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드라마 선덕여왕의 주인공 덕만공주의 작중 행적을 정리한 문서.2. 행적
2.1. 버려진 공주
작중 진평왕의 차녀. 쌍둥이로 태어난 탓에, "왕에게서 쌍둥이 딸이 태어나면 성골 남자의 대가 끊길 것"이라는 골품제 붕괴 예언[1]에 의해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신라 왕실의 극소수에게만 알려진 채 시녀인 소화의 손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도피했다. 이때 부모로부터 인명(人明)이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아마 자매인 천명(天明)과 맞추어 작가들이 지어낸 이름인 듯.2.2. 사막에서 자란 어린 시절
자신이 신라의 공주라는 사실을 모른 채 덕만이라는 이름으로 소화와 함께 타클라마칸에서 상단을 운영하며 평이한 삶을 살아왔다.그러나 중앙아시아를 15년이나 떠돌며 덕만의 행보를 찾은 칠숙에 의해 친모로 알고 있던 소화가 자신의 친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직후 사구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기 위해 문노를 찾으러[2] 머나먼 모국인 신라로 간다.
2.3. 천명공주와의 만남
신라에 도착한 뒤, 쌍둥이 언니인 천명공주와 운명적으로 만나[3] 가야 유민촌에 잡혀가거나 미실 일당에게 쫓겨 다니는 등 귀국하자마자 고된 일을 당하다, 그 와중에 만나서 졸지에 코 꿰인 죽방, 고도와 함께 신분보호 차원에서 김유신이 있는 용화향도에 들어간다.2.4. 낭도 시절
남장을 하고 지냈지만 여성이라는 신체적인 한계 때문에 오합지졸인 용화향도 내에서도 만년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화랑과 낭도를 포함해서 용모가 가장 뛰어나다는 소문에 석품을 비롯한 다른 화랑들에게 희롱을 당한다. 심하다는 느낌이 있으나 이는 용화향도를 낙하산으로 끌어들인 천명공주의 행위에 대한 반발심이 깔려 있었다.그래서 이 당시에 미실파는 물론 드라마 내내 중립만 걸었던 알천도 이들을 싫어했다.[4][5]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포박을 한 채 몸을 더듬으려 하는 등의 성희롱은 단순히 반발심으로 변호하기에는 말이 안 되는 나쁜 짓인 건 변함이 없다.
백제와의 전쟁에 참여해 온갖 개고생과 적군 및 아군이 죽어나가는 전쟁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된다.[6][7] 포위된 상황에서 즉흥적인 원진 지휘를 펼쳐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활약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김유신과 힘을 합쳐, 부상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지휘관 알천을 구슬려서 부상병을 재활용하여 승기를 타는 데 조력한다.
전쟁이 끝난 뒤 김서현을 암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결국 추국장으로 끌려가 허벅지를 몽둥이로 맞는 고문을 당하는데 이로 인해 덕만의 안색과 몸 상태는 만신창이가 되고 그녀의 맨발은 온통 생채기 투성이가 되고 말았다.[8] 한편 이 과정에서 덕만은 평소 알고 지냈던 비구니 지운 스님이 천명공주라는 것을 알게 되고, 김유신은 덕만의 출신 성분과 과거, 성별을 어느 정도 눈치챈다.
천명공주, 김유신과 의형제를 맺으며 '타도! 미실'을 외치며 자신이 미실에게 투항한 것처럼 계책을 꾸미다 바로 월식 계책 때 간파되어 미실에게 낚였다는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미실에 대한 두려움을 알게 되고 곧 김유신에 의해서 극복하는 힘을 배우게 된다.
2.5. 밝혀진 출생의 비밀
그러나 천명공주가 친언니고 자신은 성골남진 예언에 의거해서 왕실에 해가 되는 출신 성분이 밝혀지자 바로 정줄을 놓아버리고 왕실파와 미실파의 추격 속에서 김유신에게 끌려가듯 쫓기는 신세가 됐다. 이 과정에서 비담을 만나는데, 전염병을 치료할 약재를 대가로 미실파에게 넘기게 되자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이에 응한다. 이후 압송되면서 소엽도로 목을 찔러서 자살을 하려다가 보종이 손을 다치면서 저지하고 다시 시도를 하다가 석품에 의해 제압당한다. 다시 손이 밧줄에 묶인 후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재갈이 물리면서 서라벌로 끌려갈 위기에 처했다가 뒤쫓아온 비담과 비담에 의해 갇혀있던 김유신에 의해 구출된다. 탈출한 직후 김유신에게 고백을 받고 을제를 필두로 덕만을 죽이려던 왕실파와는 별개로 친동생을 구해서 멀리 탈출시키려는 천명공주와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 그 동안의 일로 인해 김유신과 떠나기로 결정하면서 마야부인이 만든 공주복[9]을 입으며 처음으로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10] 그러나 떠나는 과정에서 천명공주가 사망하게 되자, 놓은 정줄을 되찾고 지구 끝까지 함께 가겠다던 김유신과 관계를 정리하고 왕이 되겠다고 선포하며 알천과 김유신이 쇼부친 복야회를 중심으로, 미실파의 계책을 역이용하고, 문제의 박혁거세 예언을 이용한 일식 계책을 성공리에 펼쳐 미실을 관광 보냄과 동시에 민중을 선동, 결국 공주로 인정받아 궁에 입성한다.2.6. 공주로 입궁하다
김유신이 덕만이 보는 앞에서 미실에게 '새주의 품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드립을 쳐 쇼크를 먹고, 미실이 덕만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안타까울 데가 있나, 내가 좀 젊었으면 직접 품었을 것을' 연타를 날리자 라이벌 미실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김유신이 하종의 딸과 결혼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자 도피상황에서 '왕이 될 거니까 니랑 연애 못함'이라며 차버렸던 김유신에 대한 미련으로 옆에 있던 자신을 연모하는 비담을 상대로 "좋아한다, 연모한다 말도 못했는데..."라며 울었다.
언니인 천명공주의 아들인 김춘추의 행적들을 용서하고, 성장을 인정한 뒤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여 결국 김춘추를 아군으로 만든다.
2.7. 미실의 반란
이후, 미실이 쿠데타를 벌여 신변을 위협받는 속에 김유신의 희생 속에 가까스로 김춘추, 비담과 함께 왕궁을 빠져나가고 왕위를 놓고 마지막 정면승부를 다짐한다. 각 중소귀족 및 대신등에게 공주의 이름으로 미실을 체포하라는 편지를 쏘아 보내고 미실과 함께 반란을 획책한 필탄의 아버지를 찾아가 담판을 짓는 등 미실의 입지를 자꾸자꾸 흐려 놓았다.결국 칠숙의 복야회 건물 뒤치기 하는 동안 교란전술을 벌인 친엄마나 다름없는 소화가 결국 죽음을 맞자 '더 이상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 라는 생각에 그녀는 스스로 궁에 들어가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비록 상대등의 시해와 아무 관련은 없지만 저는 폐하의 신하이니 체포에 응하겠다, 대신 공개추국을 열어달라" 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또 다시 미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13]
2.8. 공개 추국
그렇게 공개적으로 공개추국을 요구하면서, 미실이 자신을 공개추국을 하도록 만들고 그 틈을 이용하여서 철저한 준비[14]를 통하여 미실에게 역습을 가하는데 성공, 진평왕도 구출하면서 그야말로 화려하게 미실을 관광보낸다.직후 분노한 미실이 직접 활을 들고 겨냥하자, 주위에서는 경악하지만 오히려 덕만은 여유있게 웃으면서 미실에게 보란듯이 팔을 벌리면서 '쏴, 당신이 졌어... 미실.' 라고 속으로 도발하자, 미실 역시 '그래. 덕만... 네가 이겼다.' 라고 속으로 답하면서 화살을 날리는데... 덕만에겐 궁극의 무적 아이템 소엽도가 있어서 살아남는다.[15][16]
미실이 대야성으로 도망가서 내전을 준비할 찰나에 입장이 바뀌어서 미실을 빠르게 처리하고 황실을 장악하려 하는데, 애당초 왕실파가 처음으로 내정을 하는데다 미실의 공백이 너무나 크고 미실의 후폭풍이 잔재한 상황에 할 말을 잃으면서도 이겨내려고 한다. 허나 비담에게 소화가 남긴 유품이기도 한 빨간 서찰을 가지고 오라 시켰는데, 거짓말까지 하는데다 미실에게 가는 등의 의심쩍은 행동을 하는 비담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비담의 제안을 활용해서 실행하지 않는 대신 루머로 활용해서 대야성의 사기를 떨어뜨려 탈영병을 속출하게 만들고, 어쨌든 미실의 완전 숙청이 손실만 가져온다는 것을 알기에 미실에게 연합을 제의하고 이미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얘기했다가 미실에게 "나와 진흥대제가 피땀으로 만든 신라를 네가 어떻게 아냐"는 큰 소리만 듣고 결렬된다. 문제는 이 와중에도 미실에게 왕을 잠시 보았다고 드립치는 덕만이었다.
경계성주 중 미실의 편이 지원군을 이끌고 찾아오는 가운데서도 백제군의 동향부터 먼저 파악하라고 했고 미실의 모습을 보며 왠지 회군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2.9. 미실의 죽음
결국 회군에 대야성 백기 선언에 이래저래 유리한 고지에서 결국 승리했고, 끝까지 이래 저래 괴롭혔던 미실이 자살한 모습을 보며 살짝 눈물을 흘리고 고개 숙여 예의를 갖춰준다.미실, 당신이 없었다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미실, 미실의 시대. 안녕히.
미실, 미실의 시대. 안녕히.
이 과정에서 비담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비담을 책망하기보단 안타까워했고, 오히려 비담으로 하여금 미실이 최후에 마음을 돌렸다고 말하며 고마워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 속에서도 미실의 난을 끝까지 발악하며 들이댔던 칠숙과 석품의 난으로 공표하도록 하는 역사왜곡드립까지 이용해 남은 미실파 사람들을 척결하지 않고 그들을 이용하기로 한다.[17][18][19]
2.10. 여왕으로 즉위하다
덕만아, 이제 곁에서 널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이젠 너 홀로 신국을,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
아무도 네 대신 싸워줄 사람도, 아파해줄 사람도 없다.
모두를 믿어서도 모두를 믿지 않아서도 아니된다. 할 수 있겠느냐? 고독을 두려워않고 맞설 수가 있겠어?
아무도 네 대신 싸워줄 사람도, 아파해줄 사람도 없다.
모두를 믿어서도 모두를 믿지 않아서도 아니된다. 할 수 있겠느냐? 고독을 두려워않고 맞설 수가 있겠어?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되면 측근이라도 죽여 버리는 미실과는 달리 적을 포함한 대중들과 사람들을 하나하나 취합해 나가며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그리고 왕이 되면서, 왠지 상당히 예전과 다른 듯한 느낌이 강하다.'
비담의 사령부를 엄청나게 큰 세력으로 만들고 비담과 함께 위로부터의 개혁을 펼치는 등의 행동을 하며 오히려 예전 동료들이 견제당하는 상황.
2.11. 복야회
이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비담과 김유신의 세력을 견제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명령과는 달리 해산하지 않고 점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복야회의 조사를 비담에게 명했고, 이후 따지러 온 유신이 "가야의 백성"이라 운운한 것에 바로 분노하여 오로지 자신과 신라의 백성뿐이라고 말한다.[20][21]그 후, 월야와 설지가 사량부 복야회 일원에 의해 도망가게 되자, 김유신을 연행하라고 하는데, 자기 안위나 선덕여왕은 생각 안 하고 가야 유민들 걱정이나 해 대는 김유신을 보며 상당히 깝깝해 한다.
2.12. 김유신의 자수
김유신이 비담의 금강계에 따라 복야회를 쫓아가서 뼈도 박도 못한 상황에서 김춘추가 말한 김유신의 진심밖에 답이 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마침내 복야회와 김유신을 적으로 돌리려다 때 마침 자진출두한 김유신을 보며 '속으로 고마워' 라고 한다.결국 돌아오기만 하고 복야회 관련 정보들은 전혀 불지 않고 가야유민 보호 크리를 날리는 김유신을 우산국으로 보낸다고 하고, 그에 항의하는 만명부인과 김유신 부하에게 "내가 김유신을 배신했냐. 저쪽은 아무것도 양보 안 하잖아"로 단호한 뜻을 밝힌다.
그러면서 여전히 대세를 얘기하는 김춘추에게 "내가 죽은 다음 네가 왕이 되기 위해서라도 견제가 필요하다."며 복야회 처단과 김유신 처리에 단호한 뜻을 밝히기도 한다. 그러면서 김유신에겐 백제군 첩자 활동을 하라고 미션을 내린다.
2.13. 비담의 고백
직후 비담에게 손 치우라고 차갑게 대하다 비담이 올린 입맛대로 인사개편안을 비담의 세력을 파악하는 동태로 낚은 다음 사량부를 왕실직속에서 김춘추 휘하로 강등시켜서 비담이 완전 새 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항의하러 온 비담에겐 나도 심장이 안 설레는 줄 알아?로 감정을 말하다가 이에 흥분한 비담이 잠시 포옹하자 나는 여왕이지 이제 여인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가질 수 없다고 삼한일통 전에 내 삶은 없다고 발언함으로써 비담은 제대로 상처받는다.결국 계백장군에게 대야성이 함락당했다. 김유신을 첩자로 썼지만 실패하고 설원공이 나서지만 백제군에 크게 패하여 부상으로 인해 사망하고, 백제군이 서라벌 코앞까지 진군함에 따라 김유신을 재기용하기에 이른다.
2.14. 복야회의 결말
그러는 동안 복야회에 목숨을 내걸고 담판을 지으려 하고, 늦게까지 우왕좌왕하자 분노해서 죽방의 정보로 하여금 알게 된 복야회 은거지로 처들어가 월야가 보는 앞에서 가야인 명부를 태우면서 "이래도 못 믿겠냐?"며 김춘추를 두고 간다면서 정한 시기까지 합의 못 보면 모두를 죽이겠다고 선언하고, 마침내 김춘추 휘하로 복야회 멤버들을 끌어 들이는데 성공한다.2.15. 비담과의 관계
그 후 비담에게 여인의 모습을 보이면서[22] 비담을 받아들인다.다음 날, 바로 비담을 상대등의 자리에 앉히고, 이에 감격한 비담이 "폐하가 떠나시면 저도 정무에서 손을 떼겠습니다."라는 밀약서를 바치자 비담에 대한 신뢰를 더 키우게 된다.
밀약서를 보고도 김춘추가 비담의 세력은 비담 개인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며 염려하는 "이 밀약서를 지키지 않으면 비담을 척살하라."고 한다. 그러나 곧이어 "이렇게라도 비담을 곁에 두고 싶은 내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하는 걸 보면 비담을 이용하고 죽이겠다는 뜻이 아니라 춘추를 안심시키려는 방편으로 보인다.
게다가 대소 신료들 앞에서 비담과 국혼하겠다고 선언한다. 또, 국혼 직후 둘만의 달달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비담이 밀약서를 바친 걸 알게 된 비담 일파가 당 사신과 비담이 서로 내통하고 여왕을 몰아내려 한다는 거짓 밀서를 만들어 비담과의 관계에 금이 가게 하려한다.
자신의 진심통으로 인해 시한부임을 직감하고 알천에게 "짐이 벌인 일들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공뿐이니, 무슨 일이 생긴다면 공께서 판단하여 알릴 자들에게 알리세요."라고 말한다.
2.16. 비담의 난
김춘추가 비담을 견제하는 와중에도 비담을 믿으려 하나, 비담이 너무나 커진 자기 휘하의 귀족 세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급기야 그들에 의해 김춘추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지는 등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는다.결국 비담에게 반지를 주며 후에 서신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비담을 피신시키려 한다. 그러나 비담은 그 직후 염종에게 속아 여왕의 진심을 오해, 난의 주동자가 되고, 이 모든 것이 오해란 것을 알아챈 후 비담에게 섭섭함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23] 그리고 바로 지병이 도져서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귀족들의 반란을 제압하고 은퇴해서 비담과 말년을 행복하게 살려고 했던 그녀의 마지막 바람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났다.이 때, 별이 월성으로 떨어져서 덕만의 운명에 대한 암시를 줌과 동시에 사기가 저하되기도 했으나, 바로 김유신이 연을 날림으로써 신호와 함께 사기증진까지 하게 된다.
비담의 난이 제압되고, 비담이 자기 눈앞에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고 "난이 제압됐으니 이젠 삼한일통으로 나가자"고 선언하지만, 곧바로 악화된 병세로 인해 쓰러진다. 이때 죽은 비담에 시선을 맞춘다.
2.17. 비담의 유언
사흘 가량을 누워 있다가[24] 깨어 나는데, 이때 김유신에게 비담의 유언[25]을 듣고 이제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크게 상심한다.2.18. 쓸쓸한 최후
선덕여왕 : 유신 공.
김유신 : 예, 폐하.
선덕여왕 : 우리 예전에... 도망가려 했었지요. 기억하십니까? 지금이라도 갈까요...?
김유신 : 예, 폐하.
선덕여왕 : 우리 예전에... 도망가려 했었지요. 기억하십니까? 지금이라도 갈까요...?
김유신은 덕만의 질문에 받자옵기 민망하다며 어찌 그런 말을 하시는 거냐고 되묻지만, 덕만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마지막 한 방울의 눈물과 함께 숨을 거둔다.[26][27]
덕만아, 지금부터 많이 힘들 거야. 그리고 많이 아플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 거고, 너무너무 외로울 거야. 사막보다 훨씬 메마르고 삭막할 거야. 모든 걸 다 가지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할 거야. 그래도 견뎌야 해, 알았지? 견뎌.
그리고 덕만의 어릴 적 꿈이 나오는데, 그 꿈 속에서 어린 덕만을 껴안은 인물은 바로 장성한 현재의 덕만. 그녀가 어린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견뎌."라고 말하며, 이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1] 드라마상의 내용으로 보아 대가 끊겼을 뿐 아예 태어나진 않은 건 아니다. 덕만 출생 이후에 세 명의 남동생이 더 태어났으나 모두 단명했다.[2] 이 당시 소화 때문에 문노를 자신의 아버지로 여기고 있었다.[3] 물론 서로 평범한 비구니, 그냥 소년인 줄 알았지만.[4] 같은 화랑이라도 지방 화랑과 서라벌 화랑은 확실히 차이가 있는 듯하다. 서라벌 화랑이라면 풍류황권에도 이름을 높이고 화랑을 상징하는 깃발도 화랑 연무장에 꽂히는 등 확실히 대우가 다르다. 당장 전쟁 때에도 지방 화랑들은 서라벌 화랑 밑으로 편제된다. 그런데 천명공주가 그냥 자기 세력이라고 그런 대단한 자리에 뭣도 아닌 촌놈들을 박아놨으니 빡칠 만한 것. 소위 낙하산 인사였던 것이다. 특히나 알천처럼 배경도 없이 순수하게 실력으로 올라온 화랑이라면 더더욱 빡칠 만하다.[5] 실제로 이들은 용화향도가 전쟁에서 당당히 살아오자 그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후 거짓말처럼 대놓고 괴롭히는 행위는 중단한다.[6] 미실이 예전 원화 때 전쟁에서 성장했던 것처럼 덕만도 전쟁 속에서 성장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당시 전쟁 속에서 김유신과 덕만을 궁지로 몰았던 미실도 언급한 바 있다.[7] 여자라는 신체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 무색하게 전쟁에서는 용화향도 내에서도 잘만 싸웠다. 도망만 다니던 죽방-고도, 겁만 먹던 시열보다는 확실히 잘 싸웠고 덕만이 벤 병사의 수도 꽤나 많고 중간급 장수도 화살로 저격했으며 시열을 구해주기도 했다.[8] 참고로 덕만이 맨발인 상태에서 고문을 당한 건 혹여나 모를 도주 방지를 위해서이다.[9] 예전부터 혹 나머지 쌍둥이 딸이 돌아올까 만들어 두었던 것.[10] 이때 마음 속으로 유신과 도망친 후 유신을 천명에게 돌려주려 했다.[11] 첨성대 개공고사에 미실쪽 귀족은 그렇다 치더라도 김용춘과 김서현마저 불참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12] 매점매석처럼 아예 미실을 찾아가서 질문도 했다.[13] 미실은 빠른 시일 내에 덕만을 죽여서 잡아와야 한다고 했다.[14] 자신이 궁에 들어가서 미실의 계획을 틀어놓고 더 무리수를 강행하도록 미실을 낚은 다음, 남은 춘추, 비담, 유신은 그간 뒷작업했던 중소 귀족, 화랑들을 자신 편으로 돌리게 하는 전략.[15] 작중 저 소엽도는 못하는 게 없는 궁극 아이템이다. 진흥왕이 호랑이에게 물렸을 때 구출해 내고, 바다에 빠진 마야부인을 구출했고, 후에 덕만이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소화를 구하느라 끌려가는 줄을 끊어서 덕만을 구했고, 나중에 덕만이 설원에게 끌려갔다 또 저걸로 살아남았다. 김유신이 풍월주가 되기 위히 치른 비재의 두 번째 문제인 "덕업일신 망라사방''의 신라의 국호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진흥왕의 유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후에 미실의 화살로부터 덕만을 구했다. 물론 이 소엽도는 상징적인 물건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덕만을 구해내는 진흥왕의 가호가 있는 상징물이다.[16] 덕만이 소엽도를 꺼내자 미실과 마야는 바로 알아봤는데 미실은 진흥왕이 저걸로 목숨을 건진 일화를 알고 있었고, 마야는 본인 역시 저 소엽도로 살아남았기에 남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이다. 마야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한 그 소엽도가 자신의 딸 역시 구하게 된 진흥왕의 가호를 다시 느꼈을듯.[17] 여기서 반민특위 해체 사건을 떠올린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 당시 제기된 논리가 이들을 다 숙청하면 나라를 운영할 인재가 없어진다는 논리였기 때문. 단, 미실파의 경우 제대로 재산을 몰수하고 다시 반역할 기반을 흐트러트렸다는 점이 다르긴 하다.[18] 거의 대부분이 이 처사에 대해 반대했지만 덕만이 ''나보다 더 미실에게 원한이 많은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고 일갈하자 모두들 데꿀멍했다. 사실 부모님이 죄다 미실 때문에 비명횡사한 춘추도 미실의 욕심으로 인해, 아예 태어나자마자 인생 자체가 꼬인 덕만에겐 할 말이 없었을 듯. 하지만 나중엔 미실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면서 그녀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렸으니, 어찌 보면 역적으로 남기는 것보다 더 잔인한 복수였을지도 모른다. 이로써 마야부인의 "네년의 이름은 역사에 단 한 글자도 남지 않을 것이다."라는 저주가 드라마상에서 실현되었다.[19] 사실 이건 실책에 가깝다. 한국 사극에선 흔히 주인공(리더)의 화합, 포용하는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도 용서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이렇게 하면 군주로서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 왕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도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마지막에 미실 잔류 세력들과 원래 덕만의 편에 섰던 일부 중립 귀족들이 비담을 추동해 난을 일으켰으니.. 물론 다 실패한 것은 아니고 설원 등 미실파 일부와 대부분의 중립 귀족같은 경우는 신라의 충신으로써 잘 활용했고, 난을 진압할 때 도움이 됐다.[20] 생각해 보면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다. 긴말 필요없이 가야와 신라를 각각 조선과 일본에 대입해 보자. 근래에 피지배민의 역사가 있는 한국인 시청자들에게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21] 단, 신라의 국왕인 선덕여왕 입장에서는 매우 당연한 발언이기도 하며 덕만의 입장에서는 가야계를 중용하였고 가야인에 대한 차별도 금지하는 국령을 내리면서 가야인을 모두 안으려고 했고, 실제 공주 시절부터 유신을 통해 가야인들을 보호해 왔는데 끝까지 복야회라는 가야를 되살린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니 분노할 수밖에 없다. 위의 조선과 일본을 언급했긴 했지만 고대사에 여러 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민족을 그냥 두고 보는 왕은 당연히 없었다.[22] 비담에게 상처주는 말을 할 때부터 이 장면까지 덕만의 감정선이 뜬금없고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속사정에 의하면 유아기와 청년기 사이 청소년기에 덕만이 낭도가 되기 전 남장하고 다닐때 비담과 만난 씬,공주 시절 비담이 문노의 죽음 이후 한동안 안 보일 때 덕만이 걱정하는 씬, 비담이 손을 잡아주며 '그래야 설레요' 라고 말한 씬 등 신종플루와 배우들의 낙마로 인해 편집됐고, 즉위 후 젊은 여왕과 사량부령 시절 덕만도 비담을 사내로 신경쓰이는 씬, 그 이후 중년 전까지 덕만의 여인으로서의 감정선이 편집되었다. 그것을 아는 팬들은 감독을 박볼트라고 칭하고 무척 속상해했다는 후문이..[23] 왜 끝까지 자신처럼 믿어 주지 못했는지에 대한 아쉬움과 이렇게까지 될 정도로 어두운 일만 수행시켰고, 자신도 결국 비담을 이용하려 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미안함.[24] 과거에 비담이 "소인의 목숨은 이 신국의 폐하보다 사흘이 모자란 목숨이옵니다."라고 한걸 생각해보면...[25] "덕만아, 나의 덕만아."[26] 이 때 힘없이 떨구어진 손가락에는 비담과 나누었던 반지를 계속 차고 있었다. 비담에 대한 덕만의 연모를 알 수 있는 장치인 셈.[27] 미실과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아있다 손을 툭 떨구며 죽은 탓에, 이 장면을 두고 '신라 상류층 여자들은 앉아서 죽는 게 유행'이라는 말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