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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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장군으로 견초의 차남. 기주 안평군 관진현 사람.2. 정사 삼국지
용맹하고 굳세 견초의 기풍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며, 262년에 농서태수를 지낸 견홍은 촉한멸망전 당시에 등애를 따라 강유를 정벌할 때 제갈서가 퇴로를 끊고 양흔이 가송으로 파견되거나 왕기가 첩영을 공격할 때 자신은 강유의 군대를 정면에서 공격하는 역할을 맡는다.함희 연간(264년 ~ 265년)에 진위호군이 되었으며, 270년에는 양주(揚州)자사를 지내면서 1월에 정봉이 와구로 침공하자 이를 공격해서 쫓아냈다. 대사마 겸 도독양주제군 진건의 명령을 받았지만 순종하지 않아 진건과 견홍이 서로 맞지 않아서 비방한다고 생각해 견홍은 소환되었다가 271년에 양주(揚州)자사로 임명되었으며, 271년에 북지의 이민족들이 금성을 공격하자 견홍은 이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민족들이 모두 안에서 반란을 일으켜 독발수기능과 함께 청산에서 견홍을 포위하자 결국 전사했으며, 견홍은 과단성이 있으면서 굳세었다고 하지만, 진건에게 무식한다고 들었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3. 삼국지연의
등애를 따라 강유와 싸운 것은 같지만 1만 5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른쪽에서 답중을 공격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왕기가 답중으로 가서 강유를 먼저 공격해 강유와 일기토를 벌이다가 세 합만에 도망칠 때 왕기에 이어서 군사를 이끌고 오자 강유가 "이런 쥐 같은 무리는 내 적수가 아니로다!"라고 말했다.등애가 제갈첨과 함께 싸울 때도 제갈첨이 항복을 권하러간 사자를 목베어 등애가 분노하자 구본의 제안을 받아들여 편지를 통해 항복을 권해 도발하면서 등애의 명으로 왕기와 함께 매복했다가 등애가 제갈첨과 싸우다가 거짓으로 퇴각하자 왕기와 함께 제갈첨의 군대를 격파해 면죽성을 포위한다.
후에 등애가 성도를 점령해 촉의 항복을 받아내자 사찬이 익주자사로 임명되면서 왕기 등과 함께 각기 주와 군을 맡아보게 되었다. 여기서는 독발수기능의 난이 짤려서 그의 최후가 나오지 않는다.
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13, 14 |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무력과 통솔력은 70대, 지력과 정치력은 60대인 밸런스형 B-급 무장. 아버지가 삼국지 11에서부터 등장하고 그 전에 안 나온 것에 비해 견홍은 연의에 등장하였기 때문에 삼국지 6, 삼국지 7, 삼국지 12편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74/70/67/64이며 병법으로는 돌파, 제사, 정란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매 순으로 76/72/66/64/58에 특기는 6개.(치안, 돌격, 은밀, 반목, 지리, 나선) 통솔 76을 살릴 수 있는 치안 특기와 전투에서 유용한 돌격 특기가 있어 아쉬운 대로 굴릴 수 있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매 순으로 70/74/66/65/57에 특기는 답파. 적성은 병기 A가 있다. 그리고 아버지 견초가 이 작품부터 등장한다.
삼국지 13에서의 일러스트는 창을 두 손으로 들면서 요격하고 있으며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70/74/66/65, 특기는 순찰 1 단 하나. 전수특기도 당연히 순찰로 전법은 궁공강화.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0, 무력 72, 지력 66, 정치 64, 매력 58로 전작과 달리 무력이 2, 정치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장구, 산전, 주의는 패도, 정책은 병기강화 Lv 3, 진형은 장사, 정란, 충차, 전법은 돌격, 매성, 정란, 충차, 친애무장은 없고 혐오무장은 진건이다.
4.2. 삼국전투기
아버지 견초의 패러디였던 스틸윌을 이어받았다. 다만 아버지와는 머리 방향이 반대.[1] 여담으로 검각 전투 (6)편에 수록된 견홍의 소개컷에는 아버지처럼 언제나 변방에서 빛났다고 소개했지만, 아버지 견초와는 달리 변방에서 빛나기는 커녕 독발수기능에게 무참히 깨져 독발수기능의 세력이 어마하게 커지게 했다는건 함정.(...)검각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등애 휘하로 촉 정벌에 참여했으며, 왕기가 먼저 강유를 공격하자 그 틈을 노려 측면으로 파고들어서 강유를 압박했다. 이후 등애와 함께 음평 산길을 넘기도 했다.[2] 강유관의 마막이 관문을 열고 바로 항복한 뒤에는 자기 입장에서 이런 말 하는 건 좀 그렇지만 이렇게 막 적에게 관문을 열어줘도 되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
이후 다른 위군과 산을 내려와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으며, 제갈첨이 부성을 버린 뒤에는 양흔과 함께 부성으로 가서 성을 접수했다.
성도 전투 편에서는 등애가 체포될 당시 양흔 등과 함께 위관에게 따지러 갔지만 위관의 설득으로 일단 진정했다. 종회가 반란을 획책할 당시에는 다른 제장들과 함께 구금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독발수기능의 난 편에서는 호열과 석감/두예가 실패한 뒤 사마준과 함께 세번째로 서량에 파견됐다고 묘사됐다. 독발수기능이 만곡퇴에서 금성으로 쳐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금성으로 돌격했다가 대패하고 청산으로 도주했는데, 하필이면 견홍의 패배로 인해 서량의 이민족들이 일제히 진에 등을 돌리면서 견홍은 청산에서 앞뒤로 포위돼버렸고 결국 포위망을 뚫는 데 실패하여 전사했다.
[1] 견초는 뒤쪽으로 뾰족하고, 견홍은 앞으로 돌출되어 있다.[2] 별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다른 인물들이 고된 산행에 만신창이가 되고 수염투성이가 되는 와중 견홍 혼자서만 수염이 묘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