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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39499><colcolor=#fff> 제4대 제주도지사 김용하 金容河 | Kim Yongha | |
출생 | 1896년 12월 22일 |
전라남도 제주목 신우면 하귀리 (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귀1리) | |
사망 | 불명 (1950년 납북, 향년 54세 이상) |
본관 | 광산 김씨[1] |
학력 |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호세이대학 (예과 / 졸업) 경성제국대학 (철학 / 학사) |
부모 | 아버지 김상수, 어머니 백계상 |
배우자 | 전인항 (1902 ~ 1981) |
자녀 | 슬하 6남 1녀 4남 김덕중 5남 김우중 |
호 | 우당 (愚堂, 禹堂) |
재임기간 | 제4대 제주도지사 |
1949년 4월 21일 ~ 1949년 11월 15일 | |
경력 | 대구사범학교 교장 경상북도 학무부 학무과장 용산중학교 교장 경기사범학교 교장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교수 제4대 제주도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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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육인, 관료.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달우(達宇), 아호는 우당(愚堂, 禹堂).2. 생애
1896년 12월 22일 전라남도 제주목 신우면 하귀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2]#에서 아버지 김상수(金庠洙, 1871 ~ 1926. 6. 8)와 어머니 밀양 박씨 박계생(朴癸生, 1873 ~ 1937)[3] 사이의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제주도에서 서기로 2년간 일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호세이대학 예과를 마쳤다. 귀국하여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입학하여 철학과를 제2회로 졸업했다.
졸업 후 함경북도 종성중학교 교사와 대구사범학교장을 지냈다. 박정희가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일 때 학생과 교장으로 인연을 맺었다.[4]
해방 후 미군정에서 경상북도 학무부 학무과장에 임명되었고 서울 용산중학교와 경기사범학교[5] 교장을 거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1947년 정부 중앙물자행정처 기획국장 및 중앙청소비조합 전무이사를 역임하고, 1949년 제4대 제주도지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도지사 부임 7개월만에 표면적으로는 예전 사범학교 교장 시절의 공금횡령 등 혐의로, 실질적으로는 제주 4.3 사건 이후 혼란한 제주도정에 강경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퇴임하였으며, 1950년 서울로 이주한 후 곧 6.25 전쟁이 발발하여 납북되었다.
3. 가족 관계
자세한 내용은 범대우가 문서 참고하십시오.부인 전주 전씨(全州 全氏) 전인항(全仁恒)은 평안북도에서 탄광을 운영하는 대부호의 집안에서 4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숭덕학교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 보육과를 마쳤다. 졸업 후 영변군으로 돌아가 유치원 교사와 소학교 피아노 선생으로 재직하다가 형부의 소개로 김용하와 결혼하였고, 6남1녀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은 6.25 전쟁 때 아버지 김용하와 같이 납북당했고 다섯째 아들이 전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이다. 그리고 차남 김윤중은 전인항 여사 소생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03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생모를 김평아라고 기재했다는 기사가 있다.
- 장남 김태중 (1921 ~ 2014): 대우어패럴 고문
- 차남 김윤중 (1925 ~ ?): 6.25 전쟁 때 아버지 김용하와 같이 납북당했다. 사망정보가 불분명한 김용하와 달리 그래도 장수하며 최소 2003년 시점까지는 생존이 확인될 정도로 오래 살았는데,[6] 막상 남한 가족들과 만날 기회가 찾아왔을 때는 김우중이 해외도피 중이었을 때라 죽을 때까지 김우중과 만나지 못했다.
- 삼남 김관중 (1931 ~ 2007): 육군사관학교, 준장 예편, 대창기업 회장 (육사 11기로 전두환, 노태우와 친해 김우중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 사남 김덕중 (1934 ~ ): 서강대학교 교수, 교육부장관, 아주대학교 총장
- 오남 김우중 (1936 ~ 2019): 대우그룹 회장
- 육남 김성중 (1941 ~ ): 델코 회장
- 장녀 김영숙
- 사위 윤석철[7]
4. 우당도서관
대우그룹에서는 김용하의 교육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호를 딴 우당도서관을 지어 제주도에 기증했다.[1] 문정공후 문간공파 35세손.(족보)[2] 광산 김씨 집성촌이다.[3] 박성수(朴性守)의 딸이다.[4] 이러한 인연으로 경북대학교 대구캠퍼스 내에는 그의 호를 딴 '우당교육관'이라는 사범대학에서 사용하는 건물이 있다.[5] 1946년 설립된 초등교원 양성학교. 1949년 서울사범학교로 교명이 바뀌었고, 1963년 폐교되었다.[6] 더욱이 2003년이면 1995~2000년까지의 고난의 행군을 넘긴 시점이라 더더욱 그렇다.[7] 1940년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태어나 대전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입학했으나 물리학과로 전과, 문리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 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전기공학, 경영학, OR(Operation Research)을 전공,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