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01:35:22

도흡

양서(梁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fff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2·3권 「무제기(武帝紀)」 4권 「간문제기(簡文帝紀)」 5권 「원제기(元帝紀)」 6권 「경제기(敬帝紀)」
소연 소강 소역 소방지
7권 「황후기(皇后紀)」
장상유 · 치휘 · 왕영빈 · 정영광 · 완영영 · 서소패
}}}}}}}}}
[ 열전(列傳) ]
||<-2><tablewidth=100%><tablebgcolor=#00c499> 8권 「소명태자등전(昭明太子等傳)」 ||<-2> 9권 「왕무등전(王茂等傳)」 ||<-2> 10권 「소영달등전(蕭穎達等傳)」 ||
소통 · 소대기 · 소방구 왕무 · 조경종 · 유경원 소영달 · 하후상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11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12권 「유담등전(柳惔等傳)」 13권 「범운등전(范雲等傳)」
장홍책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유담 · 석천문 · 위예 범운 · 심약
14권 「강엄등전(江淹等傳)」 15권 「사비전(謝朏傳)」 16권 「왕량등전(王亮等傳)」
강엄 · 임방 사비 ,사람, 왕량 · 장직 · 왕형
17권 「왕진국등전(王珍國等傳)」 18권 「장혜소등전(張惠紹等傳)」 19권 「종쾌등전(宗夬等傳)」
왕진국 · 마선병 · 장제 장혜소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종쾌 · 유탄 · 악애
20권 「유계련등전(劉季連等傳)」 21권 「왕첨등전(王瞻等傳)」
유계련 · 진백지 왕첨 · 왕지 · 왕준 · 왕간 ,왕훈, · 왕태· 왕빈· 장충· 유운 · 채준· 강천
22권 「태조오왕전(太祖五王傳)」 23권 「소업등전(蕭業等傳)」 24권 「소경전(蕭景傳)」
소굉 ·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소업 · 소백유 · 소원간 · 소상 소경 ,소창 소앙 소욱,
25권 「주사등전(周捨等傳)」 26권 「범수등전(范岫等傳)」 27권 「육수등전(陸倕等傳)」
주사 · 서면 범수 · 부소 · 소침 · 육고 육수 · 도흡 · 명산빈· 은균· 육양
28권 「배수등전(裴邃等傳)」 29권 「고조삼왕전(高祖三王傳)」 30권 「배자야등전(裴子野等傳)」
배수 · 하후단 · 위방 소적 · 소속 · 소윤 배자야 · 고협 · 서리 · 포천
31권 「원앙전(袁昻傳)」 32권 「진경지등전(陳慶之等傳)」 33권 「왕승유등전(王僧孺等傳)」
원앙 진경지 · 난흠 왕승유 · 장솔 · 유효작 · 왕균
34권 「장면전(張緬傳)」 35권 「소자각전(蕭子恪傳)」 36권 「공휴원등전(孔休源等傳)」
장면 ,장찬 장관, 소자각 ,소자범 소자현 소자운, 공휴원 · 강혁
37권 「사거등전(謝擧等傳)」 38권 「주이등전(朱異等傳)」
사거 · 하경용 주이 · 하침
39권 「원법승등전(元法僧等傳)」 40권 「사마경등전(司馬褧等傳)」
원법승 ,원수 원원달, · 왕신념 · 양간 · 양아인 사마경 · 도개 · 유현 · 유지린 · 허무
41권 「왕규등전(王規等傳)」
왕규 · 왕승 · 저상 · 소개 · 저구 · 유유 · 유잠 · 은운 · 소기(幾)
42권 「장순등전(臧盾等傳)」 43권 「위찬등전(韋粲等傳)」
장순 · 부기 위찬 · 강자일 · 장승 · 심준(浚) · 유경례
44권 「태종십일왕・세조이자전(太宗十一王・世祖二子傳)」
소대련 · 소대심 · 소대림 · 소대춘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방등 · 소방제
45권 「왕승변전(王僧辯傳)」 46권 「호승우등전(胡僧祐等傳)」
왕승변 호승우 · 서문성 · 두즉 · 음자춘
47권 「효행전(孝行傳)」
등담공 · 심숭소 · 순장 · 유검루 · 길분 · 견염 · 한회명 · 유담정 · 하형 · 유사미 · 강부 · 유제 · 저수 · 사린
48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범진 · 엄식지· 하창 · 사마균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태사숙명 · 공자거· 황간
49·50권 「문학전(文學傳)」
도항 · 구지 · 유포 · 원준 · 유어릉 · 유소(昭) · 하손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어릉 · 유준 · 유소(沼) · 사기경 · 유협 · 왕적 · 하사징 · 유묘 · 사징 · 장엄 · 복정 · 유중용 · 육운공 · 임효공 · 안협
51권 「처사전(處士傳)」
하점 ,하윤, · 완효서 · 도홍경 · 제갈거 · 심의 · 유혜비 · 범원염 · 유우 · 유효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52권 「지족전(止足傳)」 53권 「양리전(良吏傳)」
고헌지 · 도계직 · 소시소 유필 · 심우 · 범술증 · 구중부 · 손겸 · 복환 · 하원
54권 「제이전(諸夷傳)」
임읍 · 부남· 반반국 · 단단국 · 간타리국 · 낭아수국· 파리국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백제 · 신라 · · 문신국· 대한국 · 부상국 · 하남왕국 · 고창· 활국 · 주고가국 · 아발단국 · 호밀단국· 백제 · 쿠처 · 우전국· 갈반타국 · 저말국 · 파사국 · 탕창국· 등지 · 무흥국 · 예예국
55권 「소종등전(蕭綜等傳)」
소종 · 소기(紀) · 소정덕 · 소예
56권 「후경전(侯景傳)」
후경 ,왕위,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c499><tablebgcolor=#00c499> ||
}}}}}} ||

1. 개요2. 생애

1. 개요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관료로 자는 무연(茂㳂). 팽성군(彭城郡) 무원현(武原縣) 출신으로 유송의 장수 도언지의 증손이며, 도개의 동생이다. 도중거의 아버지.

2. 생애

도흡은 18살의 나이에 남서주(南徐州) 영서조행사(迎西曹行事)를 지냈다. 도흡은 어린 시절부터 이름을 알렸으며, 기지가 예민하고 총명했으며, 재주와 학식은 물론 사대부의 태도를 지녔었다. 당시 사조가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는데, 도흡을 보고 매우 칭찬하여 날마다 도흡과 담론을 나눴다. 이때 사조는 도흡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는 걸출한 인물이기만 한 게 아니라 문무의 재간도 갖췄구나!

사조는 이부랑(吏部郞)으로 부임한 뒤 조정에 도흡을 천거하려고 했으나 도흡은 난세가 벌어질 것을 예견하여 사조의 천거를 거절하였다. 도흡은 뒤에 진안왕(晉安王)의 좌상시(左常侍)로 제수되었으나 여기에 응하지 않고 험준한 산속에 집을 지어서 속세와 단절된 삶을 살았다.

임방은 재능과 품행을 알아보는 눈썰미를 갖고 있었는데, 도흡을 찾았을 때 그를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아이는 천하에 둘도 없는 인재로다!

502년, 소연이 양나라를 건국하고 제위에 오르니 이가 초대 황제인 무제였다. 당시 도흡의 형제인 도소(到沼)와 도개가 모두 소연에게 등용되었는데, 도흡은 특히 소연의 눈에 들었고 사촌동생인 도항(到沆)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다음은 무제와 대조(待詔) 구지(丘遲)가 나눈 문답이다.
무제: 도흡은 도항, 도개와 비교한다면 어떠한가?
구지: 정직하고 청렴한 것은 도항보다 뛰어나고 문장은 도개에게 뒤지지 않으며, 더불어 청담을 지녔으니 거의 따라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구지의 말을 들은 무제는 곧바로 도흡을 태자사인(太子舍人)으로 임명하였다. 이후 화광전(華光殿)에서 연회가 열렸을 때 도흡가 도항, 소침, 임방이 배석하여 이십운 시를 읊었는데, 도흡의 시가 가장 뛰어나서 도흡에게 명주 20필을 하사하였다. 다음은 무제와 임방이 나눈 문답이다.
무제: 도씨의 자식들이 모두 재주가 있다고 할 만하다.
임방: 신은 항상 송나라그의 무예를 얻었고 양나라는 그의 글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503년, 도흡은 사도부 주부(主簿)로 옮겼고 직대조성(直待詔省)을 맡았으며, 칙서에 따라 갑부(甲部)의 서적들을 베껴썼다.

506년, 상서전중랑(尙書殿中郞)으로 전임되었는데, 도흡의 형제들이 모두 이 직무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이를 영예롭게 여겼다.

508년, 태자중사인(太子中舍人)으로 전임되어 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 육수와 함께 동궁의 기록을 담당했다. 이후 도흡은 시독(侍讀)으로 임명되고 시독성(侍讀省)에서 학사 2명을 둘 때 도흡은 학사를 맡았다.

510년, 국자박사(國子博士)로 전임되고 칙령을 받들어 《태학비(太學碑)》의 비문을 지었다.

513년, 임천(臨川) 내사로 전출되어 직무에 적합하다는 칭송을 받았다.

515년, 입조하여 태자가령(太子家令)이 되고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에 전임되었으며, 국자박사(國子博士)를 겸임하였다.

517년, 태자중서자를 맡았다.

도흡은 527년 심양군에서 죽었다. 사후 시중(侍中)으로 추증되고 이(理)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