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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틀리 왕국 8대 군주 ლუარსაბ | 루아르사브 2세 | ||
제호 | 한국어 | 루아르사브 2세 |
조지아어 | ლუარსაბ | |
라틴어 | Luarsab II | |
가족 | 기오르기 10세(아버지) 마리암(어머니) 다비트(동생) 엘레네(누이) 호라샨(누이) 티나틴(누이) | |
생몰 년도 | 1592년 ~ 1622년 | |
재위 기간 | 1606년 ~ 161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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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르틀리 왕국 8대 군주.2. 생애
카르틀리 왕국 7대 군주 기오르기 10세와 밍그렐리아 공국의 공작 기오르기 다디아니의 딸 마리암의 장남이다. 누이로 엘레니, 호라산, 티나틴이 있었다. 1606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아바스 1세로부터 카르틀리의 새 군주로 선임되었다. 1609년 트빌리시 총독 기오르기 사카제와 함께 잘랄 파샤가 지위하는 크림 타타르군이 오스만군과 합세하기 전에 타시스카리에서 요격해 괴멸시켰다. 1610년 사파비 제국으로 들어가서 아바스 1세에게 경배드리고 공물을 바쳤고, 아바스 1세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트빌리시를 그에게 돌려줬다.1610년, 그는 기오르기 사카제의 누이인 마크리나와 결혼했다. 그러나 본래 평민 출신이었던 사카제의 누이를 아내로 삼은 행위에 반감을 품은 대귀족들이 강한 압력을 행사하자, 그는 어쩔 수 없이 마크리나와의 결혼을 무효로 처리하고 밍그렐리아 공작의 딸과 약혼했다. 이후 샤디만 바라타슈빌리를 대표로 하는 대귀족들의 강력한 통제를 받아야 했다.
1613년 카헤티 왕국의 테이무라즈 1세가 그의 누이인 호라산과 결혼했다. 아바스 1세는 이 소식을 듣고 카헤티 왕국과 카르틀리 왕국이 힘을 합쳐서 이란에 도전할 수도 있다고 여기고 경계했다. 얼마 후 아바스 1세가 두 왕을 사냥 연회에 초대했다. 그러나 그와 테이무라즈 1세 모두 아바스 1세가 자신들을 해칠까 두려워하여 불참했다. 1614년 초, 아바스 1세는 불순종하는 봉신을 처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카르틀리와 카헤티 왕국을 침략했다. 두 왕은 이메레티 왕국으로 피신한 뒤 항전을 이어갔다.
1615년, 아바스 1세가 용서해줄 테니 복귀하라고 권유했다. 테이무라즈 1세는 이를 의심해 응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를 믿고 돌아갔다. 그러나 곧 체포된 뒤 아스트라바드에 수감되었고, 이슬람교 개종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거부한 끝에 1619년부터 쉬라즈 요새에 수감되었다. 1622년 6월 21일 아바스 1세의 명령으로 활시위에 목이 졸려 죽었다. 이후 다비트 11세의 아들 바그라트 7세가 아바스 1세에 의해 카르틀리 왕으로 선임되었다. 조지아 정교회는 그를 순교자로 여기고 성인으로 시성했으며, 6월 21일을 축일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