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13:29:01

가파르 니메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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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르 알바시르 아메드 아와드 이븐 아우프 압델파타흐 알부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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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공화국 제4대 대통령
가파르 무함마드 안 니미에리
Gaafar Nimeiry
جعفر محمد نميري
파일:니메이리.jpg
출생 1930년 1월 1일
앵글로-이집트 수단 옴두르만 와드누바위
사망 2009년 5월 30일 (향년 79세)
재임기간 제4대 대통령
1971년 10월 12일 ~ 1985년 4월 6일
제8대 총리
1969년 10월 28일 ~ 1976년 8월 11일
1977년 9월 10일 ~ 1985년 4월 6일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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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단 공화국독재자. 그러나 마찬가지로 뒤에 들어온 아프리카에서 최악으로 손꼽히는 독재자오마르 알 바시르 때문에 묻혔다.

2. 생애

1930년 1월 1일 수단의 옴두르만 와드누바위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졸업하고 군에서 복무했고 남부 반란군 진압 전투를 지휘했으며 1966년에는 미국 캔자스주에 있는 미국 육군대학을 이수했다. 그러다가 1969년에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정권을 잡았는데 민간 정부를 무너뜨리고 소장으로 진급하였으며 총리 겸 혁명위원회 의장이 되었다. 1970년 일어난 우익 반란을 진압하였으나 1971년 친소파의 쿠데타로 실각했다가 같은 해인 1971년 9월 선거에서 98.6%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수단 대통령에 당선됐다.

취임 후 혁명평의회를 해산시키고 1972년에는 단일 정당으로서 수단 사회주의자연합(SSU)을 창설하여 당수가 되었으며 같은 해 아디스아바바 협정을 체결함으로서 1차 수단 내전을 종식시켰다. 다만 친소파 쿠데타 관련자들의 처형 문제로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는데 자기 자신도 한때 공산당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단 공산당 서기장을 사형시켜 버렸다.

수단 대통령에 취임한 후 수단사회주의자연합(SSU)을 창설해 사회주의 경제 정책을 시행했는데 수단을 식량 생산국으로 만들기 위해 자본주의 농업 쪽으로 노선을 바꿨으며 결국 1981년 세계 제일의 제당공장인 키나나 설탕 프로젝트가 완공되었지만 이러한 개발 계획은 수단의 경제위기를 초래했다. 그는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의 중동 평화교섭에 동의한 최초의 이슬람 지도자였지만 이란 혁명이 일어나면서 주변 이슬람 국가들의 민중들에게 이슬람주의가 전파되자 점차 권력 유지에 위협을 느끼고 사회주의 성향에서 이슬람주의 성향으로의 변화를 꾀했다. 그래서 1983년에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통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려고 했다. 당연히 샤리아를 시행하려던 그의 구상은 그리스도교가 우세한 남부 지역에서 반발을 샀다. 이에 따라 1983년 6월 5일부터 남부 지역에서 무장투장이 발발해서 제2차 수단 내전이 발발하였는데 이는 2005년까지 이어졌으며 훗날 남수단이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3년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이듬해 5월 스스로 '칼리풀라 필 아르드(Khalifullah Fil Ard ; خلیف اللہ فِي الأَرْضِ)' (지상의 신의 대리인)을 칭하며 개인 숭배에 이르려고 하였다. 그의 막나가는 행보에 반대파가 늘어났고 1985년 4월 이집트에 체류하는 동안 국방장관이였던 압델 라흐만 스와르 알다하브의 쿠데타로 인해 수단 대통령에서 축출되었다. 이후 이집트에 망명했다가 14년 만인 1999년 5월 수단으로 돌아가 정계 복귀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인민노동세력동맹”이라는 정당 결성 허가를 받아 그를 새 정당의 총수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나 2009년 5월 30일에 향년 79세로 그가 사망하면서 그냥 흐지부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