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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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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jtL 토토가3



1. 개요2. 전개3. H.O.T. 멤버 계약 상황4. 노예계약 논란
4.1.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 측의 주장4.2. 반론
5. 해체의 주체에 대한 논란
5.1.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 측의 주장5.2. 반론
6. 해체 후 상황
6.1. 멤버들에 대한 테러6.2. jtL MV에 문희준, 강타 사망 암시 논란6.3. SM 엔터테인먼트JTL 활동 방해 의혹

1. 개요

H.O.T.의 해체에 대해 정리한 문서다.

2. 전개

2001년 2월 27일, 해체 전 마지막 콘서트의 KBS 뉴스 보도 장면
2001년 5월, 해체 발표 후 소속사 항의소동 관련 SBS 뉴스 보도 장면

2001년 2월 마지막 콘서트 이후, 3개월 뒤인 5월 13일 돌연 해체를 발표해 많은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마지막 콘서트 당시 멤버들이 해체는 없다고 굳건히 약속했던지라, 갑작스러운 해체 소식을 들은 팬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H.O.T.의 팬들이 SM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으로 몰려와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의 해체는 1996년에 해체한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많은 파급력을 몰고 왔는데, 정상에서 군림했던 이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따로 고별 무대를 가지지 않고 갑작스럽게 해체했으니, 많은 사람들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해체 원인에 대해서는 관련 인물들의 주장이 서로 다 다른지라 정확한 정보는 없다. 해체 당시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렸으며, 시간이 흘러 양측이 화해한 뒤에도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서로 오해가 있었다는 입장으로 덮어버린 상태이다. 유일하게 서로 일치했던 사실은 같은 날 한 그룹으로 데뷔했지만 멤버들 간 계약기간이 달랐다는 것이다. 이 밖의 모든 주장은 일방의 '주장'일 뿐이다.

3. H.O.T. 멤버 계약 상황

2001년 3월 당시 기사
  • 문희준: 1997년 1월 30일부터 2002년 1월 29일까지(만 5년)
  • 강타: 1997년 2월 6일부터 2002년 2월 5일까지(만 5년)

재계약 협상 멤버
  • 토니 안: 1996년 3월 5일부터 2001년 3월 4일까지
  • 장우혁: 1996년 4월 26일부터 2001년 3월 4일까지
  • 이재원: 1996년 4월 2일부터 2001년 4월 1일까지

4. 노예계약 논란

4.1.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 측의 주장

당시 멤버 개개인이 받았던 인세가 평균 20원[1] 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참조) 이수만은 당시 H.O.T.의 열렬한 팬이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게 된다. 심지어 현진영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20원이 어디냐'고 한 적이 있다.[2] 이를 계기로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노예계약을 집중취재했고 이 방송에서 연예계에 실존하는 노예계약에 대해 jtL 멤버들과 이은미, 김경호 등의 가수들이 증언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연제협이 크게 반발하며 MBC 출연 거부를 선언하면서 노예계약에 대해 증언한 가수들은 한동안 음악방송과 예능방송을 출연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았다.

연제협은 MBC에 소송도 걸었으나 MBC가 승소했다. 당시 연예계 계약 전반이 노예 계약이었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H.O.T.의 정산 조건에 대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멤버 다섯 명의 정산액을 합친 앨범당 100원의 정산액은 당시 업계 평균의 10분의 1에도 못미친다고 나와있으니 업계 평균 계약은 노예 계약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H.O.T.와 같은 케이스의 노예계약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하므로 연제협이 소송을 걸고 반발한 것은 대중의 공감을 사기 어려웠다.

장우혁해피투게더에서 H.O.T.로 활동하며 번 돈은 거의 없었고 jtL로 활동하며 번 돈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토니 안, 문희준 역시 H.O.T.로 활동할 때보다 이후 활동으로 번 돈이 훨씬 많았다고 밝혔다.[3]

4.2. 반론

세 사람의 주장에 대해 SM에서는 적극적으로 반론을 한다. TV연예프로를 통해 H.O.T.멤버들이 SM과 6:4로 수익을 분배해갔음을 공개하고(H.O.T. 6: SM 4) 내역을 공개한다. 또한 인세는 이들이 정산 받아간 항목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콘서트, 광고, 행사 등에서 멤버들의 몫이 컸음을 증명하는 내역도 공개한다. 따라서 세 멤버가 적다고 주장한 인세는 계약 중 한 부분일 뿐이며 대신 다른 부분에서 멤버들에게 유리한 계약을 해준 것이고 계약은 전체적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 H.O.T. 6: SM 4의 결과가 나온 것이므로 노예계약이란 말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4]

실제로 H.O.T.는 데뷔한 지 불과 두달 만에 SM으로부터 멤버당 1,200만원씩 정산을 받았다. 전사의 후예 활동을 마치고 아직 캔디 활동 전인데도 불구하고 당시 신인에게는 파격적인 금액을 짧은 기간에 정산해 준 것이다.

H.O.T.시절 많은 수입을 벌었다는 건 SM과 결별한 세 사람 중 한 명인 이재원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갑자기 국세청에서 전화가 왔다. 수입이 없던 가정에 (많은 수입이 있으니까) 어둠의 경로로 들어온 게 아닌가 하고. 의심이 가니까 전화가 와서 어떻게 번 돈이냐고 하더라. 그래서 아버지가 우리 아들이 H.O.T. 멤버라고 했다"고 말하였다.기사

신인을 데뷔시킬 때는 성공에 대한 리스크를 기획사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아이돌 그룹이 동일하며 H.O.T.시절보다 재계약 이후 많은 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5. 해체의 주체에 대한 논란

누가 먼저 H.O.T.의 해체를 제의했냐에 관해서도 주장이 엇갈린다.

5.1.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 측의 주장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 측에서는 협상 과정에서 SM이 먼저 H.O.T.의 해체를 통보했다고 주장한다. H.O.T.의 비인기, 비핵심 멤버였던 이들 셋은 필요없다는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SM은 몇년 뒤 신화에 대해서도 인기멤버이자 핵심멤버였던 신혜성과 이민우에게만 재계약을 제의한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 SM은 인기, 핵심 멤버만 적극 잔류시키는 것이 회사의 입장이었다. 더구나 H.O.T.는 신화보다도 특정 멤버들에 대한 의존도가 심한 그룹이었다. 문희준, 강타가 핵심멤버이자 인기멤버로서 그룹을 이끌어가는 위치였다. 강타(메인보컬), 문희준(리드보컬) 두 멤버가 곡의 대부분을 소화했으며 다른 멤버들은 현저히 적은 파트를 담당했을 뿐이다. 또한 문희준은 리더이면서 H.O.T. 안무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었다. 두 멤버와 나머지 세 멤버는 H.O.T.가 자작곡을 앨범에 싣기 시작하면서 위치가 더 벌어졌다. 두 멤버의 자작곡이 더 많이 채택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희준은 앨범 타이틀곡 1곡, 후속곡 1곡을 만들었고 강타는 후속곡 3곡을 만들었으며 자작곡으로 H.O.T.에 대상의 영예를 안기기도 했다. 반면 다른 멤버들의 곡은 타이틀곡이나 후속곡이 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기의 지표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SM은 비핵심 멤버 셋의 인기가 둘에 비해 쳐지기까지하자 셋을 홀대한 것이다.[5]

따라서 H.O.T.의 해체는 SM의 뜻이었으며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은 해체를 원하지 않았음에도 사실상 SM에 의해 필요없다며 축출된 것이다.

5.2. 반론

이에 대해 SM은 강하게 부인하며 전혀 사실무근. SM에서 먼저 해체를 언급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의 부모가 해체를 말했다는 주장이다. 세 멤버는 SM 출신 정해익의 회사로 이적할 것이 예정된 상태에서 처음부터 무리한 계약조건을 SM에 요구했고 정해진 수순에 따라 조건 수용을 못하면 해체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6. 해체 후 상황

2001년 5명의 멤버들은 3:2로 나뉘어 각각의 기자회견을 열었고, jtL 멤버들이 SM과의 계약을 만료하고 회사를 떠나면서 H.O.T.는 사실상 해체하게 되었다. SM에 남은 강타와 문희준은 2001년 여름 정규 1집을 발매하고 솔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소속사를 떠난 3명의 멤버도 2002년 초부터 jtL을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jtL의 프로젝트 활동이 종료되었고, 3명의 멤버들은 예전미디어를 떠나 멤버 개인별로 새로운 기획사와 계약해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 8년이 된 시점부터 멤버들의 진정한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던 셈이다.

6.1. 멤버들에 대한 테러

해체 이후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의 몰지각한 팬들이 SM에 잔류한 문희준, 강타에게 테러를 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문희준과 강타의 기자회견 후 두 사람 각 소유 자동차의 앞유리 등을 박살내 차를 파손시킨 일이다. 이들의 폭력성은 당시에도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문희준과 강타는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 세 사람의 계약 상대방이 아님에도 두 멤버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비이성적 행태를 보였다.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의 주장과 배치되는 말은 전부 SM에게 매수당한 것이라고 여기며 모두 부정하고 있다. H.O.T.팬덤은 다른 연예인에게 커터칼을 보내거나 집단으로 야유하는 등 폭력성과 추태로 유명했는데 '자신의 오빠'가 아닌 '다른 오빠'에게 이들의 성향이 표출 된 것이다. SM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했지만 문희준강타는 넓은 아량으로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의 팬들을 용서해준다.
지난달 28, 29일 양일간, 강타의 그랜저 XG 승용차와 문희준의 아우디 TT 쿠페 승용차가 테러를 당해 크게 파손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 강타의 집 앞에 세워둔 그랜저 XG는 승용차의 앞유리가 파손됐고, 서울 흑석동 아파트 앞에 세워둔 문희준의 아우디 TT 쿠페 승용차는 그 강도가 더욱 심하였으며, 승용차 전면에 '잘 되나 보자', '솔로 독립 절대 반대'등의 악의적인 낙서가 난잡하게 적혀있었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사는 지난 27일 강타와 문희준의 전면계약에 따른 이전 'HOT' 극성팬들의 소행으로 보고 있으며, 한 관계자는 "팬들이 분노한 것은 이해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다"면서 "영상집 촬영을 위해 중국에 간 강타가 돌아오는 대로 경찰에 이 사건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강타와 문희준의 소속사 SM에서는 망가진 승용차를 대신하여 벤츠와 BMW 차량을 각각 주문하여 각자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조치해 놓았습니다.
'강타-문희준' 자동차 테러...'HOT' 팬들의 소행?

6.2. jtL MV에 문희준, 강타 사망 암시 논란

'A Better Day'의 뮤직비디오에 장혁과 홍경인이 출연했다. 다섯 남자들의 우정을 그린 내용으로 뮤직비디오의 끝 부분에서 다섯 명 중 2명이 사망한다. 정확하게는 장우혁의 파트에서 화면이 번쩍이더니 2명이 갑자기 눈을 뜬 채로 죽으며, 음악이 끝날 때 2명의 묘비 앞(각각 두 사람의 출생연도인 1978, 1979라는 숫자가 써있다.)에 서 있는 나머지 3명이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목걸이를 묘비에 떨어뜨린다.

후에 문희준은 2015년 세바퀴에서 이 뮤직비디오 내용에 대한 앙금을 유머스럽게 토로했다.
문희준은 “당신도 날 죽인사람이잖아, 여기 날 죽인 사람 다 있네”라고 돌직구를 던지며 “무덤으로 보내고, 말로 죽였다”고 토니안과 김구라를 지목했다.}}}
- 2013년 문희준 인터뷰 -
||
토니안은 문희준의 말에 당황하며 jtL 멤버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고 전적으로 감독이 구상한 스토리라고 변명하였다. 하지만 이미 대단한 인기가수이자 앨범을 직접 제작하는 프로듀서였던 jtL이 뮤비 내용에만은 관여하지 못했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문희준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예능적으로 유쾌하게 풀었을 뿐 자신의 동의없이 더구나 상업적인 목적으로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것처럼 묘사하는 행위에 상관없을 당사자와 팬덤은 없다. jtL팬덤은 대중이 이해했다고 말을 하지만 당시에도 논란이었으며 전형적인 우리편 가해자 감싸기 마인드이다. SM이 뮤비에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의 무덤을 등장시켰다면 jtL팬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 세사람의 행위는 5년간 동거동락한 두 멤버에 대해 선을 넘은 행위이다. 다만 문희준, 강타는 1년 정도 jtL과 사이가 안좋았다가 오해를 풀고 잘 지냈다. MV에 대한 문제 역시 멤버들 간에는 화해했으리라 추정된다.

6.3. SM 엔터테인먼트JTL 활동 방해 의혹

JTL 활동 초기 SM 엔터테인먼트이수만의 방해 공작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당시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1집 타이틀곡 'A better Day'는 SM의 방해로 음방활동을 할 수가 없었고 심지어 케이블 방송에도 출연하지 못했다. 심지어 편성이 예정되어 있던 뮤직비디오 프로모션도 되지 않는등 노골적인 방해 공작에 대해 jtl 소속사인 예전미디어측은 "SM의 부당한 간섭이나 활동 방해가 있을 경우 묵과하지 않겠다"고 반발하는등 불화가 깊어졌고 결국 열받은 클럽 H.O.T.가 SM 사옥 찾아가서 집단항의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

당시 장동욱 SBS 예능국장이 "19일부터 강타, 문희준, 전진 등 SM 소속가수들이 MC를 맡는 프로그램[6]이 방송되기 때문에 협조관계를 유지할 필요도 있다. 굳이 그 쪽을 자극할 이유는 없다"고 답해 방송국과 SM 사이에 유착관계가 있고 SM의 눈치를 봤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언론에서도 SM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으로 보도했다. # #[7]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SM 측은 "어떠한 해명을 해도 득이 될 것이 없다"면서 JTL과 관련된 언론사 취재에 대해 응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결국 앨범 발매후 한 달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났음에도 지상파에서 1위를 하고 게릴라 콘서트에 1만 명 이상이 운집했을 정도로 당시 인기는 여전히 굉장했다.

SM의 이러한 만행은 jtL 이후 멤버들이 솔로 활동을 할 때인 2006년까지도 계속되었다. 2004년 jtL이 예전미디어와의 계약이 끝나가자 SM은 한국이 아닌 중국 투어를 위해 일시적으로 H.O.T.를 하자며 멤버들에게 제안을 하는 희대의 개수작을 부린다. 누가봐도 SM 주가올리기를 위한 속셈 SM은 멤버들의 동의를 얻어냈다는 기사를 주기적으로 내었으나, 멤버들은 동의한 적이 없었고 SM의 일방적인 언론플레이였다. 기사

[1] 이마저도 멤버 간 인세에 차이가 있었다.[2] 사실 앨범 판매에 의한 수익분배 문제는 H.O.T. 등의 SM 소속 가수들의 문제가 아닌 국내외 음악계 전반에 널리 퍼져있는 문제다. 지금도 곡 하나를 MP3로 사면 가수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20원. 일본도 1000엔짜리 싱글 한장이 팔리면 가수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1%가 안되는 9엔에 불과하다. 음원유통사 46%, 제작사40%, 저작권자(작사, 작곡)9%, 실여자(연주, 가수)5%[3] 이와 비슷한 발언을 S.E.S. 유진도 했다.[4] 수익의 6:4 분배는 계약관계가 열악했던 1990년대 기준은 물론 2020년대인 현재 기준으로도 노예계약이라고 볼 수 없다. 이 계약을 했을 당시에 다섯 멤버는 신인이었다. 7:3이상의 계약은 현재에도 재계약시에나 가능하다.[5] H.O.T. 멤버들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연예계 전반에 퍼져있었다. 토니 안에 따르면 세 멤버가 jtL을 결성하고 방송국을 지나갈 때 "저기 H.O.T. 떨거지들 지나간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외부에서도 세 멤버가 비인기, 비핵심 멤버로서 떨거지로 취급되었다.[6] 2002년 방송 SBS <토요일이 온다>. 강타, 문희준, 전진, 유진 SM 소속 4명이 공동 진행.[7] 그리고 이러한 SM의 방송활동 방해 의혹은 몇년후 JYJ 사태에서도 똑같이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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