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6 07:30:47

나는 단수가 아니다

1. 개요2. 뜻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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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영도의 소설 드래곤 라자에 등장하는 대마법사 핸드레이크명대사. 헤겔적으로 봤을 때 인간의 즉자성을 부인하고 대자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 밑의 샌슨 퍼시발의 말의 경우 즉자성과 대자성의 종합정립인 즉자대자성을 설명한다.

2.

영어 : I is not SINGULAR.
일본어 : <私>は単数ではない
"인간은…… 유피넬헬카네스의 총애를 동시에 받습니다. 원래 불안하죠. 우리는 관계 속에 형성되는 존재입니다. 엘프나 페어리, 드워프들을 부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부러워한다 해서 우리가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모르겠어요. 무슨 말인지."

"페어리인 당신은 이해하기 어렵겠지요. 인간에게 있어 나는 하나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나'는 단수형이 아닙니다. 나라는 것은 원래 다면적이고 여럿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해 산다는 말이 원래 통하지 않는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 핸드레이크다레니안의 대화 中

드래곤 라자의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사 중 하나다. 작중 인물 후치 네드발드래곤 로드에게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다고 말하면서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말의 뜻을 아주 싸가지 없이(!) 가르쳐준다. 그야말로 헬턴트식 깡[1] 에서 나온 짓이라 할 수 있다.
"드래곤 로드께서는 샌슨에게 이렇게 질문하셨지요. '샌슨의 가족들을 죽이겠는가, 샌슨을 죽이겠는가.' 조금 달랐을 지 몰라도 대충 그런 의미였지요. 하지만 그건 나눌 수 없어요."

"어째서지?"

"샌슨은 하나가 아니니까. 샌슨은 헬턴트의 경비대장 샌슨이고, 나의 좋은 동료 샌슨이고, 샌슨의 아버지 조이스 씨의 사랑하는 장남이에요. 의 신뢰받는 길앞잡이고, 그리고 그 아가씨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인 샌슨이에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샌슨이지요. 이런 식의 이야기도 들어보셨겠지요? 어쨌든 당신은 샌슨 하나를 살려주는 대신 그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말했지만, 그 가족들을 죽이면 샌슨도 죽는 셈이에요."

난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 이마에 열기가 올라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도저히 말을 멈출 수가 없다.

"그래요. 그 모든 것이 샌슨이에요. 당신이 헬턴트 영지를 파괴하면 헬턴트의 경비대장 샌슨은 죽는 셈이에요. 당신이 죽인다면 후치의 동료 샌슨을 죽이는 셈이고요. 당신이 조이스 씨를 죽인다면 조이스 씨의 아들인 샌슨은 죽는 셈이에요. 당신이 칼을 죽인다면 칼의 길앞잡이 샌슨이 죽지요. 그리고, 그리고 그 아가씨를 죽인다면 그 아가씨의 연인인 샌슨을 죽이는 셈이라고요."

"샌슨은 하나가 아닌가?"

난 기가 막혀서 고함을 빽 질러버렸다.

"하나가 아니에요! (중략) 영원의 숲, 영원의 숲 아시죠? 거기서는 자신이 자신을 죽이게 되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지요? (중략) 나가면 그 사람은 사라져 버려요! 나라는 존재가 아무리 남아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잊어버리게 되면 그 사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아직까지 그걸 모르세요?
'나'라는 것은, 나라는 것은 이 몸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요.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모든 것들에 다 내가 있어요. 그것이라고요! 그 모든 것을 모았을 때 내가 있는 거라고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요, 그것이 인간이에요!!"
대미궁에서 후치가 드래곤 로드에게 펼친 일장연설.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것은 나 개인의 주관만이 아니며,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도 각각 "나"의 일면이 기억되어 있다는 말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정의하든, 모든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는 모습은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들, 누군가에게는 친한 친구, 누군가에게는 믿음직스러운 동료, 누군가에게는 재수없는 놈,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선배,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도와준 친절한 사람, 누군가에게는 기억에 남는 제자 등으로 기억될 수 있다. 이렇듯 모든 사람들이 "나"의 다른 일면을 기억하며,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된 모습들이 모여 '나'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즉, '나'를 단순히 생물학적인 '개체'로서 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의 총합으로서 정의한 것이다. 드래곤 라자 이전에 출간된 '나'나 '자아'에 대해 이야기한 많은 소설과 서적들은 대부분 인간의 내면에 대한 고찰에서 그 답을 찾으려 했던 반면, 본작에서는 오히려 '나'의 의미를 외부로 확장하여 '관계의 총합'으로서 '나'를 정의한 것이 흥미로운 부분이다.

따라서 "나" 개인의 신체가 해체되어 "나"가 생물학적으로 사망한다고 해도 "나"라는 것이 모두 제거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후치의 말을 들은 드래곤 로드는 그때서야 300년간 풀리지 않던 의문. 왜 루트에리노는 그토록 절망적인 싸움을 걸어왔는가. 그리고 나는 왜 그런 루트에리노에게 패배했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고 한다. 하늘 아래 홀로 우뚝 선 드래곤들은 자신의 죽음과 함께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에 자신을 건 도전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가족, 친구, 동료, 주변 사람들에게 꾸준히 자신의 일부를 남기고 있기 때문에 그 육체가 사라진다고 해서 소멸하는 존재가 아니며, 그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드래곤 로드에게 칼을 찔러넣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드래곤 로드 같은 드래곤이나, 페어리퀸 다레니안 같은 페어리들은 인간과 달라서 이 점을 머리로는 이해하나 가슴깊이 이해하지는 못한다. 신에 비교될 정도로 강대한 드래곤들은 홀로 설 수 있는 종족이기도 하고, 뭉쳐사는 인간과 비교하기에는 좋은 주제이다. 그야말로 인간과는 다른 종족들이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를 잘 활용하여 인간이라는 것을 잘 설명한 대사라 할 수 있다.

나중에 그림자 자국에서 언급된 것으로 봐선 드래곤 라자 시대를 넘어서 1000년 후까지도 국민 명언내지는 격언 같은 존재가 되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카미카제식 자살특공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면서 이러한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했다.[2]

'나'라는 단어/존재가 인간에겐 단수/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님을 주지시키기 위하여, "나"를 자기 자신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가진 하나의 "단어" 그 자체로 사용했다. 따라서 영어표기에서는 'I' 뒤에 'am' 대신 'is' 형식의 be동사를 붙인다.

2014년도 천재교육 사회 교과서에 이 부분이 등재되기도 했다. 자아 정체성의 형성에 도움이 될 거라나.

3. 기타

김광규의 시 「나」[3] 또는 Dr. 히루루크유언 또한 이 말과 동일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굽시니스트본격 시사인 만화에도 등장했는데 하필...

드래곤라자와 퓨쳐워커의 등장인물인 헨드레이크와 솔로쳐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행복의 근원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등장한다. 솔로쳐가 헨드레이크의 마법에 의해 둘로 늘어나는데, 기억도, 사고방식도, 외형도, 그 외의 모든 것이 동일한 두 사람 중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이 '나는 단수가 아니다'와 흡사하다.

[1] '니가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기껏해봤자 나를 죽이는 것 이상은 못할거다. 그런데 내가 너한테 이러는건 내가 죽기로 작정한 것이니 네가 나를 죽이는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죽는거다. 그러니 넌 나한테 아무 것도 못하는건데 내가 왜 너한테 쫄겠냐'라는 상당히 복잡한 사고방식[2] 전투기(라고 해봐야 비행기 위에서 권총을 쏘는 것 뿐이지만) 조종사들이 드래곤 레이디 아일페사스를 공격하기 위해 비행기 안에 연료 대신 폭약을 가득 싣고 그대로 아일페사스의 몸에 들이박는 자살특공을 감행했다. 상당한 상처를 입은 아일페사스는 이들의 이런 행동에 분노하여 죽은 조종사들과 그들이 타고 있던 비행기를 언데드로 부활시켜 인간의 군대를 공격하도록 한다. 이에 왕이 분노하여 "니가 최소한의 지성이라도 있다면 국가를 위해 죽은 저들의 시신을 이렇게 모욕적으로 대할 수 없다."고 고함치고, 아일페사스는 "저들 자신도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가 왜 저들에게 경의를 보여야 하냐?"고 반박한다. 그러자 왕은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죽은 조종사들이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게 아니라 자신을 '확장'한 것이라고 소리치는데, 아일페사스는 이에 대꾸도 하기 싫다는 듯 질린 반응을 보인다. 위에 서술된 것처럼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말을 고작 집단을 위해서 '나'는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 의미로밖에 해석하지 못하는 왕에게 혐오감을 품은 듯 하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장면에서, 왕이 땅이 울리는 진동을 느끼고 당황하자 아일페사스는 왕에게 똑같은 말을 되돌려준다. "코볼트들이 자신을 확장하고 싶어하는군. 존중해줘야겠지?"[3] 살펴보면 나는/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나의 아들의 아버지이고/나의 형의 동생이고/나의 동생의 형이고/나의 아내의 남편이고/(중략)/그렇다면 나는/아들이고/아버지고/동생이고/형이고/남편이고/오빠고/조카고/아저씨고/제자고/선생이고/납세자고/예비군이고/친구고/적이고/환자고/손님이고/주인이고/가장이지/오직 하나뿐인 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