서 스페인어를 진지하게 공부한 적이 있다면, 수십년간 쓰지 않아 배운 것을 많이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저 정도는 쉽게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의 아주 간단한 문장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사실 부성애와,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외치지만 알게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가게 되는 부자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 영화 첫 부분에 나오는 히데요시와 한국 대사관 직원의 실갱이 역시 '조선적으로 하와이에 가고 싶다'는 내용의 실갱이가 아니다. 어차피 조선적은 한국 국적자가 아니므로 조선적인 상태라면 해외 방문을 위해 한국 대사관에 뭔가 문의한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 히데요시가 한국 대사관을 방문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조선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것이고, 그 와중에 벌어지는 실랑이는 평생동안 반한(反韓), 반미(反美), 친북(親北)주의자에 열렬한 조총련 지지자로 살아왔던 아저씨가 자신의 평생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큰 각오를 하고 한국 대사관에 찾아갔는데, 한국 대사관에서는 그를 전혀 위험시하거나 의심하기는 커녕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우리는 당신을 경계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자 거꾸로 이에 소외감을 느껴 투정을 부리는 것에 가깝다.
    히데요시: (한국 대사관에 찾아가 북한 이념서적들과 뱃지들을 대사관 직원앞에 보여주며) 이건 이제 필요없소. "여권이, 여권이 꼭 필요해."[12]

    대사관 직원[13]: 요즘은 북한 국적으로도 하와이 갈 수 있어요. 알았어요?

    히데요시: 나는 확실한 마르크스주의자라구.[14] 스파이, "간첩인지, 간첩인지 모르잖아? 응?"

    대사관 직원: 쓸데없는 소리 자꾸하고 있네. 아, 문제없다니까. "캇테니 이케바 이이!(당신 맘대로 가면 돼!)"[15]

    히데요시: 안돼, 도무지 말이 안 먹혀.

    히데요시 부인: 전 하와이만 가면 돼요.

    히데요시: (결심한 듯 대사관 직원에게) 좋아, "바꿔." 하와이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바꿔, 바꿔." 부탁할께요.

    스기하라의 독백: 재일 조선인이었던 아버지는 고작 하와이 여행을 위해 새로운 국적을 받아 재일 한국인이 되었다.

    이 부분을 '될 수 있으면 조선적을 가진 채 하와이에 가고 싶다'는 히데요시와 '하와이에 가고 싶으면 한국 국적으로 바꿔라'는 대사관 직원의 언쟁이라고까지 잘못 해석하는 것은, 아마도 해당 장면이 거의 부조리극에 가까운 기묘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지 않고 표면적인 대사만을 따라가면 <평생을 함께 한 아내의 소망(하와이 여행)을 들어주기 위해 역시 평생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소중히 지켜왔던 조선적을 포기할 각오로 한국 대사관에 찾아온 아저씨>에게 <한국 대사관 직원이 '요즘은 북한 국적을 가지고도 하와이에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조선적으로도 하와이 여행을 가는데 아무 문제 없다'>고 설명해 준 상황이다. 그러면 이 아저씨는 당연히 <아내의 소망을 들어주면서도 평생 소중히 해왔던 조선적도 지킬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해야 할 것 같은데, 해당 장면에서는 엉뚱하게도 <'나는 확실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스파이, 간첩일지도 모르는데 너희(사실은 미국이지만)가 내 입국을 허락해서는 안되는거야!'> 라고 되려 트집을 잡고 있다.
    그렇다면 히데요시(야마자키 츠토무)는 대체 왜 이런 해괴한 반응을 보이는가? 일단 이는 1차적으로는 위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상실감과 소외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국적을 얻는데 도움이 될 리 없는 (오히려 민감한 시기였다면 악영향을 끼칠) 북한 이념서적과 김일성 뱃지따위를 굳이 가져가서 보여주며 '이건 이제 필요없다'고 과시하는 모습에서도 엿보이는 것처럼, 북한이 망쪼가 들면서 자기 자신도 조선적을 포기하겠다고 결심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이 인물에게 평생에 걸쳐 형성하고 지켜온 자기 정체성의 일부였다는 것. 그러니까 잘 해야 무의미하고 잘못하면 오히려 자기에게 손해일 것이 뻔한데도 굳이 '나는 이런 것을 지금까지 지켜왔지만, 이제는 버리는 것이다'라고 과시하면서 상대가 그런 자신을 경계하고 위험시해주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자신을 전혀 위험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보다 훨씬 약한 존재였다는 뜻이니 '잘 생각해 봐라, 내가 정말 그렇게 약하냐? 정말 너희에게 조금도 위험이 되지 않는거냐?" 라고 투정을 부리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본질적으로는, 해당 장면을 끝맺음하는 스기하라의 대사, 즉 "아버지는 고작 하와이 여행을 위해 새로운 국적을 받아 재일 한국인이 되었다"가 반어법임을 보여주는 장치라 해석할 수 있다. 작품 전반에서 꾸준히 드러나는 내용이지만, 히데요시가 조선적을 버리고 재일 한국인이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식인 스기하라 때문이다. 히데요시 자신은 나름 성공한 권투선수로 빠칭코 경품 교환 매장을 6개나 가진 부자임에도 재일 조선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신용카드 발급조차 거절당할 정도로 심한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다. 이는 역으로 보면 히데요시에게 조선적은 그것만 버리면 훨씬 편하고 쉽게 살 수 있음을 알면서도 평생동안 고난을 감내하며 지킬 정도로 소중한 정체성이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이 정체성을 버릴 수 밖에 없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세상이 변하고 북한이 망쪼가 들면서 이 조선적이 자식의 미래를 짓누르는 족쇄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임이 작품 전반에서 드러나고 있다. 히데요시 자신은 이미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많은 나이가 되었으니 그럭저럭 버텨나갈 수 있겠지만,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스기하라의 인생까지 그 틀 안에 가둘수는 없었기에 히데요시 자신이 많은 것(예를 들어 평생 사귄 친구들)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의 발목에 걸린 쇠사슬 하나를 끊어주기로 결심하고 자신부터 조선적을 버린 것. 그러니까 '하와이 여행'은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게 된 계기, 또는 핑계일 뿐, 본질적인 이유는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히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다. 만약 하와이 여행 자체가 이유였다면 (사실 여행 한번 때문에 평생동안 지킨 정체성을 포기한다는 것도 허탈한 일이지만) 조선적을 가진 상태로도 하와이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굳이 한국 국적을 얻을 필요도 없어진 것인데, 그래도 굳이 한국 국적을 얻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좀 덜 꼼꼼한 관객이라도 하와이 여행이 진짜 이유가 아님을 눈치채기 쉬우리라는 것.
    다만 대사관 직원이 이런 히데요시의 반응에 눈치빠르게 "그렇군! 당신은 간첩일지도 모르니 하와이에 갈 수 없어! 가고 싶으면 한국 국적을 받으라고!!" 라고 맞장구쳐주는 대신 (사실 공무원인 대사관 직원의 입장상 설령 상대의 속마음을 눈치채더라도 대놓고 맞장구쳐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냐고 짜증을 내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당신 맘대로 가면 돼!" 라고 짜증을 내 버림으로써 히데요시가 기껏 마련한 핑계가 무너져버렸고, 이 때문에 히데요시는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어도 하와이는 미국 땅이니, 혹시 거기 가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그러니 하와이에 가려면 한국 국적을 가지고 가야 안심할 수 있다) 는 새로운 핑계를 급히 만들어내는 새로운 촌극을 벌여야 했던 것이다. 이 또한 우스꽝스럽다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동시에 조선적이라는 정체성이 히데요시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던 것인지 또 한번 보여주는 장치라 해석할수도 있는 문제이다. 히데요시에게 조선적을 버린다는 행위는 이미 결심하고 한국 대사관까지 온 상황임에도 '조선적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구체적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라는 핑곗거리 없이는 실행에 옮기지 못할 정도로 힘겨운 행위라는 것.
  • 히데요시와의 대화에서 대사관 직원(명계남)이 '요즘은 북한 국적으로도 하와이 갈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부분은 2010년대 후반~2020년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원작 소설과 영화 모두)이 어떠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창작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로 기능한다. 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었다는 것은 곧 세계를 전쟁과 멸망의 공포에 몰아넣은 범 세계적 규모의 갈등이 종식되었다는 의미고, 이에 따라 1990년대 초~2000년 전후는 평화와 화합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이 팽배한 시대였다. 북한 국적으로도 엄연한 미국 영토인 하와이에 갈 수 있다는 것 역시, 냉전 구도가 무너지면서 미국인들도 과거 냉전시대 이래의 적국이던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크게 늦추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하지만 2002년 9.11 테러로 시작하여 새로운 범 세계적 갈등이 점점 고조되고 이후 세계 각지에서 극단주의적 정치 세력들이 등장하여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북한의 경우 핵 개발 관련 문제로 국제 사회의 공분을 사 고립되면서 이런 '좋은 시대'가 결국 끝나고 만 것이다. 2020년 현재라면 북한 국적으로 하와이 절대 못 간다. '국적이란 입은 옷이나 사는 집과 같은 것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다른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작품의 주제 역시, 긍정적 미래상이 팽배한 집필 당시 시대와는 달리 세계 곳곳에서 폐쇄적 고립주의 경향이 강해지면서 '남들과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집에서 산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시대'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작품 출간 후 이십여년이 지나는 동안의 세계적 변화를 알 수 있는 계기인 동시에 씁쓸하기도 한 부분.
  •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히데요시가 운영하는 것은 빠칭코가 아니라 빠칭코 경품 교환 매장이다. 사실 빠칭코 자체보다 더 안전하고 수익율이 높은 소위 꿀빠는 가게인데, 부모에게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한 고아가 복싱 선수로 성공해서 경품 매장을 6개나 차렸지만, 일본의 사회적 차별 때문에 결국 그 가게들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모습이 히데요시의 인생을 설명하는 중요한 코드 중 하나.
  • 이 소설이 세대를 이어오는 자이니치들의 정체성과 차별을 다룬 소설임을 볼 때 작은 비중이지만 힘있는 등장인물들이 있다. 이야기 말미에 등장하는 오스기 렌이 연기한 택시기사는 히데요시와 스기하라의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이 자이니치임을 알고서도 히데요시의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에 눈물을 흘린다거나 아버지에게 버릇없이 말하는 스기하라를 책망하는 모습을 통해 같은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국적을 뛰어넘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동질감있는 인물상을 보여준다.
    이 택시기사와의 공감 역시 상당히 복잡한 부분이다. 히데요시와 비슷한 연배의 택시기사는 히데요시가 이야기하는 전후 빈곤기의 힘든 추억에 공감하여 눈물을 흘리고 '그런 구질구질한 이야기 좀 그만하라'고 버릇없이 구는 스기하라에게 화를 내며 히데요시에게 '제가 대신 저 버릇없는 아들놈 혼쭐 좀 내 드릴까요?'라고 물어보는 인물이다. 즉 히데요시와 강력한 동질감과 이해를 나눌 수 있는 인물인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인물이 스기하라와 히데요시간의 갈등을 온전히 이해한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나(우리 세대)까지 그 구질구질한 시대의 망집에 끌어들이지 말라'는 스기하라의 항변 자체가 히데요시의 입장에서는 괴롭고 짜증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 전후시대부터 쌓여온 조총련의 망집이 자신과 자기 또래 친구들의 삶을 억누르는 것을 실제로 겪어온 스기하라로써는 당연히 화를 낼 만한 상황이고, 히데요시 자신도 이를 잘 아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인 택시기사는 이 모든 갈등을 이해할 수는 없고, 따라서 자신이 아는 부분-부모 세대를 무시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분개-에만 공감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영화에서도 '요새 젊은애들은 위험해서 믿을 수 없다'면서 스기하라가 흉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검사를 해본다거나, 히데요시가 스기라하를 보기좋게 때려눕히자 마치 자기 자신이 강적과 싸워 물리친 것처럼 기뻐하며 방방 뛰는 등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보여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람과 사람이 꼭 서로에 대해 완전히 이해해야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타인간에도 공감과 동질감은 성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간접적으로만 등장하는 관청 직원 역시 그러한데 외국인 등록제 때문에 지문 날인[16]을 하러간 선배가 너무 화가나 직원을 두드려 패고 싶었지만 그 사람 역시 평범한 소시민임을 깨닫고 그 난폭한 선배를 돌아서게 만든다.[17][18]
    이들과 정반대의 인물은 사쿠라이의 아버지로, 스기하라와의 첫만남에서 자신은 국제적인 감각을 가졌다며 국까깨시민적인 발언을 했는데 정작 자기 딸에게는 '한국인과 중국인은 피가 더러우니까, 사귀면 안된다'고 세뇌를 시킨 사람으로, 한 사회에 만연한 차별이란 것이 어떤 식으로 전파되고 유지되는가를 보여준다[19].
    그리고 이외의 흥미로운 인간상으로 스기하라의 학창 시절 무용담에 등장하는 경찰이 있다. 조선학교에 다니던 스기하라가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데 이를 보고 순찰차로 쫓아온 경찰이 "너희같은 쓰레기는 길가로 다녀야지"라고 자신들을 모욕하자 화가 나서 페인트를 섞은 물폭탄을 차 앞유리창에 던진 것. 결국 페인트 때문에 시야가 가려진 순찰차는 길가 전봇대에 충돌하고, 잠시 후 상황을 확인하러 스기하라가 슬쩍 돌아와보니 사고를 낸 경찰은 울고 있고, 동료 경찰이 달래주고 있던 것. 이 모습을 본 스기하라는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 같아 경찰 괴롭히기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즉 스기하라는 자신의 행동을 잘못으로 인식하고 반성하여 그만둔 것이 아니다. 스기하라의 관점에서는 어디까지나 경찰이 먼저 자신들에게 시비를 건 것이고 따라서 페인트 물폭탄으로 받아친 것인데 괴롭힘을 당해도 버티고 받아치는 자신과는 달리 정작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면 훌쩍훌쩍 우는 상대의 모습을 보고 상대가 약한 인간으로 보여 '약한 놈을 괴롭히긴 싫으니 내가 봐주겠다'고 인식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경찰 괴롭히기의 경우 스기하라와 같은 젊은 조총련들이 북한 체제에 대해 가진 경멸감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조선학교 교과서에서는 김일성이 어린 시절부터 일제 군경들에 대항하여 골탕먹인 이야기를 일종의 영웅담처럼 가르치는데, 역시 어린 시절부터 일본 경찰을 자주 골탕먹인 스기하라와 친구들이 보기에는 김일성의 어린 시절 활약이라는 게 자신들보다 딱히 대단할 것도 없고 오히려 자신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는 것. 즉 북한과 조총련 특유의 개인 숭배 세뇌교육이라는 것도 폐쇄되지 않은 사회에서 사는 아이들에게는 그저 우스꽝스러워 보일 분이라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이 괴롭힘을 받으면, 힘들고 괴로워하는 평범하고 연약한 인간들이 조선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자신보다 약한,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집단의 구성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모욕하고 괴롭힌다는 것. 이 면에서 작중 등장하는 소시민적, 인간적 공감대라는 것을 단순히 '차별적인 제도나 국가는 나쁘지만 사람들 하나하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니 미워해서는 안된다' 식의 단순한 이야기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 소설은 결국 일본 사회 내에서 차별의 피해자인 재일조선인의 이야기이고, 평범하고 연약한 보통의 일본 사람 하나하나는 이 피해자의 이해자일 수도 있지만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것. 말하자면 이 이야기의 지향점은 스기하라의 독백처럼 국적이라는 것이 그 인간의 본질적 가치와는 아무 상관 없는, 마치 옷처럼 갈아입을 수도 있는 것임을 이해함으로써 인간과 인간이 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 차별적인 제도는 나쁘지만 소시민 개개인에게는 죄가 없으니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다.
  • 일본인 남자 학생중에서는 스기하라의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묘사되는 카토 역시 복잡한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카토는 '기념할만한 첫 도전자'로 스기하라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한방에 코뼈가 부러져 쓰러졌지만 싸움끝에 친구가 된 것인지 이후 스기하라와 친하게 지내고 있고[20], 카토의 아버지 역시 스기하라를 "그놈 대담하고 보통내기가 아니다. 나중에 큰 일을 하겠더라"며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21].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히 청소년간의 우정이라고 보기는 상당히 미묘하다. 카토 역시 '야쿠자 두목의 아들'이라는 입장이라 양지에서 활보하기는 어려운 처지이고, 본인도 그 처지를 이미 받아들인 것인지 자신의 생일파티를 클럽에서 열면서 그 입장권을 팔고, 방문한 남자 손님들에게 여자를 소개해 주는 등 범죄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건실하다고 말할수도 없는 일종의 '사업'을 (아직 고등학생의 신분이면서) 벌써부터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카토가 '아버지가 너는 나중에 분명 큰 일을 할거라고 했다'면서 함께 큰 일을 해보자고 조르고 꼬드기는 것은 좋게 말하면 친구와 함께 노력하여 성공을 나누고 싶은 우정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일'이 건실하고 떳떳한 일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이런 해석조차 주인공과 그 친구쪽에 이입한 호의적인 해석이고, 작중 다른 인물들의 생각은 또 다르다. 생일파티에 시비를 걸기 위해 찾아온 적대적 양아치들이 "존공[22] 뒤에 숨어있지 말고 직접 나오라"며 카토를 도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이들이 보기에 카토와 스기하라의 관계는 '아버지의 조직을 물려받을 예비 거물 야쿠자'가 미성년자 시기부터 수익사업을 시작하면서 재일조선인 출신 무투파를 호위로 기용한 것처럼 보일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오랜 차별로 인해 사회의 주류 영역에 진출할 수 없던 재일조선인들이 두각을 드러낸 주요 분야 중 하나가 야쿠자인 것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이고, 자신은 별로 싸움질을 벌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음에도 이런 재일조선인의 이미지 때문에 끊임없이 덤벼드는 상대들을 때려눕히다보니 주변의 학생 깡패들중에서도 눈에띄는 강자로 손꼽힘당하고 만 스기하라의 처지와도 관계있는 문제인 것. 결국 스기하라는 자신을 개에 비유하면서까지 모욕하는 상대를 계속 참아줄 수는 없으니 또 손쉽게 때려눕혀버렸는데, 이 사건은 주변에 알려지면 카토는 '역시 거물 야쿠자 두목을 부모로 둔 자식은 떡잎부터 다르다. 벌써부터 솜씨 좋은 심복을 두고 있다', 스기하라는 '일진들 중에서도 싸움 솜씨가 유독 빼어나더니 벌써 야쿠자 후계자하고 손을 잡고 줄을 댄 모양이다'식의 이미지가 생겨버려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작 카토 자신은 이정도까지 타산적인 관계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스기하라가 서로의 처지와 입장 차이를 지적하자 충격을 받고 울듯한 표정을 지어버렸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사회적 시선과 차별에 의한 일종의 함정에 빠져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5. 여담

  • 스기하라가 사쿠라이와 클럽에서 처음 만날 때 들리는 이상한 혼잣말은 라쿠고다.
  •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주인공 쿠보즈카 요스케는 현재 혐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 우익이다.[23][24] 데뷔작인 영화의 내용과 아주 다른 삶을 사는 것. 그런데 2020년 현재, 한국의 브랜드 FILA의 아시아 모델로 활동 중. -역시 돈 앞에서는 신념이고 뭐고...- 거기다 신내림(스피리츄얼리즘)같은 것에 심취해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을 인공 지진이라고 주장하는 등 어딘가 맛이 가버린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 반면, 스기하라의 조선학교 재학 시절 선배 역으로 나온 야마모토 타로는 방송에서 "독도를 한국에 돌려줘야 한다."고 말하는 등 쿠보즈카와 정반대의 삶을 걷는다.[25] 참고로 야마모토 타로는 후에 정계에 입문해 의원도 되고, 탈원전 운동 등에도 참여 중이다.
  • 배우 중에 진짜 재일교포도 있는데 바로 스기하라의 조선학교 재학 시절 친구로 나온 아라이 히로후미다. 한국 이름은 박경배로 역시 재일교포 이야기를 다룬 영화 피와 뼈에 주인공 김준평의 아들 마사오(김정웅) 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하지만 성폭행 혐의로 배우 업계에서 쫓겨나 흑역사화되어버렸다.
  • 가수 김현정의 4집 후속곡 <>의 뮤직비디오가 이 영화를 편집한 내용이다.
  • 한국 배우들도 카메오로 출연했다. 야키니쿠 집에서 일하는 나오미 역을 맡은 김민과, 스기하라의 아버지에게 한국 여권을 받으려면 그냥 조선적을 버리고 한국인이 되라고 퉁명스레 말하는 대사관 직원 역을 맡은 명계남.

[1] 작중 등장하는 스페인어 문장으로, 이를 어떻게 번역할지도 흥미로운 문제이다. desarraigado 는 직역하면 '뿌리가 잘린(뽑힌)' 또는 '인연이나 유대가 끊어진' 이라는 뜻인데 정식 발매된 한국어판 원작 소설 및 영화에서는 이를 "나는 떠다니는 일개 부초다" 라고 멋을 부린 문장으로 의역해놓았다. 하지만 이하 문서 내용에서도 지적된 것처럼, 이는 지나치게 멋을 부린 문장, 즉 자신의 절망감과 고통을 어린이이도 알아들을만큼 쉽고 간단했다는데서 참맛이 나는 문장을 괜히 비유와 수식어를 사용하여 의역해서 명확함을 잃은 문장이 아니냐는 아쉬움이 있다. 또 아예 "yo soy desarraigado" 를 "나는 세계인이다"로 번역하려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지나친 오버센스로 의역으로 볼 범위도 벗어낫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결국 '한국인이 될 수도, 일본인이 될 수도 없었던' 재일 조선인 히데요시, 스기하라 부자(父子)의 고난과 방황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의 끝에서 찾아낸 답이 바로 '국적이란 그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그저 갈아입을 수 있는 옷과 같은 것이니, 거기에 집착하여 자신의 삶을 망가트리거나 타인을 편견으로 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이기 때문이다. 즉, 이야기 전체의 결론을 '세계인이 되자'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어느정도 말이 된다. 하지만 위의 문장은 부자의 아버지인 히데요시가 말한 문장으로, 아직 결론에 이르기 한참 전(히데요시의 젊은 시절로 추정), 한국인에도 일본인에도 속하지 못하는 재일 조선인으로써 그가 느낀 고뇌와 절망감을 '나는 뿌리가 잘렸다!', '나는 그 누구와도 유대가 끊어졌다!' 라고 토로하는 문장인 것이다. 이 문장 자체를 '그러니까 나는 세계인이 되었다!'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오버센스라 할 수 있다.[2] 이 과정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데 조선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차별과 이지메가 기본 옵션이기 때문에 악과 깡으로 뭉친 맹자들의 집합소 같은 곳이 되어있다고 한다. 즉 조선인 학교에서 일반고로 전학 온 주인공은 일진계의 엘리트로 일찌감치 찍혔다는 얘기.[3] 카토 이후로 계속해서 양아치들이 도전해오는데 이게 계속 이어지다 보니.. 스기하라는 일진들 사이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도전자들은 꼭 연장을 들고 오거나.. 심지어 칼까지 들고 오는 경우도 있는데 스기하라는 그들을 전부 격퇴했고, 그 과정에서 기습공격을 한 학생도 옷내에 숨긴 현대조선혁명역사 책으로 방어하고 쓰러뜨린다. 스기하라의 승패를 놓고 도박판까지 벌어졌다.[4] 작중 스기하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카토는 '기념비적인' 첫 도전자다. 카토의 코를 뭉개줬는데 카토의 아버지는 야쿠자였다(..) 카토의 코는 수술을 해서 좀 더 보기 좋은 코가 되어 아무 일도 당하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고, 이후 절친이 되었다. 카토의 아버지는 사실 손가락이라도 잘라 받으려는 생각이었다(..)[5]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재일교포 1~2세대가 할 수 있던 몇 안되는 직업 중의 하나이다. 작중 묘사는 이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수준.[6] 영화에서는 이 부분의 묘사가 바뀌었다. 아래 원작 소설과의 차이점 부분 서술 참조.[7] '아버지가 그랬는데.. 한국인은 피가 더럽대'라며 주인공 못지않게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8] 짤방 가드를 내리다니 멍청한 녀석의 원본이 바로 이 장면이다.[9] 히데요시가 스페인에라도 가보고 싶다며 흥얼거리는 노래가 그 예.[10] 일본에서 가능한 한 먼 곳에 가고 싶어서라고 한다. 한데, 히데요시가 '일본의 정 반대편은 아르헨티나인데 왜 하필 노르웨이냐'고 되묻자 '더운 건 싫어서'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히데요시는 그 대답을 듣고 스기하라가 철저히 이성적인 것을 알고 안심한다.(...)[11]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노르웨이로 가고 싶다는 스기하라의 발광은 '일본에서 가능한 한 먼 곳으로 가고 싶은데 더운 곳은 싫으니까 북유럽'이라거나 '예쁜 금발 아가씨'와 같이 별로 진지하지 못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고 정말 실행으로 옮기겠다고 치면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 국가의 이민 진입 난이도가 결코 낮지 않음도 생각해야 한다. 반면 히데요시는 (구체적인 정황까지는 묘사되지 않지만) (굳이 그 구절 하나만 일부러 달달 외워둔 것이 아니라면) 수십년 뒤에도 간단한 문장정도는 능숙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스페인어를 공부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 게다가 스페인어는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될 뿐 아니라 주 사용권 국가중에는 남미와 같이 상대적으로 이민 진입이 용이한 권역이 있다. (물론 이민을 위해 배워두면 가장 유리한 언어는 예나 지금이나 영어겠지만, 히데요시는 성향상 철저한 반미주의자일 것이 뻔하다는 점을 감안하자.) 즉 스기하라의 발광은 말 그대로 홧김에 소리 질러보는 발광일 가능성이 높은데 비해 젊은 시절의 히데요시는 훨씬 더 절박하고 진지하게 탈출을 고민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결국 작중 스기하라의 갈등과 고민은 젊은 시절의 히데요시가 겪은 고민과 갈등이기도 하고, 더욱 엄혹한 시대를 산 히데요시에게는 그 고민과 갈등이 더욱 절박했을 수도 있다는 것. 이 점에서 보면 "더운 건 싫어서" 라는 스기하라의 대답에 "철저히 이성적이군" 이라며 안심하는 히데요시의 반응 역시 단순한 안심이라기 보다는 비꼬는 것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고작 날씨에 대한 호불호 정도의 문제 때문에 가장 현실성 있는 선택지를 배제하고 그보다 가능성이 떨어지는 선택지를 고르겠다고 하는 것을 보니 '이놈은 정말 탈출을 결심할 정도로 절박한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으니까 악을 써 보는 것 뿐이구나. 이러다 기분 좀 풀리면 다시 조용해지겠구나' 라고 판단한 것이고,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상태에 몰려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안심감+하지만 더 고통스러운 시대를 겪어본 입장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놈이 그 궁리조차 저렇게 유치하고 어설픈 장난처럼 하는 모습을 보고 든 한심함 등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이 "철저히 이성적이군", 말하자면 '부정적인 의미로 미치지는 않았지만, 어설픈 계산을 버리고 미친듯이 덤벼들 각오도 하지 못했군' 이라는 식의 비아냥으로 나타난 것이라 해석할도 있는 것.[12] 이하, 따옴표 쳐 놓은 부분은 히데요시 역을 맡은 야마자키 배우가 어눌한 한국어로 말하는 부분이다.[13] 명계남이 특별출연.[14] 참고로 북한은 주체사상외에 모든 공산주의 사상은 모조리 박해한다.[15] 일본어 대사. 일본인들은 거의 알아듣기 힘든 수준. 끝의 이이가 거의 이-로 말하여진다. 직원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이기도 하다.[16] 한국인에게는 주민등록증 때문에 당연하고 무감각할 수 있지만, 아무 범죄에도 연관되지 않은 사람을 예비범죄자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인 반응이다.[17] 영화에서는 지문을 날인하는 동안 그 모습을 남들이 보지 못하게 가려주는 배려를 받은 선배가 난생 처음으로 남에게 고개를 숙이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고 고백한다.[18] 원작 소설에서는 처음 지문 등록을 하러 갈 때는 범죄자 취급이 기분 나빠서 일단 지문 등록 하고 나서 직원들을 좀 두들겨 패줄 생각을 하고 갔는데, 이미 다른 사람에게 얻어맞은 듯 얼굴에 멍이 들어 있으면서도 몇번씩이나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직원의 초라하고 지친 모습이나 그런 상황에서도 지문 찍는 모습을 가려주는 배려 등을 보고 주먹질을 할 마음은 싹 사라지고, 나오면서 평생 처음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게 되었다고 서술되었다. 다만 원작 내용을 보면 이것이 꼭 긍정적인 이해와 공감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빨리 달려서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겠다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고 살던 선배가 지문 날인 절차 마친 후 평생 처음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나 역시 붙잡히고 말았다'고 탄식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그들 개개인은 증오할 수 없는 소시민일지언정 명백하게 차별적인 사회 구조의 일부이고, 따라서 그들을 이해함으로써 조총련에서 주입받은 '쪽발이는 나쁘다' 식의 단순한 사고방식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보다 복잡하고 난해한 사회적 모순과 갈등에 사로잡히고 말았다는 것.[19] 역사적으로 보면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본작이 나온 2000년 전후만 하더라도 국가나 민족간의 갈등이 사라진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감이 가득한 시대였기에 사쿠라이의 아버지와 같이 '입만 살아있는' 거만한 국제주의자들을 경멸하고 소시민 하나하나가 서로에게 공감함으로써 진정한 이해에 이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설득력있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2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2010년대 후반~2020년대의 일본을 보면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그 불만을 재일조선인과 같은 이질적 소수자에게 돌림으로써 넷우익이 성장하고, 이것이 일본의 우경화에 동력을 공급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사쿠라이의 아버지와 비슷한 상대적으로 좌파적 입장을 가진 기득권 기성세대들이 (그들 자신이 가진 모순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을 가로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20] 스기하라가 종종 냉랭해보일 정도로 쿨한 모습을 보여주는데도 신경쓰지 않고 친한척 달라붙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화판의 묘사를 보면 동성애적 애정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21] 처음에는 아들의 코뼈를 부러트린 보복으로 손가락이라도 잘라받을 생각이었다고는 말했지만, 사죄나 보상의 의미로 손가락을 자르는 것은 야쿠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행태인데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는 재일조선인 출신이라고는 해도) 일반인 학생을 상대로 손가락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한 일이다. 차라리 치료비나 위자료 명목으로 거액을 요구하는 쪽이 야쿠자의 행태에 더 부합할 것이다. 작중 해당 내용 역시 정말 손가락을 자르라고 요구했다가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를 받고 그냥 넘어가겠다고 하는 자리에서 "원래 손가락이라도 잘라 받을 생각이었는데 한번 봐준다" 정도로 가볍게 한번 이야기하고 지나가는 것이었으므로, 이 부분은 다행히 자식의 치료(성형수술 포함)도 잘 끝났고, 피해자인 자식도 상대가 마음에 들어서 친하게 지내고 싶으니 보복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데다 사죄하러 온 상대가 사죄는 하면서도 비굴하게 굴지 않는 모습이 당당하게 보여 썩 마음에 들기도 하다는 등 여러 이유가 겹쳐 그냥 넘어가기로 마음먹은 상태에서 엄포섞인 농담삼아 한 말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수도 있다.[22] 재일'조'선인과 흔히 쓰이는 개의 이름을 언어유희로 엮어 스기하라를 카토가 키우는 개에 비유하여 조롱한 것.[23] 특히나 이 영화를 찍으면서 자신의 재일교포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졌다고 한다.(...) 재일교포들을 동정했다가 자기도 재일교포들처럼 엄청난 차별에 시달릴 것 같아서?[24] 다만 혐한 발언이라는 것도 애매한 수준이고 그냥 독도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일반 일본인들 수준 정도이다.[25] 단 이후에 나온 야마모토 타로의 정치관에 입각한 분석과 그가 말한 내용에 입각해보면, 이 발언은 한국이 독도의 정당한 주인이다 는 의미의 발언이라기보다, 정말 진지하게 독도가 일본의 것이라고 생각하는거라면 외교적 압력이든 무력 시위든 제대로 행동할 것이지, 쓸데없이 한국의 신경이나 건드리는 발언 등으로 외교 마찰이나 빚지 말라는 식의 현실주의적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외국인에 대한 내국인과 동등한 수준의 복지를 주장한 적도 있어 전자의 의미가 아주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야마모토 타로 자신이 아무리 과거사에 대해 반성적이고, 설령 친한적인 입장을 가졌다 하더라도 일본인으로 일본 내에서 활동하는 이상 그 입장에서 일정한 한계를 넘기 어렵다는 점도 감안해줄 필요는 있다. 그저 개인도 아니고 배우나 정치가라는 대중의 시선에 항상 노출된 직업을 가진 인물이 자국의 공식적 입장을 완전히 부졍하고 "독도는 한국의 정당한 영토이다"고 말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주요 정당 중 과거사 반성 및 한국과의 관계 문제에 가장 전향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일본공산당마저도 '독도는 한국의 영토이다'(=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는 입장을 가진 것은 아니고, 오히려 공식적인 입장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맞다'에 더 가깝다. 다만 과거사에 대한 반성 및 한국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독도를 한국에 양보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그 양보라는 것도 적극적으로 "사과의 의미로 독도의 한국 영유권을 인정한다"고 말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독도를 실질적으로 영유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굳이 영유권을 주장하여 한일관계를 경색시킬 필요가 없다는 쪽에 더 가깝다. 야마모토 다로의 입장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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