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상의 한 종류
원래는 사람의 키와 같은 정도의 크기(등신)로 만든 불상(佛像)이라는 의미지만 대부분의 용례로는 실제 승려의 시신(미라)을 넣어 만든 불상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육신불(肉身佛) 또는 육신보살(肉身菩薩)이라고 한다. 대부분은 고승의 시신에 금박을 입히는 식으로 제작되는데 일부러 방부처리를 하는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미라화한 시신을 쓴다. 당연히 사람은 죽으면 썩기 마련인데 썩지 않고 미라화했다는 것은 그 정도로 법력이 강한 스님이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가장 최근에 등신불로 만들어진 비구니 인의법사(仁義法師, 1911~1995)이다. 속명은 강소민(姜素敏)이며, 중국 동북지역 출신이다. 1940년 오대산 현통사(顯通寺)에서 출가해 '인의'라는 법명을 얻었다. 출가 후 전심으로 수행해 1995년 4월 구화산 통혜선림(通慧禪林)에 이르러 초겨울에 7일간 음식을 끊은 후 입적했다. 향년 만 84세. 비구니로서는 최초의 등신불이다.
일반적으로 승려가 입적한 후에 명상하는 자세로 몸을 굽혀[1] 소금을 채운 항아리에 넣고 3년간 두었다가 열었을 때 시신이 손상되어 있다면 화장하고 그대로 등신불이 되었다면 몇 차례 옻칠을 한 뒤 금을 입혀 완성한다.
2015년에는 12세기에 제조된 불상이 실제 등신불임이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외국에서는 "'평화는 내면에서 온다'지만 진짜 불상 안에서 찾으면 안 된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21세기에도 등신불이 만들어지는 사례가 있다. 실제로 2016년 중국에서는 2012년에 입적한 고승의 시신으로 등신불을 만들기도 했다.
등신불이 된 한국인 중에는 중국에서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숭앙받는 김교각(金喬覺)이 유명하다. 그는 신라 성덕왕의 첫째 아들, 즉 왕자 출신으로 당나라 구화산에서 입적 후 등신불로 만들어졌다.좀 더 자세한 내용]
1.1. 즉신불
자세한 내용은 즉신불 문서 참고하십시오.슈겐도, 일본 밀교에는 등신불이 변형된 즉신불(即身仏)이 있었는데 일반적인 등신불과 달리 살아 있는 사람을 미라화해 등신불을 만든 것이다. 엄연한 자살방조이며 신체훼손이기 때문에 당연히 20세기부터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1.2. 다른 종교에서
기독교에도 성인의 유해를 공경하는 유사한 문화가 있다.대한민국에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뼈가 성유물를 모셔진 사례가 있으며 카타콤바에서 발굴된 유해를 전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후자는 "이제라도 예우해 주자"는 의미로 금칠만 하는 등신불상과는 달리 매우 화려하게 치장해 준다.[2] 이는 카타콤바에 묻힌 사람들은 가톨릭이 국법으로 금지된 시절을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즉신불과는 달리 이를 목적으로 하여 적극적으로 곡기를 끊는 경우는 없고 자살과도 관련 없다. 등신불과는 다르게 만들 때도 죽은 지 거의 몇 백 년은 된 시신들을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은 같다.
사실 이게 마냥 고인모독에 잔인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게, 당시엔 이렇게 예우를 받은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애초에 이 시기는 인권이란 게 없던 시대였고 사후에 이런 식으로 예우받는 게 사실상 사치나 다름없었다. 물론 기본적인 애도나 예우를 했겠지만, 역병으로 죽은 사람들은 그런 것도 없고 그냥 쓰레기처럼 버려져 땅속에 매장당했다. 지금 기준으론 찝찝해 보일지언정 이 시대에는 그게 죽은 이들, 그것도 자신의 믿음을 억압받던 순수했던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중세 시대 사람들이 할 수 있던 최고의 예우였다. 그런 의미로 보면 등신불이나 무덤 성인이나 옛 사람들을 존중하는 의미는 크게 다를 게 없다.
이런 무덤 성인을 모티브로 해 게임 Blasphemous에 발굴된 대주교 멜키아데스라는 보스 캐릭터가 있기도 하다.
2. 김동리의 소설
소설가 김동리(金東里)가 1961년 11월 사상계(思想界) 101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심오한 불교 사상의 일면을 보여준 작품으로서 김동리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이다. 학병인 “나”의 이야기와 옛날 사람인 “만적”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액자소설 형식이다. "다음 중 액자소설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나오면 이걸 찍으면 된다.일제강점기 다이쇼대학에 재학하다 1943년 학병으로 끌려간 '나'는 중국 난징 땅에 배치되었다. 인도차이나 방면으로 나간다면 반드시 죽는다는 전쟁의 참혹함을 견디지 못한 '나'는 미리 일본에 유학한 불교학자들의 명단을 조사했으며, 그 중 찾아낸 진기수란 자를 찾아내어 그의 도움을 받아 부대를 탈출, 어느 절(정원사)에 숨어들어 원혜대사의 도움으로 불도를 닦는다.
그 절 뒤뜰에는 금불각이란 현판이 쓰인 곳이 있는데, 늘 문을 잠그고 귀한 분이 올 때만 세전을 받고 불공을 드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나"는 호기심으로 몰래 숨어들어 그 안을 엿보았는데, 그 순간 공포에 질려버린다. 등신불, 오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이그러진 육신은 부처라기보다는 오히려 괴물의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원혜대사로부터 등신불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만적은 당나라 때 사람으로, 어린 시절 부친을 여의자 재가한 어머니를 따라 진씨 집으로 온다. 그 의부에게는 신이라는 전처의 아들이 있었는데 만적은 그와 우애가 두터워졌다. 그러나 어머니가 진씨 집의 재산을 만적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신을 죽이려고 한 것을 알게 되자, 신은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다. 만적은 그 길로 신을 찾아 헤매다가 인간사에 회의를 품고 불가에 입문한다. 승려가 된 만적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나병 환자가 된 신을 만나게 된다. 이 비극이 어머니의 탐욕으로 인해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 만적은, 어머니의 죄를 부처님께 탕감받고자 자신을 불살라 부처님께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소신공양을 하는 날, 만적의 몸에 불이 붙자 곧바로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그런데 만적의 몸을 태우는 불은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맹렬하게 타올랐다.[3] 소신공양이 끝나자 이 같은 기적에 감화된 사람들은 숯검댕이 되어버린 만적의 몸에 금을 입혀 등신불로 모셨다고 한다.
소설 말미에 원혜대사는 갑자기 나에게 "자네, 바른손 식지를 들어보게."라고 말한다. 나는 대사에게 바른손을 들어다 보였고, 원혜대사는 나의 손을 보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이 절에 오기 전에 오른손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쓴 바 있는데 아마 대사가 '나'의 손을 보고 만적의 현신으로 본 듯하다. 아니면 만적은 모두를 위해 희생했으나, '나'는 자신만을 위해 희생한 이기적 인물임을 깨닫게 한 것일지도.
3. 1981년작 TV 문학관 등신불
TV부문 대상 | ||||
을화 (1981) | → | 등신불 (1982) | → | 풍운(KBS) (1983) |
TV부문 작품상 | ||||
을화 (1981) | → | 등신불 (1982) | → | 풍운(KBS) (1983) |
1981년작 임혁, 한혜숙, 반효정 주연의 구(舊) TV 문학관 시리즈 드라마. 극본 이은성 / 연출 장형일.
4. 2006년작 TV 문학관 등신불
2006년작 드라마. 1982년작을 같은 PD가 다시 리메이크한 것.#
HD TV문학관-등신불 KBS1 금 2006.10.06 장르:드라마 (1부작)
이녹영(기획), 이은성/김이현(극본), 장형일(연출) #
'나' 역에 배우 김정현, 만적 역에 안신우, 만적의 어머니 역에 고두심, 원작과 달리 신의 친누이로 만적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지는 여옥이라는 오리지널 캐릭터가 추가되었다. 여옥 역은 정시아가, 승려 역은 김인태와 이원용이 맡았다. 또 원작에서는 만적의 어머니가 신을 독살하려는 시도만 한 것과 달리 드라마에서는 재가한 남편을 독살하고 신까지 독살하려 하는 것으로 설정을 더 극적으로 만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만적의 소신공양으로 그 자리에 있던 만적의 어머니[4]와 나병 환자가 된 여옥, 신 남매가 완전히 회복되고 서로 화해하는 것은 드라마에서 추가한 내용이다. 이 장면이 종교색을 떠나 벤허의 마지막과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국내의 순천시 송광사에서 찍었던 구 TV 문학관 버전과 달리,[5] 신 버전은 중국 현지 로케이션의 위엄을 보였다.
여담으로 구 TV 문학관 버전과 신 버전을 만든 PD는 같은 사람이고, 구 버전을 제작할 당시 절을 촬영장소로 내주지 않는 스님들의 등쌀 때문에 불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불교적인 작품을 만들면서 불교 신앙을 버렸다는 것이 아이러니.[6] 그래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한 불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작품으로 불교방송에서도 종종 틀어주곤 한다.
여담이지만 이것을 본 어느 한국학 전공 외국인 여대생 하나가 그 아스트랄함에 기겁을 했다고 한다. 인신공양과 자살을 금기로 하는 서구 기독교 문화에서는 참 이해하기 힘든 극임엔 틀림없다.
[1] 입적할 때 명상하는 자세로 입적하였다면 그 상태대로.[2] 보통 영어로 'Catacomb saint', 한국어로 대충 번역하면 ‘무덤 성인’이라고 불린다.[3] 원래 기름에 붙은 불은 물로 꺼지지 않는다.[4] 천벌을 받은 것인지 미치광이가 되어 비참한 몰골의 떠돌이가 되어 있었다.[5] 당시에는 한국-중국 수교 이전이었으니.그럼 타이완 가서 찍을 수는 없었던걸까?[6] 또 독특한 것은 만적 역의 배우가 개신교 신자였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