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23 16:19:21

김판곤/지도자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김판곤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김판곤호
, 울산 HD FC/김판곤호
,
,
,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김판곤의 지도자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중경고등학교 코치

1997년 은퇴 후 1998년 중경고등학교 축구부 김강남 감독의 부름을 받고 코치로 부임했다. 1999년 백록기 전국 고교축구대회 우승을 차지, 팀 창단 3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선사하기도 했다. 같은 해 중경고는 주말리그 서울 서부 리그 1위에 올라설 뿐 아니라 금강대기 전국고교축구대회 16강에 오르며 지역과 전국을 평정하는 신흥 강호로 떠올랐다. 각종 대회 호성적에 따른 김판곤의 최우수 지도자상 수상은 덤이었다.

3. 홍콩 퍼스트 디비전 1기

B급 지도자 수업을 받던 중 우연히 만난 홍콩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콕카밍의 초청으로 2000년에 홍콩 세미프로 리그 소속 더블 플라워 FA 팀에서 플레잉코치직로 활약할 기회를 얻게 됐다. 4년 동안 리그 준우승, 홍콩 FA컵 우승 등의 업적을 이뤘다.

이를 기반으로 당시 리그 최약체로 꼽힌 홍콩 레인저스 FC선수 겸 감독으로 부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부임 첫해 최약체로 분류된 팀을 전반기 1위까지 끌어올렸으며, 리그 종료 후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며 감독으로서도 선수로서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4. 부산 아이파크 코치-감독 대행

파일:7MB4K5DFOABXH56HMXGC4LKNEI.jpg
부산 아이파크 감독 대행 시절[1]
2005년 귀국 후 부산 아이파크의 코치로 재임하였다.

2006년 이안 포터필드 감독 경질 후 감독 대행을 잠시 맡아 당시 22경기 무승 부진의 팀의 체질을 개선해 4연승을 이끌며 앤디 에글리 후임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길 때까지 3개월 간 좋은 지도력을 보여줬다.

2007년 6월에는 앤디 에글리의 경질 이후 2주 간 감독 대행을 맡았다.

그러나 7월에 후임으로 온 박성화 감독이 2주 만에 갑작스럽게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이동하며 감독 자리가 비어버리면서 부산 아이파크 감독 대행직을 두 시즌 사이에 세 번 맡기도 하였다. 이는 당시 K리그 최초의 사례이다.

2007 시즌 종료 후 부산이 황선홍 감독을 선임하면서 3년 만에 팀을 떠났다.[2]

본래 황선홍 감독 부임 후 홍콩에서 다시 감독 제안이 왔으나 부산에 남기 위해 해당 제안을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황선홍 감독 부임 후 코칭스태프 개편이 이뤄지며 김판곤은 팀을 떠나야만 했다. 이후 부산은 2013년까지 짧은 전성기를 마감하고 1부와 2부를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김판곤 감독이 감독을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5. 사우스 차이나 AA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겸직

파일:/image/410/2015/03/30/20150330_1427696734.jpg_99_20150330155221.jpg
홍콩 대표팀 감독 시절

2008년에 다시 홍콩 퍼스트 디비전으로 건너가서 사우스 차이나 AA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2008-09, 2009-10시즌 리그 2연패, 2009년 AFC 컵 4강 진출 등 굵직한 성과를 냈다.

사우스 차이나에서 두각을 보이자 2009년부터 소속팀과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그리고 U-23 연령별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등극하게 됐다.

홍콩A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맡으며 2009년 동아시안 게임 우승과 2010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결승 리그 자력 진출을 이끌었다. 이 공로로 2010년 홍콩 체육 지도자상을 수상하였다.

6. 경남 FC 수석 코치

2011년에는 다시 귀국하여 최진한 감독 아래 고향팀 경남 FC에서 수석 코치를 맡았다.

경남은 2011시즌 리그 8위를 차지했고, 시즌 종료 후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7.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기

2012년 다시 홍콩 대표팀 감독 겸 청소년 대표팀 총감독 및 홍콩축구협회 기술위원장에 취임하였다. 사실상 홍콩 축구의 전권을 쥐었던 셈.

지난 2009년 동아시안 게임 우승 후 피닉스 프로젝트를 직접 계획하여 시행하였는데 이는 홍콩 축구의 10년 뒤를 그리는 작업으로서 홍콩축구 저변 확대와 수비 지향적인 홍콩 축구를 공격 지향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피닉스 프로젝트 시행 후 홍콩 축구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에서 홍콩 대표팀을 이끌고 16강에 오르는 성과를 보였지만 이광종의 한국을 상대로 0:3 완패. 물론 압도적인 실력 차 및 홈 어드밴티지를 갖춘 한국이 상대였고 한국이 결국 우승까지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홍콩이 선전한 게 맞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지역 예선에서는 만만치 않은 중국 원정을 0-0으로 비기는 성과를 거뒀다. 그것도 모자라 중국과의 홈경기에서까지 무재배에 성공하며 중국에 대굴욕을 안기는 데 성공. 그리고 재계약을 성공시켰다. 홍콩 축구협회에서는 이 기세를 몰아 2019 아시안컵 진출을 생각해 보는 듯하다. 그러나 아시안컵 최종 예선에서 저조한 경기력으로 북한레바논에 밀려 탈락 위기에 처하면서 홍콩 내에서의 여론도 악화되었고 관중석에는 감독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까지 등장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인터뷰 동영상을 보면 영어가 상당히 유창하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영어로 얘기하는 걸 보면 오랫동안 홍콩에서 생활하면서 영어를 꾸준히 배워 온 덕분인지 따로 통역이 필요없을 정도인 듯. 직접 보면 알 수 있듯, 이때부터 이미 김판곤이 행정가로서의 장기 플랜의 계획과 목표를 짜는데 능력을 갖추었음이 보인다.

결국 2017년 말 대한축구협회에서 감독선임위원장 제안을 받고 홍콩 국가대표팀 감독을 사임한다.

8.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김판곤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김판곤의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재임 시기에 대한 문서.

9. 울산 HD FC 감독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울산 HD FC/김판곤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9.1. 2024 시즌

2024년 7월 16일,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사임한 후 홍명보 감독과의 갑작스런 결별로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된 K리그1 울산 HD FC 감독 부임설이 보도되었다. 파우 마르티 비센테 수석코치도 동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소문이다. 울산은 여러 감독 후보 리스트를 추려 나가고 있다면서 되도록 K리그 휴식기인 8월 초에는 후임 감독을 선임하여 여유를 가지고 후반기에 임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고 밝혔다. 김판곤 감독은 가족들이 있는 홍콩으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2024년 7월 28일 울산의 12대 감독으로 정식 부임했다. 이로써 그는 울산 구단 역대 최초 울산 선수 출신 정식 감독이 됐다.

이후 보도에 따르면 7월 29일 한국으로 출국하여 울산 구단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선수단을 지도할 예정이며 8월 5일 서울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공식 취임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8월 5일 취임식에서 이번 시즌 목표에 대한 질문에 리그, 코리아컵에서 우승하고, ACL 결승까지 올라가는 목표로 도전하겠다. 좋은 결과를 갖고 울산 팬들, 처용전사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11월 1일 강원전을 승리하며 리그 1위를 확정지으며 K리그 3연패 달성과 함께 5번째 우승컵을 안겨주었다. 이로서 김판곤은 울산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리그 우승을 경험하게 되었다.

다만 리그 우승과는 별개로 ACLE 24강 리그 스테이지에서 1승 5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는데 그쳤으며 코리아컵에서는 라이벌인 포항 스틸러스를 만나 전반 주민규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으나 이후 정재희의 동점골과 연장에서는 김인성, 강현제에게 추가실점을 허용하며 1:3으로 패배. 라이벌 포항에게 코리아컵 트로피를 내주게 되었다.

리그 종료 후 올해의 감독상 후보에 들었으나, 강원 FC를 리그 2위까지 올린 윤정환 감독이 수상하며 감독상 수상에 실패하였다.

9.2. 2025 시즌

리그 우승은 달성하였으나, 리그 막바지 포함 ACLE와 코리아컵 불문하고 보여준 경기력을 통해 노쇠화한 스쿼드 정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이적시장이 열리자마자 전 포지션에 걸친 쇼 미더 머니를 선보이며 분노의 영입을 시전하였다.

일단 코치진에서는 수석 코치로 주앙 노노 폰세카를 데려왔으며, 박주영도 코치진에 합류하였다.

영입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주민규를 비롯 기존 노쇠화된 자원이나 기량이 아쉬운 자원들을 모두 정리하고 새 판 짜기에 나섰다. 그 결과 주민규의 대체자로 광주 FC의 장신 스트라이커 허율을 영입했으며 이후 공격진 보강을 위해 광주의 핵심 공격형 미드필더인 이희균과 U-22 자원이면서 측면 자원인 윤재석 영입에도 성공하였다. 이후 이명재의 재계약이 무산되면서 젊은 풀백인 박민서를 비롯, 좌우 풀백 모두 소화 가능한 강상우윤종규 영입에도 성공하였으며, 임종은, 김기희의 이적 공백은 김영권의 후계자로 왼발 센터백 자원인 이재익과 더불어 부천의 핵심 센터백 서명관 영입에도 성공하였다. 미드필더 역시 국가대표 출신 왼발 미드필더 이진현을 영입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에 조수혁이 떠난 골키퍼 자리에는 문정인을 트레이드로 재영입하였다. 말 그대로 미친 영입.

리그 시작 전 열린 부리람 유나이티드 FC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엘리트 리그 스테이지 경기에서 16강 가능성의 희망이 어느 정도 있었으나 1승 5패의 상황에서 가망성은 없다고 판단했는지 핵심 선수 몇 명을 제외하고 전부 2진급 멤버들을 데리고 왔으며 기존 포백 대신 쓰리백으로 전술 변화를 가져갔으나 결국 결과는 1:2 패배로 16강 진출 실패는 물론, 조현우의 부상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얻은 것이 없는 경기였다.

1라운드 FC 안양 홈개막전에서 안양의 텐백 수비에 전혀 효율적으로 공략하지 못하고 점유율만 높게 가져갔을 뿐 영양가 없는 측면 볼 배급과 크로스만을 이어가며 전임 감독의 마지막 시절 보여준 무전술 축구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결국 후반 추가시간에 모따에게 결승골을 헌납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여담으로, 개막 전 가진 미디어데이에서 좋은 외국인 스트라이커가 와야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밝혔는데 이후 이정효 감독은 "배부른 소리다. 어떻게든 골을 넣게 만드는게 지도자의 역할이다."라며 사실상 김판곤 감독을 저격한 뉘앙스를 남기기도 하였다.

아직 2025 시즌 두 경기밖에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김상식 시즌 2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3]

2라운드 대전 하나 시티즌 원정경기에서 개막전에서 15분에 조기교체시킨 윤재석의 선제골 후반전에는 허율의 추가골로 2:0 승리하였고 윤재석은 전반전이 끝난이후 교체아웃 되었다.


[1]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현재의 부드럽고 선한 인상과 달리 이때는 인상이 날카로웠는데 감독 대행 당시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였고 짧은 헤어스타일로 인상이 더 세보이는 면도 있었다.[2] 그리고 이 둘은 약 14년 뒤 U-23 대표팀 감독과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 위원장으로 만난다.[3] 김판곤, 김상식 모두 소속팀 출신 감독에 부임 첫 해 리그 우승 달성을 했으나 다음 해 부진에 빠지는 모습까지 현재까지 보면 전북 감독 시절 김상식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중이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429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429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