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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결성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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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당시 SM엔터테인먼트 상황3. SM 입사 과정4. SM 입사 이후
4.1. 그룹 멤버 확정 순서에 관한 소문
5. 멤버들이 말하는 첫 인상6. 결성 일화
6.1. 이수만의 로테이션 시스템 도입 실패6.2. H.O.T. 오디션 비하인드6.3. 기타 이야깃거리

1. 개요

H.O.T.의 결성 과정을 정리하는 문서이다.

2. 당시 SM엔터테인먼트 상황

SM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인 SM기획의 1호 가수였던 현진영의 사회면 사건으로 많은 소속 연예인들과 직원들이 회사를 퇴직하고[1] SM이 나락에 빠진 상태에서 당시 솔로 가수였던 유영진과 듀오 J&J 등을 냈으나 반응이 미미하였고[2] 당시 방송 MC로 활동 중이던 이수만은 운영하던 카페를 팔아 마련한 자본으로 마지막 도전으로 5인조 그룹을 기획하게 된다. 그 첫 결과물이 바로 국내에 아이돌 시장 및 팬덤을 개척한 1세대 대표주자인 H.O.T.

3. SM 입사 과정

SM엔터테인먼트 입사 순서 순으로 나열했다.

3.1. 강타

SM 직원 : 너 음악 잘하니?

- 1994년 당시 SM 직원과 강타의 대화[A] -

음악광이던 3살 위 친형의 영향으로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이 동요를 부르며 놀때 팝송 외에 메탈리카사이먼 앤 가펑클, 건스 앤 로지스, 그린 데이 같은 록음악을 듣고 음악에 심취해 갔고 그때부터 음악잡지를 모으고 돈만 생기면 CD를 사기 시작했다고 한다. 피아노는 이미 초등학생 때 체르니까 마친 상태여서 기타를 잘 칠 자신이 넘쳐 중학교 2학년 때 기타학원에 등록해 꿈에 그리던 클래식기타를 배웠다고. 그리고 부모님이 준 용돈을 몇 달 동안 모아 종로 악기상가에서 기타를 구해 코드를 공부했고 음악적 욕심이 높아지면서 건반 공부를 하기 위해 혼자 책을 보고 독학을 했다. 춤을 접하게 된 계기도 모두 음악 때문으로 처음에는 춤을 잘 추지는 못했지만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그때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축제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무릎이 깨져가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렇게 1993년 중학생 때 부터 일찍히 진로를 음악으로 정하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이듬해인 1994년 말 롯데월드에서 친구들과 버스킹 공연을 하던 강타를 SM 관계자가 우연히 보고 명함을 건넸고, 집에 돌아온 후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강타가 가장 먼저 연습생으로 입사했다. 강타는 명함을 들고 송파구 석촌동 4층짜리 연립 빌라에 있는 SM을 찾아가 춤을 선보였다. 당시 SM 직원은 이수만을 제외하면 4명이었다. 유영진은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를 불러보라고 했고 곧 대표였던 이수만을 만났다. H.O.T. 멤버 후보 중에서도 가장 먼저 SM에 입사한 연습생이다.
이수만 : 갈고 딱으면 뭔가 되겠구나.

- 1995년 당시 이수만과 강타의 대화[A] -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유영진 백댄서를 시작한 후 어느 날 유영진이 알려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영진이 메인 보컬을 한번 불러보라고 말했고, 유영진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이수만이 아무 테이프나 틀고 녹음을 시켜보라고 했다. 강타의 당찬 모습에 놀란 이수만은 그룹 데뷔 제안을 했고 얼마 후에 한 카페에서 SM과 계약을 했다.

3.2. 문희준

형, 그때 인기 정말 대단했어. 난 형이 꼭 성공할 줄 알았어. 이렇게 말야.

- 1995년 당시 가락고등학교 축제에서 문희준를 처음 본 강타의 말[A] -

문정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 문희준은 중학생 때부터 2인조, 3인조로 팀을 만들었다. 그저 춤추는 게 좋아서 수업이 끝나면 학교 유도실 같은 곳에 모여 추고 싶은 춤을 실컷 췄다고 한다. 이후 1995년 송파구 일대에서 춤을 추면서 알게 된 미국에서 살다온 쌍둥이 형제와 세 명이서 '해커'[6]라는 댄스팀을 만들어 인근 학교 축제에 공연을 다녔고, 출연할 때마다 오빠 부대가 따라다닐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었다. 당시 '송파구 노란바지'[7]로 불리던 문희준은 이미 송파구에서 학생들 사이에 유명인사여서 강타와 이재원은 문희준을 처음 만나기 전부터 문희준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고2 겨울방학 때 어머니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집안이 어려워진 문희준은 집안 물건 어느 것 하나 차압딱지가 붙자 큰 충격을 받고 잠시 좌절의 시간도 보냈지만 이 시간들이 훗날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 무렵 한 친구가 잡지에서 찢었다는 "신인가수 모집!"이 적힌 쪽지 하나를 건냈고, 해커 친구들과 의논 끝에 공개 오디션을 보기 위해 밤을 새가면서 연습했다. 당시 특기 춤은 진공관춤으로 TV에서 보고 흉내낸 것이지만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오디션에서 부른 노래는 유영진의 '그대의 향기'. 평소에 노래방에 가면 즐겨 부르던 곡이였다고 한다. 두 번째로 댄스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기에 막연하게 "잘 되겠지"라고 생각했다고. 이 때 자신이 개발한 파워레이서 춤을 췄는데, 이수만이 '너 그거 데뷔하면 꼭 하라.'고 할 정도로 이 때 부터 거의 데뷔 확정이었다고 한다. 이후 몇 차례 관문을 통과 후 최종 연습생으로 선발되면서 SM과 계약했다.

여담으로 문희준은 다른 기획사에서도 캐스팅되어 녹색지대라는 듀오의 멤버로 데뷔할 뻔 했으나, SM이 자신에게 더 맞다고 생각하여 SM으로 옮겼다. 녹색지대의 제작자였던 김범룡도 문희준의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해줬다고 한다.

3.3. 이재원

춤이나 노래를 굉장히 잘하는 것은 아닌 것 같구나. 앞으로 배워나가야 할 것이 많을 거다. 앞으로 열심히 한번 해보자.

- 1996년 당시 이수만이 이재원을 보고 한 말[A] -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춤에 미쳐 있던 이재원은 당시 유행했던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의 녹화 테이플르 돌려보며 댄스를 홀로 독학했다. 워낙 내성적이던 성격 탓에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아버지도 아들이 춤을 추고 싶어한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셨다고 한다.[9] 하지만 학교 공터나 좁은 방안에서도 춤연습을 계속해 나갔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둬서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성적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춤을 추고 싶은 마음에 공고에 진학하려고 해 아버지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고 한다.[10]

1996년 강남공고 1학년 때 댄서를 목표로 연습하던 고2 선배 세 명을 알게 되었고 형들에게 춤을 배웠다. 방과후 교실이나 공터에서 연습을 한지 두 달쯤이 지나고 춤 연습을 함께하던 학교 선배의 제안으로 무작정 SM을 찾아가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이틀 후에 SM 직원으로부터 "사무실로 나올 수 있겠니?"라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실력은 아직 연습이 더 필요로 하지만 너의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제안이였다. 연락을 받고 며칠 후에는 처음으로 이수만을 만났고 앞에서 노래, 춤을 추었고 SM에 합격하게 된다.

3.4. 장우혁

저, 잠깐만 이리로 오세요.

- 1996년 당시 이수만이 장우혁을 불러 한 말[A] -

TV로 처음 접한 마이클 잭슨을 동경한 장우혁은 중2 여름방학 때 누리단 경북지역 연합캠프에서 각 학교별 장기자랑에 학교 대표로 참가했고 "아! 무대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짜릿한 쾌감을 처음 느꼈다고 한다. 첫 무대 이후 수학여행 무대는 당연하고 무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달려갔고 랩도 독학해서 연습했다고 한다. 막연히 가수가 되고 싶은 마음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5명이서 'Y.O.U(Yelp of Utopia)'[12]라는 댄스 그룹을 만들었다. 재학 중이던 현일고등학교는 사립고등학교 였던 탓에 규제가 그렇게 심하지 않아 선생님들도 오히려 재능이 있음을 좋게 여기고 무대에 설 때마다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따뜻한 격려에 힘입어 나가는 무대 마다 늘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전국 청소년 댄스경연대회에서는 2년 연속 수상. 특히 1995년 고2 때는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었을 정도였다. 그 외에도 롯데월드에서 주최하는 댄스경연회에서도 나갈 때마다 주대회, 월대회, 연말결선까지 늘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고2 겨울방학을 막 지났을 때 봄방학을 앞두고 이전에 롯데월드 댄스경연대회 무대에 선 모습을 눈여겨 본 어떤 분의 연락을 받고 Y.O.U 멤버 들과 서울로 향했고 모 체육관에서 열린 공개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문희준도 처음 보았다고 한다. 오디션 순서가 온 후, 이른바 시체춤. 5명이서 열심히 준비한 것을 최선을 다해 선보였는데 이수만이 장우혁을 불렀다. 흔쾌히 O.K!를 외치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수만의 모습에 왠지 긍정적인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후 봄방학을 막 끝낸 후 고3이 된 어느 날 이수만으로부터 "서울에 와라. 계약하자!"라는 제의를 받는다. 그러나 대학 간 이후에도 늦지 않다는 부모님의 반대로 이수만이 직접 구미로 내려가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1996년 3월 SM과의 계약이 성사되었다.

3.5. 토니 안

저는 토니 안이라고합니다. 만약 저를 캐스팅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한국의 가요계도 큰 인재를 몰라본 죄로 한 발짝 후퇴하게 될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 1996년 당시 SM 미주 오디션에서 토니 안의 말[A] -

초등학생 때 7살 위인 누나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가게 된 토니 안은 방과후면 당시 신발가게를 운영하시던 아버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이후 고2 때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춤추는 것에 재미를 느낀 토니 안은 1996년 3월, 'D.K. boys'라는 댄스팀을 만들어 한인축제 등에서 활동했다. 그러던 고3 때 본 S.A.T에서 생각만큼 점수가 나와주질 않아 당시 지망하던 UC에 합격하려면 점수가 약간 모자라 무척 낙담을 하던 중 우연히 한인 신문에서 발견한 SM 미주 오디션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오디션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게 되었다. 원래 몇 십분씩 걱정이나 생각이 많은 타입이였지만 그때만큼은 주저없이 전화를 걸었고 자신있게 자기소개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 워싱턴주에 있는 캐스팅 프로덕션 직원[14]으로부터 얼마만큼 춤을 추는지 노래는 얼마나 하는지 가족사항 등을 물어보는 전화가 걸려왔고, 통화 후에 춤추는 모습을 찍은 비디오클립을 보냈다.
토니라고 했지. 춤 한번 춰 보렴.

- 1996년 당시 미국 LA에서 토니 안을 처음 본 이수만의 말[A] -

얼마 후에 이수만과 오디션을 주선해 주었고 LA의 한 주유소에서 이수만과 첫 대면하게 되었다. 그렇게 오디션 당일 이수만이 바로 계약을 제안하였다. 다음날 부모님 동의 하에 계약을 하였고, 서울을 떠난지 8년 만에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을 마친 후 6월에 귀국하여 연습에 합류한다.

4. SM 입사 이후

백댄서 무대 MV 출연
영상에는 문희준, 강타가 출연.

H.O.T. 멤버를 뽑는 오디션에 합격한 10명이 넘는 다른 연습생들도 있었으나, 점점 떨어져나가 6, 7명 남짓 남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5명 만이 남게 되었다. 강타와 문희준이 유영진의 '너의 착각'이란 곡에서 랩 파트를 받았고 문희준이 곡의 안무를 담당했던 것을 보면, 데뷔가 유력했던 연습생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999년 출간된 H.O.T. 자서전에서 강타가 언급하길, 심심하면 기획사를 찾아가서 녹음하는 것을 구경도 하고 SM 직원들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사무실을 드나든 것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였다고 한다.

문희준이 언급하길, SM과 계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3이 되었고 학생 신분이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활동은 학교 수업에 지장이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에 했다고 한다. 당시 이수만은 무대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강타(고1 겨울방학), 문희준(고2 겨울방학), 이재원(고1 합류)[16]을 1995년 가을경, 유영진의 백댄서로 세웠다. 문희준에 의하면 정말 지겨울 정도로 많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4.1. 그룹 멤버 확정 순서에 관한 소문

그룹 멤버 확정 순서는 불분명하다.
  • 첫번째는 토니 안이 가장 나중에 멤버로 합류했다는 설이다. 근거로는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오느라 뒤늦게 합류한 토니안이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 뮤직비디오에서 혼자 사복을 입고 있고 다른 멤버들은 이미 무대 의상을 갖춰 입고 있다.파일:전사의후예토니.jpg
    또한 문희준과 장우혁이 밝힌 그룹 구성 에피소드 중 마지막 멤버를 결정할 때 멤버들이 만장일치로 토니안을 선택했다고 한다는 얘기도 있다.
  • 두번째는 마지막 연습생인 토니가 합류하던 때에도 아직 10명 정도의 연습생이 있었고, 멤버가 완전히 정해진 것은 아니었으며 강타가 가장 나중에 계약했다는 설이다. 강타가 직접 자신은 여러 연습생들과 경쟁했고 마지막까지 보류된 멤버였으나 유영진의 추천으로 H.O.T.멤버로 최종 결정되었다고 20여년간 여러 차례 밝혔다.[17][18]
  • 한편 토니는 자신은 세 멤버와 달리 H.O.T. 멤버로 확정이 늦어서 눈치를 많이 봤는데 강타도 마찬가지여서 강타도 알 것이다 라는 언급을 방송에서 한 적이 있다. 강타피셜, '토니형, 우혁이형, 재원이는 이수만 선생님이 직접 가셔서 모셔온거고, 희준이형과 나는 우리가 (오디션을 보러) 찾아 온거라 백댄서부터 하면서 오래 지켜보신 것 같다. 오히려 나중에 계약을 했다.'라고 말한 적 있다.[19]

5. 멤버들이 말하는 첫 인상[A]

문희준
  • 장우혁 :
  • 토니 안 :
  • 강타 : 강타는 사실 SM 입사 이전부터 알고 지냈다. 워낙 인물이 출중하다 보니 인근 고등학교에서 모르는 아이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거의 내 인기와 쌍벽을 이루었다고나 할까(!)
  • 이재원 :
장우혁
  • 문희준 :
  • 토니 안 : 미국에서 귀국했던 토니는 이국적인 냄새가 확~ 풍기는 정말 세련된 아이였다.
  • 강타 :
  • 이재원 :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은데......
토니 안
  • 문희준 : 희준이의 경우는 우혁이보다 더 남성미가 강하게 풍겨오는 이미지였다. 눈도 크고 어깨도 떡 벌어진 모습이 위압적이라고나 할까.
  • 장우혁 : 우혁이는 사나이 그 자체의 모습이였다. 하지만 웃을 때는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느껴졌다.
  • 강타 : 강타는 순수하고 여성적인 이미지가 느껴졌다. 마음도 여리고 굉장히 착해보이는 이미지였다.
  • 이재원 : 멤버 중 누구보다 키가 큰 재원이도 막내 같은 귀여운 모습보다는 어른스러운 이미지였다.
강타
  • 문희준 : 끼가 넘치고 눈빛에서 기질이 흘러넘쳤다. 지금도 팀의 리더로서 어려운 일을 도맡는 형의 모습에서 어떤 카리스마 같은 것이 느껴진다.
  • 장우혁 : 우혁이형을 만난 곳은 신촌의 한 행사장 카페.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앉아 있었다. 그 당당한 모습과 분위기가 멋져보였다.
  • 토니 안 : 토니형을 처음 만난 곳은 대구공연 때였다. 상당히 자유로워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아, 이 사람이 우리 팀에 있다면 굉장히 자유롭고 세련돼 보이겠구나'라고 생각했다.
  • 이재원 : 재원이는 어리고 순수한 이미지였다. 겪어볼수록 그런 모습만큼이나 강한 프로의식이 느껴지는 친구지만 말이다.
이재원
  • 문희준 : 형이 다니던 중산고에 친구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그)형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가 있을 만큼 춤에 소문나 있었다. 게다가 생각했던 것보다 멋지고 남자다운 인상이였다. 그때는 희준이형의 머리스타일이 짧은 머리여서 더 남성적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 장우혁 : 처음 만난 우혁이형은 사투리를 썼다. 알고보니 집이 구미라는데 외모는 너무나 세련돼 보였다. 그 멋진 외모에 경상도 사투리는 약간 얼밸런스였다. 하지만 형의 춤솜씨를 한번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 토니 안 : 머리에 두건을 쓰고 세련된 아메리칸 이미지가 풍겼다. 사고도 굉장히 쿨하고 개방적인것 같았다. 처음엔 말이 별로 없어서 내성적인 형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희준형과 쌍벽을 이루며 웃긴다.
  • 강타 : 강타형은 더 짧은 스포츠 머리스타일로 모범생 스타일이였다. 꼭 옆집 형처럼 친근한 인상이라고나 할까. 더욱 놀란 것은 처음 만나서 춤을 췄는데 두 형 다 상당한 춤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 때의 위기감이라니......

6. 결성 일화

6.1. 이수만의 로테이션 시스템 도입 실패[21]

  • H.O.T.는 "High-five Of Teenagers(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라는 그룹명의 뜻처럼 십대로만 이루어진 그룹이 기획의도였기 때문에 10대가 넘은 멤버는 교체되기로 돼있었다고 한다. 즉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그룹에서도 졸업하는 시스템이였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거대한 팬덤과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게 되면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관련 기사

6.2. H.O.T. 오디션 비하인드

  • 멤버 모두 이수만에 직접 발탁되어 데뷔한 케이스. 앞서 서술한 봐와 같이 이미 송파구 지역에서 각각 '오금고 하얀 미소', '송파구 노란바지'로 유명했던 강타와 문희준이 일찌감치 SM 연습생으로 발탁되었으며, 길거리 캐스팅된 이재원에 이어 구미 지역에서 춤짱으로 각종 댄스대회 트로피를 휩쓸며 유명세를 타던 장우혁이 그 뒤에 우여곡절 끝에 계약을 하였고,[22]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주 지역 오디션으로 토니 안이 합류하게 됐다. 초기 연습 영상
  • 원빈이 데뷔 전에 SM에 오디션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수만이 원하던 컨셉과는 이미지가 안 맞아서 탈락했다고 한다.[23] 만약 붙었다면 십중팔구 H.O.T. 멤버가 되었을 거라고. 또한 김종민 역시 이 당시에 오디션을 봤었는데 "백댄서부터 시작하라"는 말을 듣고 탈락인 줄 알고 스스로 그만뒀다고 한다.[24] 하지만 이후 문희준이 밝히기로 그게 합격 통보였다고. 만약 김종민이 그대로 남았다면 김종민 역시 H.O.T. 멤버가 되었을 확률이 높다. 이외에 개리[25], 앤디[26], 황대균, 장용진[27], 심지어 타이거JK[28] 등 여러 후보가 있었다.[29]
  • 데뷔 당시 멤버 전원이 고등학생으로 이뤄진[30] 그룹이다보니 데뷔 전에는 주로 주말[31] 혹은 방학 때에만 연습을 했으며, 데뷔를 앞두고는 합숙 훈련을 해가며 노래와 춤을 배웠다고 한다. 데뷔곡 '전사의 후예'는 멤버들이 8개월 동안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 동안 맹연습을 했었다고 한다.

6.3. 기타 이야깃거리

  • 문희준과 강타는 SM 입사 이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다. 두 사람은 노래방도 자주 함께 다녔었다고 한다. 같이 노래를 하면 거의 환상적인 화음을 자랑하고 했다고.
  • 이재원이 멤버 중 처음 만난 사람은 문희준과 강타이다. 당시 송파구 석촌동 SM 녹음실에서 첫 대면했다. 이재원에 의하면 문희준은 이재원의 존재를 몰랐겠지만 이재원은 중산고에 다니던 친구를 통해 문희준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고 한다.
  • 강타, 이재원이 미국에서 온 토니 안과 처음 만난 장소는 유영진의 백댄서로 서던 1996년 대구 공연이였다.
  • 이재원이 장우혁과 서로 처음 만난 장소는 유영진의 백댄서로 서던 1996년 서울랜드의 공연장이였다.
  • 장우혁과 토니 안이 서로 처음 만난 시기는 여름방학을 맞아 다섯 명이서 본격적으로 합숙훈련에 돌입했던 때였다.
  • 멤버 5명 전원이 다같이 처음 모인 장소는 석촌동 SM 사무실이였다고 한다.


[1] SM에서 '스케줄 매니저'를 담당하던 최진열은 현진영 사건 이후 SM을 떠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매니저가 됐다.[2] 그의 동생인 유한진은 3인조 혼성 밴드 메이저의 멤버로 활동하나 이쪽도 마찬가지로 망했다. 특히 메이저는 대중들의 반응이 좋았으나 방송국에서 의상 문제를 이유로 출연을 금지시킨 데다가 유한진을 포함한 멤버 전원이 활동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영향이 컸다.[A] 1999년 출간된 H.O.T. 자서전 중에서[A] [A] [6] 컴퓨터 용어지만 나름대로 의미싱장한 의미로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침투(?), 그들의 혼을 빼앗겠다'라는 각오를 담았다고 한다.[7] 당시 문희준이 공연을 할 때 노란색 바지만 입고 공연을 해서 붙여진 별명.[A] [9] 밤 늦게까지 댄스 비디오를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고.[10] 당시만 하더라도 춤 연습을 많이 하려면 인문계에 가는 것보다 공고에 가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A] [12] 이상주의자들의 비명이라는 뜻으로 후배도 양성하는 제법 댄스 동아리로서 면모를 점차 갖춰갔다고 한다.[A] [14] 신화 에릭앤디,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브라이언 등을 발탁한 유명한 캐스팅 디렉터이다.[A] [16] 문희준강타가 먼저 백댄서로 활동했고, 이재원은 1996년에 합류했다.[17] (강타 데뷔 비하인드 인터뷰 중) ... (생략) 운명의 밤이었다. 어느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밤에 보이즈 투 맨의 '엔드 오브 더 로드'가 들려왔다. 밤에 초등학교에서 음악이 흘러나올 수 없는 것인데 알고보니 방송반 친구가 밤에 몰래 틀어놓고 혼자 듣고 있는 것이었다. 마술에 걸린 듯 초등학교 운동장에 걸터 앉아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엔드 오브 더 로드'에 취했다. 그 노래를 처음 듣고 내 갈 길은 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까지는 록이 아니면 음악이 아닌 줄로만 알았다. 이후 록이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됐다. 화성이나 작곡에 관심을 갖게 됐고 본격적으로 작곡과 편곡 작업을 시작했다. H.O.T.에 들어가게 된 것도 결국 보이즈 투 맨 덕분이었다. '엔드 오브 더 로드'를 듣고 다음 앨범인 '아일 메이크 러브 투 유(I'll make love to you)'가 나오기까지 한참 걸려서 그동안 보이즈 투 맨과 비슷한 아카펠라 그룹이나 R&B 그룹의 노래를 계속 들었다. 그 중 한 그룹이 포 이그젬플이라는 그룹이었다. 나는 H.O.T.에 마지막까지 보류된 멤버였다. 4명이 확정된 상황에서 내 인상이 사나워 보인다고 보류돼 있었다. 무대 경험을 쌓으라고 (유)영진이형 백댄서할 때였는데 우연히 차에서 포 이그젬플의 'I'd Rather Be Alone'이라는 노래가 흘러 나오자 뒷좌석에 앉아서 조용히 따라불렀다. 이걸 들은 영진이형이 이수만 회장님께 '쟤 노래 한 번 시켜 보시라'고 권해서 결국 H.O.T.에 들어가게 됐다. '엔드 오브 더 로드'가 없었다면 아이돌 그룹 H.O.T.의 리드보컬 강타는 없었을 것이다. ...(후략).[18] 현진영 사건 이후로 이수만은 학교 생활도 충실히 하면서 끼도 있는 학생들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래서 순한 인상의 이재원을 맘에 들어했다고 한다.[19] 엄밀히 따지면, 문희준도 캐스팅 담당자가 문희준의 소문을 듣고 학교로 찾아왔다는 설이 있다. 강타는 롯데월드에서 길거리 캐스팅 되기 전부터 음악으로 진로를 정하고 여러 기획사에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A] [21] 이후에도 이수만은 로테이션 시스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동방신기SUPER JUNIOR에 도입을 시도하였으나 팬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그뒤 NCT에 로테이션 시스템을 도입하였으나 2023년 이수만이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로테이션 시스템 자체가 폐기되었다.[22] 장우혁은 당시 댄스대회에서 SM 관계자에 명함을 받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게 되고 H.O.T. 최종멤버 구성에 고민을 거듭하던 이수만이 직접 구미로 내려가 장우혁의 어머니를 설득해 계약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관련 영상[23] 그 후 원빈은 당시 신생 방송국이었던 제일방송(현 MBC 드라마넷)의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게 된다.[24] 그 후 김종민코요태의 멤버로 활동하게 되며 차승민이 탈퇴한 이후 합류하였다.[25] 후에 허니패밀리를 거쳐 리쌍의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26] 토니안이 미국에서 오디션에 참가할 때 앤디도 있었으며, 토니 안과 같이 합격하였으나, 앤디의 경우 당시 부모님의 강한 반대로 끝내 합류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후 같은 소속사의 아이돌 그룹 신화의 멤버로 데뷔한다.[27] '캔디'와 '행복'의 작곡가다.[28] 타이거JK가 미국에 있을 당시 래퍼로 제안받았다고 직접 밝혔다.[29] 본래 당시 초기에 연습생은 10명이었지만 결국 5명이 나가고 마지막 남은 5명이 데뷔한 게 바로 H.O.T.다.[30] 2014년에 데뷔한 Red Velvet아이린이 무려 91년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의 아이돌이 요즘 아이돌에 비해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어린 데뷔 나이와 짧은 수명을 가졌었는지 알 수 있다.[31] 장우혁은 토요일 수업이 끝나자 마자 서울에 올라와 밤새 연습을 하고 비디오를 찍고 다시 구미로 향했다고 한다.[32] 당시 연습 영상에 나왔던 노래와 안무는 1집 앨범에 수록되기 전인 '전사의 후예' 데모 버전인 것으로 보여진다.[33] 참고로 현진영은 H.O.T. 1집 앨범 프로듀싱에 참여하였으나, 몇 년 후 SM을 퇴사하기 전까지 H.O.T. 멤버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할 정도로 이수만이 철저히 격리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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