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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샤쿠니 3대 샤 𐭅𐭓𐭅𐭃 | 오로데스 | ||
제호 | 한국어 | 오로데스 |
파르티아어 | 𐭅𐭓𐭅𐭃 | |
영어 | Orodes | |
존호 | 샤 | |
생몰 년도 | ? ~ 42년 | |
재위 기간 | 37년 ~ 4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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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 아르샤쿠니 왕조 3대 샤.2. 생애
파르티아 샤한샤 아르타바노스 2세의 아들이다. 34년 아르메니아 왕 아르탁세스 3세가 사망하자, 아르타바노스 2세는 장남 아르사케스 1세를 아르메니아 왕으로 선포하고 그에게 대군을 맡겨 아르메니아로 보냈다. 그러나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파르티아가 로마의 아르메니아 왕 선임권을 인정해놓고 또다시 아르메니아 왕위를 노리는 것에 분개하여 시리아 총독 루키우스 비텔리우스에게 반격하라고 명령했다.비텔리우스는 이베리아 왕자 미트리다테스를 왕으로 세우기로 했다. 이에 이베리아인들이 호응하여 중앙 유라시아 출신의 유목민족들을 용병으로 기용하여 아르메니아로 진격했다. 또한 비텔리우스는 3군단 갈리카, 6군단 페라타, 10군단 프레텐시스, 12군단 풀미나타에게 파르티아와의 일전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던 35년 아르사케스 1세가 돌연 사망했다. 하인들이 미트리다테스의 사주를 받고 그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사실 여부는 불명확하다. 오로데스는 소문이 사실이라 믿고 하인들을 처형했다.
아르사케스 1세의 사망으로 미트리다테스가 아르메니아 왕에 오르자, 아르타바노스 2세는 오로데스를 아르메니아 왕으로 세우고자 아르메니아에 대규모 원정군을 파견했다. 하지만 미트리다테스는 알바니아인 및 사르마티아 지원군과 함께 이들을 물리쳤다. 그 사이에 비텔리우스의 군대가 유프라테스 강 너머의 파르티아 영토에 군대를 진주시켰고, 파르티아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크테시폰에서 티리다테스 2세를 왕위에 올렸다. 결국 아르타바노스 3세는 티리다테스 2세와 내전을 치러야 했고, 미트리다테스는 그 사이에 아르메니아를 수월하게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37년 3월 16일 티베리우스 황제가 붕어한 후 새 황제가 된 칼리굴라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미트리다테스를 폐위시켜 로마로 소환했다. 마침 내전을 수습하고 파르티아 전역을 장악한 아르타바노스 2세는 이때를 틈타 오로데스를 아르메니아 왕에 앉혔다. 이후 시리아 총독 루키우스 비텔리우스와 아르타바노스 2세가 유프라테스 강둑에서 만나 협상했다. 협상 결과, 파르티아는 로마와 동등한 주권을 갖는 걸 인정받고 오로데스의 집권을 인정받았으나 아르메니아 왕이 로마를 섬겨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이에 더해 다리우스라는 이름의 왕자를 로마에 인질로 보내야 했다.
오로데스가 아르메니아 왕으로서 어떤 통치를 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으며, 42년 사망한 원인도 알 수 없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는 오로데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트리다테스를 아르메니아 왕위에 복위시켰다. 당시 파르티아는 내란에 시달리고 있어서 로마의 조치에 별다른 항의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