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12:45:05

노량: 죽음의 바다/평가

파일:노량 로고.png

개봉 전 정보등장인물줄거리평가흥행역사 재현성

1. 개요2. 평가
2.1. 평론가 평가
3. 관객 평가
3.1. 호평3.2. 호불호3.3. 혹평

[Clearfix]

1. 개요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의 평가를 정리한 문서.

2.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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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평론가 평가

교실에서 바다로, 장엄한 사족으로(★★★)
박평식
어쨌든 기념비적인 시리즈로 남을 듯(★★★☆)
이용철
죽음을 끝내기 위해 더 많은 죽음을 택한 숭고의 딜레마(★★★☆)
임수연
잊힐(힌) 얼굴들을 되살리는 선상의 백병전(★★★)
이우빈
서정과 역동의 무르익은 완급 조절(★★★☆)
유선아
씨네21
긴 북소리의 이명으로 남은 장중한 피날레(★★★)
이동진

언론 리뷰 모음

3. 관객 평가

김한민 감독은 <한산: 용의 출현>에서 절제된 연출로 초반부 빌드업의 흥미를 포기하면서까지 잔가지를 컨트롤하고, 하이라이트 해전 장면의 쾌감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식을 사용한 바 있었다. 이번 <노량: 죽음의 바다>는 이러한 연출 방식이 극단적으로 강화된 형태로, 장점은 더욱 확실하게 발휘되었지만 반대로 전작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단점도 언급되는 상태다. 즉 <한산: 용의 출현>보다 좋다는 사람과 그렇지 않다는 사람이 갈리는 편이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는 준수하게 만들어졌으며 이순신 3부작의 마무리라는 이름값에는 무난하게 부합하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3.1. 호평

100분에 달하는 해상전에 대해서는 일관적으로 호평이다. 이순신 함대가 일본군을 선제 타격하고, 일본군이 반격하는 해전의 시작 부분이 특히 호평이 많은데, 포탄과 화살 등을 퍼붓는 모습이 강렬하고, 퀄리티도 높게 연출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조선군의 전략과 진법도 잘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화공법을 쓰고, 화포와 신기전, 대장군전을 일제히 순서대로 발사하는 장면은 마치 블록버스터를 보는 것처럼 매우 인상적으로 연출되었다. 이후의 조선군의 '허리 끊기'와 일본군의 명군 함대를 향한 돌격 역시 전술적으로 잘 짜여진 편이다.[1] 무엇보다 노량 해전은 왜란 발발 이래 최대 규모라고 명시된 만큼 퇴각하는 일본 함대와 조•명 연합함대가 맞붙으면서 함대 규모의 스케일이 엄청나게 커졌다. 중반부를 지나서는 포격전에서 벗어나 배에 올라타 근접 백병전을 벌이는 모습도 긴 시간을 할애하여 묘사했다.

조선군뿐만 아니라 명나라군, 심지어 일본군까지도 꽤 자세하게 묘사해 임진왜란이 동아시아 국제전쟁이었음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 장점이다. 명나라군은 도독 진린과 부도독 등자룡이라는 두 인물을 이순신과 조선에 호감을 가지는 이들로 묘사했다. 이외에도 명나라군은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하여 조선군을 도와주기도 하고, 진린을 대피시키기 위해 시간을 벌었던 명나라 장군과 목숨을 다해 싸우는 명나라군 병사들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본군에게도 '고향에 가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운다'라는 동기를 부여해 온 힘으로 싸우는 장면들에 당위성을 더해 준다. 궁지에 몰린 상황 속에서 시마즈의 연설 이후 다 함께 함성을 외치는 일본군 병사들을 보면 작품상 악역이지만 감정이 이입될 정도이다.[2] 백병전 중 롱테이크로 명나라군 병사, 조선군 장군, 일본군 병사를 순서대로 조명해 처절한 싸움을 묘사한 것이 그 백미이다.[3] 결국 진영과 전쟁의 승리 여부는 상관 없이 한사람 한사람 모두 그저 살아 돌아가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의 참혹함과 허무함을 잘 표현한 영화의 최고 명장면이다.

시각효과면에서도 발전했는데, 일단 실제 노량 해전 규모의 특성상 함선의 수가 많아졌음에도 조형 측면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 배경이 밤이라 텍스쳐를 가리기 좋다는 것을 감안해도 특별히 함선의 이동과 파괴 등의 장면에서 눈에 띄는 문제점은 없다. 포탄과 무기들을 발사하는 모습에서는 특히 화염이 발생하는 부분의 CG가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산>에서 약간의 조류를 사용한 것과는 달리 <노량>에서는 바다를 비롯한 배경을 100% CG로 구현했다.

<노량>에서도 <한산>처럼 해전의 소음에 대사가 묻히는 걸 고려해 해전 장면에서는 조선군 측 대사에도 자막이 삽입되어 나온다. <노량>이 <한산>보다도 음향면에서 발전한 모습을 보였고, 특히 해전 장면에서의 포격음이 한층 강렬해졌기에 이 점에 대해서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호평이다. 또한 음악이 한층 발전된 것이 보이는데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들처럼 음량이 매우 커서 웅장함을 자아낸다.

김윤석 배우의 이순신에 대해서도 호평이 많다. 김윤석 배우 특유의 중후한 목소리가 노장으로서의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상황속의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잘 어울린다. 이번 작품은 특히나 이순신에 대한 묘사가 적고 절제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편인데 그러한 상황에서 김윤석 배우의 이순신이 분위기를 잘 잡아 주었다.

실제 역사에 맞게 노량 해전은 야간전으로 묘사되었는데, 야간전 특성상 화면이 어두워 자칫하면 진영 간의 구분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를 고려하여 본작은 3국의 함선과 군사들의 디자인이 명확하게 구분되도록 신경을 쓴 모습이 보인다. 가장 어두운 전투 시작 시점에서는 화염의 표현에 신경을 써 대포와 불화살 등의 화공을 보여 주고 점차 해가 떠오를 때쯤 백병전으로 장면을 전달해 각 시간별로 가장 확실한 전투 장면을 연출하는 센스도 주목할 만하다. 스펙이 떨어지는 극장으로 갈수록 제대로 보이지 않는 문제는 어쩔 수 없지만 어두운 밤을 주된 배경으로 잡은 작품 중에서는 묘사가 훌륭한 편이다.

본작은 IMAX, 4DX, MX4D, SCREENX, Dolby AtmosDolby Vision을 제외한 모든 특별관 포맷을 지원한다.[4] 그 중에서도 해전의 압도적인 스케일을 큰 화면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고, 묵직한 중저음 표현에는 일가견이 있어 해전 장면에서의 음향을 더욱 강렬하게 표현해 주는 IMAX와의 시너지가 찰떡이라는 평가이다. 그 외에도 해전에 여러 효과가 적용되었고, 절제된 연출에 박진감을 더하는 4DX와 MX4D, 대부분의 해전 장면에 컨버팅이 존재하는 SCREENX, 전투 장면의 입체 음향을 섬세하게 구현하는 Dolby Atmos 모두 확실한 시너지가 발생하기 때문에 역대 한국 영화 중 특별관과의 궁합은 가장 뛰어난 편이라고 호평받는다.[5]

3.2. 호불호

이순신의 최후를 다루는 결말부는 평가가 갈리고 있다. 후반부 장면은 김한민 감독 특유의 연출 기법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인데, 한산부터 이어진 절제된 연출 방식과 예전부터 자주 사용하던 슬로우모션 장면이 결합되어 관객들 사이에서 일관적인 평이 잘 나오지 않고 호불호가 갈린다. 신파가 없어서 좋다는 평과 그걸 감안해도 너무 길다는 평으로 크게 갈리는 편. 그래도 평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 결말부에 대한 전반적인 평은 호평 쪽으로 기울고 있는 상태다.

이순신의 죽음이라는 중요한 장면에서 과장된 연기나 감정 표현을 배제하고 담담하게 북을 치는 동작과 소리로 천천히 감정을 유발하는 연출은 호평받았다. 이 부분에서는 사전에 우려되었던 신파 문제에서 벗어났다고 보아도 좋은 편이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배경음 없이 북소리만 이어지며 엔딩 크레딧이 등장하는데 이 부분 역시 이순신 3부작을 마무리하는 좋은 크레딧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북을 치는 장면부터 영화의 종료까지 템포가 느슨해지고, 이순신이라는 주연을 떠나보내는 작품으로서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런 방식을 채택했음을 감안하더라도 영화가 완급 조절에 실패했다는 의견이 있다. 해전 역시 <명량>과 <한산>은 기승전결의 원칙에 따르는 반면, <노량>은 관객들이 지칠 정도로 '기승전전전'과 같이 끝없는 전투가 반복되기에 불필요한 장면은 적당히 줄이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라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이순신의 죽음이 바로 나타나지 않고, 총성이 들렸음에도 이순신의 갑옷을 입은 장수가 북을 이어 치며 시마즈가 그 웅장한 북소리에 괴로워하는 장면, 승리한 진린이 이순신의 함선에 도착해서야 그의 죽음을 알았고 최후 장면은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것까지 이순신의 유언으로 알려진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를 연출로 구현해낸 모습이다.

다만 최후반부 장면이 슬로우모션으로 진행된 데다가 그동안의 장수들 얼굴도 삽입되고, 이순신의 유언을 연출로 표현하듯 사망 장면은 에필로그에서 늦게 나오는데, 이 때문에 호흡이 늘어진다는 점에서 불호를 표하는 리뷰도 찾아볼 수 있다. 신파가 없어서 좋다는 호평과 그럼에도 호흡이 늦다는 혹평이 공존하기에 이 부분은 사람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이다.

그리고 결말부에서 이순신의 장례식이 이루어지는 파트는 <명량>의 연출법이 섞인 듯해 유독 이질감이 든다. 화면에는 통곡하는 백성들을 담았고 음악은 민요를 부르는 인물의 음성을 담고 있는데, 이는 백성을 내세워 감정의 직접적인 표현을 중시했던 <명량>의 연출법과 유사해 신파 문제를 지적하는 평가도 있다. 화면 구성은 원경에서 채도가 낮은 색감으로 절제하여 촬영하는 <노량>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데다가, 이전 부분에서 웅장하게 북을 치는 것으로 이순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연출해 냈기에 갑작스럽게 형식이 바뀌는 이 부분을 감정 과잉이라 느끼게 된다.

또한 부차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굳이 이순신이 전사자 명단을 보며 전사자들을 회상할 때 졸장 원균을 넣었어야 했냐는 의문을 제시하는 관객들도 있다.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했는지 그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데다 이순신이 개인적으로도 매우 증오하던 인간 말종이고, 또한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을 궤멸시킨 원흉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원균 말고 명량 해전에서 전사한 임준영을 넣었어야 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물론 그렇다고 작품에서 원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며,[6] 초반부에서 노량 해전의 목적이 그저 복수만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것과 연결짓는다면[7], 오히려 이순신이 사적인 감정을 다 내려놓았다는 연결점으로 볼 수도 있다.

쿠키 영상의 경우 호불호가 갈린다. 작중에 나왔던 진린의 '북쪽 대장별'에 대한 은유가 다시 나옴으로서 떡밥을 풀이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있다. 진린의 대사인 '~그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라는 대사와 묘하게 대비되면서 반전을 이끌어낸다. 실제 난중일기에서 진린이 천문을 읽고 이순신에게 제갈무후의 고사를 따라 기도를 해보라고 권유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에서 차용한 듯하다. 한편, 장면 자체가 전적으로 창작된 것이라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냐는 반응도 있다.[8]

3.3. 혹평

해상전 이전의 빌드업 파트는 초반 조•명•일 3국의 신경전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부분은 깊이를 거의 희생하여 지나가며 늘어지는 감도 강하다. 인물들의 경우 대부분의 인물들이 다뤄지지 않아 존재감이 없고, 진린시마즈 요시히로, 고니시 유키나가처럼 주요 인물들도 극을 일본군의 퇴각 준비부터 시작하다 보니 대사로 캐릭터의 존재만 알리는 정도이다. 그리고 이순신에 대한 묘사도 3부작 중 제일 비중이 낮은 편이며, 전작에서 전반적인 서사의 중심이 되었던 거북선 같은 요소도 없다. 그만큼 이번 작품은 빌드업 파트를 사실상 버리고 하이라이트에 집중한 구조이다.

여기서 발생한 부가적인 문제로는 노량 해전의 의미와 그 필요성에 대한 설명이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중에서 이순신이 말하는 목적은 '살해당한 수많은 조선인들의 복수', '일본의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전쟁을 확실히 끝내야 한다.' 2가지로 설명되는데 이것들이 다소 두루뭉술하게 드러난다. 노량 해전은 일본군의 본국으로의 전략적 후퇴를 차단하고, 제2의 정유재란을 방지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목적은 진린의 막사에서 조선인들의 수급을 보고 분노한 이순신의 대사와 후반부 송희립에게 전쟁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이순신의 대사로 넘어간다. 한편 아들에 대한 복수임을 의심하는 진린 앞에서 이순신은 아들 살해범에 대한 복수를 포기함으로써 이 전쟁이 단순히 아들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중에서 묘사된 수많은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노량 해전을 벌여야 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다 보니 관객의 입장에서는 전쟁의 당위성을 단번에 쉽게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본군을 관음포에 고립시킨 후 진린은 다친 병사들이 보이지 않냐며 수군들을 고려하는 반면, 이순신은 각오했던 바라고 하며 싸움을 계속 이어나가려는 의지를 보이는 모습에서 현대의 관객은 오히려 현실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진린에게 더욱 공감하기 쉬워진다는 의견도 존재한다.[9]

"일본이 재침공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아는 현대인의 입장에선 전쟁의 명분에 대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라는 지적이 있는데, 현대인이 공감하기 어렵다는 말이 현대인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당위성과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는 전투라면 애초에 영화로 만들면 안 된다. 그리고 당시 기준으로 (일본의 상황을 모르는) 조선 입장에서는 기습으로 전쟁을 시작한 왜가 다시 침공할 수 있다는게 충분히 타당한 우려였고, 실제로 그렇게 재침공한게 정유재란이다. 즉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점에선 노량해전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투였다. 문제는 이런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 전투의 당위성에 대한 설명을 모호하게 한 결과 다른 누구도 아닌 이순신의 캐릭터 자체가 붕괴해버리고 심지어는 전쟁광으로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

전략적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는게 더욱 치명적인 이유는 노량해전은 "죽음의 바다"란 부재답게 이순신 휘하 수군이 그 어느 전투보다 많은 아군의 희생을 치른 전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량 이전까지 이순신이 직접 지휘한 해전 중 명나라 수군의 무리한 작전을 돕다가 130명이 죽은 왜교성 전투 정도를 제외하면 전사자가 없거나 미미한 전투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던 이순신이 왜의 재침공을 막기 위해 다소 무리하면서까지[10] 전투를 치른 것이다. 그런데 저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영화 내내 "다 끝난 전쟁인데 왜 그러냐"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부하들을 "죽음의 바다"에 내몬 이순신의 결정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죽음의 바다란 제목은 아군의 피해가 그만큼 컸다기보단 왜군 측이 궤멸적 타격을 입은 것을 지칭하긴 하지만, 인명에 대해 더욱 중시하는 현대 시점에서는 이미 다 끝난 상황에서 굳이 수만의 죽음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보이는 이순신의 묘사가 좋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그런면에서 (당시 상황에선) 반드시 필요한 전투였다는 것을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런 묘사가 거의 없으니[11] 이순신의 캐릭터 자체가 부정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무려 20여년 전에 방영된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더욱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해당 드라마에서는 노량해전을 앞두고, 출정을 막으려는 선전관에 대해 이순신이 다음과 같이 외친다. 물론 선조가 노량해전 출정을 막았다는 것은 이 드라마만의 설정일 뿐이지만, 철수하는 왜군을 곱게 보낼 수 없는 감정적인 이유는 당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당시에는 당연히 전범 재판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평화롭게 살고 있는 조선을 침공하여 무고한 백성들을 살육한 왜군들을 곱게 돌려보낼 수는 없다는 이러한 메시지는 2024년 현재 우리가 보기에도 확실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역도... 역도라 했소이까?
(병사 한 명의 멱살을 잡으며) 네 아비는 왜놈의 칼에 죽고, 어미는 끌려가 생사를 모른다 했더냐?
(다른 병사의 멱살을 잡으며) 누이는 명나라 군사에게 욕을 당하고 그 길로 목을 맸다, 맞느냐?
(병사 전우송의 멱살을 잡아 선전관에게 끌고 오며) 전우송... 이 군사의 두 살짜리 아들은 어미 곁에서 굶어 죽었소. 왜인 줄 아시오? 왜놈들이 그 어미의 젖가슴을 잘라 죽였기 때문이오!
아시겠소? 이것이 우리가 절대로 전장을 벗어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요. 전란을 우리 손으로 끝내고자 하는 것이 죄라면, 적을 섬멸하려 하는 우리를 역도라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역도가 될 것이오. 주저 없이 전장으로 나아갈 것이며, 이기고 돌아와 당당히 그 죄를 받을 것이오!
103회

또한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감정적인 이유 말고도, 이순신의 대사를 통해 노량해전이 필요했던 전략적인 이유를 분명히 전달하고 있다. 이순신은 이전 정유재란의 재침 및 이치를 들어, 왜군을 무사히 돌려보낼 수 없는 논리적 근거를 이야기하는데, 이 역시 이 영화보다는 훨씬 더 설득력이 있게 다가온다.
권율 : 왜군이 무조건 철군을 선언한 마당에 싸워서 뭐하느냐는 의견은 비단 명군 내에서만 오가는 것은 아니예요. 조선군 수뇌부 내에서도 그 같은 견해가 조심스레 나오고 있습니다.
이순신 : 소장이 원하는 것도 종전입니다, 장군. 허나 우리가 왜군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 종전은 아닙니다. 적이 이 땅을 유린한 것이 햇수로 7년입니다. 그동안 그들의 칼에 유린된 백성들이 얼마이며, 그 본 모습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무너진 강토 또한 얼마입니까? 그토록 유린하였지만, 전범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졌습니까?
권율(끄덕이며) 흠......
이순신 : 이 나라 조선과 조선 백성들에 대한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길 했습니까? 그건 바라지 않더라도, 아직 조선에 남아 있는 일본군의 무장 해제 정도는 우리 조선군의 손으로 직접 했어야 했습니다. 무장 해제도 하지 않은 저들이 고이 돌아가리란 보장이 어디에 있으며, 병력과 전선, 무기를 가지고 돌아간 저들이 다시 오지 말라는 보장이 또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권율(심각한 표정으로) 흠......
이순신 : 전황이 불리해지면 강화를 한다, 철군을 한다 했다가, 전열을 정비해 재침을 해 온 저들입니다. 다시 오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하여, 적을 섬멸하지 않는 한, 이 전란은 진정 거두었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101회

이처럼 20년 전 드라마에서도 노량해전의 필요성과, 이순신이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싸워가면서까지 왜군을 끝까지 추적하여 섬멸하려고 한 이유를 감정적/논리적 부분에서 매우 설득력 있게 전달하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저 '이대로 끝내서는 온전히 이 전쟁을 끝낼 수 없다, 열도[12]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어야 한다'는, 두루뭉실하고 추상적으로만 들리는 막연한 대사 한 줄로 이를 설명하려는 점 등, 여러 모로 아쉬움이 남는 셈이다.

해전 부분에서도 지적을 받는 부분이 있는데, <한산>에서 보여 준 거북선의 전탄발사처럼 해전 내에서 임팩트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지점이 <노량>에는 크게 없다는 점이다. 이동진 평론가도 이 점을 지적하며 <한산>보다 해전은 길어졌지만 오히려 인상은 약해졌다는 의견을 표했다. 해전의 분량은 분명 압도적이지만 분량이 너무 길어서 지루해진다는 지적도 있다. 한 번에 일본군을 섬멸했던 한산도 대첩과는 다르게 노량 해전은 장기전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실제 역사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겹치는 장면과 슬로우모션이 늘어나다 보니 생기는 문제점이라는 의견도 크다.

외국어 대사가 어색하다는 평도 3부작 내내 이어졌다. <최종병기 활> 때부터 <노량>까지 감독이 외국어 고증을 고집해 왔는데, <명량>부터 외국 측 등장인물들의 어색한 외국어 연기로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량>에서는 조금 나아진 수준에 그쳤다. 그리고 외국어 대사를 굳이 통역하는 것까지 고증해 놓았는데 이 때문에 똑같은 대사를 두 번씩 들어야 하는 데다가 친절하게 자막까지 넣어서 몰입이 깨진다.[13] 조선-명의 대화뿐만 아니라 명-일본의 대화에서도 통역이 계속 나왔다. 이외에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조선과 명나라에선 한자식 발음인 '풍신수길'로 부르는 것도 고증해 놓는 등[14][15][16] 전반적으로 외국어 소통에 대한 고증을 위해 관객들의 편의를 일부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다.[17][18]

연출 및 편집에 있어서도 과도한 슬로모션회상씬의 추가가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저해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특유의 슬로우모션에 사용되는 울림 효과 때문에 일부 대사가 뭉개지는 장면들도 존재한다.[19] 첫번째 저격 씬은 분량 늘리기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전작인 <한산: 용의 출현>을 봐야 이해가 잘 되는 일부 장면들도 있다는 것은 단점이다. 대표적으로 조•명 연합 함대가 출정하기 전 이순신이 그때까지의 전사자 명단을 불태우는 장면이 있다. 전사자 명단은 한문으로 쓰여 있고 중간에 해당 장수들의 얼굴들이 잠시 나오는데, 한글 자막으로 장군들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므로 한자를 잘 아는 관객이라면 모를까 이를 못 읽는 관객은 전작을 보지 않았다면 나오는 얼굴들이 대체 무슨 인물인지 알 수가 없다.[20] 이 부분은 시리즈물에는 항상 따라오는 점이라서 본작만의 비판점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명량, 한산이 다른 영화를 보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는 구성으로 짜여졌기 때문에 본작이 비교적 아쉽게 느껴지긴 한다.


[1] 전자의 경우 단횡진으로 돌격하는 일본 함대를 중간에 조선 함대가 단종진으로 끊어냈다. 이 상황에선 일본군의 전면 대 조선군의 측면의 양상으로 교전이 이루어지는데, 일반적으로 군함에서 전면의 화력이 측면의 화력보다 크게 열세이므로 조선군이 훨씬 우월한 화력으로 교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군은 양현의 화력을 모두 사용할 수 있기도 하다. 즉 이순신의 전술적 능력을 잘 묘사한 셈이다. 후자는 일본군이 명군 함대로 돌격, 명나라군이 단종진으로 일제 포격하고, 일본군이 뚫어내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의 전술 묘사가 탁월한데, 몸집이 큰 안택선이 몸빵하다가 길을 내주면 속도가 빠른 세키부네가 빠른 기동력으로 교대로 튀어나와 명군 함대에 달라붙는 식이다.[2] <한산: 용의 출현>부터 평면적인 선•악구도를 배제하고 양측 모두에게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되 결국 어느 쪽이 패배해야 할 침략국인지는 명백히 묘사하는 방향으로 갔는데, <노량>에서도 이를 이어받았다.[3] 전쟁이 처음 시작될 때는 각 국가의 승리를 위해 저마다 싸워왔지만,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싸우다 보니 결국 모두 싸우는 이유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국가 대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 간 전쟁 속에서 개인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칠 뿐이다.[4] 메가박스Dolby Cinema에서 Dolby Atmos만 적용한 상태로 상영 중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상영 가능한 모든 특별관(IMAX, 4DX, SCREENX, 4DX SCREEN, Dolby Cinema)에서 포맷을 적용하여 상영이 가능하다.[5] 기존 한국 영화는 스케일이 필연적으로 할리우드 외화보다는 작고 퀄리티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 대부분 특별관까지 가서 볼 이유는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노량>에서 할리우드에서도 잘 시도하지 않는 100분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해전을 높은 퀄리티로 구현해 냈고, 특별관마다 컨버팅도 신경 써서 진행해 두었기 때문에 특별관에서 관람한 관객들의 평가가 웬만한 외화보다도 좋다.[6] 작중 이운룡의 언급을 통해 칠천량에서 원균이 도망가면서 지휘 체계가 무너졌다고 나오며, 전작인 <한산>에서도 무능한 졸장으로 나온 것을 감안하면 작중 원균에 대한 평가가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7] 막내아들 이면을 죽인 범인을 직접 죽이지 않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8] 영화 본편의 종료 자체는 이순신 장례식으로 끝나기 때문에 전쟁을 확실하게 끝내야 된다고 말하던 이순신의 모습이랑 다르게 전쟁이 끝나는 모습이 묘사되지 않아서 좀 애매하게 끝났다는 반응도 있다. 이 부분은 쿠키 영상이 없는 줄 알고 나간 관객들 사이에서 더 잘 나오는 반응이기도 하다.[9]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이, 당대인들은 알 수 없었지만 역사를 아는 후대인의 입장에서는 이후 일본에서 세키가하라 전투오사카 전투와 같은 내전까지 벌어지면서 재침공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니 주요한 명분인 재침공의 방지라는 목적을 강조하기엔 결과론적으로는 헛된 싸움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있다. 복수 역시도 당대인에게는 주요한 명분이었지만, 현대인들에게는 그 중요도가 낮게 인식되기에 설득력 있게 노량 해전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일본인 특히, 고니시라는 인물에 대한 분석을 해보지 않았다면 오해할 수도 있다[10] 물론 그마저도 왜군측 피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11] 반대로 왜 그러냐는 명 장수들의 의문에 이순신은 끝내 침묵을 지키는 와중에, 이순신이 안타깝게 잃은 아들에 대한 묘사는 회상 장면에 슬로모션까지 넣어 상세히 보여주고 이로 인해 이순신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음을 계속 묘사한다. 이런 상황이니 이순신이 전략적 목적으로 재침공 여지를 없애기 전투를 한 것처럼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암살자 몇놈보다 아들의 원수인 왜군 자체를 전부 쳐죽이겠다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조선과 지척에 있고 과거부터 수차례 침략한 적이 있는 왜가 퇴각 후 재침공하는게 분명히 현실적인 우려임에도, 영화 내에서 그 누구도 재침공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12] 사실 이 부분도 은근히 거슬리는 부분인데, 당대 조선에서는 일본을 열도로 지칭하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아도 열도(列島)라는 용어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세종실록과 광해군일기에 각각 1번씩 언급되고는 있는데, 세종실록에서는 학포열도를, 광해군 일기에서는 풍해도를 설명하며 언급된 말에 불과하다. 즉 조선시대 내내 일본을 열도로 지칭한 기록은 없다.[13] 보통 이러한 상황에서는 한 번 정도 통역을 보여 주며 '통역이 있다'만 명시하고 그 이후, 특히 중요한 대사는 영화적 허용으로 통역 장면을 스킵하는 편인데 <노량>에서는 일부 대사를 제외한 중요한 장면에서도 통역을 쉬지 않고 고증하여 초반부의 몰입감과 호흡 조절 양면에 악영향을 미쳤다.[14] '풍신수길'이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초반에 여러번 각주로 나온다. 이후 시마즈나 고니시도 한자식 발음으로 나오는데, 등장 시점에선 한자식 발음을 여러번 명시하나 그 이후로는 각주로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눈치껏 알아먹어야 한다.[15] 심지어 사츠마 군은 살마군으로 자막에 표기해놓았다. 일본에 관심 많은 사람들 입장에서도 살마라는 한자어보다 사츠마가 더 익숙할 텐데 왜 이렇게 표기했는지는 의문.[16] 殺魔가 일본어로 사츠마와 발음이 같다는 것을 이용한 언어유희를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적은 것으로 보인다. 시마즈가 조선군을 가리키며 저 마귀들을 죽여야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고 전의를 돋우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극 중 대화 전후에 이와 관련된 표현이 등장한 2번을 제외하면 계속 사츠마군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그럼 다른 단어들처럼 주석이라도 달아놨어야 할 텐데 전혀 그런 배려가 없다.[17] 다만 이러한 번역의 묘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필담으로 대화하는 장면을 다소 넣긴 했다.[18] 문제는 이렇게 편의를 희생해가며 고증에 집착하는 모습이 딱 특정 부문에만 집중된다는 것. 재미를 위한 각색이 들어갔다고 해도 해전에 대한 묘사는 실제와는 차이가 있다.[19] 초반부 이순신의 꿈 장면에서는 들리는 대사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나중에 나오는 장면들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역사를 잘 아는 관객이라면 이해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관객에게는 아쉬운 부분이다.[20] 한자에 익숙하다는 전제하에 처음 이 장면을 보면 원균, 이억기, 정운, 어영담, 황세득 등의 이름이 가장 눈에 띈다. 나머지 이름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수준.그 와중에 황세득은 영화 3부작 내내 한 번도 안 나왔는데 전사자 명단에는 또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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