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촉한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진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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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眞服 혹은 眞福신라 중대의 군인, 귀족.
2. 상세
기록상 첫 등장은 661년 제2차 고구려-당 전쟁 당시, 당나라는 신라에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진복은 북진하다가 대전광역시 인근에서 백제부흥운동군과 싸워 이겨 상을 받았고, 이후 소정방에게 군량을 지원하는 작전에도 참여했다. 668년 제3차 평양성 전투에도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이후 신문왕 치세에 김군관이 김흠돌의 난과 엮여 사실상 강등당한 뒤 그의 후임으로 상대등에 취임했다.진복이 665년 중시에 취임한 직후 신문왕이 태자로 책봉받았는데, 경덕왕대 기록을 참고할 때 태자 책봉이 중시의 주요 업적임을 알 수 있으므로 진복은 신문왕의 뜻을 따르는 신문왕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