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호 | 라다미스투스 (조지아어: რადამისტი, 아르메니아어: Հռադամիզդ) |
출생 | 미상 |
사망 | 58년 |
아버지 | 파라스마네스 1세 |
어머니 | 티그라네스 4세와 에라토의 딸 |
재위 기간 | 1차 재위:51년 ~ 53년 2차 재위: 54년 ~ 5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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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의 군주. 이베리아 왕국 파르나바지드 왕조의 왕족으로, 51~53년, 54~55년까지 로마 제국의 속국인 아르메니아를 다스렸다.2. 생애
부친은 이베리아 왕국의 군주 파라스마네스 1세이며, 모친은 티그라네스 4세와 에라토의 딸이다. 그는 잘생기고 건장한 신체를 갖췄으며, 야망이 매우 큰 인물이었다고 한다. 51년, 미트리다테스 왕의 폭정에 견디지 못한 아르메니아인들이 그에게 왕이 되어줄 것을 청했다. 미트리다테스는 그의 삼촌이었고, 아내 제노비아의 아버지이기도 했지만, 이를 기회로 삼아 왕이 되기로 결심했다. 야심 많고 인내심이 부족한 아들이 찬탈을 꾀할까 걱정했던 아버지 역시 아들을 지원했다.그는 이베리아인들을 이끌고 아르메니아로 쳐들어가 아르메니아군을 격파하고 고르니(Gornae) 요새로 도망친 미트리다테스를 포위했다. 당시 고르니 요새엔 미트리다테스의 왕위를 보장하기 위해 로마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라다미스투스는 수비대 지휘관 카엘리우스 폴리오에게 뇌물을 주고 성문을 열라고 부탁했다. 폴리오는 이에 따르려 했지만, 카스페리우스는 강하게 반대하면서 카파도키아 총독 율리우스 파엘리그누스에게 개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폴리오는 결국 카스페리우스의 반대를 물리치고 성문을 열어 이베리아군이 성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로마군의 배신으로 체포된 미트리다테스는 아내과 함께 목이 졸려 질식사했다. 또한 아내 제노비아의 형제들이 부모의 죽음에 울었다는 이유로 처형되었다. 율리우스 파엘리그누스는 아르메니아 탈환을 위해 출정했지만, 도중에 계획을 바꿔 라다미스투스를 아르메니아의 왕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곧 파르티아의 침략에 직면해야 했다. 볼로가세스 1세는 찬탈자를 몰아낸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아르메니아로 진격해 적의 미약한 저항을 가차없이 물리치고 아르탁사타를 공략한 후 동생 티리다테스 1세를 아르메니아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혹독한 겨울과 식량 부족에 시달리다가, 메디아와 히르카니아에서 아들 바르다네스 2세가 반란을 일으키자 어쩔 수 없이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베리아로 피신했다가 아르메니아로 돌아온 그는 파르티아인들에게 항복한 아르메니아 도시들을 엄벌에 처하고 많은 인사들을 처형했다.
루이지 사바텔리(Luigi Sabatelli) 작, 제노비아를 살해하려는 라다미스투스(1803년).
55년, 라다미스투스의 숙청을 견디지 못한 아르메니아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그를 추방했다. 그의 아내 제노비아는 임신한 몸으로 이베리아로 향하던 중 너무 지쳐서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그러자 라다미스투스는 그녀가 적의 손에 떨어지지 않게 해주겠다며 그녀를 칼로 찌르고 아락스강(오늘날 아라스강)에 던졌다. 이때 양치기들이 강에 떠내려가는 그녀를 구출하여 치료해준 뒤 아르탁사타로 데려갔다. 이후 아르메니아인들의 초청을 받은 티리다테스 1세는 파르티아군의 지원에 힘입어 아르탁사타에 순조롭게 입성했고, 제노비아를 왕족으로 대우했다.
58년, 라다미스투스는 부왕 파라스마네스 1세에 의해 반역 혐의로 처형되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아내 제노비아의 일가족에게 몹쓸 짓을 한 것에 반감을 품은 로마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