嘉平
중국의 연호 중 하나이다.
1. 삼국시대 조위 제3대 황제 조방이 사용한 연호
조위의 연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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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제3대 황제인 조방이 사용한 연호로 249년부터 254년까지 사용되었다. 정시 10년(249년) 사마의가 일으킨 고평릉 사변 직후 사마씨가 조위의 정권을 장악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251년 왕릉의 난을 진압한 사마의가 죽고, 사마의의 뒤를 이은 사마사가 조위의 정권을 장악하였다. 254년 사마사가 조방을 폐위하면서 가평 연호는 사용이 중지되었고 정원으로 연호가 변경되었다.
1.1. 주요 사건
- 가평 원년(249년): 정시 10년을 가평 원년으로 개원
- 가평 3년(251년): 왕릉의 난
- 가평 4년(252년): 사마사의 동흥 전투
- 가평 5년(253년): 사마사와 제갈각의 합비 신성 전투
- 가평 6년(254년): 하후현, 이풍 등의 정변 시도 실패, 조방의 폐위
2. 오호십육국시대 전조 제3대 황제 유총이 사용한 연호
전조의 연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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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의 제3대 황제인 유총이 사용한 연호이다.
2.1. 주요 사건
3. 오호십육국시대 남량 제3대 군주 독발녹단이 사용한 연호
남량의 연호 | 서진의 연호 | |||
경왕 홍창(弘昌) (402년 ~ 404년) | → | → | 문소왕 영강(永康) (414년 ~ 419년) |
남량의 제3대 군주인 독발녹단이 사용한 연호이다. 404년 후진에 복속했던 독발녹단이 후진으로부터 독립한 뒤에 남량을 부흥시키고 408년에 선포한 연호이다. 이후 남량이 414년에 서진에게 멸망하면서 남량의 마지막 연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