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10:56:45

신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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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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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1.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17

파일:PLAYERS_CHOICE_AWARDS_LOGO_1.png2013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기량발전 선수상

보유 기록
최연소 사이클링 히트 2004년 09월 21일 20세 8개월 21일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59번
결번 <colbgcolor=#000> 신종길
(2002)
페레즈
(2003)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5번
임봉춘
(2000~2002)
신종길
(2003)
이용훈
(2003.6.10.~2004)
한화 이글스 등번호 42번
채상병
(2002~2003)
신종길
(2004)
임기범
(2006~2007)
한화 이글스 등번호 33번
김종석
(2000.6.1.~2004)
신종길
(2005)
김강
(2007~2008)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96번}}}
결번 신종길
(2008)
김강
(2009)
KIA 타이거즈 등번호 2번
강동우
(2008)
신종길
(2009~2018)
황윤호
(20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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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길
辛鍾吉|Shin Jong-gil
출생 1983년 12월 31일[1] ([age(1983-12-31)]세)
전라남도 장성군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광주대성초 - 무등중 - 광주제일고 - (동신대)
포지션 내야수외야수[2]
투타 우투좌타
프로 입단 2002년 2차 6라운드 (전체 46번,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2002~2003)
한화 이글스 (2004~2008)
KIA 타이거즈 (2009~2018)
지도자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0)
병역 공익근무요원 (2005~2007)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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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영산 신씨[3]
가족 어머니 남순금[4], 형, 남동생
응원가 구단 자작곡[가사1][6]
노라조 - 〈카레[가사2]
Roy Orbison - 〈Oh! Pretty Woman[가사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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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이후4. 플레이 스타일5. 여담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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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유망주 시기에 두번의 트레이드를 겪고 2군을 전전하며 힘든 시기를 겪었다.[10] 2008년 고향팀인 KIA 타이거즈에 오게 되었고, 2010 시즌에 빠른발과 준수한 컨택 능력을 보이며 1군 멤버로 본적격으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부진과 활약을 거듭하였지만 우승도 함께하고 10여년간 팀에 기여한 프랜차이즈 선수.

한 시즌에 30개 가까운 도루를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로 발이 굉장히 빠른 것이 장점이다.[11] 다만 수비와 주루에서의 센스는 스피드에 비해선 다소 부족하다고 평가되기도 하였다. 다만 센스가 특출나진 않았을뿐 상대적으로 늦게 1군에 자리잡았음에도 쓰임새가 꾸준히 어필되며 17년간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신종길/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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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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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퇴 이후

비슷한 시기에 방출된 김지성과 함께 광주 사회인 야구단에 입단함과 동시에 북구 양산동 OB맥주공장 근처에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차렸다. ##

2020년에 울산공고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2021년부터 광주에서 신종길유소년야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실외연습장은 광산구 산월동 첨단종합운동장 야구장, 실내연습장은 광산구 흑석동 632에 있다.[12]

4. 플레이 스타일

빠른 발을 가진 좌타자로, 타격 후에 주루자세로 전환하는 속도가 빠르지만 야구센스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 전반적으로 김주찬과 비슷하게 신체능력 중심의 플레이를 하는 선수다.

기본적으로 발이 빠른 선수다. 준족으로 유명한 이대형, 김주찬보다도 빠르다고 한다. 이대형과는 고등학교 동기인데, 100m 달리기 시합을 해서 이대형을 이긴 적이 있다고 한다. 100m를 11초에 끊는다고 하는 듯. 실제로 롯데에 있을 땐 김주찬과의 달리기 시합에서 이겼고, 한화에서는 김수연을 상대로 이겼다고 한다. 얼마나 빠른지 피치아웃을 당해도 도루를 성공할 정도이고, 번트를 대고 스피드만으로 내야안타를 만들어낼 정도이다. 하지만 빠른 발을 가지고 있음에도 주루센스가 심히 부족하여 어이없게 주루사당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좋은 체격 조건과 빠른 배트 스피드를 가지고 있어 단타형 타자임에도 뜬금포를 기대할 수 있는 파워를 지니고 있다.

직구에는 강하나 변화구에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2스트라이크 후에 몸쪽 밑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엔 정말 속수무책. 선구안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라 타율 대비 출루율이 썩 높지는 않다.[13] 하지만 2013년 김용달 코치를 만난 이후 변화구에 대한 공략이 한층 나아졌다.

신인 시절에는 내야수로 뛰었지만, 이후 외야수로 전향. 외야 수비는 좌중우 가리지 않고 전부 소화할 수 있지만 타구판단이나 포구에 아쉬운 점이 있다. 발이 빠른 덕에 수비범위는 넓고, 어깨는 평균 이하. 팀이 암흑기에 빠졌던 당시 혼자 팀을 먹여살렸지만 이후 약점을 드러내며 대타 대수비 대주자 등으로 나오는 중. 2017 시즌에는 대타 스페셜리스트로 대타 성공률 최상위권을 마크하고 있다.

5. 여담

  • 고교 시절에 손목 부상을 입어 몇 번 수술받았다.
  • 과거 프로야구 선수가 양다리를 걸쳤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화제가 되었을 때, 그 당사자로 지목되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지만 크게 이슈가 되지는 않은 듯.
  • 2011년 12월에 결혼했다. 위에서 언급했던 양다리 문제 때문인지 네이버에서 신종길을 검색하면 신종길 간통이 연관검색어로 뜨는데, 양다리 문제가 터진 건 7월로 그가 결혼하기 전이니 절대 오해하지 말자.
  • 롯데 자이언츠김대우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야구를 해온 선후배 사이다. 그리고 2014시즌 기아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대형은 중고등학교 절친. 다만 이대형이 유급을 해서 졸업년도는 신종길이 1년 빠르다.
  • 의외의 사실인데, 타격 버퍼링이 제일 긴 선수이다. 박한이로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으나 실상은 신종길. 무려 28초가 걸린다. 물론 현재에는 12초룰 때문에 안 되지만.
  • 전설의 타이거즈김평호 코치와 12-13시즌 사제지간이었던 인연으로 함께 출연했다. 본인이 운영중인 야구 레슨장에서 촬영했다.
  • 트레이드 당시 올라온 기사의 서두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KIA 타이거즈 갤러리 등지에서 광주가 고향인 선수들이 KIA로 오면 좋겠다고 상상을 할 때 자주 인용되곤 한다. '휴식일'만 쳐도 바로 연관검색어에 나올 정도.[배영은기자의 베이스볼 벤치스토리] 8년만에 고향팀 KIA 품으로 …“이제 다시 시작이다”
    휴식일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구단이었다. "사무실로 와라." "무슨 일입니까." "트레이드다." "KIA 아니면 안 가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축하한다. 너 광주로 간다."


    신종길(27, KIA)은 잠시 멍해졌다. 광주대성초-무등중-광주일고. 광주에서 나고 자란 그였다. 롯데에 지명 받아 처음으로 고향을 떠난 2002년부터, 그는 늘 광주를 그리워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어요. KIA 유니폼을 입고 단 한 경기라도 더 나가는 게 제 소원입니다." 지금 입고 있는 붉은 유니폼이 그에게는 '꿈' 그 자체였던 것이다. (후략)

6. 관련 문서


[1] 영산·영월신씨대동보 6권 743쪽에는 11월 30일생으로 등재되어 있다.[2] 2루수로 출전하다 한화 이글스 이적 이후 외야수를 병행하게 되며 외야수로 전업했다. 외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지만 주로 우익수로 출전하였다.[3] 초당공파(草堂公派) 31세 종(鍾) 항렬.[4] 아버지는 중학교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가사1] 안타하면 신종길! 신종길이 나왔다~ 도루하면 신종길! 폭풍질주 신종길~ 폭!풍!질!주! 신종!길! ×2[6] 신종길의 팬클럽에서 신종길을 위해 만든 응원가 중 가장 호응이 좋았던 것을 응원가로 썼다.[가사2] 폭풍질주 신종길 좋아~ 너무 좋아~ 완전 좋아~ 폭풍질주 신종길 좋아~ 너무 좋아~ 완전 좋아~ 폭!풍!질!주! 신!종!길! ×2[가사3] KIA의 신종길~ KIA의 신종길~ 폭풍질주 KIA의 신종길~ 워~ KIA의 신종길~ KIA의 신종길~ 폭풍질주 KIA의 신종길~[9] 영화 귀여운 여인 OST.[10] 이 기간 중 고졸 3년차의 나이로 KBO 리그 최연소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며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2군을 전전했으며, 2010 시즌 전까지 8년간 2군 생활을 한 늦깍이 유망주였다.[11] 실제로 통산 도루 3위에 빛나는 이대형과 고교 시절 100m 달리기 측정 시 1,2위를 다퉜다고 한다.[12] 신종길의 동갑내기인 김진우-손주인의 진흥고 야구부 동기였던 최길환과 같이 운영중이다.[13] 당연히 삼진도 엄청나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