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1:54:34

권영해(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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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47a0> 산남(山南)
본관 안동 권씨
출생 1885년 8월 12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달서면 내당동
(현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
사망 1947년 6월 23일
서울특별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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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권영해는 1885년 8월 12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달서면 내당동(현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경북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 소재한 진평교회(眞坪敎會) 목사로 재직하고 있던 중 3.1 운동 소식을 전해듣고 이상백·이내성 등과 함께 3월 12일에 동민을 규합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하기로 결의하였다. 약속한 3월 12일이 되자 미리 준비해 둔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동민에게 배포하고 동리 곳곳에 불을 붙였으며 오후 8시에는 뒷산에서 300여명의 동민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강제로 해산당하였다.

그 후 다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한 그는 3월 14일 오후 9시경에 2백 명의 동민과 더불어 뒷산에서 다시 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후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 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제 형사의 감시를 받으며 어렵게 지내다가 8.15 광복 후 서울에서 조용히 살았고 1947년 6월 2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권영해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