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4 10:19:54

티리다테스 1세(아르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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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샤쿠니 4대 샤
𐭕𐭉𐭓𐭉𐭃𐭕 | 티리다테스 1세
파일:티리다테스 1세(아르메니아).jpg
제호 한국어 티리다테스 1세
파르티아어 𐭕𐭉𐭓𐭉𐭃𐭕
영어 Tiridates I
존호
생몰 년도 미상 ~ 88년
재위 기간 1차 재위: 52년 ~ 58년
2차 재위: 62년 ~ 88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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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 아르샤쿠니 왕조의 4대 . 아르메니아 군주가 되기 위해 형 볼로가세스 1세의 지원을 받으며 로마와 대적한 끝에 명장 코르불로의 중재에 따라 로마로부터 인정받았다. 이후 아르샤쿠니 왕조가 통치 가문으로 자리를 잡아 428년까지 아르메니아를 다스렸다.

2. 생애

파르티아 제28대 샤한샤 보노네스 2세와 정실 왕비의 소생이었다. 이복 형으로 볼로가세스 1세가 있었고, 남동생으로 파코로스가 있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볼로가세스 1세의 어머니는 그리스 출신의 후궁이었다고 한다. 51년 보노네스 2세가 사망했을 때, 볼로가세스 1세는 장남이긴 했지만 어머니가 첩실이었기 때문에, 정실 왕비의 소생인 동생 티리다테스보다 왕위 계승권 순위에서 밀렸다. 하지만 그는
"나이가 많은 아들이 샤한샤가 되는 게 옳다"
라며 형을 샤한샤로 추대했다. 볼로가세스 1세는 이에 보답하고 싶었고, 귀족들의 반발도 무마해야 했기에, 동생 티리다테스에게 파르티아의 샤한샤에 버금가는 자리를 마련해주기로 했다. 그 결과, 볼로가세스 1세는 아르메니아의 왕위에 티리다테스를 앉히기로 결심했다.

당시 아르메니아의 상황은 매우 불안정했다. 미트리다테스 왕의 폭정을 견디지 못한 아르메니아 백성들의 추대를 받은 이베리아 왕자 라다미스투스가 이베리아인들을 이끌고 아르메니아로 쳐들어왔다. 그는 아르메니아군을 격파하고 수도 아르탁사타 인근의 고르니에서 미트리다테스를 포위했다. 포위된 도시에는 카엘리우스 폴리오 장군과 백부장 카스페리우스가 지휘하는 로마 수비대가 있었다. 라다미스투스는 폴리오에게 뇌물을 줘서 게르니의 성문을 열게 하려고 했다. 폴리오는 이에 따르려 했지만, 카스페리우스는 강하게 반대하면서 카파도키아 총독 율리우스 파엘리그누스에게 개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폴리오는 결국 카스페리우스의 반대를 물리치고 성문을 열어 이베리아군이 성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미트리다테스 일가족은 학살되었고, 라다미스투스는 아르메니아의 왕위에 올랐다. 율리우스 파엘리그누스는 아르메니아 탈환을 위해 출정했지만, 도중에 계획을 바꿔 라다미스투스를 아르메니아의 왕으로 인정했다.

볼로가세스 1세는 52년 찬탈자를 몰아낸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아르메니아로 진군하여 적의 미약한 저항을 가차없이 물리치고 아르탁사타를 공략한 후 동생을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혹독한 겨울과 식량 부족에 시달리다가, 메디아와 히르카니아에서 아들 바르다네스 2세가 반란을 일으키자 어쩔 수 없이 본국으로 돌아갔다. 라다미스투스는 다시 아르메니아로 돌아와서 많은 이들을 파르티아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처형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라다미스투스의 거듭된 숙청에 분노하여 55년 반란을 일으켜 그를 추방했다. 라다미스투스의 아내 제노비아는 임신한 몸으로 이베리아로 향하던 중 너무 지쳐서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그러자 라다미스투스는 그녀가 적의 손에 떨어지지 않게 해주겠다며 그녀를 칼로 찌르고 아락스강(오늘날 아라스강)에 던졌다. 이때 양치기들이 강에 떠내려가는 그녀를 구출하여 치료해준 뒤 아르탁사타로 데려갔다. 이후 아르메니아인들의 초청을 받은 티리다테스는 파르티아군의 지원에 힘입어 아르탁사타에 순조롭게 입성했고, 제노비아를 왕족으로 대우했다. 라다미스투스는 이베리아로 돌아갔지만, 58년경 아버지 파라스마네스 1세에 의해 왕권에 대항하는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로마는 파르티아가 아르메니아를 이대로 장악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55년 초, 시리아 총독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는 10군단 프레텐시스와 12군단 풀미나타를 편성했다. 여기에 카파도키아 사령관 코르불로3군단 갈리카와 6군단 페라타를 재편성했다. 두 지휘관 모두 볼로가세스 1세에게 사절을 보내 외교적 해결을 모색했다. 아들 바르다네스 2세의 반란 진압에 몰두하고 있었던 볼로가세스 1세는 이에 응해 움미디우스에게 인질을 보냈다. 그러나 티리다테스가 아르메니아의 왕이 되기를 고수했고, 58년 기병대를 보내 시리아 속주를 급습하면서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58~63년 파르티아-로마 전쟁)

아르메니아와 로마군 사이의 전초전이 벌어진 후, 코르불로는 아르메니아의 수도 아르탁사타로 진격했다. 파르티아-아르메니아 연합군은 로마군의 침략에 맞섰지만 코르불로의 탁월한 지휘로 인해 연이어 패배했고, 티리다테스 1세는 59년 파르티아로 망명했다. 로마군은 헤롯 대왕의 후손이며 헤롯 아그리파 2세의 친척인 티그라네스 6세를 아르메니아 왕으로 세웠다. 이후 로마군이 겨울 숙영을 위해 시리아로 돌아가자, 티리다테스 1세는 아트로파테네에서 아르메니아 북부로 이동했다. 그러나 60년 봄 로마군의 압박으로 다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메니아의 새 왕이 된 티그라네스 6세는 61년 볼로가세스 1세의 동생인 파코로스가 다스리던 메디아 아트로파테네를 습격했다. 동방에서 일어난 바르다네스 2세의 반란을 진압하느라 아르메니아 문제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던 볼로가세스 1세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좌시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귀족회의를 소집하여 형제 티리다테스가 아르메니아의 정당한 왕임을 선언하고, 바르다네스 2세와 휴전 협약을 맺은 뒤 아르메니아로 향한 반격을 개시했다. 볼로가세스 1세는 모나세스(Monaeses) 장군을 파르티아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메디아 아트로파테네의 군대와 합세하여 아르메니아로 쳐들어가도록 했다. 티그라네스 6세는 티그라노케르타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농성했고, 파르티아군은 성의 보급로를 차단한 뒤 포위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티그라노케르타는 좀처럼 함락되지 않았고, 코르불로는 유프라테스 강변에 군대를 집결하며, 여차하면 메소포타미아를 직접 치려고 했다. 그러자 볼로가세스 1세는 코르불로에게 사절을 보내 평화 협상을 제안했다. 이때 코르불로는
"티리다테스가 아르메니아 왕으로 세우는 걸 인정하겠지만, 즉위식을 로마에서 하는 게 어떠냐"
라고 권유했다. 볼로가세스 1세는 이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로마에 사절단을 보내는 한편 모나세스에게 포위망을 푼 후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카이세니우스 파에투스 장군이 마케도니아 제5군단, 스키티카 제3군단, 풀미나타 제12군단을 이끌고 북방 전선에 도착했다. 그는 코르불로와 파르티아 간에 평화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공적을 세우고 싶은 마음에 이를 무시하고 스키티카 제3군단과 풀미나타 제12군단을 이끌고 아르메니아로 쳐들어갔다. 그들은 유프라테스강을 건너 티리다테스에게 충성했던 아르메니아의 여러 요새를 공략했다. 그러나 볼로가세스 1세는 즉각 반격을 가하여 파에투스를 격파하고, 아르사모사타 인근 란데이아에서 그들을 포위했다. 코르불로는 아군을 구하고자 달려갔으나, 그가 도착하기 전에 파에투스가 항복하면서 무위로 그쳤다. 볼로가세스 1세는 로마와 평화 협상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2개 군단을 무장해제시킨 뒤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관대한 조치를 내렸다. 이후 62년/63년 겨울에 다시 평화 협상이 재개되었다. 볼로가세스 1세는 코르불로의 제안대로 하자고 권했지만, 로마 당국은 패배한 뒤 협정을 맺는 걸 굴욕으로 여겨 거부하고 또다시 전쟁을 준비했다.

63년 봄, 코르불로는 4개 군단을 이끌고 아르메니아로 진군했다. 볼로가세스 1세와 티리다테스는 이번에는 승리할 가망이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코르불로 역시 적이 산악 지형에서 버틴다면 공략하기 매우 어렵고, 아르메니아인들이 티그라네스 6세보다는 티리다테스 1세를 지지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 이상 전쟁을 벌이는 건 무익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양자는 전쟁을 멈추고 평화 협약을 맺기로 합의했다.

코르불로와 티리다테스는 란데이아에서 조우했다. 티리다테스는 로마군 진영에 이르러 왕관을 벗어 로마 황제 네로의 동상 앞에 놓고, 로마에서 개최되는 대관식에서 네로로부터 왕관을 돌려받기로 했다. 로마는 티리다테스 1세를 아르메니아 왕으로 인정하는 대신 로마 수비대를 소펜에 영구적으로 주둔하도록 했다. 네로는 협상 결과에 만족을 표했고, 66년 10월 네아폴리스(나폴리)에 도착한 티리다테스 1세를 친히 맞이하여 극진한 대접을 해줬다.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티리다테스 1세는 검투 시합에 참여해 두 마리의 버팔로를 화살 두 방으로 제압하는 등 명사수로서 솜씨를 뽐냈다고 한다. 이후 로마에서 열린 대관식에서, 티리다테스 1세는 네로가 서 있는 제단 앞에 선 뒤 무릎을 꿇고 가슴에 손을 얹으며 황제에게 말했다.
"주군이여, 저는 아르사케스의 후손이며 볼로가세스 왕과 파코로스의 형제입니다. 저는 저의 주군인 폐하께 왔습니다. 저는 폐하를 태양으로 숭배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제 운명과 행운이므로, 폐하께서 제게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것입니다."

네로가 답했다.
"그대가 이곳에 직접 와서 나를 대면한 건 잘한 일이다. 그대의 아버지가 그대에게 남겨두지 않은 것과, 그대의 형제들이 그대를 위해 보존하지 않은 것을 내가 그대에게 허락한다. 그대를 아르메니아의 왕으로 삼을 것이다. 그대는 물론이고 그들까지도, 내가 왕국을 빼앗고 허락할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네로는 그의 머리에 왕관을 씌웠고, 티리다테스 1세를 일으켜 세워 입맞춤한 뒤 옆의 조금 낮은 의자에 앉게 하였다. 이렇게 대관식이 끝나고 며칠간의 축제가 개최되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티리다테스는 네로가 전차 경주에 참가해 녹색 옷을 쓰고 전차 운전사의 머리장식을 쓰고 금으로 짠 조끼를 입은 채, 노래를 부르고 리라 연주를 하는 걸 보고 한편으로는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겨워했다고 한다. 이후 티리다테스가 아르메니아로 돌아갈 때, 네로는 그에게 5,00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선물로 주었으며, 모든 여행 비용을 부담하였다.

티리다테스는 아르메니아로 돌아간 뒤 아르탁사타의 재건을 위해 많은 숙련된 장인들을 고용했고, 도시가 재건되었을 때 황제를 기리기 위해 '네로니아'라는 이름을 지었다. 또한 인근의 가르니에 있는 왕궁을 눈부시게 풍요로운 기둥과 기념물로 장식했으며, 로마식 목욕탕도 갖췄고, 조로아스터교 사원을 건설했다. 아르메니아는 그의 치세 동안 로마와 파르티아 간의 완충국이자 로마에 진심으로 충성하는 동맹국으로서 번영을 구가했다. 72년 알란족이 아르메니아와 메디아 아트로파테네를 침략하여 재물을 약탈했을 때, 볼로가세스 1세가 베스파시아누스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일로 양국의 관계가 한동안 소원해졌던 적이 있었지만, 티리다테스의 위상에 별다른 타격이 가해지지 않았다.

티리다테스는 서기 428년까지 존속한 아르샤쿠니 왕조의 창시자로 간주된다. 실제로는 12년 보노네스 1세가 아르메니아 왕을 자처하면서 시작됐지만, 다수의 역사가들은 정세 혼란이 극심했던 아르메니아에 장기적인 왕조를 세운 그가 실질적인 창건자라고 여긴다. 88년 사망 후 사나투르케스가 등극해 나라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