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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비파 (唐琵琶) |
복원 당비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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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를 전후하여 한국으로 들어온 중국 비파.2. 역사
당비파 뒷모습. 다른 비파들과 달리 이동하며 연주를 했기 때문에 동아시아에 남아있는 비파들 중에서 유일하게 비파 뒷부분에 줄이 있다. |
본디 중국에서 들어왔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며 한국식 비파 중 하나로 변화, 정착하였기 때문에 현대 중국 비파와는 차이점이 있다. 향비파와 달리 악기의 몸체가 크지 않고 연주자의 몸에 맬 수 있어 다른 비파들과 달리 이동 연주가 가능했다. 현재의 기타처럼 궁중은 물론 민간에서도 널리 쓰인 유용한 악기였다. 국악 장르 중 하나인 당악(唐樂)에서 썼다.
《삼국사기》 악지(樂志) 편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당비파가 통상 "비파"란 이름으로 불렀던 것으로 볼 때 한반도에서 자체적으로 탄생한 향비파와 구분하기 위해 당비파라는 이름을 따로 붙인 것으로 추측한다. 비파란 악기 자체가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한반도와 동아시아 각지로 들어왔으므로 시기상 향비파보다 당비파를 먼저 연주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1935년까지 향비파와 같이 전국적으로 연주했으며, 중국에서보다 더 많이 연주하였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다. 당시 민간에서도 대금, 퉁소, 거문고와 함께 비파를 활발히 연주하였다. 이렇게 메이저 악기로 사용했던 당비파는 1935년 이후로 연주하는 횟수가 줄어들었으나 1950년 이전까지는 어느정도 민간에서 지속적으로 연주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며 국내 비파 연주가들이 대거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으며 이에 따라 당비파도 1960년대 이후로 그다지 볼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국립국악원과 일부 당비파 연주가들이 연주하는게 전부이다.
3. 상세
개량 당비파로 연주한 '찬기파랑가' |
향비파와 달리 넥 윗 부분이 구부러져 있어서 '곡경비파(曲頸琵琶)'라고도 한다. '당'자가 들어가는 만큼 당악에서 많이 사용했으나 조선시대 들어와서 향악에서도 널리 사용하였다.
제작 재료 또한 『악학궤범』에서 상세히 밝히고 있다. 공명통 뒷판으로 쓸 나무로는 화리(華梨)가 제일 좋고, 철양(鐵楊)·황상(黃桑)·산유자(山柚子)·괴목(槐木)·상수리나무(橡斯)·산행(山杏)·박달(朴達) 등 단단하고 빛이 좋은 것은 모두 사용 가능하였다. 복판의 경우는 두충(杜冲)이 최상이며 노목(盧木)·아목(牙木)처럼 부드럽고 결이 곧은 나무도 썼다. 머리와 목 등 모든 장식으로는 화리·오매(烏梅)·탄시(炭柿)·산유자를 재료로 삼았다. 안족 쪽에는 반죽(斑竹)을 쓰고 둘러메는 고리는 은이나 두석을 쓰고 둘러메는 줄은 홍진사를 썼다.
물방울 모양 공명통에 명주실로 만든 4현과 12주가 있는 모습이다. 이 중에서 공명통 속이 비고 겉이 찬 것은 하늘과 땅을 나타내며, 4현은 사계절을 본뜬 것이고, 12주는 12율에 짝지은 것이라고 악서(樂書)에 기록되어 있다.
당비파 연주법은 기타를 연주하는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비파의 목을 잡고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네 줄을 짚으며, 오른손에는 나무 발(木撥)이나 가짜 손톱(假爪)을 활용하여 줄을 튕겼다. 성종대에는 평조(平調), 계면조(界面調), 상조(上調), 하조(下調) 네 가지 방식의 조율법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다양한 당비파 음악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세종대, 연산군대, 인조대, 정조대 등 조선전기와 후기에는 지속적으로 궁중에서 만들어 궁중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였다.
▲ 김홍도의 '포의풍류도'[1] |
여담으로 향비파와 당비파의 괘를 짚는 연주법이나 술대를 사용한다는 점이 거문고와 비슷해서인지 거문고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곁다리로 연주법을 익혔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2]
기타나 리라라는 악기와의 유사성 때문인지 개역개정에서는 이 악기로 번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