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13:29:26

나산그룹

1. 개요2. 역사3. 계열사 목록4. 공익 사업5. 참고 자료6.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1980년부터 1998년까지 (주)나산을 모태로 존속했던 패션/유통특화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

2. 역사

나산그룹의 창업주 안병균(安秉鈞[1])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처럼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손꼽힌다. 안병균은 1948년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에서 태어났는데 이 동네는 안충달(安忠達)을 입향조로 하는 신 죽산 안씨 집성촌이었다. 그는 호남 최고의 명문 중학교로 꼽히던 광주서중학교[2] 입학했으나 워낙에 가난했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고향을 탈출해야 했다. 그래서 중학교 중퇴 후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서울특별시로 상경했다.

그는 공사장 인부, 영화 엑스트라, 식당 종업원 등을 전전하다 '왕자관'이란 중화요리전문점을 내서 처음 사업을 시작했고, 1970년에는 명동 한복판인 한주빌딩[3] 2층에 '해녀'라는 일식집도 냈다. 그러나 1974년 일식집에 불이 나 종업원 2명을 잃고 자신도 화마를 피하다 중상을 입어 병원 신세를 졌다. 식당의 화재로 쫄딱 망하게 생긴 안병균은 다시 유흥업소 웨이터 등으로 일하며 재기를 노렸고 이후 1970년대 중반부터 소위 밤무대라고 부르던 유흥업소를 통해 큰돈을 벌게 된다. 그가 운영했던 업소는 세칭 '극장식당'이라 불리던 곳인데 종로에 있던 <무랑루즈>와 북창동에 있던 <초원의 집>을 운영했다.

1980년대 말까지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극장식당은 성인 나이트클럽보다는 조금 더 격식을 갖춘 곳으로 당대 인기 연예인들이 출연해 공연을 하고 객석의 손님들은 공연을 보면서 술과 음식을 즐기는 형태였다. 안병균이 본인의 극장식당에 섭외하고자 가장 공을 들였던 사람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슈퍼스타 코미디언 이주일이었다. 이주일과 손을 잡은 안병균은 극장식당 경영으로 돈을 쓸어담게 된다. 심지어 1986년에는 역시 극장식 식당이었던 '홀리데이 인 서울'[4]까지 인수하기도 했다. 홀리데이 인 서울과 초원의 집 광고자료를 보면 이주일을 비롯해 조용필, 조영남, 최성수, 인순이, 세또래, 이남이, 쓰리랑 부부(김한국-김미화) 등이 출연했다. TV를 틀어야 볼 수 있던 가수와 코미디언들을 코앞에서 술과 음식을 즐기며 볼 수 있었기에 안병균의 극장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다.

극장식당으로 부자가 된 안병균은 의류 사업에 뛰어들게 됐고 나산을 본격적인 종합 기업으로 키우게 된다. 안병균은 1980년 서울 종로5가에 의류도매업체 '문화데스크'를 세우고 1982년에는 그의 고향 지명인 '나산'을 따서 회사 이름을 나산실업으로 바꾼다.[5] 이듬해인 1983년에 여성 의류 브랜드 '조이너스'를 발매해 처음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패션업의 성공을 바탕으로 1988년부터 사업다각화를 추진해 같은 해에 나산관광개발을 세워 레저사업을 시작했고, 1990년 나산산업, 나산인터내셔널, 나산CLC 등을 각각 세운 후 서울 대치동에 '샹제리제센터' 오피스텔 분양, 골프장 및 스포츠센터 회원권 등을 통해 거액의 부를 창출하게 된다.

이 덕분에 안병균 회장은 1990년 한해에만 41억원의 소득을 얻으면서 현대, 삼성, 한진, 한화 등등 굴지의 재벌 대기업 총수들보다 더 많은 소득세를 납부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1991년은 기존 건설사를 인수해 '나산종합건설'로 바꾸어 건설업에 진출했고, 1995년 서울 청담동에 있던 영동백화점을[6] 인수한 뒤 '나산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유통 사업을 더욱 확대했다. 그러나 이 백화점 사업은 머지 않아 그룹을 해체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1996년에는 당시 개국 1년여를 넘긴 신생 지역 민영방송광주방송의 대주주 대주건설을 광주방송 지분과 함께 통째로 인수했고[7][8] 충남방적으로부터 한길종합금융까지 인수하면서 의류를 넘어 유통, 건설, 언론, 금융까지 갖게되며 그룹 규모를 계속 키워나갔다. 프로 스포츠 사업에도 진출한 바 있는데 한국프로농구 출범이 추진되던 1996년 말, 중소기업은행 실업 농구단 소속 선수들을 인수한 뒤 안병균 회장의 고향 옆동네인 광주광역시[9] 연고로 하는 나산 플라망스 프로농구단을 창단하게 된다. 프로스포츠단 운영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는지, 같은 해(1996) 시민주주 공모 + 향토기업 컨소시엄 형태로 창단을 준비하던 K리그의 예비 제10구단 대전 시티즌[10] 창단에 참여하고자 했으나 구단명에 '나산'을 넣고 싶다는 나산그룹 입장에 동아그룹, 계룡건설 등 다른 기업체들이 동의하지 않으면서 발을 뺐다. 당시 나산그룹이 가져오기로 했던 자본금이 무려 40억인데, 총 100억의 운영비 중에 절반도 채우지 못해 대전 시티즌 창단 과정이 난항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상당한 액수인 셈.

그러나 무리한 사업 확장과 차입경영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자 1995년에는 냅스 및 그룹 경영관리실 인력을 축소하는 등 구조조정도 진행했으나, 결정적으로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를 이기지 못해 1998년 최종 부도를 맞고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3. 계열사 목록

  • 나산(현 인디에프): 그룹 부도 후 법정관리를 거쳐 2006년 세아상역에 매각됨.
  • 나산산업: 그룹 부도 후 1999년 '티엠코스모스'가 됐다가 2006년 폐업됨.
  • 나산인터내셔널: 그룹 부도 후 청산.
  • 나산웰비: 헬스클럽 '나산웰비스포츠클럽' 운영사로, 그룹 부도 후 2001년 폐업됨.
  • 나산CLC: 그룹 부도 후 2000년 폐업.
  • 나산종합건설: 그룹 부도 후 2000년 폐업.
  • 송산: 구 대주건설. 당시 광주방송 대주주로 1998년 그룹 해체로 양회천[11]이 인수해서 '송촌건설'로 변경했다가 2001년 건설부문을 송촌종합건설로 분할시켰고, 2002년 삼능건설에 매각됐다가 2009년에 부도.
  • 나산유통: 나산백화점 운영법인으로, 그룹 부도 후 2002년 폐업.
  • 나산클레프: 할인마트 체인업체로, 그룹 부도 후 2010년 폐업됨.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광명점, 광주광역시 북구 유동 광주점 2곳이 있었으며 광명점은 2003년 파보레, 2008년 2001아울렛 등으로 변경 후 2021년까지 영업했고, 광주점은 2003년에 폐점 후 주상복합으로 재건축.
  • 냅스: 인하우스 광고기획사로, 그룹 부도 후 청산.
  • 냅스컴: 1995년 폐업.
  • 한길종합금융: 1997년 성원토건에 매각됐다가 이듬해 퇴출되고 2015년 법인 소멸.
  • 나산파이낸스: 1998년 폐업.

4. 공익 사업

  • 광주 나산 플라망스(현 수원 KT 소닉붐): 1999년 골드뱅크를 거쳐 2003년 KTF에 매각됐으며 2009년부터 kt 농구단으로 운영되고 있다.

5. 참고 자료

  • 공병호의 대한민국 기업흥망사 - 해냄. 2011. p190~199
  • 그후 안병균 일가의 근황을 보자면 # 2018년 기준 상당한 기업체들을 운영하며 잘만 살고 있다. 특히 2008년에 인수한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위치한 ‘더 리버사이드 호텔’을 재건축하여 2030년까지 47층 높이의 호텔·오피스텔 용도의 복합시설로 탈바꿈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사업을 성공시킨다면 안병균 회장은 엄청난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측된다.

6. 같이 보기



[1] 본관은 신 죽산 안씨.#[2] 광주제일고등학교의 모태가 되는 학교였으나 중학교 평준화 정책에 따라 1972년 폐교됐다.[3] 주소지상으로는 현재 '명동증권빌딩'이라고 명명된 빌딩이지만 현재의 빌딩과 한주빌딩은 터만 같을 뿐 다른 건물이다. 이 건물의 바로 맞은편에 있는 '명동 아르누보센텀' 빌딩 터에 1979년까지 한국증권거래소가 있었다.[4] IHG호텔 브랜드 Holiday inn이 당시 서울특별시에 지점이 있었다는 소리가 아니라 업소 이름이 진짜로 이랬다. 실제로는 명동역 바로 앞에 있는 퍼시픽 호텔에 입주했던 업소였다.[5] #[6] 강남구청역 3번출구 앞에 있던 백화점이었다. 직선거리로 1.5km 안팎에 있던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 치여 고전하다가 신세계백화점에게 경영권을 위탁해 신세계백화점 영동점으로 간판을 내걸었다. 그러나 그 신세계마저도 영업 부진으로 사업 포기를 선언했는데 그 자리를 나산이 들어간 것이다.[7] 사실 대주건설을 인수한 것은 건설 사업보다는 언론 사업 진출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즉, 광주방송 지분을 노리고 한 인수합병이었는데 나산의 대주건설 및 광주방송 지분 인수대금 덕분에 아파트 미분양으로 인한 빚더미에 앉아 부도를 낼 뻔 했던 허재호 대주건설 회장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8] 다만 이 인수건이 나산의 단독 인수가 아니고 나산을 앞세운 대신금융그룹의 위장인수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리고 후에 대신그룹 양재봉 회장의 장남인 양회천씨가 재인수하면서 사실로 밝혀졌다.[9] 함평군 나산면은 동쪽으로 광주 광산구와 맞닿아 있다.[10] 당시에는 가칭 대전 레퍼드(Daejeon Leopard).[11] 양재봉 대신금융그룹 회장의 장남.[c] 이 두 회사들은 주요 경쟁 기업집단으로 이 회사가 해체된 이후에도 건재해 있다.[c] 이 두 회사들은 주요 경쟁 기업집단으로 이 회사가 해체된 이후에도 건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