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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D89E6E> 김춘추 金春秋 | |
본명 | 김춘추 (金春秋) |
출생 | 617년~619년[1] |
신라 서라벌 | |
가족 | 증조부 진흥왕 조부 진지왕 외조부모 진평왕, 마야부인 부모님 김용수, 천명공주 이모 덕만공주 숙부 김용춘, 비담[2] 아내 보량 장인 보종 |
배우 | 유승호 미야노 마모루(일본판 더빙) |
신라 제29대 임금 태종 무열왕. 천명공주와 김용수의 아들. 덕만의 조카 어머니인 천명의 죽음이 덕만 때문이었다 생각해서 당에서 돌아온 직후 덕만에게 호의적이질 않아 덕만과 유신의 애를 태운다. 결국 덕만이 왕이 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며 왕이 된 덕만으로 하여금 삼한통일을 이룰 두명의 남자로 김유신과 김춘추를 내심 지목하는 계기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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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 선덕여왕의 등장인물.2. 작중 행적
2.1. 선덕여왕
천명공주와 김용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원래는 성골이 되어야 할 혈통이지만 할아버지 진지왕이 미실에 의해 폐위됨에 따라 김용수가 성골에서 진골로 강등되어 김춘추 역시 진골이 되었다.골품을 따지지 않는다면 이모인 덕만공주보다도 왕위 계승권에 가깝다. 천명과 덕만이 쌍둥이지만 그 중에서 천명이 언니고, 천명이 죽은 이후로 그 계승권은 천명의 유일한 적자인 춘추에게 갔기 때문이다.
미실의 위협 크리 속에 천명공주가 문노를 찾는 과정에서 몰래 낳았으며, 나중엔 정치 풍파에서 아들을 벗어나게 하고자 수나라로 조기유학 보낸다.
대남보가 엉뚱하게 천명공주를 골로 보내서 미실에게 모가지가 간당간당한 미생이 역시 간당간당한 대남보를 시켜 수나라 영재 조기 유학 중인 김춘추를 데려오게 된다. 의외로 대남보를 쿨하게 용서하고 같이 신라로 오는데, 가는 도중 번번이 사고를 일으켜서 대남보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들다가 급기야 대열을 이탈해서 먼저 서라벌로 가 버린다. 이 때 죽방을 통해서 그간 신라에 있었던 일을 들었다.
어머니의 원수인 미실 측과 엄청나게 가까이 지내면서 멍청한 척과 진상인 척을 다 하는 반면, 자신의 이모인 덕만에겐 '내가 무슨 심정으로 여기 왔는지 아냐?'며 엄청 차갑게 대한다. 이러다 보니 덕만파와 왕실 어른들은 속이 타 들어가고... 게다가 본인이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야심까지 불태운다.[3]
염종이 독침 뒤치기까지 해서 가져온 삼한지세를 가지고 찢어서 공놀이하다 비담에게 제대로 걸려서 문자 그대로 복 날 개 패듯 쥐어 터진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비담과 연이 닿아 비담이 춘추의 훈육 교사가 된다. 수련은 안 하고 찌질한 짓은 다 하느라 속이 터졌을 김유신이 단번에 비담을 소개하고 그제야 뒤늦게 애걸하는 춘추를 차갑게 뿌리칠 정도.
사실 삼한지세 수습할 때 순서를 다시 맞춘다던가, 매점매석 크리 땐 귀족이 왜 그러는지 가장 먼저 예측하던가 등에서 얘가 실은 멍청한 척한다는 느낌을 준다. 급기야 김춘추 자신은 사람의 이모저모를 간파하고 그것을 토대로 세치 혀와 행동으로 사람을 낚는 정치력 만빵의 능력자임이 밝혀졌다. 이것을 토대로 미실파를 낚아 자기도 왕이 되겠다면서 '골품제는 천박하다'같은 발언을 하고, 또한 미실파에게 유리하게 하려고 소개한 보종의 딸 보량을 이용해 미실파의 핵심 축인 설원과 세종의 분란을 일으키고 자기는 헛간 검열삭제를 해서 마누라를 얻는 일거양득을 이루어낸다.[4]
이 부분에서 덕만은 마냥 어리게 만 본 김춘추를 새삼 다시 보게 되지만, 미실이 결코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덕만인지라 '네 계책이 실패하면 내 수하로 와라'라는 제안을 하고, 자기 계획이 다 잘 될 거라 자만하고 미실을 얕보던 김춘추는 건성으로 수용했다. 허나 김춘추가 과소평가했던 미실이 자신과 덕만의 왕 드립으로 봉인해제돼서 왕이 되겠다 선언하고[5] 김춘추의 이간계를 파쇄하여 세종과 설원을 다시 결속시켜버려, 골품제를 비판했던 김춘추는 완전 낙동강 오리알이 돼 버렸다.
미실의 계획을 간파하고 네 계획은 실패했으니 나와 손잡자던 덕만의 말에 쉽게 수용하지 못하다가 결국 43화에서 어머니 천명공주에 이어 미실에게 귓속말 정신 공격을 당하고, '나와 대적하고 싶으면 죽을 각오로 하거나 죽거나'라고 페이탈리티까지 당했다. 그리고 결국 약속대로, 어찌 됐건 조카에게 진심을 얘기하며 함께하자 했던 덕만의 손을 잡고 함께하게 됐다. 김춘추 한 명 추가된 것뿐인데 그동안 덕만과 함께 한 사람 중에 저 정도의 머리를 가진 인재가 부족한 탓인지 생기가 돋았다. 여러모로 덕만파 중에서 머리가 좋은 편인 인물 중 하나지만, 자신감이 지나치고 자신이 힘든 일을 하길 꺼려 당시 미실과 훗날 여왕이 된 덕만에게 까임을 당한다.
미실의 군사 정변 때 덕만 곁을 따라다니며[6] 겨우 겨우 성 밖을 빠져 나왔다. '무력엔 무력'이란 덕만 타입은 좋아하지 않아서 덕만에게 '수나라로 가서 일을 도모 하자'고 하지만 바로 거절당하는 등 다소 자신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은 듯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상황이 다급하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지라 적극적으로 덕만을 돕고 있다. 덕만도 '나 아니면 춘추가 살아야 한다.'며 춘추와는 분산되어 싸우거나 춘추 하나만 믿고 미실이 있는 궁궐로 직접 들어간다.
희한하게 말을 못 타서 신라로 귀환할 때도 마차로 탔고, 덕만의 역습 때 중소 귀족들을 이끌고 서라벌로 갈 때도 염종 뒤에 말을 타는 모습을 보였는데, 대야성에서 백기를 들어 이동할 땐 혼자서 말을 타는 모습을 보였다.
덕만이 궁궐에 들어간 동안 덕만의 기치에 따라 주요 중소 귀족들을 특유의 능수능란한 외교력으로 포섭하고 마침내 전세를 역전하는 데 성공하여, 덕만의 역전승의 큰 기여자가 된다. 51화에서 덕만이 비담에게 왕실 감찰의 역할을 맡는 사량부령의 자리를 내린 것에 대한 진정한 이유를 간파한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으며, 염종의 꼬드김에 자신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히든 보스(?)의 여유감을 보였다.
세월이 흐른 후 전령보다 먼저 서라벌로 달려와 김유신의 승전보를 알리는 등 기인의 모습을 가히 보여주고 있다. 현재로선 여왕과 복야회를 둘러싼 행보와 의도를 지켜보고 있는 중.
김유신이 월야와 설지의 탈출 후 연행되자, 여왕을 찾아가 옳고 그름이 아닌 판세를 봐야 하고 김유신을 꺾어 놓을 경우 비담이 엄청나게 커져 버리기 때문에 현 강경한 태도가 문제가 있다고 선덕여왕에게 얘기한다. 그 후엔 여왕도 김춘추에게 관련 계책을 들었다. 죽방의 얘기를 듣고 영감을 얻어 김유신이 이 상황을 타개할 방안은 모든 계책을 무로 돌릴 진심을 결의해야 하는 것 뿐이라고 얘기한다.
마침내 덕만이 김춘추에게 자신의 사후 있을 분란을 막기 위해 아예 대놓고 김춘추가 왕이 되기 위해서 라도 복야회 같은 잔당은 제거해야 한다고 밝혀서 또 항의하러 갔다 그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된다. 덕만이 김유신 유배 후 견제 책으로 사량부를 김춘추 휘하로 만들었고, 이에 따라 덕만을 찾으러 왔던 비담에게 제대로 견제당한다.
이모님께서 춘추에게 사람을 얻는 법이 이렇게 힘들다고 복야회 설득하는 걸 보여주시는데, 이 때 복야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복야회와의 목숨 건 회담 끝에 복야회를 자신의 산하로 들어오게 하였다. 정확히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역사에서 상대방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때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혼인밖에 없기에, 아마 그 방법을 썼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월야의 입에서 신라와 가야가 함께하는 방법은 가야 출신의 왕밖에 없다라고 했는데 이 상황에서 가야 출신의 왕이 그나마 될 방법은 춘추와의 혼인을 통해서 춘추와 가야계의 여식이 자식을 낳는 방법밖에는 없기 때문.[7]
선덕여왕이 비담을 믿고 품으려 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눈치로 보아 후에 비담의 난은 춘추가 뒤에서 조종할 듯 보였다. 실제 그는 60부에서 비담의 면상에다 "폐하가 널 정말 연모하는 줄 아냐?"는 식으로 도발하였고 이는 비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데에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비담은 춘추에게 도발을 먹기 전까지는 그래도 덕만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춘추의 도발이 덕만을 향한 비담의 의심의 시발점 역할 + 덕만이 비담이 손을 잡았을 때 손을 뺀 것이 과거 문노가 그러했던 것, 즉 과거의 트라우마를 상기 시키는 기폭제 + 염종의 시위부 흑산 매수가 결정타가 되어서 비담의 멘탈은 완전히 무너지고 난을 일으킨다. 비담의 난은 결국 춘추가 포문을 연 셈.
비담의 난 발발 이후에는 반란군의 움직이 너무나 대범하다며 덕만에게 미실도 설원도 다 죽었는데 이런 대범한 전략을 실현시키는 게 가능한 건 오직 비담 뿐이라며 그를 속히 쳐내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회는 그냥 공기 배경으로 한번 나올 뿐 대사도 없다... 덕만이 군사들 앞에서 연설하고 쓰러지자 옆에서 부축하는 게 전부....... 게다가 덕만 사후 삼한일통을 이룬 주역은 김유신으로 나오니... 거기다 나이든 모습으로 등장시키기엔 배우가 너무 어린 것도 그렇고 원인이라면 원인. 뿐만 아니라 에필로그의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시점에선 이미 무열왕이 되어있는 시점이고, 아들인 김법민도 청년이 되어있을 시점이기 때문에 더더욱 중년 시점으로 등장시키긴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뭐 애초에 선덕여왕 드라마 자체가 역사와 담 쌓은 판타지 드라마인 만큼 덕만 같이 주인공도 아니고, 김유신 같이 중요 캐릭터도 아니고, 비담 같이 진 주인공이자 최종보스도 아니니 당연한 결말일지도. 허나, 첫 등장이 최종병기였던 이 분이 점점 꼬라지가 요상해지더니 마지막엔 산탁보다도 못한 신세가 되었다.
스페셜 화에서 마지막 회에 미방영된 영상이 나왔는데, 선덕여왕이 김춘추에게 왕위는 승만공주에게 넘기라고 말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너에게 그런 왕위란 자리는 너무 막중한 자리이며 이것은 전의 왕이 새로운 왕에게 하는 충고"라고 얘기하는 아주 중요한 장면이었다.
2.1.1. 비담과의 관계
작중 비담과 참으로 복잡한 관계를 가졌다. 부계 쪽 혈통으로만 보면 조부 진지제의 아들인 비담은 김춘추에게는 숙부뻘이 된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비담의 부계가 부각되는 일이 거의 없기에[8] 가족간의 유대 따위는 1도 없다. 오히려 숙부인 비담이 김춘추에게는 가장 큰 적인데, 비담의 어머니인 미실이 김춘추의 어머니인 천명공주와 그 아버지인 김용수를 암살했기 때문.[9][10]그런 비담과 처음 조우하는 장면은 험악했는데, 춘추가 시킨 바는 아니었지만 염종이 춘추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삼한지세를 빼돌리던 비담의 스승인 문노를 죽게 만든 것이 원인이 되어 결국 비담과는 험악하게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여겨본 비담에 의해 반억지로 덕만에게 협조하게 되면서 비담과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다시 만났고, 그 후 비담에게 꽉 잡혀 살게 되는 처량한 신세가 되나 춘추가 덕만에게 본격적으로 협력하는 시점부터는 비담에 의해 목숨도 구해지는 등 동료관계로 전환되게 된다.
덕만이 즉위한 후에는 유신, 알천과 함께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그래도 자신은 핏줄빨이 있으니 조금 더 여유있게 지켜봤으나 비담의 정치력이 유신을 찍어누르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비담을 견제하고 덕만을 도우며 여러 번 비담의 계획을 물먹인다. 가장 큰 건은 덕만과 함께 복야회를 자신의 휘하에 둠으로써 유신을 지지하고 비담을 완전 물먹인 것.
그럼에도 덕만이 비담에 연모를 보이며 비호하니 아무래도 못마땅해하는 구석을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도발한 춘추 역시도 두 사람 간의 사랑과 진심을 딱히 의심하거나 하진 않았고, 비담의 진심과 사랑은 사실일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비담 자체는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비담의 사저에서 나와서도 찜찜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볼 수 있다.
단, 춘추가 이렇게까지 해야 했던 건 본인의 배경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 미실과 그의 가문에게 느꼈던 감정은[12] 덕만과 동일할지도 모르지만, 춘추는 덕만과는 달리 미실과 제대로 된 경쟁을 해 보지도 못했기에 그녀를 존중하지 않았고 배울 수 있는 스승으로 여기지 않았다.[13] 그렇기에 춘추에게는 미실의 잔존세력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원수와 공포에 대상에 불과했던 정적들일 뿐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왕권을 강화하고 삼한일통의 꿈을 꾸어야 하는 춘추의 입장에서는 비담과 그가 거느린 충성심이 없는 귀족들은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거추장스러운 존재들이었던 것. 그렇기에 김춘추와 비담은 언젠가는 대립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악연으로 시작했고 동료로 발전했으나 비담의 세력이 커지면서 경쟁자로 변했고, 그 동안 감추어 두었던 비담의 모후인 미실에 대한 적개, 그리고 비담이 통제할 수 없었던 그의 세력 때문에 그의 진심을 알고도 결국 쳐내야 하는 복잡한 관계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이라고 볼 수 있다.
2.2. 육룡이 나르샤
같은 세계관인 육룡이 나르샤에서 잠깐 언급되었다. 비담의 난이 끝난 이후 염종의 조직인 무명을 거둬서 정보 조직으로 활용했다고 한다.[1] 작중 설정으로 모친인 천명공주(602년생)가 태어난지 약 16년만에 태어났으니 저 범주가 맞다. 다만 심각한 재현 오류인게 실제 역사에서 김춘추는 603년생이기 때문이다(...).[2] 조부인 진지왕의 아들이기에 아버지인 김용수와는 이복형제이며 그렇기에 숙부는 맞지만, 친숙부는 아니고 이 드라마에서 비담은 부계 혈통은 거의 언급되지 않기에 모계 쪽인 미실로만 여겨져서 숙부-조카 사이의 감정은 거의 없다시피하다.[3] 아주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닌 게, 진골이라서 그렇지 골품을 안 따지면 덕만보다는 이쪽이 더 명분이 선다. 천명과 덕만이 쌍둥이지만 천명이 언니이기 때문에, 진평왕에게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 장녀인 천명이 계승권자 1위다. 그러나 천명은 용수와 혼인으로 족강되어 진골이 됐고, 이미 죽었으므로 의미가 없다.[4] 다만 춘추와 보량은 미생이 춘추의 여자 취향을 파악하고 맺어준 것인데 이것마저 춘추가 의도를 한 건지는 불분명하다. 의도를 했다면 미실 가문 사람들을 얼굴까지 쫙 파악하고서 계획을 짰다는 흠많무한 이야기... 사실 신라 귀족들의 신상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는 언급이 있는 염종이랑 친했으니 염종을 통해서 정보를 파악했던 것일수도 있다.[5] 덕만 VS 춘추의 구도는 "성골 출신이 왕이 되어야 하는데 성골 남자가 없으므로 성골 여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와 "성골 남자가 없으므로 진골 남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의 대립 구도이다. 쉽게 말해서 골품제 유지를 위해 여자가 왕이 되느냐 골품제를 깨서 라도 남자가 왕이 되느냐라는 구도인데, 진골이면서 여자인 미실이 왕이 되겠다는 것은 골품제도 남자의 왕위 계승도 둘 중 어느 하나 충족할 수 없는 완전 명분조차 세울 수 없는 씨도 안 먹힐 소리가 된다. 사실 이런 점에서 미실이 왕이 되겠다고 나선다는 스토리를 쓴다는 것이 뮤제라는 주장도 있었다.[6] 심지어는 인질이 됐다.[7] 실제 역사에서는 문무왕의 모후인 문명왕후가 김유신의 여동생인 만큼 가야계 아버지, 신라 왕가 어머니를 두었기에 가진 문무왕 역시 모계로 가야계이다. 그리고 신라의 이후 모든 왕이 무열왕의 직계 후손인 만큼 모든 신라 왕들이 구 금관가야 왕가의 혈통이다.[8] 비담이 워낙 진지왕보다는 미실을 닮은 것도 있다.[9] 사실 천명공주의 경우는 미실도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 미실은 천명공주를 죽이려 한 적이 없다. 심지어 미실은 덕만마저도 암살하려 하지 않았다. 상천관 서리와 상의한 미생의 독단적인 판단과 삽질의 제왕 대남보의 환장할 콜라보 때문에 천명이 죽은 것이다. 천명이 죽자 미실은 천명이 왕실을 구했다고 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는데 미실이 죽였다는 것은 미실로서는 억울해 할 만하다.[10] 사실 이건 미실의 삽질이긴한게 춘추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덕만에게 딱히 협조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대화를 기점으로 춘추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덕만을 지지했으며, 바로 이 대화로 인해 비담에 대한 춘추의 불신이 자리잡게 되었음으로 춘추를 겁박하려 한 것이 본인 그리고 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11] 사실 이게 비담의 난을 앞당기게 된 결정적 증거이다. 춘추는 덕만이 자신의 목숨과 바꿀 정도로 아꼈던 조카이자 후계자였고, 모든 문제에 차분히 대응하던 덕만이 감정적으로 나올 정도로 춘추에 대한 애정과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그런 조카가 덕만의 연모에 대해서 의심하게 하는 말을 하니 애초에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비담은 덕만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12] 자신의 가족을 죽인 원수. 덕만은 미실에게 인생 20년을 빼았겼고 언니인 천명공주, 친모보다도 진짜 어머니에 가까웠던 유모, 소화까지 잃었다. 춘추는 미실에게 조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를 잃었다.[13] 사실 작품의 미실 띄워주기가 너무 심해서 그렇지 미실, 또는 그 잔당에 대한 감정은 춘추 쪽이 지극히 상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