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4 15:34:24

노석정

파일:노석정.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기준(基準) / 시명(是鳴)
본관 광주 노씨
출생 1892년 8월 6일
전라도 광주목 석제면 일곡촌
(현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1]
사망 1968년 12월 12일
전라남도 광산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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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노석정은 1892년 8월 6일 전라도 광주목 석제면 일곡촌(현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서 아버지 노문규(盧文奎)[2]와 어머니 광산 김씨 김덕현(金德鉉)의 딸 사이의 5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뒤 상하이로 망명했고, 1920년 국내로 잠입하여 동지인 전아협(全雅莢)·조병철(曺秉喆)·김정련(金正連)·윤영기(尹永淇)·양인묵(梁仁默)·노형규(盧衡奎)·조병렬(曺秉烈)·신유선(辛有善) 등과 함께 서울에 있는 신덕영최양옥 등과 연락하며 광주, 화순, 곡성, 담양, 보성 등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펼쳤다. 그는 광주군에 거주하는 이윤호(李允鎬)의 집에서 대한민국 군제특파원(軍制特派員) 한준호(韓俊鎬)·박문용·이재환(李在煥)·정용택(鄭容澤) 등과 회합하여 함께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할 것을 논의했다.

그러나 얼마 후 광주에서 체포된 그는 1921년 5월 3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7호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광주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68년 12월 1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노석정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광주 노씨 집성촌이다.[2] 초명 노영규(盧塋奎), 이명 노정규(盧玎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