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14 16:46:05

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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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상 기록이 확인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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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상대등(上大等)
김의정 김안 김정

金安
생몰연대 미상

1. 개요2. 문성왕의 아들?

1. 개요

신라 후기의 인물. 제47대 헌안왕 김의정이 즉위함과 동시에 상대등에 임명되었고, 이후 862년까지 6년간 재임하였다.

2. 문성왕의 아들?

삼국사기를 보면 문성왕 9년(847) 문성왕이 자신의 왕자를 태자로 책봉했지만 문성왕 14년(852)에 졸하였다. 이후 문성왕은 857년에 병이 들어 죽게 되는데, 여기서 유언을 남겨 아들이 아닌 숙부 김의정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그가 47대 헌안왕.

그런데 신라경순왕전비문(新羅敬順王殿碑文)에 따르면, 경순왕의 조상이 되었던 문성왕 아들 이름이 '김안'이었다고 한다. 이 기록과 관련해서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1. 상대등 김안이 문성왕의 태자이다.
  2. 상대등 김안은 문성왕의 왕자이지만 태자는 아니었다.
  3. 해당 기록은 거짓이며, 김안은 문성왕의 아들이 아니다.

1번이 참이라면, 아무리 그래도 상대등 업무를 볼 정도로 장성한 아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문성왕이 아들 대신 숙부 김의정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더군다나 신라경순왕전비문은 당대가 아니라 조선 시대에 후손들에 의해 제작된 것이어서, 정확한 사료가 아니라는 의혹이 있다(3번).

그러나 <신라경순왕전비>는 1814년에 가서야 건립되었기 때문에 족보와 마찬가지로 사실성에 대해서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

일단 삼국사기에는 경순왕이 문성왕의 후손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김인경이라는 인물이 경순왕의 친조부임이 확인된다. 그러나 《최정 묘지명》에서 최정의 처가 태종 무열왕의 13세손인 김한충의 차녀라고 나오는데 김한충은 고려사에 따르면 경순왕의 사촌동생 김유렴의 4대손이라고 한다. 따라서 경순왕은 태종 무열왕의 9세손(8대손)이 가장 유력하다. 애초에 삼국사기에 나오는 문성왕의 후손이라는 것이 부계 후손인지 모계 후손인지 정확히 기록되지 않은 만큼 문성왕의 후손이라는 것이 부계가 아니라 모계 후손일 가능성도 있다.[1]

원성왕은 내물 마립간의 후손이자 태종 무열왕의 딸의 증손자일 뿐, 김인문의 후손인 김주원[2]을 비롯한 수많은 태종 무열왕의 남계 후손들을 제치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이 때문에 김헌창의 난을 비롯한 여러 반란에 시달렸지만 신라 말대까지 신라 왕위는 원성왕의 후손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종 무열왕은 사서에서 적서자 포함해 10남(!)이나 있었다고 하므로 남계 후손이 많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김주원의 증손자 김양신무왕의 즉위를 돕고 문성왕 대까지 김유신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는 등 태종 무열왕의 남계 후손들이 다 몰락한 것은 아니었다. 신라 특유의 동성혼과 근친혼 풍습을 고려하면, 경순왕은 태종 무열왕의 9세손이자 문성왕의 모계 후손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1] 이와 비슷한 사례로 고려 개국공신 중 하나인 김인윤(金仁允)이 있는데, 김인윤은 후손들의 묘지명에서 원성왕의 후손으로 나오는가 하면 태종 무열왕의 9세손으로도 나온다.[2] 강릉 김씨의 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