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마추어 시절
부천고 시절 2차 4라운드 지명을 받았으나, 졸업 후 한양대학교에 진학하였다.대학 시절 '야구천재'로 국가대표 내야수로도 활약하며 대학리그 통산 50경기 출장, 285타석 201타수 78안타 13홈런 55타점 19도루 기록(대학 4년동안 통산타율 0.388)했고, 대학교 4학년때는 17경기, 83타석 69타수 34안타 4홈런 20타점 도루 8개 (4학년 성적만 0.493)등 기록하였다. 이런 성적을 바탕으로 2002년 3억4천이란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현대 구단에서는 주전 3루수로 즉시전력으로 쓰려고 했을 만큼 그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다. 당시 현대는 김민우의 가능성을 믿고 2000년도 한국시리즈 MVP였고 2001년에도 28홈런, 66타점을 기록한 외국인 3루수 톰 퀸란과 재계약을 포기했다![1]
2. 프로 시절
2.1. 현대 유니콘스 시절
2.1.1. 2002 시즌
2002년 시즌 전, 플로리다 스프링캠프에서 김용달 당시 타격코치가 우타자였던 김민우에게 스위치 히터로 뛰라고 권유하였고 그것을 수락하여 스위치히터로 변신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2002년 입단 첫 해 1군에서 25경기 출장해서 타율 0.195에 41타수 8안타라는 기대에 매우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2군에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2.1.2. 2003 시즌
2003년에는 박재홍과 트레이드하여 온 정성훈(+10억)[2]이 엄청난 타격감을 보여 주전을 꿰차게 되자, 1군에 입지를 거의 잡지 못했다. 2003년 시즌에는 단 15경기만 출장하여, 19타수 7안타 2도루라는 성적을 남겼다. 그래도 이해 2003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 우승반지를 얻었다.2.1.3. 2004 시즌
2003년 시즌 뒤 팀내 베테량 2루수 박종호가 FA를 선언하여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자, 당시 2루수 자리에 빈자리가 생기면서 김민우에게 기회가 왔었다. 2004년 시즌 개막전(당시 vs한화戰) 로스터에 9번타자 선발 라인업에 들었을 만큼 이때까지만 해도 구단으로부터 커다란 기대를 받았었다.[3] 그러나 2004년 시즌에는 초반부터 내내 부진에 부진을 거듭해 타율 0.125에 48타수 6안타를 기록하며 결국 스위치히터 변신은 대실패했고, 대학시절 때 활약했던 명성과는 달리 크게 부진했다.2.1.4. 군 복무
2004년 시즌 막판에 박진만이 FA로 떠날 것을 염려하여 김재박 감독이 유격수로 변신을 주문한 사이, 설상가상으로 대학 시절 불법으로 병역 면제를 받은 사실이 들통나 시즌을 마감한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 간 복무하였다.[4]2.2. 넥센 히어로즈 시절
2007년 10월 공익근무를 마치고 현대 유니콘스에 복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히어로즈가 현대의 선수단을 인수하여 창단하면서 히어로즈 소속이 되었다.
2.2.1. 2008 시즌
스위치히터를 포기하지 않으면 1군에서 중용하지 않겠다고 한 김시진 전 감독의 지시에 따라 기존의 우타자로 다시 전환했으나 그 해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 1군에서 16경기밖에 나서지 못했고, 기록도 타율 0.056, 18타수 1안타에 불과했다.2.2.2. 2009 시즌
이듬해 2009년 시즌 중이던 5월에 1군에 오르고, 당시 2루수 김일경과 주전경쟁을 벌이면서 내야수 유틸리티로 활약하게 된다. 그 해 78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4 3홈런 10타점 9도루 15득점을 기록하여 가능성을 보여주었다.2.2.3. 2010 시즌
2010년 시즌을 앞두고 주전 3루수 황재균의 손목 부상 덕분에 개막전 선발 3루수로 출장했고, 롯데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라이언 사도스키를 상대로 시즌 1호 홈런, 1호 도루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좋은 타격을 보이면서 32세라는 나이에 뒤늦게 아마추어 시절의 이름값을 하게 된다.이후 복귀한 황재균이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며 크게 부진하면서도 계속 출장하여 양아들 소리를 듣다 결국 7월 7일 2군에 내려가고[5], 그 후 트레이드가 진행되는 사이 2루와 3루를 오가며 시즌내 활약하며 감독 추천으로 선수생활 처음으로 올스타전까지 출전하였다.
시즌 스탯은 타율이 오르락내리락한 끝에 0.257이라는 낮은 수치를 기록하지만 집중력 높은 배팅과(44타점)[6] 괜찮은 주루감각(28도루-6도루실패)를 꾸준히 보여주었고, 안정된 수비력까지 보여주면서 팀 플레이에 최적화된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활약에 연봉도 무려 142% 상승(3300 → 8000만원)했다.
2.2.4. 2011 시즌
시범경기부터 개막 초기까지 타격 부진이 매우 심각했었다. 그래도 수비면에서는 확실히 우수한 편이었기 때문에 2군으로 못내리고, 하위타선으로 꾸준히 기용했다. 그러던 중 톱타자 장기영, 유망주 고종욱등이 내리 연속 톱타자 역할을 못하자, 김시진 감독이 4월 중순즈음 김민우한테 기회주는셈 치고 톱타자로 기용했는데, 이게 제대로 잡혔다. 톱타자로 기용된 김민우는 매경기마다 꾸준히 출루를 해주면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고, 넥센 상승세의 주요인으로 활약하고 있다.4월 9일 롯데전에서 이대호가 친 타구가 유격수 쪽으로 갔는데, 완벽한 병살 상황에서 송구에러로 병살도 날아가고 1점도 내주는 실책을 범했다. 4월 16일 SK전에서는 10회초에 5:5 투아웃 만루 상황에서 송구에러로 2점을 내주는 치명적인 에러를 작렬했다. 그러나, 다음날 4월 17일 SK전에서는 필사적인 주루플레이로 5:4 역전승에 큰 기여를 했다.
4월 25일 타자 타율 부분 TOP5 의 5위였다. 0.358로 11시즌 3할의 희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7월 들어 타격감이 나락으로 갔는지 타율이 많이 떨어졌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8월 3일에서는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심수창의 선발등판 때 점수를 내주는 결정적인 (기록되지 않은)에러를 작렬, 심수창의 18연패기록에 크게 보탰다. 8, 9월에도 떨어진 타격감은 그대로여서 0.247의 타율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2011시즌 126경기 115안타 6홈런 31타점 66득점 23도루 타율 0.247을 기록.여담이지만 득점권타율이 규정타석을 지킨 타자중 최하위였다.
2.2.5. 2012 시즌
오프 시즌에 부상과 모친상이 겹치면서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이 때문인지 시즌 개막 이후에 그리 인상적인 활약이 아니다. 팀의 주전 3루수로서 개막전부터 출전했지만, 타격 성적은 영 좋지 않은 상황. 특히 수비에서 많은 문제를 드러내면서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전반적인 타격 부진 때문인지 타격 스탠스를 바꾸는 노력도 했다. 이 과정에서 1군과 2군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7] 물론 노력의 결실이 당장 나타난 것은 아니다.
5월 15일 부산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2회초 라이언 사도스키 상대로 생애 첫 만루홈런을 작렬했다. 이 날 넥센의 9:2 승리의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좋은 타격이었다.
전반적으로 시즌 내내 부상이 겹치고, 김민성, 서건창 같은 젊은 내야수들의 성장세가 겹치면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2.2.6. 2013 시즌
개막 이후 3루수에 김민성이 중용되면서 특별히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4월 4일 LG전에 강정호의 부상으로 인해 김민성이 유격수로 옮겨가면서 3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이 날 김민우는 7회초 선두타자 현재윤을 알까기로 출루시켜 2루까지 진루를 허용하였고, 뒤이어 정주현이 3루타를 치면서 동점이 되는 발판을 마련하고 말았다. 그러나 8회말 2아웃 주자 2루 상황에서 정현욱을 상대로 중전 적시타를 쳐 냈고, 이 점수가 결승 타점이 되었다.5월 26일 롯데전에선 1번타자 겸 좌익수로 출전하면서[8] 팬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4타수 3안타 2타점 1득점으로 맹활약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외야수 선발 출전은 이날이 처음이었지만 미리 스프링캠프에서 외야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5월 29일 NC 다이노스전에서 1루수로 교체출장되어 3:3으로 팽팽히 맞서던 11회초 2사만루 상황에 타석에 들어서 싹슬이 3타점 2루타를 쳐 이 날 넥센의 영웅이 되었다. 2루타를 친 직후 손가락 세레머니를 하는 모습은 가히 폭풍간지.
하지만 이런 폭풍간지가 일주일도 못 가 6월 2일 두산 베어스 전에서 1루수 겸 1번타자로 선발 출전해서 무안타에다 결정적 2에러를 저질러 1회에 선취점을 내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역전, 4:11 대패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박병호가 5월 29일의 부상으로 지명타자로 가는 대신 김민우가 1루수를 맡아 벌어진 대참사.
2.2.6.1. 무면허 음주운전 사고
6월 9일 새벽 5시경, 무면허 음주 상태로 운전하다가 접촉사고를 내고 도주하였다. 이 사실이 드러나 30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1,000만 원의 구단 자체 징계 조치를 받았고 1군에서 말소되었다.[9] 30경기 출장정지는 중징계이긴 하지만, 구단 내부 징계이기 때문에 KBO의 입장에 따라 2013년 시즌을 통째로 날릴 수 있다. 결국 팀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이 날 경기에서 팀은 실책을 5개나 범하면서,[10] KIA에 4:6으로 패하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키움 히어로즈/사건사고 참조.6월 11일, KBO로부터 야구활동 3개월 정지[11]와 유소년 야구봉사활동 240시간 징계를 부여받았다. 사실상 시즌 아웃.
음주 운전뿐만 아니라, 면허 취소가 된 상태에서 계속 자신의 아우디로 출퇴근을 한 것이 팬들에게 자주 목격되었다. 애초에 처음 기사에는 실명이 없었고[12] 아우디에 수도권 팀 소속 내야수라고 되어 있었는데, 넥센 팬들은 평소 아우디를 잘 타고 다니는 김민우임을 쉽게 알아냈다. 구단도 면허 취소를 모르는 게 아닐 텐데, 어째서 방관한 건지.
한편 김민우를 대신해서 1군에 올라온 선수는 신현철. 그런데 이 신현철도 4월 8일 음주 뺑소니 사건을 일으킨 것이 6월 13일에 뒤늦게 밝혀져서 더욱 더 충격을 주고 있다. 팀의 내야 유틸 자원인 둘의 이탈로 인해, 넥센은 선수단 운용에 차질이 생기면서 선두권 수성에 난항을 겪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히 염경엽 감독이 어찌어찌 팀을 추스러서 4강권은 지켜냈다.
그리고 두 선수 모두 징계성으로 2013 시즌 후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2.3. KIA 타이거즈 시절
2013년 11월 22일에 실시된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IA 타이거즈에 새 둥지를 틀게 되었다. 넥센 히어로즈에서는 팀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선수들을 정리하는 의미로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하며 내보냈고, KIA에서는 팀에 부족한 내야 백업을 확보[13]함과 동시에 조만간 입대해야 할 김선빈과 안치홍의 공백을 해결하려는 심산으로 추정된다.KIA로 이적한 후 11월 26일 넥센 히어로즈 팬들에게 사과하는 의미의 인터뷰가 올라왔다. 본인이 자진해서 인터뷰를 요청한 듯.
2.3.1. 2014 시즌
시즌 초부터 탄탄한 수비로 내야진을 안정화시키면서 KIA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내야를 가리지 않는 유틸리티 수비 포지션으로 여러곳을 왔다갔다 하면서 분전하고 있는건 덤. 데니스 홀튼이 선발등판했던 날, 그리고 김주형, 브렛 필이 부상당했을 때에는 1루수로 선발출장하였다. 필이 돌아오고 나서는 김선빈, 강한울이 부상당한 유격수 자리를 메꾸고 있다.5월 1일 SK 와이번스와의 홈경기에서 시즌 첫 홈런을 쏘아올렸다. 이 경기에서는 9번 지명타자 로 출전하였는데 팬들은 외야수도 가능한 선수를 왜 지명을 돌리냐고 선동열 감독을 깠다.
5월 4일 수비 도중 안고 있던 왼쪽 다리 햄스트링 부상이 부분파열로 심해지면서 경기도중 빠졌다. 약 2주간 지켜봐야 한다고 한다. 안 그래도 선수 없는데 또 부상이냐며 팬들은 한탄하는중. 그러던 중 6윌 1일에 재등록되었다.
브렛 필의 부상 이후 1루수로 선발출장하고 있다. 원래는 김주찬이 내야로 건너가 선발출장 하였으나 잇따른 1루 실책으로 인해 원 자리로 돌아가 필이 빠진 1루를 책임지고 있는 중.
6월 17일 광주 넥센전에서 1루수로 출장하여 완벽한 홈송구를 했으나 차일목이 받다가 벌러덩 누워서 홈태그에 실패, 1점을 내주고 실책마저 김민우 앞으로 기록됐다(…). 완벽한 아웃타이밍인데 점수가 났으니 누구에게 실책을 주긴 줘야 하는데 기록원이 1루수에게 준 것. 김민우는 호수비를 하고도 억울하게 되었다.
그 다음날 최훈 카툰에도 이 수비를 비꼬는 카툰이 올라왔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87경기 210타석 167타수 42안타 3홈런 15타점 34득점 7도루 37사사구 타율 0.252 출루율 0.387 장타율0.365 OPS 0.753으로 마무리하였다.
2.3.2. 2015 시즌
시즌초에는 목디스크로 인해 재활군에서 시작했다. 그 뒤 2군에서 뛰다가 5월 6일 올 시즌 첫 1군으로 콜업되었다.5월 13일 kt전에서 5타수 4안타 1홈런 5타점 2득점 1도루로 맹활약을 했으며, 특히10회말 8:6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장시환을 상대로 거짓말같은 역전 끝내기 쓰리런을 날리며 팀의 9:8로 극적으로 역전승을 거두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덕에 6타석 4타수 4안타 2볼넷 1타점 4득점 2도루에 통산 1000안타, 11년 연속 두자릿수 도루 달성 등으로 인생경기를 치른 이대형이 완전히 묻혀버렸다. 오늘 경기의 MVP가 된 것은 덤. 본인의 첫 끝내기 홈런이기도 하며, 경기 이후에 사인볼 3개와 끝내기 홈런볼을 바꿨다.
5월 14일 kt wiz전 2루수 7번타자로 출전하여 4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으로 전날에 이어 좋은 타격감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렇게만 좋은타격감을 계속 이어나간다면 무주공산인 2루에 주전 2루수로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점점 타격감이 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며 5월 30일엔 최용규가 선발 출장했다.
그러던 도중 6월 7일 목디스크 재발로 인해 다시 말소되었다. 반대급부로 올라온 선수는 2015 필패의 아이콘.
6월 23일 2군 출장 도중 김주형의 손목 부상으로 고양 벽제에서 마산으로 급히 내려가게 되었다.
7월 9일 목동에서 열린 넥센과의 경기에 유격수로 선발출장하였으나 2회말 2사 상황에서 박동원의 내야땅볼을 포구하던 과정 중 더듬는 실책을 범하는 바람에 박동원이 1루에서 세잎되었다. 그 후 멘탈이 무너진 선발 홍건희가 고종욱의 2타점 적시타와 박병호의 그랜드슬램, 김민성의 투런포 등으로 무려 8점을 실점했으나 다행스럽게도 김민우 덕택에 모두 비자책처리 되었다.
7월과 8월은 주로 2루수로 출장하였으며, 강한울, 박찬호와 키스톤콤비를 이루었다.
2015 시즌 전반기 성적은 45 경기 출장, 163 타석, 0.307, 3 홈런, 17 타점, 14 득점, 6 도루로 상대적으로 빈약한 기아 타선에서 필과 김주찬에 이어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었다.
후반기에도 타격감을 유지하며 꾸준한 안타로 3할을 넘기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김민우 앞에 찬스가 생기면 여지없이 번트지시가 잦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번트가 필요할 때도 있는데, 문제는 상황 그런거랑 상관없이 강공지시 같은 거 없고 번트지시만 나온다는 거다. 8월 17일 월요일 LG전에서 2루타와 홈런을 침으로써 타격감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국 이런저런 상황과 겹쳐 부진이 이어져 타율이 3할은 고사하고 2할5푼까지 내려가 버렸다. 감독의 이러한 선수를 망가뜨리는 이상한 기용은 꾸준해서 2017시즌의 서동욱도 비슷한 처지가 되어버린 상태로 2015시즌의 김민우가 그랬던 것처럼 결국 제 기량을 잃고 있어서 안타깝다.
9월 내내 체력고갈로 인해 극심한 타격 부진을 겪었다. 9월 기록만 보면 36타수 4안타(4안타중 1홈런).
9월 9일 NC전에서는 이범호의 홈런 직후 백투백 홈런을 때려내며 결승점을 올렸다.
9월 11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두산 선수들에게 합장을 하며 불심이 깊다는 걸 보여주었다.
사실은 6:0으로 뒤지는 가운데 경기가 우천취소되자 두산 선수들에게 미안하다고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 그런데 표정이 너무 해맑아서(…).
9월 21일 SK 와이번스 전에서 김광현을 상대로 간만에 멀티히트를 기록하였으나, 9월 22일 LG 트윈스 전에서 1회 초에 2루수 앞 땅볼을 포구하다, 손가락 골절상을 입었다. 전치 4주로 시즌아웃.
2015년은 타율 0.260, 90경기출장, 269타수,28득점, 70안타, 34타점, 홈런 6개, 도루 8개, 볼넷 21개, 장타율 0.394, 출루율 0.313, ops 0.707로 마감하게 되었다.
시즌 아웃이 된 후에, 공백이 된 2루수 자리는 김주형과 최용규가 교체출장하고 있으나, 최용규가 9월 26일 SK 와이번스전에서 기록되지 않은 실책 2개를 범하며, 이것이 모두 실점으로 연결되는 최악의 경기내용과 함께, 주루사까지 범하는 과오를 저질러 팬들은 김민우의 시즌아웃을 아쉬워하고 있다.
2.3.3. 2016 시즌
시즌 후 동료 김원섭과 FA 자격을 얻을 예정이었다.[14]2015 시즌동안 거의 주전급 2루수로 뛴 덕분인지, 프로데뷔 후 첫 억대 연봉을 기록하였다. (29% 인상된 1억 2000만원에 계약)
시즌 시작부터 선발 2루수로 지속적으로 출장하였으나, 극심한 타격 부진을 보여 결국 4월 18일말소되어 2군행. 대신 강한울, 서동욱이 2루수로 출장하고 있다.
5월 20일 콜업되어 1군에 등록되었다. 콜업 후 첫 스타팅 출장한 5월 22일 경기에서 2루수로 출장하였으며, 3타수 2안타, 희생번트, 1타점, 1득점으로 팀의 승리에 견인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타격감이 살아나지 못해 2군으로 다시 내려갔다. 사실상 서동욱에게 밀리면서 1군 콜업이 요원해졌다. 내야수 최고령 선수인 만큼 지친 노쇠화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7월 24일, 현역 은퇴 기자 인터뷰로 은퇴를 선언했다. KIA는 김민우를 웨이버 공시 신청하고 전력분석코치로 임명할 예정이다.
[1] 물론 퀸란이 공갈포 성향이 매우 심했던 점과 2할 3푼~2할 5푼의 타율을 보이면서 적시 병살타도 상당히 많았던 편이기에 재계약을 포기한 점도 있다. 하지만 힘은 진퉁이라 제대로 맞으면 홈런이었고 수비면에서도 확실했었다... 사실 퀸란이 은퇴를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2] 당시 현대는 3루수가 엄청 취약했었다.(당시 3루수는 채종국이었다. 채종국은 원래 유격수가 포지션이었지만, 수비실책이 잦아 불안했던데다 타격도 시원찮아 기대 이하였다.) 그 3루수를 메꿔줄 유망주로 키운 선수가 김민우였는데, 기대만큼 못하자 결국 주전 외야수 박재홍을 기아에 내주고 정성훈을 영입한 것. 만약, 김민우가 첫 해에 확실히 3루수로 입지를 잡았다면 박재홍을 내주고 정성훈을 영입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3] 당시 '제2의 박종호'로 성장할거라 믿는 정도였다. 스위치히터였었고...[4] 그 후 박진만의 빈 자리를 4년동안 채종국, 김일경, 서한규, 지석훈, 차화준, 황재균, 강정호 등이 돌아가면서 기용되다가, 2008 시즌 황재균이 부진한 사이 강정호가 주전 유격수로 정착하였고, 2009 시즌에야 팬들에게 박진만의 공백을 느끼지 않게 되였다.[5] 7월 6일 마산 롯데전에서 주전 3루수로 나서 6회말 4:3으로 앞선 상황에서 이대호의 파울 플라이타구를 놓쳤고, 그 경기는 송신영 투수가 전준우한테 끝내기 투런을 맞으며 역전패한다.[6] 2010시즌 대부분 테이블 세터로 나온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좋은 기록. 출루율은 0.356로 거의 1할 차이가 나며, 사사구도 70개로 상당히 준수하다.[7] 넥센은 뚜렷한 주전 3루수가 없는 상태. 2012시즌 5월달에는 김민우, 지석훈, 장영석, 유재신 무려 4명이 3루수로 선발 출장했다.[8] 이날 전까지 499경기를 출장하면서 모두 내야수로 선발 출전하였다.[9] 다만 1군 말소는 사고치기 전부터 외야수비 연습을 위해 결정되어 있던 것.[10] 이때 결정적인 실책을 연거푸 범한 이가 바로 신현철이었다. 처음에는 그의 실책에 황당해 했던 팬들은, 며칠이 지난 뒤 그가 그때 왜 실책을 저질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11] 경기에 못 나가는 것은 물론, 구단의 훈련에도 참가할 수 없다.[12] K 모 선수라고 써있어서 김용의도 의심받았으나, 차가 아우디라는 게 밝혀지자 김용의는 의심받지 않게 되었다.[13] 박기남은 3루 이외의 포지션에서는 불안한 감이 있고, 홍재호는 2013년 시즌 후 경찰청에 입대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IA에서는 2013년 신인드래프트 때 강한울도 데려왔다.[14] 김주찬은 첫 해 등록일수를 못채워 2017년에 FA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