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가스가 히로후미 春日博文 | かすが ひろふみ | |
출생 | 1954년 1월 25일 ([age(1954-01-25)]세) |
도쿄도 미나토구 | |
예명 | 하치 |
직업 | 음악가, 기타리스트, 드러머, 프로듀서 |
링크 |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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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기타리스트, 프로듀서. 한국에선 '하찌'라는 예명으로 알려져있다.2. 상세
리즈 시절 카르멘 마키 & OZ 활동 시절 라이브.
1954년 1월 25일 도쿄 미나토구 출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밴드부 활동을 전전하며 드럼과 기타 실력을 갈고닦은 유년을 보내던 바 있었다. 이때 아침잠이 많아 고등학교를 중퇴하기까지 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던 점을 보아선 기행 기질이 이때부터 비롯되었던 모양.#
그리고 여성 가수로 명망을 떨치던 카르멘 마키와 1972년 카르멘 마키 & OZ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때 그의 나이 불과 18세였다. 이른 시절부터 블루스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 기반의 테크니컬 기타리스트로 명망을 떨쳐왔고 7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로서도 추앙받으며 '동양의 에릭 클랩튼'이란 별칭으로도 불리고 했다. 그리고 밴드 활동이 77년자로 종료된 이후론 RC 석세션,[2] 소울 플라워 유니온 등 굴지의 뮤지션들 객원 위주로 드러머 및 기타리스트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지만 단발성 활동들에 불과했다.
하치와 애리 활동 시절 온스테이지 촬영 영상.
그러다 1985년 한국의 사물놀이와 꽹가리 사운드에 매료된 그는[3] 서울로 건너와 완전히 정착하며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4] 이때부터 '하치'라는 예명으로 한국에 알려지게 된것. 전인권이나 강산에의 프로듀싱 활동을 시작으로 본인 스스로도 음악 활동을 개시하여 2006년부로 조태준과 함께 하찌와 TJ 듀오를 결성, 2010년엔 하찌와 애리로서도 활동하기도 했다.[5] 하찌와 TJ때 내었던 장사하자 노래는 나름 소소한 유명세를 벌어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일본내 활동을 완전히 놓은것은 아니고, 재일교포 위주로 결성된 '도쿄 비빔밥 클럽'이란 밴드로 활동한적도 있었고[6] Hachi's 라는 명의로도 일본내 소규모 라이브 활동을 이어가 던 행보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그래왔듯 하치 & OO 라는 듀오 활동을 자주 보여주는 모양.
한국에선 특히 우쿨렐레 전도사로서 서적도 발매하고 각종 워크숍이나 강연을 자주 개최하기로도 유명했다. 10년대까지도 이런 한국내 활동을 이어가긴 했지만, 18년 이후론 국내 공개적인 활동은 뜸해진 편. 특히 코로나 이후론 한일 왕래가 불가능해지자 기존 카르멘 마키 밴드 재결성 활동을 재개한다던지 일본내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 활동 와중에도 소규모 공연마다도 한국 뮤지션을 게스트로 초청한다던지 코로나 이후론 한국 방문도 간헐적으로 이어가는 중이다.
[1] I am Seoul Man 이라는 제목으로 활동하는 일본어 위주 개인 블로그. 2013년 글을 마지막으로 정전 상태다.[2] 이 밴드 재편 시기동안 정식 멤버로도 잠깐 활동했고 멤버였던 이마와노 키요시로와 나카이도 레이치와는 교류가 많았다고 한다.[3] 도쿄에서 열린 김덕수의 사물놀이 공연으로 접했다.[4] 처음엔 평택시의 국악기 학당으로 건너가 장구를 수련했다고 한다.[5] 기존 화려한 록밴드 모습이 아닌 소탈한 어쿠스틱풍 음색 인디 위주의 활동들이다. 스스로도 나름 유창한 한국어로 보컬을 소화하기도 한다.[6] 당시 발매한 작품 중 하나 도쿄 아리랑. 활동은 수십년째 이어오고 있는 나름의 본진으로 2020년 신보를 발매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