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8 11:01:49

다운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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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타운
ダウンタウン
DOWNTOWN
콤비명의 변천사 마츠모토·하마다(松本・浜田)→마사시·히토시(まさし・ひとし)→테루오·하루오(てるお・はるお)→라이트형제(ライト兄弟)→ 다운타운
출신지
[[일본|]][[틀:국기|]][[틀:국기|]]
멤버 마츠모토 히토시, 하마다 마사토시
결성일 1982년
활동 1982년 4월 4일 ~
동기 토미즈, 하이힐, 마에다 세이지, 우치바 카츠노리, 하마네 타카시
사무소 요시모토 흥업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멤버 간단설명3. 상세4. 다운타운으로 이름을 붙이게 된 유래5. 경력
5.1. 요시모토 입사5.2. 극장을 돌던 나날 ~ 바탕을 쌓던 시대5.3. 신스케·류스케 해산, 커리어의 전환점5.4. 요지데스요~다(4時ですよーだ), 아이돌과 같은 인기폭발5.5. 도쿄 진출 ~ 수많은 인기방송의 탄생5.6. 개인으로써 다방면의 활약 ~ 곳츠에에칸지 중단5.7. 2000년대5.8. 2010년대
6. 출연7. 여담
7.1. 불화설7.2. 지진도 무시한 콤비
8. 작품
8.1. 싱글8.2. 앨범8.3. 비디오8.4. DVD

1. 개요

일본의 게닌 콤비 팀. 일본 개그의 역사를 새로 쓴 남자들이자 톤네루즈, 웃짱난짱과 함께 오와라이 3세대를 알린 전설적인 게닌 콤비다.

일본을 대표하는 오와라이 콤비 중 하나로 1990년대부터 2020년대 현재까지 일본 연예계 정상급을 지키고 있다. 콤비를 유지하며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탑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개그맨은 일본에서도 드물다.

다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너무 많은 방송에서 MC를 맡거나 메인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보니 안티들에겐 지겹다는 불만도 꽤 듣고 있다.

2024년 마츠모토 히토시의 성범죄 논란으로 인하여 콤비로서는 무기한 활동중단에 들어갔다.

2. 멤버 간단설명

자세한 사항은 멤버 별 문서를 참고 바람.

파일:external/d13n9ry8xcpemi.cloudfront.net/666ba2e064b584bc83057c638ffeeae2_400.jpg
본격 2인조 아이돌 다운타운.[1] 왼쪽이 보케 역의 마츠모토 히토시, 오른쪽이 츳코미 역의 하마다 마사토시.

파일:attachment/다운타운/DT.jpg
1998년 마츠모토가 삭발하면서 외모가 야쿠자같이 변한 이후.[2]

2.1. 마츠모토 히토시

파일:attachment/다운타운/M_Hitoshi.jpg
오와라이 황제[3]
  • 본명 : 마츠모토 히토시(松本人志)
  • 애칭 : 맛짱(松ちゃん)
  • 생년월일 : 1963년 9월 8일
  • 신장/체중 : 172cm / 56kg [4]
  • 출신지 :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尼崎)시
  • 포지션 : 보케 담당. 개그내용 작성(데뷔 당시에는 하마다와 함께 개그를 만들었다)
  • 취미 : 당구[5]
  • 기타 : 1982년 요시모토 종합 예능학원 오사카교 1기생

2.2. 하마다 마사토시

파일:attachment/다운타운/M_masatoshi.png
일본 제일의 츳코미
  • 본명 : 하마다 마사토시(濵田雅功)[6]
  • 애칭 : 하마짱(浜ちゃん)
  • 생년월일 : 1963년 5월 11일
  • 신장/체중 : 165cm / 55kg
  • 출신지 :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尼崎)시
  • 포지션 : 츳코미
  • 취미 : 야구, 골프
  • 기타 : 1982년 요시모토 종합 예능학원 오사카교 1기생

3. 상세

초등학생부터 친구였던 두 사람은 1982년 4월 4일, 정식으로 콤비를 결성하며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1987년부터 마이니치 방송(MBS)[7]에서 시작한 다운타운 메인 방송 '요지데스요~다(4時ですよーだ)가 여자 중고생을 비롯한 젊은 층에서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끌면서 대히트, 관서 지역에서 이름을 알렸고, 이후 도쿄에 진출, 닛테레에서 1989년 10월 4일부터 현재까지 방송중인 가키노츠카이[8]후지TV에서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방송한 '다운타운의 곳츠 에에 칸지(ダウンタウンのごっつええ感じ)' 등의 방송에서 선보인 독특한 개그 스타일이 인기를 끌며 전국민적인 인기를 얻는 게닌 콤비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두 사람은 개인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기 시작했다. 마츠모토는 독자적인 코미디 감성을 살려 오리지널 콩트 비디오 작품이나 서적 등을 발매했고 하마다는 코미디 외에도 배우/가수 등으로 폭넓게 활동하여 남녀노소로 부터 모두 사랑을 받았다.

여러 방면으로 캐미가 터지는 콤비. 마츠모토만 나온 방송도, 하마다만 나온 방송도 재미있지만, 함께 나올때만 가능한 패턴이 있다. 하마다는 마츠모토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작은 이야기까지 전부 템포에 맞추어 츳코미를 넣는데 마츠모토 개인의 방송을 보면, 마츠모토가 츳코미를 노리고 친 보케나 애드립에 출연자들이 다같이 웃기만 해서 분량은 확실히 뽑아내지만 마무리가 다소 애매해지는 경우가 꽤 있다. 하마다 역시 혼자 진행하는 개인방송에서는 마츠모토의 천재적인 보케가 없기 때문에 츳코미가 살짝 김빠진 것 처럼 보인다. 실제로 하마다는 혼자하는 방송에서는 날 선 츳코미의 모습보다 깔끔한 진행자로서의 모습으로 보일 때가 많다.

참고로 다운타운은 결코 콤비 중 한쪽만 잘나가는 비대칭 콤비가 아니다. 이미 하마다가 수많은 방송을 혼자 진행한 뒤에 굳이 이런 설명이 필요 없을 레벨이 되었으나, 아직도 '천재' 마츠모토와 '평범한' 하마다 공식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다. 하마다의 츳코미는 당시 일본 개그계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로 과격하고 빠르고 정확했으며, 특히 마츠모토에 특화되어 있다. 비록 대본을 짜는 시간이 겨우 3시간 뿐이었지만, 둘이 다른 개그맨들과 콤비를 짜고 만담이나 콩트를 선보였던 '더 드림매치'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9]

다운타운은 데뷔 초부터 당시로써는 생소했던 템포의 만담[10]을 선보인데다 하마다가 그전의 츳코미 담당 개그맨들 처럼 기계적인 츳코미를 넣지 않고 너털웃음을 터뜨리거나 3~4회까지 참다가 츳코미를 하는 방식을 처음 사용했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겼는데, 실력으로 다 풀린 오해의 잔재들이 아직 여기 저기서 보이는 듯. 하마다는 '타'공인 '개그계의 두목', '일본 제일의 츳코미'라는 평가를 받고, 후배 츳코미들의 분석대상/롤모델이기도 한 훌륭한 츳코미를 가진 개그맨이다. 실제로 가키노츠카이에서 방영한 잠깨우기 몰래카메라나 초창기 하마다 기획 절대 웃으면 안되는 시리즈 등 가학성이 부각되는 컨텐츠를 보면 오히려 반대로 하마다가 '천재'고 마츠모토가 '평범'해 보인다.

4. 다운타운으로 이름을 붙이게 된 유래

2006년 5월 16일자 링컨. 콤비명의 유래를 이야기 하던 중
미야사코 : 참고로 다운타운상은?
마츠모토 : 우리는 진짜로 머라 불리도 좋았데이. 잡진가 어데 보다가 우연히 펼칬는데 다운타운이라 적킸데?
하마다 : 그카다가 기자가 "아마가사키에 시타마치(下町)라서 다운타운인가요?" 했을때 "네"라고 캤지...
마츠모토 : 뭔 뜻인지 모리고 캤지...
하마다 : 하메 처음 TV에 나왔을때는 라이트형제라 캤는데, 야스시상 방송에 나와야되가 빨리 지았다 안카나...
마츠모토 : 근데 그기 문제됐다카이. 야스시상이 "비행기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이쇼키들!!" 캣싸가...

결국 별 생각 없이 붙이게 된 이름이고, 시타마치와 다운타운의 상관관계는 기자의 추측에 그냥 네.. 라고 해버렸다는 듯.

5. 경력

5.1. 요시모토 입사

파일:attachment/다운타운/young.jpg

1982년 3월, 닛세이가쿠엔 제2고등학교(日生学園第二高等学校)[11]를 졸업하고 경정선수가 되기 위해 시험을 봤으나 불합격한 하마다 마사토시가 그 해 요시모토 흥업이 개교한 신인 탤런트 양성소 요시모토 종합 예능학원 (통칭 NSC)의 1기생 모집 포스터를 발견하고 효고현립 아마가사키 공업 고등학교(兵庫県立尼崎工業高等学校) 졸업과 동시에 인쇄공 취직이 내정되어 있었던 친구 마츠모토 히토시를 꼬셔서 같은 해 4월 4일에 NSC 1기생으로 동시에 입학한 것이 시초. 원래 마츠모토는 쇼치쿠(松竹)에 입학하려고 했지만 하마다가 요시모토로 가자고 꼬셨다고 한다.

둘은 입학 2개월만에 첫 TV 출연이었던 마이니치 방송의 일반인 명인회에서 '명인상'을 획득하고[12] 1개월 후에는 제3회 이마미야코도모에비스 만담 신인콩쿨(第3回今宮子供えびすマンザイ新人コンクール)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만담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대상 수상의 대가로 둘은 NSC 재학생으로서는 이례적인 속도로 난바 카게츠(なんば花月)[13] 무대에 5일동안 특별출연 하게된다. 같은 해 8월에는 당시 후지TV 평일 낮 인기방송이었던 '웃을 때 입니다'(笑ってる場合ですよ)의 일반인/아마추어 코미디언 서바이벌 코너에 콤비명 「마사시 히토시」로 출장해 5주간 살아남아 그랜드챔피언이 되었다.

5.2. 극장을 돌던 나날 ~ 바탕을 쌓던 시대

파일:external/e57edb10282f93f961c01b97c982b2423b37b484e3c63a89b98f3c4ce6830a1b.jpg
NSC에 다닐 때 부터 주목받은 콤비.

1983년, NSC가 2기생을 받기 시작 한 것에 맞춰서, 요시모토에서는 NSC 출신의 뉴스타를 키우기 위해 1기생 중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받은 토미즈, 하이힐, 긴지 세이지, 다운타운 등 신인 4콤비를 '노브랜드 게닌'(ノーブランド芸人)이라 부르며 밀어주기 시작한다. 다운타운은 이 해의 '제13회 NHK 카미가타 만담 콘테스트', '제4회 ABC만담/라쿠고 신인 콩쿨(현 ABS오와라이 그랑프리)'에 출장했지만 계속 낙선하자[14] 본격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카게츠 극장에서 공연하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1983년 4월 21일. 요시모토 흥업은 오사카/난바의 한큐파이브 8F오렌지 룸에서 '카게츠 코미디에서 벗어난 웃음', '안티 요시모토'를 테마로 콩트 라이브 '곤다쿠레' 공연을 개최했고 그들은 그동안 「마츠모토·하마다」, 「히토시·마사시」 등으로 불리던 콤비명을 「다운타운」으로 개명하고 '하이힐', 킨지 세이지와 함께 공연에 참여하였다.[15]

1984년, 다운타운은 다시 신인상 레이스에 출장하기 시작했고 작년에는 본선에서 떨어졌던 'NHK 만담 콘테스트'에서 우수상[16]을, 지난해 대상을 NSC 동기 토미즈에게 빼았겼던 'ABC 만담 라쿠고 신인 콩쿨'에서 만담 부문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17]

한편, 만담붐이 끝나고 3개 카게츠(난바, 우메다, 쿄토) 관객층에 젊은 사람보다 노년층이 많아지자, NSC 시절부터 매니저같은 존재였던 오오사키 히로시(大崎洋. 현재 요시모토의 대표이사)가 다운타운 처럼 재능은 있지만 주목도가 낮은 신인들을 보며 "그들의 장소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 1984년 7월 12일 직접 발기인이 되어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모인 신인 개그맨들과 함께 신사이바시에 위치한 극장 '난카이홀'에 젊은층으로 타겟을 한정한 '신사이바시 니쵸마 극장'을 개장했다.

5.3. 신스케·류스케 해산, 커리어의 전환점

1985년 5월, 다운타운은 큰 전환기를 맞이한다. 유명 만자이 콤비 신스케·류스케가 자신들의 한계를 느껴 당일 요시모토 흥업 본사에 콤비 해산 선언을 했을 때 다운타운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다. 1985년 5월 20일에 열린 신스케 류스케 해산 기자회견에서 시마다 신스케"한신·쿄진이나 사부로·시로, 다운타운에는 이길 수 없다"는 발언을 했고[18] 이를 통해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다운타운의 이름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1985년 가을에 다운타운은 '사부로·시로'가 메인을 맡은 칸사이TV 심야방송 콘야와네무레나이토(今夜はねむれナイト)의 3분정도 되는 미니 콩트 코너 다운타운 극장으로 TV출연 기회를 얻었고, 라디오 오사카에서 젊은 청취자 대상으로 진행한 라디오 방송 옷또! 모몽가(おっと!モモンガ)의 금요일 게스트역을 얻었으며 난카이홀에서의 정기 라이브 신사이바시 니쵸메 극장도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게 되었다.

참고로 성상납 의혹과 야쿠자와 연줄이 있다는 스캔들이 터지며 시마다 신스케의 일본내 평가가 서세원 급으로 개차반이 되었기 때문에 다운타운 팬들에게 그는 양날의 검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사실 이전에도 신스케는 마츠모토와는 친분이 깊지만[19] 하마다에게는 대놓고 "마츠모토의 천재성 때문에 다운타운이 여기까지 온 것이니 너는 쟤한테 고마워 해야한다"는 말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내리는 등 '다운타운' 팬으로써는 좀 껄끄러운 멘트도 많이 날렸다. 사실 마츠모토의 천재적 보케는, 하마다의 환상적 츳코미와 붙었을 때 가장 파워풀하다. 개인이 진행하는 방송이나, 짧게나마 다른 츳코미들과 만담/콩트를 진행한 '더 드림매치'를 보면 명확해진다.

1986년 초가 되자 난카이홀에서 주말마다 정기적으로 열었던 라이브 '신사이바시 니쵸메 극장'은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관객이 몰려들었고 극장에서는 비상계단, 130R, 이마다 코우지, 히가시노 코지 등의 새로운 개그맨들이 활약하게 되었다. 같은 시기, 난카이 홀의 경영권을 가져온 요시모토에서 '오사카에도 스튜디오 알타[20] 같은 홀을 만들자!'는 기획이 생겨서, 난카이 홀은 총 공사비 약 2000만엔을 들여 5월 16일 '신사이바시 니쵸메 극장'(통칭 니쵸메, 니쵸메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리뉴얼 오픈했다. 난카이홀의 마지막 공연은 4월 12일이었다.

5.4. 요지데스요~다(4時ですよーだ), 아이돌과 같은 인기폭발

니쵸메 극장은 코미디에 민감한 오사카 젊은층들이 매일 극장에 오며 큰 인기를 끌었다. 오픈 3개월 후인 8월 6일에는 오사카성 야외음악당에서 당시 니쵸메극장 주요 멤버가 '오사와가세 니쵸매 탐험대 와부렀다 오오사카성'이라는 라이브를 개최하였고, 약 1000명의 관객이 모여 대성공을 이뤘다.

니쵸메 극장 리뉴얼 후 1년이 지난 1987년 4월 6일, 다운타운은 관서 로컬 방송국인 마이니치 방송에서 평일 오후 4시에 정규 편성으로 방영을 시작한 버라이어티 방송 요지데스요~다의 메인 MC로 발탁된다. 이 방송의 히트로 그들은 관서 지방에서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얻는다. 이후, 다운타운의 사진집과 가수로서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었으며[21] 1987년 9월 27일 오사카 후생연금회관(현 오릭스 극장)에서 열린 다운타운의 공연 「DOWNTOWN SCANDALS」는 젊은 여성 팬으로 가득 찼다. 심지어 NSC의 1987년(6기), 1988년(7기)의 생도수가 1~5기를 모두 합친 것 보다도 많아지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22]

1988년 10월 13일부터는 웃짱난짱, 노자와 나오코, 시미즈 미치코 등과 함께 후지TV 계열의 신인 개그맨들을 총칭했던 '오와라이 제3세대' 명의로 우리들은 익살족의 후속 콩트 코미디 프로그램 <꿈에서 만난다면>에 출연했다.[23] 한편 같은 시기에 다운타운은 하라주쿠의 '라호레 하라주쿠'에서 비정기로 니쵸메극장 도쿄공연 '덕분임돠, 라호레임돠'[24]를 개최했다.

5.5. 도쿄 진출 ~ 수많은 인기방송의 탄생

다운타운은 요시모토 흥업의 도쿄 진출 권유로 인해, 1989년 9월 29일 '요지데스요~다'를 끝마치고, 같은 해 10월 3일, 닛테레 계열에서 가키노츠카이를 심야방송으로 런칭[25], 본격적으로 도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26] 가키노츠카이는 원래 다운타운의 만담이 주가되는 방송이었지만[27] 1997년부터 코코리코를 출연시키면서 과격한 것 부터 기묘한 것 까지 여러가지 바리에이션의 기획을 시도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재 가키노츠카이는 비록 전성기 시절만큼의 시청률은 나오지 않지만 연말 새해맞이 특방이자 인기 기획 '웃으면 안되는 시리즈'는, 2021년에 종영될 때 까지 NHK 홍백가합전과 동시간대의 대결을 펼칠 정도로 민영방송 계열에서 최고시청률을 내고 있었다.

1991년 12월 8일에는 3번의 특방을 거쳐, 후지TV 계열에서 버라이어티 방송 다운타운의 곳츠 에에 칸지가 일요일 밤 8시라는 골든타임 시간대에 방송개시. 곳츠 에에칸지에서 다운타운은 자신들의 특기인 기묘한 콩트를 선보였고 전성기에는 해당 방송이 시청률 20%를 넘을 정도로 전국민적인 인기를 획득하였다. 이러한 인기를 발판으로 1993년 10월 21일부터 다운타운DX라는 프로그램으로 요미우리 TV에도 진출했고 1994년 10월 13일에 방영을 시작한 후지TV의 음악방송인 HEY! HEY! HEY! MUSIC CHAMP의 사회를 맡으면서 코미디에 국한하지 않고 다방면으로 활약의 폭을 넓혔다.[28]

5.6. 개인으로써 다방면의 활약 ~ 곳츠에에칸지 중단

마츠모토는 1994년, 입장료 1만엔의 라이브 「寸止め海峡[29] (仮題)」를, 1995년에는 개그맨 중에서는 최초로 일본 무도관에서 1인 단독 라이브 개그 공연 「松風'95」를 여는 등 독자적인 개그를 계속 만들었다. 또한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주간 아사히에 '오프오프다운타운'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연재했다. 훗날 이 에세이는 '유서'와 '마츠모토'라는 두 권의 책으로 발매되어 각각 250만부, 200만부가 팔렸다.

한편, 하마다는 도쿄 진출 후 여러 드라마에 출연하거나 주연을 맡는 등, 배우로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1995년 3월 15일에는 코무로 테츠야와 음악그룹「H Jungle with t」를 결성하여, 첫 번째 싱글 「WOW WAR TONIGHT 〜時には起こせよムーヴメント」이 오리콘차트 7주연속 1위를 달성하고. 음반 판매량이 200만장에 달하는 대히트를 쳤다. 같은해 연말연시 방송 제46회 NHK 홍백가합전에도 출연.

이렇게 다운타운의 인기가 전국적으로 안정기를 맞이한 1997년 9월 하순, 방송국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우승까지 단 1경기밖에 남지 않았고 곳츠 에에칸지의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곳츠 에에칸지의 특집 방송을 갑자기 취소하고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우승 결정전을 방영하자 (심지어 그 변경 연락조차 받지 못했던 것에) 마츠모토가 격분[30]하여 방송 개편시기도 아닌 11월에 곳츠 에에칸지를 중단하게 되었다.

언론에서는 제멋대로인 마츠모토가 격분하여 방송을 중단시켰다며 마츠모토를 비판했고, 프로야구 관계자도 "야구 관계자에 대한 모욕"이라는 멘트를 날리는 등, 마츠모토가 멋대로 프로그램을 종료한 것으로 미디어에 비쳐졌으나 1998년 11월 19일, 신 한밤중의 왕국에서 파트너인 하마다 마사토시는 "자신도 마츠모토와 같이 스텝에 대한 불신이 몇 년간 쌓여왔었고 방송 하차는 둘이 함께 그만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마츠모토의 억지도 뭣도 아니었다."며 혼자 돌을 맞은 마츠모토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디어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이 시기 하마다는 기브스를 한 채로 목발을 짚고 방송에 출연했는데 이는 스탭이 계속해서 곳츠 에에칸지의 대결 코너 안전 확인을 게을리 하자[31] 마츠모토와 스탭간에 불신이 쌓여 있었고, 마츠모토가 본격적으로 화를 내면 더 손쓸 수 없게 된다고 판단한 하마다가 먼저 스탭들에게 화를 냈다가 횟김에 철문을 차서 다리가 골절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5.7. 2000년대

2001년 4월 21일 닛데레계열에서 하마다 주연 드라마 「明日があるさ」가 방송개시. 이 드라마의 주요 멤버로 구성된 음악그룹 Re:Japan을 결성하여, 明日があるさ를 발매. 같은 해 홍백가합전에도 출연했다.

2001년 10월 12일, 불상사로 중단된 곳츠 에에칸지가 '모노곳츠 에에칸지 스페셜'이라는 하룻밤 한정 특방으로 부활하지만, 시청률은 9%로 경쟁방송에 참패. 이 모노곳츠에에칸지 스페셜은 민영방송 각국에서 동시간대 최저시청률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고, 이를 계기로 다운타운은 10년간 지상파방송에서 콩트를 하지 않게 된다.

2004년 11월 17일, 작사:마츠모토 히토시, 작곡/백코러스: 마키하라 노리유키, 가수:하마다 마사토시 구성으로 '치킨라이스'를 발매했다. 가난하게 자란사람이라면 들으며 폭풍눈물을 흘리게 되는 가사와, 하마다의 담담한 노래 스타일이 일품. 이후 하마다가 툭하면 "H Jungle~" 이라고 불리는 놀림을 받듯, 마츠모토 또한 치킨라이스의 진지한 가사로 "마지막엔 웃음으로 바꿔줄꺼지?" 같은 식의[32] 놀림을 받는다.


치킨라이스

5.8. 2010년대

2011년 11월 5일, NHK에서 마츠모토가 출연하는 콩트방송, '마츠모토 히토시의 콩트. MHK'의 레귤러방송 1회에서, 게스트로 아이카타인 하마다가 출연해 함께 콩트를 펼쳤다. 다운타운으로써의 콩트는 2001년 방송된 모노곳츠 에에칸지 스페셜 이후 처음.[33]

2012년, 콤비 결성 30주년을 맞이했다.

2012년 4월 8일, 요시모토흥업 100주년 특별공연에 다운타운, 이마다 코지, 히가시노 코지, 기무라 유이치, 130R 등이 과거 카게츠에서 있었던 흥행 포켓뮤지컬을 부활 시켰다. 공연내용은 '엑센트릭 소년보이'("ボーイ(boy 보이)"가 아니고 "ボウイ(Bowie 보위)"다.)[34]의 테마나, 하마다가 「WOW WAR TONIGHT 〜時には起こせよムーヴメント」를 열청하는 화려한 라인업이었다.


엑센트릭 소년보이

2013년 2월 5일 ~ 3월 2일. 요시모토 흥업 100주년 기념공연 '요시모토 100년 이야기. 안티 요시모토 코미디 레볼루션' 에서, 다운타운이 젊은시절 활약했던 극장 '신사이바시 니쵸메극장'을 연극화. 이 공연에서 다운타운 역할은 하자마 신타로(하마다 역), 조 타미야스[35](마츠모토 역)가 맡았다.

2013년 3월 29일, 다운타운DX에서 TV방송에서는 미공개였던, 다운타운이 직접 한 마에세쯔(前説)[36]를 DVD화 한 『ダウンタウンの前説 vol.1』(2004년~2006년 까지의 마에세쯔)『ダウンタウンの前説 vol.2』(2007년~2008년 까지의 마에세쯔)을 발매했다.

6. 출연

다운타운으로 출연한 방송만 기재. 혼자서 출연한 작품은 각 항목에서 확인
  • 스페셜 방송
    • 『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大晦日年越しスペシャル』 (닛테레)
    • 킹 오브 콩트』 (TBS)
    • 링컨 연예인 대운동회 (TBS)

과거 출연했던 방송/게스트 출연했던 방송은 일본 위키피디아 참조.

7. 여담

7.1. 불화설

어릴때부터 친구였고 사적으로 많은 교류가 있었지만 90년대 중반부터 개인 활동의 비중을 높이는 등 삐그덕 대더니 2000년대에 들어서는 아예 서로 거리를 두고 말도 안 섞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일본 대중들에게 널리 퍼져 있다. 여기에 두 사람이 서로 대기실도 따로 쓰고 서로의 전화번호도 모르고 사적 교류도 일절 없다고 방송에서 발언한 것이 불화설에 더욱 신빙성을 부여했다. 실제로 하마다가 절대 웃으면 안되는 시리즈 촬영 전날에 코코리코츠키테이 호세이를 불러서 만찬을 한다는 것도 마츠모토는 전혀 몰랐으며 관심도 없어한다.

하지만 이는 본국인 일본 언론조차 자국 오와라이 콤비들의 생태를 잘 모르고서 한 말이다.

활동한지 오래된 게닌 콤비들은 사석에서는 서로 데면데면한 경우가 많은데, 이유야 어차피 맨날 보는 얼굴이고 언제나 관객이나 게스트, 방송 스태프들 같은 타인들이 자신들의 보케츳코미를 보며 웃는 것이 습관이 된지라 개그 칠 일이 없는 장소에서 단 둘이 있는 것 자체를 어색해 하는 것이다. 친구나 부부끼리 말없이 시큰둥하게 앉아 있다고 해서 사이가 안 좋다고 할 순 없는 것과 비슷하다. 이걸 방송사가 배려해 대기실을 따로 배정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다운타운처럼 잘 나가야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방송국의 대기실은 언제나 모자라기 때문이다.[38]

실제로 마츠모토의 자서전을 보면 이미 초딩때부터 봐온 사이라 서로의 행동거지에 대해 모르는게 없고 90년대 중반부터는 사실상 권태기 부부나 다름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서로의 사생활을 위해서라도 적당히 거리를 두며 일하게 됐다고 밝힌바 있다.

두 사람이 대기실을 따로 쓰는 것에 대해서는 데뷔 초반에는 매니저,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같은 스태프들이 각각 한명 밖에 없어서 이들이 두명을 동시에 서포트해야 했지만 두 사람이 점점 유명해지고 따로 스케줄을 하는 경우도 많아지자 각자 개인 스태프를 두게 되었고, 콤비가 같이 출연해도 저 인력들을 위해서 대기실을 따로 쓰게 된 것이라 밝혔다.

서로의 전화번호를 모르는 것도 어차피 소속사인 요시모토 흥업이 알아서 모든 것을 처리해 주는데다 두 사람은 방송 녹화를 위해 항상 매주 몇 번씩은 보는 사이고 게스트나 보조출연자들이 장난스레 하는 사적인 질문에 답해 줄 때 옆에 있던 아이카타도 간접적으로 알게 되니 안부조차 물을 필요가 없게 되었기에 서로의 전화번호가 바뀌어도 교환하지 않은 것. 그래도 아주 가끔 서로 전화 할 일이 있는데, 이건 공적으로 큰 일이 있을 때 뿐이라고 한다. [39]

이렇듯 오래 된 친구이자 비즈니스 관계, 또 본질적으로 남들을 웃게 하는 코미디언이라는 몇몇 특이점들이 맞물려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사이가 된 것이다. 불화설을 뒷받침하는 많은 정황들도 있지만 친구로서 50년 넘게, 콤비로서도 40년 넘게 장수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아직까지는 같이 할 만 한 모양.

7.2. 지진도 무시한 콤비

때는 2005년 10월 19일. 다운타운의 공개토크 프로그램 녹화도중 방송 스튜디오에 지진이 일어났다.

진원지는 이바라키 현, 진원지와의 거리는 48km, 규모는 M6.3. 이때 도쿄에도 진도 III 정도의 지진이 있었는데 다운타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지진으로 개그를 쳤다.

요약하자면, 엽서 질의응답 토크에서 한 엽서 응모자가 마츠모토에게 "슈퍼맨의 쫄쫄이의 S가 슈퍼맨의 S가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무슨 S에요?"라고 했는데 마츠모토가 스파이스라고 말하자 하마다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스파이스?라고 츳코미를 날린다. 그러자 마츠모토는 "아 BDSM의 S네요." 라며 토크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고 마츠모토는 꽤 흔들린다고 하고 하마다는 오히려 "니들이 무서워하면 나도 무서워하잖아!"라고 말하며 웃겼다. 후에 크레딧에서는 마츠모토가 "지진 때 겁먹어서 하마다가 뒤로 물러났다. 나는 오히려 관객을 지키기 위해 감쌌다."라고 개그를 날린다.

8. 작품

8.1. 싱글

  • 夕陽家族(1989년 10월 8일)
  • 生きろ・ベンジャミン/いとしのゴルゴ(松本ヴァージョン)(1991년 2월 21일)
  • 生きろ・ベンジャミン/えっ!さよなら(浜田ヴァージョン)(1991년 2월 21일)
  • Grandma Is Still Alive(1994년 7월 21일) ※GEISHA GIRLS
  • 少年(1995년 5월 19일) ※GEISHA GIRLS
  • 「エキセントリック少年ボウイ」のテーマ(1997년 9월 25일) ※엑센트릭 소년보이 올스타즈
  • 日影の忍者勝彦(1998년 5월 25일) ※日影の忍者勝彦オールスターズ
  • 明日があるさ(2001년 3월 28日) ※Re:Japan (이 곡으로 2001년 두번째 홍백가합전 출연을 했다)
  • 明日があるさ UnderGround 2step Remix(2001년 7월 4일) ※Re:Japan名義
  • bittersweet samba ~ニッポンの夜明け前(2002년 3월 13일) ※Re:Japan名義
이상이 다운타운 관련 싱글

2004년 11월 '하마다 마사토시와 마키하라 노리유키'라는 유닛의 크리스마스 송 '치킨라이스'의 작사는 마츠모토가 담당하거나 한 공동작업도 있다.

8.2. 앨범

  • GOBU-GOBU (1988년 10월 21일)
    • CBS소니에서 발매된 미니앨범. 가수 데뷔작이기도 하다. 토코로 죠지가 작곡.
  • 万力の国 (1991년 3월 21일)
    • 싱글 「生きろ・ベンジャミン」(마츠모토 버전과 하마다 버전 두종류 발매)의 발매 후 발매되었다. 마츠모토, 하마다의 솔로곡도 수록되었다. 우자키 류도, 토코로 죠지, 오쿠다 타미오, 시마다 신스케 등이 작곡.
  • 夢で逢えたら メモリアルアルバム(1992년 9월 18일)
    • 방송 <꿈에서 만난다면>의 사운드트랙
  • GEISHA "Remix" GIRLS(1994년 8월 19일)
  • THE GEISHA GIRLS SHOW - 炎の おっさんアワー(1995년 5월 19일)
  • THE GEISHA GIRLS "Remix" SHOW 続・炎のおっさんアワー(1995년 6월 21일)
  • ダウンタウンのごっつえぇ感じ 音楽全集(1997년 12월 15일)
    • 곳츠 에에칸지의 사운드트랙.
  • look up to the sky ~明日があるさ~(2002년 3월 27일) ※Re:Japan名義
    • 사카모토 쿄의 곡 「見上げてごらん夜の星を」을 리메이크.

8.3. 비디오

  • ダウンタウン物語(1988년)
  • OH! MY ハレルヤ(1988년)
  • ダウンタウンホラー・大魔神怒る(1989년)
    • 웃짱난짱이 게스트로 참가한 코미디
  • ダウンタウンの流(1991년)
    • 만담, 쇼트콩트 수록.
  • ダウンタウンのごっつええ感じ Vol.1-10(1995년 - 1998년)
    • 곳츠에에칸지에서 걸작 콩트를 엄선
  • 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Vol.1~7(1995년 - 1998년)
  • 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10周年記念傑作トークベストセレクションVol.1~4(1999년)
  • 明日があるさ(2001년)

8.4. DVD

  • The Very Best Of ダウンタウンのごっつええ感じ Vol.1~5(2003년)
  • Vol.1「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罰 浜田チーム体育館で24時間鬼ごっこ! +名作&傑作トーク集」(2004년 8월 25일、요시모토R and C)
  • Vol.2「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罰 松本一人ぼっちの廃旅館1泊2日の旅! +名作&傑作トーク集」(2004년 9월 29일)
  • Vol.3「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罰 松本チーム絶対に笑ってはいけない温泉旅館の旅!+名作&傑作トーク集」(2004년 10월 27일)
  • Vol.4「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話 抱腹絶倒列伝! 新作トーク集 +15年間の罰ゲームの系譜他」(2004년 11월 25일)
  • Vol.5「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罰 絶対笑ってはいけない温泉宿1泊2日の旅 in 湯河原+名作 & 傑作トーク集」(2005년 6월 29일)
  • Vol.6「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負 山崎vsモリマン 男と女の真剣勝負! 笑の神が降りた奇跡の名場面集」(2005년 7월 27일)
  • Vol.7「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話 笑魂投入伝! 傑作トーク集!!」(2005년 9월 21일)
  • Vol.8「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罰 放送800回突破記念永久保存版 松本・山崎・ココリコ絶対に笑ってはいけない高校」(2006년 11월 29일)
  • Vol.9「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話 放送800回突破記念永久保存版 笑神降臨伝!傑作トーク集!!」(2007년 1월 31일)
  • Vol.10「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罰 ダウンタウン結成25年記念永久保存版 浜田・山崎・遠藤絶対に笑ってはいけない警察24時」(2007년 12월 19일)
  • Vol.11「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話 ダウンタウン結成25年記念永久保存版 唯我独笑伝!傑作トーク集!!」(2008년 1월 30일)
  • Vol.12「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罰 絶対笑ってはいけない病院24時」(2008년 12월 26일)
  • Vol.13「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 罰 絶対笑ってはいけない新聞社24時」


[1] 실제 전성기 인기는 아이돌 수준이었다.[2] 사실 마츠모토가 자발적으로 삭발한 것은 아니다. 가키노츠카이에서 벌칙으로 삭발했는데 이후 귀찮아서 계속 그 스타일을 유지한 것이라고 한다.[3] お笑いエンペラー, 개그 엠퍼러.[4] 요시모토 공식 홈페이지 데이터. 위키피디아 일본어판에는 62kg으로 되어있는데, 56kg은 운동 전인 듯 하고, 체격을 보면 62kg이 정확한듯[5] 출처는 요시모토 공식 홈페이지[6] 본업에서는 浜을 쓰고 아닐 땐 濵를 쓴다.[7] 관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망. 해당 항목 참조. 참고로 MBS나 ABC 등 관서 지역 방송망은 한국과 달리 자체편성 비중이 상당하다.[8] 정식 명칭은 ダウンタウンのガキの使いやあらへんで!![9] 하마다는 2006년에만 참전해서 런부 아츠시와 콤비를 이뤄본 경험밖에 없지만, 마츠모토는 2009년까지 꾸준히 참전하면서 사마~즈의 미무라나 타카 앤 토시의 토시 등 당대의 쟁쟁한 츳코미들과 콩트나 만담을 선보였다. 물론 내용이 재미있었고, 츳코미도 좋았으나 수십년간 마츠모토에 특화된 하마다의 츳코미만 못한것이 현실.[10] 다운타운은 B&B, 투비트, 신스케 X 류스케로 대표되는, 쉴 틈없이 빠른 말투로 말을 늘어놓는 것이 주류였던 만담의 형식을 일상 생활에서 대화하는 속도로 얘기하되 병맛 가득한 내용으로 웃기는 형식으로 바꾼 주인공이다. 지금은 다운타운의 영향으로 이런 템포의 만담이 많이 늘었다.[11] 이 학교는 1980년대만 해도 정신나간 수준의 군대식 교육으로 악명이 높았었다.(물론 지금은 일반적인 사립학교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위 사진에서 지금과 정반대로 마츠모토가 장발, 하마다가 삭발인 이유. 이 학교의 악명에 대해 알고 싶으면 항목을 참고.[12] 개그사냥처럼 방송에서 정식으로 데뷔하지 않은 게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그 콘테스트.[13] 오사카에 있는 코미디 극장. 풀네임은 난바 그랜드 카게츠[14] 동료 코미디언들에게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신인상 레이스에서는 토미즈가 상을 쓸어나갔다.[15] 이 '곤다쿠레'는 나중의 신사이바시 니쵸메 극장식 코미디의 원형이 된다.[16] 같은 해 최우수상은 토미즈가 수상[17] 이때 둘이 사정없이 굽신거리는 모습은 밈이 되었다. 둘이 합쳐 25번 굽신거린다.[18] 다운타운이 출연한 우메다 카게츠 무대 옆에서 출연 순서를 기다리던 시마다 신스케는 이들의 만담을 보고 자신들의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19] 마츠모토 히토시는 시마다 신스케의 만담을 보고 개그맨이 되기로 결정했고 개그맨이 된 후 신스케를 선배로 깍듯이 모셨으며 시마다 신스케는 마츠모토와 함께 '마츠신'이라는 방송을 진행한 것은 물론, 은퇴할 때에도 먼저 마츠모토에게 전화를 걸어서 "만담을 그만둔 것이 마츠모토를 봤기 때문이므로, 은퇴를 할때도 마츠모토에게만은 먼저 알리고 싶었다"며 사전에 사실을 알렸을 정도로 마츠모토의 재능을 인정했다.[20] 모리타 카즈요시 아워 웃어도 좋다고!를 촬영하는 그 곳.[21] 요시모토 흥업 소속의 코미디언으로서는 최초였다.[22] 이때 당시 요미우리테레비의 지원을 바탕으로 부산에서 문화 교류회의 뜻으로 이마다 코우지, 홍콩 등 니쵸메극장 멤버들과 함께 내한해서 한국어로 콩트를 했다. #[23] 처음에는 관서 지역방송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전국으로 확대 편성.[24] 원어 명칭은 「おでかけでっせ、ラフォーレまっせ」[25] 이후 일요일 23시 방송으로 이동[26] 사실 다운타운은 이전에도 전원출석! 웃는댔잖아, 신스케의 무지 좋은 꿈, 댄스 댄스 댄스 등 도쿄발 버라이어티 방송 여럿에 레귤러 게스트로 출연한적이 있기는 했지만, '요지데스요~다'에 집중하기 위해 도쿄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지 않았다.[27] 의외로 이 시절에 한국, 정확히는 80년대 한국의 보이그룹인 소방차와 인연이 있었다. 다운타운이 1996년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를 '오쟈파멘'이라는 제목으로 커버했기 때문. 자세한것은 소방차 항목 참고.[28] 국내에는 "일본 개그맨이 한국 연예인의 머리를 때리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2012년 12월 1일 방송 종료. 이후 특방 형식으로 가끔 방송하고 있다.[29] 슨도메의 해협.(가제) 寸止め는 카라테에서 상대방을 가격하기 직전에 멈추는 것을 말한다.[30] 이 과민반응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마츠모토가 복싱을 제외한 다른 스포츠 자체를 끔찍하게 싫어했기 때문. "자신의 일에 충실하지 않으니 남을 응원할 힘이 남는 것"이라는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이걸 네타로 삼은 것이 링컨에서의 생일 기념 시구 기획이다.[31] 더욱이 이전에 동료 개그맨 콤비인 웃짱닌짱의 방송에서 홍콩의 유명 록그룹 비욘드의 리더이자 보컬인 황가구가 사망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다운타운은 더더욱 안전 문제에 민감했다고 한다.[32] 링컨 설교선생 롯치 편 등.[33] 굳이 따지면 더 드림매치 쪽이 먼저긴 하나 이쪽은 솔로로 했다.[34] 곳츠 에에칸지의 남자 출연자들(엑센트릭소년 보위 올스타즈)이 진행했던 콩트. '새버드', '개도그' 등의 약빤 캐릭터와 설정으로 유명하다. 꽤 시대를 앞선 콩트였는데, 그 어둠에다크에서 죽음의데스를 느끼며보다 딱 10년 먼저 나왔다. (정확히는 오프닝과 앤딩 음악만 먼저 만들어져 공개된 후, 차후에 콩트도 만들 계획이었으나 위의 급작스러운 방송 종료 사건으로 인해 콩트 제작은 무산 되었다). 매드무비에서 간간히 쓰이기도 하는데, 발라드 버전(앤딩곡)도 있다.[35] 재일 한국인[36] 방송 시작 전 관객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등의 일. 국내에서는 바람잡이라고도 한다.[37] 미야오 미야의 성우인 키리타니 초초가 내레이션을 맡고 있다.[38] 진짜 사이가 안좋은 콤비들도 잘 나가야만 따로 대기실이 배정되고 인기가 애매하면 같은 대기실, 무명에 가까우면 십수명이 쓰는 단체 대기실을 써야한다.[39] 언젠가는 방송에서 마츠모토가 하마다와 몇 번의 번호 교환식을 했고 통화이력도 있었으나 그때마다 하마다의 전화번호를 지운다고 밝혔고, 이 말을 들은 하마다는 상당히 언짢아 하며 이유를 물었다. 이에 마츠모토는 핸드폰을 유실이나 도난을 당했을 때 하마다의 전화번호 유출을 방지하고자 매번 지운다고 해명했다. 마츠모토의 해명을 들은 하마다가 자신은 폰을 절대 안 잃어버린다고 화를 내면서 토크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