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02-01 06:43:37

나무위키:연습장/문화역 서울 284


타 노선에서 경의선으로 환승 시 환승통로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1회용 교통카드(일반 교통카드는 환승 가능, 환승횟수 1회 차감) 및 정기권으로 환승이 불가능하며, 정기권 환승 시 이용횟수가 1회 차감됩니다.
수도권 전철
서울역(서부)[1]
시종착
경의·중앙선문산급행
시종착
일반철도, 1호선,4호선,공항철도로 환승
다국어 표기
영어Seoul (Station)
한자서울(驛)
중국어首尔(站)
일본어ソウル(駅/ヨク)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 1
(봉래동2가 122-28)
역 코드
파일:koraill_ogo.jpgAFC: 1251
관리역 등급
관리역
(특1급 / 코레일 서울본부)
역 운영기관
경의·중앙선파일:koraill_ogo.jpg
열차거리표
기점
경의선
서 울
1. 개요2. 역사
2.1. 일제강점기2.2. 광복 이후2.3. 역사 이전2.4. 문화역 서울 2842.5. 부활
3. 기타

1. 개요

한국 철도의 중심지로 1981년 사적 284호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국내 철도계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로 많은 역사(歷史)가 살아있는 역사(驛舍). 1923년부터 2003년 10월까지 서울역 본역사로 사용되었다.

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 1 소재.

2. 역사

2.1. 일제강점기

파일:external/img.khan.co.kr/l_2016070801001012900081091.jpg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eijo_Station_under_construction%2C_1924-10.jpg
경성역의 전신인 남대문정거장의 모습을 담은 엽서(1926년 제작)1924년 건축중인 경성역을 찍은 사진

1900년 경인선의 서울 도심 구간 개통과 함께 남대문정거장으로 개업하여 1923년 경성역으로 이름이 바뀐 뒤 광복 후인 1947년에 현재의 서울역으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광복 이후 한국철도공사의 전신인 철도청이 오랫동안 맡아왔다. 사실 경성역(서울역; Seoul station)이란 역명은 1905년까지 서대문역(폐역)이 가지고 있었으며, 그 역이 다른 이름으로 바뀐 후 남대문역이 1923년에 경성역으로 바뀔 때까지 경성역(서울역)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eijo_Station.jpg

서울역의 역사는 1925년 9월에 준공된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이국적인 건물로 석재와 철근 콘크리트, 철골 구조를 사용했으며 비내력벽과 장식에는 목구조와 벽돌, 인조석을 다양하게 섞어 만든 과도기적인 건물이다.

본래 계획은 도쿄역과 비슷한 규모로 세워 일제의 위엄을 보이려는 것이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본국의 피해가 막심해 예산이 부족해진 관계로 당초 계획의 1/4 크기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나중에 더 확장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역사 1층은 대합실(맞이방의 과거 표현)과 역무공간으로 사용하고, 2층에는 경양식을 제공하는 고급 식당이 있었는데 이 또한 도쿄역의 기능을 모사한 것이다. 도쿄역도 상부를 호텔로 쓰고 있었기 때문이며, 옛 부산역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당시로서는 조선팔도에서 드물게 '양식'을 먹을 수 있는 명소였으며, 이상의 소설 '날개'에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 양식당은 없어진 게 아니라 1925년 이래 '서울역 그릴'이라는 이름으로 현재도 멀쩡하게 영업하고 있다.(...) 다만 서울역 리모델링 사업과 구 역사가 문화역서울 284가 되면서 현재는 신역사 4층으로 옮겨 다른 식당들과 함께 입점해 있을 뿐. 용산역 앞에 있는 '용사의 집'과 마찬가지로 7080 시절을 진하게 느낄 수 있으며 그 시절 호텔 경양식 맛과 뭔가 촌스러우면서도 레트로풍을 원한다면 가볼 만하다. 다만 역사 내 음식점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가성비는 심하게 좋지 않다.[2]

건축가 다츠노 긴고(辰野金吾)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모방하여 도쿄역을 지었기 때문에 (구 한국은행과 구 부산역 건물 등을 설계) 서울역도 비슷하게 암스테르담역 혹은 도쿄역 모방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실제로는 스위스의 구 루체른역이 모델인 것이 밝혀졌다. 시공은 일본의 시미즈 건설사가 맡았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uzern_%286%29.jpg
화재로 붕괴되기 전의 루체른 역

과거의 루체른 역사는 서울역사와 거의 흡사한 외형을 가졌었지만, 현재는 화재로 붕괴되고 건물의 입구만 복원된 상태기 때문에 그 관련성을 알기 어려웠다. 실제로 화재 후 루체른 역사 복원을 위해 관계자가 서울역을 방문하기도 했다.

비교결과 서울역은 루체른 역사와 외관은 유사하나 내부는 오히려 암스테르담 역과 비슷하다고 한다. 외관에 붉은 벽돌을 사용한 점이나, 건축물 안의 공간 구성, 당시 유럽에 일반적이었던 종착역식 역이 아닌 통과식으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암스테르담-도쿄-서울역은 유사성이 있다.

흔히 서울역을 설계한 건축가는 다츠노 긴고의 제자인 당시 도쿄대 건축학과 교수 '츠카모토 야스시(塚本靖)'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건축가는 미상이다. 츠카모토 야스시 사후 유품으로 그의 이름이 적힌 서울역 설계입면도가 발견되었지만, 건축을 총괄한 건축가가 누군지는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츠카모토 야스시가 설계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다.

다츠노 긴고(일어), 츠카모토 야스시(일어)

2016년 7월 경성역의 준공도면의 원본 문서가 공개되었다. 과거에는 설계입면도와 준공 평면도의 일부만이 남아있었을 뿐이었지만 이 도면에 따르면 지금은 민자역사 구조물에 가려져 사라져 보기 어려운 당시의 경성역 뒷면과 우측면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어있다고 한다. 뉴스 보러가기

2.2. 광복 이후


1981년 당시의 서울역

파일:external/azine.kr/201210311811306666.jpg
1988년 당시의 서울역

2003년 9월, 현역시기 막바지 당시의 정문 앞

민자역사 완공 전까지는 열차등급별 대합실(맞이방)이 따로 존재하여 새마을호 대합실은 바로타 구조로, 기타 열차는 지방 대도시 역과 같이 개표구를 나가면 육교를 통해 해당 플랫폼을 찾아가는 방식이었으나, 1988년, 민자역사 완공 이후 선상역사 형태가 되어 플랫폼 별로 게이트가 존재하게 되었다.

구 민자역사 당시 게이트에 따른 열차등급 및 행선지는
1~2번: 장항선
3~4번: 경부선 무궁화호, 통일호
5~6번: 새마을호 전용
7~8번: 호남/전라선 무궁화호, 통일호
9~10번: 대전 동대구 방면... 이라고 적혀 있었으나 실상은 남부 지역에서 올라온 열차가 종착하는 곳.
11~12번: 경의. 교외선 이라고 적혀있었다. 대체로 11번홈은 9~10과 같이 남부 지역에서 올라온 열차가 종착하는 곳이었고, 12번 홈이 경의선과 교외선의 착발 장소로 사용되었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11번홈에서도 경의선 착발.

2.3. 역사 이전

2004년 현 유리궁전 역사가 완공된 직후까지 위 체계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신 역사 준공으로 역 건물의 기능은 그리로 옮겨가고 옛 서울역 민자역사 공간으로 쓰이던 건물은 롯데마트 건물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구 서울역사와 민자역사를 이어주던 통로는 철거. 따라서 지금 롯데마트 건물이 예전 서울역이 되시겠다.

KTX 개통 이후로 역으로서의 업무가 신역사로 옮겨진 이후론 코레일의 거의 방치 수준의 관리와 노숙자들 때문에 오랫동안 흉물로 전락하였으며, 특히 늦겨울 즈음에는 지린내가 살인수준이었다. 이는 코레일 입장에서는 사적지이므로 함부로 건물을 개축, 증축 등을 할 수 없어 운영비만 까먹는 곳으로 인식했기 때문. 2006년 문화재청으로 기부채납,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2.4. 문화역 서울 284

파일:external/member.segye.com/20110804002241_0.jpg
200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으로 서울역을 문화시설로 리모델링하기 위한 복원공사를 시작하면서 방치 상태를 면했으며, 문화역서울 284로 이름이 바뀌었다. 284는 서울역의 사적번호에서 따온 것이다. 구 서울역사 원형복원 완공은 2011년 8월 9일 테이프를 끊었으며, 문화역서울 284로는 2012년 4월 2일 완공되었다. (그 공백기 동안 구 서울역 안에는 예술프로젝트 "카운트다운"이 진행되었다.) 복원하면서 나름 상징이라면 상징이라 할 수 있었을 서울역 네온싸인을 떼어버렸다. 그리고 2013년 12월 '문화역서울 284' 간판이 설치되었다. 나름 상징이었던 만큼 아쉬움이 남긴 하나 어차피 (광복부터 따져도) 원래 네온싸인이었던 것도 아니니... 참고로 현재 2004년 역 시설을 현재 신역사로 이전하기 전의 흔적은 중앙홀의 역삼각형 철도청 마크가 있는 시계와 역 광장의 한국철도 100주년 동판뿐이다.[3]

현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2013년부터 연간 운영체계를 확정하고 예술감독을 공모하여 운영하고 있다. 참여한 작가, 기획자들에게서 문화예술프로그램 공간으로는 영 안좋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이전의 양식을 복원하는 방식으로 공사가 이루어져 온도, 습도관리 등의 문제가 있고, 예산도 적어서. 정부(국토교통부)쪽에서 코레일의 삥을 뜯어(?) 시범케이스로 철공 재산이 아닌 국유재산화를 했으나... 이것이 뻘짓 오브 뻘짓임을 알게 된 이후로는 시설을 전용하더라도 소유권이전을 국유로 하는 사례는 이 사례 이후로 없다.[4]

2.5. 부활

2017년 11월 28일부터 구 서울역의 여객기능이 부활하게 되었다. 서부역에 붙어있던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승강장을 구 역사 바로 옆으로 이전하기 때문이다.

구 서울역사 자체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이 안에 개찰구를 놓을 수 없으므로 승강장에 게이트를 설치하며, 출입구는 구 서울역 정문에서 오른편의 'Cafe 자리' 바로 옆으로 나게 된다. 기존의 서부역 승강장은 선로와 승강장의 개수, 증설을 거쳐 인천국제공항에서 강릉역으로 가는 KTX를 1일 8회 취급하게 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대비용 임시조치이지만,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서부역으로 다시 갈 일은 없어 보인다.

3. 기타

덧붙여 조금만 가면 있는 신 서울역사의 구내에는 구 서울역사에서 사용하던 구 철도기점비가 버려져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 있었으나 철도 동호인들의 활약으로 철도박물관에 보존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플랫폼은 현재 고상홈을 포함 총 13개(경의선 전철승강장 제외)가 있으며 예전처럼 기능별 용도별로 플랫폼이 전혀 구분되어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사용한다. 예전에는 상선군(群)과 하선군이 칼같이 분리되어 있어 도착열차는 몰라도 출발열차는 플랫폼이 항상 일정했던 것에 비하면 오히려 퇴보한 셈이다.

과거엔 서울역 남쪽에 경의선 문산행 완행과 소화물, 그리고 일부 무궁화호 객차를 유치해두던 간이 차량기지가 있었다. 그로 인해 서울역 승강장의 전체적인 모양이 상당히 구부정한 곡선 형상이었는데, KTX 운행을 대비한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로 일직선으로 펴는 과정을 거쳐 지금은 완전 반듯하고 아름다운 일자형 플랫폼이 되었으며 당연히 차량기지업무는 수색차량사업소로 통합되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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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도권 전철 전산에 경의선 서울역은 서울역(서부) , 공항철도 서울역은 공항서울, 1호선 서울역은 1지서, 1호선 급행 서울역은 지상 서울역, 4호선 서울역은 4지서로 표기됩니다. 그리고 흔히 지하 서울역이라 불리는 서울교통공사 서울역은 서울역앞역에서 '앞'자 하나만 탈락했으므로 서울역역이 정식 명칭입니다.[2] 솔직히 음식솜씨가 나쁜 건 절대 아니다. 그 옛날 호텔 경양식답게 직접 루를 갈아만든 스프라든가 고기의 조리솜씨도 기본기를 확실히 지킨다. 80년대 경양식 스타일대로 21세기 현재보다 간이 좀 심심하기는 하다. 다만 그 스프 단품이 한접시에 오천원이고 풀냄새 진한 호주산 고기와 국내산 육우 스테이크가 아웃백보다 더 비싸다는 점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3] 철도동호인 일각에서 있었던 이런 비판을 코레일측이 귀담아 듣기는 했는지, 나중에 인천역을 손대면서 코레일 통합CI가 적용된 역명판 대신 7080 당시 수도권 전철역 특유의 거대 글자 간판을 복각해서 달아놓았다.[4] 사실 국유화가 문제가 아니라, 국토부와 문화부가 그 이후에 이곳을 방치한 것이 문제이다. 문화전시공간으로 활용한다고는 하지만 상술한 바와 같이 온습도 문제가 있어 활용도가 낮고, 무엇보다도 문화역서울284는 끊어진 유동인구로 인해 들끓는 노숙자+이들이 투척하는 오물 때문에 몸살을 앓는 처지인 것이다. 청소인력뿐만 아니라 특수경비용역까지 상주해서 매번 노숙자를 몰아내는 상태에 있으며, 그에 따른 시설관리유지 비용 상승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