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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년 ~ 882년-899년 동유럽 지도.[1] 보라색 선 안의 영역이 루스 카간국이다. 파란색 선은 튀르크계 하자르 칸국이고, 좌•우의 주황색 선은 튀르크계 불가르족이다.
1. 개요
루스 카간국은 현대의 역사학자들이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 ~ 중반까지 오늘날의 유럽 러시아[2] 지역에 존재했던 정체(政體)를 가리키는 말이다.[3] 류리크 왕조가 지배한 키예프 루스의 전신이었으며, 현재의 러시아 북부에 있는 국가 또는 도시국가 연합이었다.
2. 역사
루스인이라고 불리는 자들과 노르드인(Northmen) 또는 바랑인이라고 불리는 바이킹이 건국한 국가였다.[4] 카간은 고대 튀르크어로 왕이라는 뜻이었다.당대의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루스 카간국은 루스인들의 단일국가 혹은 도시국가 연합으로 여겨진다. 기록에 따르면 루스인들의 지도자는 돌궐(쾩튀르크) 군주의 칭호인 '카간'을 칭했다고 한다. 당대 이 지역에는 루스인들 외에도 발트인, 슬라브인, 핀인, 튀르크인, 마자르인, 노르드인(고대 스칸디나비아인) 등이 살았으며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바랑기아인(바랑인)이 활동했다. 키예프 공국의 《원초 연대기》에는 루스 카간국을 구성한 네 민족으로 크라비치족[5], 일멘의 슬라브족, 벱스족[6] 그리고 바이킹족을 꼽고 있다.
8세기에서 9세기까지의 루스 카간국에 대한 기록을 담은 역사서로는 주로 페르시아와 아랍의 지리서 및 유럽의 역사서[7], 그리고 키예프 대공국의 연대기들이 있다. 연대기는 여러 가지 신화와 설화가 실제 역사와 섞여 있거나, 비유적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연대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루스 카간국에 대한 역사 해석도 천지차이 수준으로 달라질 수 있다.
루스는 땅도 촌락도 경작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오로지 흑담비를 비롯한 모피 판매 영업을 할 뿐이다. 루스인들은 슬라브인들의 땅을 습격하고, 사람들을 노예로 잡은 다음에 아틸[8]이나 불가르[9]에게 이들을 판다. 루스인은 아들을 낳으면 아버지가 된 자는 칼집에서 검을 꺼내어 아들 앞에 놓아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너에게 아무 재산도 남겨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단지 너의 검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9세기 페르시아인 여행자 아흐마드 빈 루스타 이스파히니
-9세기 페르시아인 여행자 아흐마드 빈 루스타 이스파히니
3. 군주
키예프 루스가 된 시점부터 과연 카간이란 칭호를 사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페르시아의 역사서에는"위대한 류리크는 왕이자 카간"
이라는 기록이 있어 류리크 2세까지는 카간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나 추측되기도 한다. 페르시아 역사서에서 묘사하는 루스 카간국은 마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대해서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838년에 루스 카간국에서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노르드인들로 이루어진 사신단을 파견했는데, 이들이 돌아갈 때 마자르족(헝가리인)의 공격을 피해서 프랑크 왕국을 경유했다. 그때 신성 로마 황제가 그들의 정체를 묻자 자신들을 노르드인(Northmen)으로 칭했다고 하며, 적어도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도 한 곳은 카간국이라고 칭하는 국가가 있지 않았나 추측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아니라면 그 지역이 지금의 러시아의 노브고로드라는 설이 있다. 동로마와 프랑크가 동맹을 맺었을 때 동로마 황제 미하일 1세 랑가베스가 자칭 로마 황제(프랑크 왕) 루도비쿠스 1세에게 로마 황제는 한 명뿐이라며 비난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이때 쓰여진 내용 중에 고 되어 있다. 이때 프랑크 왕의 답신은
"아바르에선 왕을 '카간'이라 부른다고 익히 들었지만 하자르와 노르드의 카간은 처음 듣는 일이다."
라고 했다. 루스 카간이란 8세기~9세기 사이에 불리던 이름이며, 9세기 이후부터는 등장하지 않는데, 튀르크계 하자르 카간국과 관련성이 있다고 주장한다.4. 관련 문서
[1] 영어 위키백과 출처. https://en.m.wikipedia.org/wiki/Rus'_Khaganate[2] Европейская часть России. 현 러시아 연방의 우랄 산맥 이서 지역[3] 영어 위키백과 출처. 이하 해당 문단 영어 전문: The Rus' Khaganate is the name applied by some modern historians to a polity that was postulated to exist during a poorly documented period in the history of Eastern Europe, roughly the late 8th and early-to-mid-9th centuries AD. https://en.m.wikipedia.org/wiki/Rus'_Khaganate[4] 그러나 노르드설을 반대하는 러시아 역사학자들도 많다.[5] 고대 슬라브족의 일파[6] 라도가 호 근처에 사는 핀계 민족. 오늘날에도 라도가 호수를 중심으로 6,000여 명이 남아 있다.[7] 주로 동로마 제국의 역사서[8] 튀르크계 하자르 칸국의 수도. 오늘날의 아스트라한[9] 오늘날의 카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