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9 13:56:11

루이지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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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루이지 1세와 조반나 1세.jpg[1]
Luigi I
가문 앙주 왕조
출생 1320년
나폴리 왕국 나폴리
사망 1362년 5월 26일 (향년 41~42세)
나폴리 왕국 나폴리
재위
기간
나폴리 왕국 국왕 1352년 ~ 1362년
프로방스와 포르칼퀴에 백작 1352년 ~ 1362년
아버지 타란토 공 필리포 1세
어머니 카트린 2세
계모 타마르 앙겔리나 콤니니
친형제 마르게리타, 로베르토, 필리포 2세
이복형제 카를로, 잔, 필리포, 마리아, 베아트리체, 비앙카
배우자 조반나 1세
자녀 카타리네, 프랑수아즈
종교 로마 가톨릭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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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폴리 왕국 제5대 국왕. 아내 조반나 1세와 함께 나폴리 왕국을 공동으로 다스렸다.

2. 생애

1320년경 나폴리 왕국의 수도 나폴리에서 타란토 공작 필리포 1세와 발루아 백작 샤를의 장녀인 카트린 2세 여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나폴리 국왕 카를로 2세와 헝가리의 마리어의 친손자이며, 외조부는 발루아 백작 샤를이고, 외조모는 라틴 제국의 명목상 황제인 필리프 1세의 딸인 카트린 1세 여제였다. 1342년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기사단으로 손꼽히는 성묘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되었고, 1346년 형제 로베르토[2]가 라틴 제국의 명목상 황제가 되었을 때 아버지로부터 타란토 공국을 물려받았다.

그는 십대 때부터 조반나 1세와 관계를 맺었다. 그녀는 헝가리-크로아티아 국왕 카로이 로베르트의 차남인 언드라시와 결혼했지만, 어린 왕자에게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자 그를 제쳐놓고 루이지와 간통했다. 그러던 1345년 9월 18~19일, 여러 암살자가 아베르사에서 사냥한 후 휴식 중이던 언드라시를 습격해 목졸라 죽였다. 이 사건에 깊이 관여했던 루이지는 1347년 8월 22일 조반나 1세와 결혼하고 조반나 1세의 여동생 마리아의 남편인 두라초 공작 카를로와 함께 나폴리 왕국의 공동 수호자가 되었다.

1347년 11월 동생 언드라시의 사망에 분노한 헝가리-크로아티아 국왕 러요시 1세가 나폴리 왕국 침공을 감행했다. 루이지는 나폴리군을 이끌고 이에 맞섰지만 연전연패했고, 1348년 1월 11일 러요시 1세의 본대가 베네벤토에 입성했다. 이에 조반나 1세는 1348년 1월 15일 몇몇 측근과 함께 갤리선 2척을 타고 마르세유로 도주했고, 루이지는 다음날 다른 갤리선을 타고 아내를 따라갔다. 이리하여 러요시 1세는 나폴리 왕국을 손쉽게 공략했지만, 이후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겠다며 여러 귀족을 체포해 가혹한 고문을 가하고 백성들을 학살했다가 이에 반발한 귀족과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고, 중세 흑사병이 도래하여 병사들이 대거 죽어가자 1348년 5월 헝가리로 철수했다.

러요시 1세가 나폴리를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반나 1세는 7월 21일 아비뇽을 떠나 마르세유에 잠시 머물다가 7월 30일 사나리수르메르, 7월 31일 브레간송 요새로 이동한 후 1348년 8월 17일 나폴리로 향했다. 러요시 1세는 떠나기 전에 울리히 볼프하르트(Ulrich Wolfhardt)를 나폴리 총독으로 임명했지만, 울리히는 조반나 1세가 9월에 나폴리로 귀환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폴리에 돌아온 그녀의 권력은 이전보다 훨씬 약화되었다. 1349년 초부터 나폴리 왕국의 모든 문서에는 그녀와 남편 루이지의 이름이 동시에 새겨졌으며, 모든 군사 요새와 군대는 루이지의 통제를 받았다. 왕국에서 발행된 동전들 역시 루이지의 이름이 조반나의 이름보다 우선적으로 새겨졌다. 이렇듯 권세가 갈수록 강해진 루이지는 조반나 1세의 지지자들을 궁정에서 축출했다. 특히 조반나 1세가 마르세유로 망명했을 때 함께 따라가는 등 여왕의 곁에 항상 함께 있어서 여왕의 애인이란 소문에 휩싸였던 엔리코 카라촐로를 처형했다.

1350년 4월, 러요시 1세가 또다시 이탈리아로 친정했다. 그는 바를레타(Barletta)에서 용병들의 반란을 진압한 뒤 각지를 진군하며 약탈과 파괴를 자행해 누구도 감히 원정을 방해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민중은 이에 두려움을 품긴 커녕 격렬하게 저항했고, 원정은 갈수록 힘겨워졌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병사들을 독려했고, 요새를 공략할 때 친히 사다리를 타고 기어올라갈 정도로 분투했다. 8월 3일 나폴리 왕국의 핵심 요새인 아베르사가 함락되자, 조반나 1세는 또다시 나폴리에서 마르세유로 망명했다. 그러나 아베르사를 공략하던 중 왼쪽 다리에 화살이 박혀 중상을 입은 데다, 주민들의 저항이 갈수록 심해지고 군자금이 바닥나서 더 이상 원정을 이어갈 수 없었던 러요시는 헝가리로 철수했다.

그 후 러요시는 교황청의 중재에 따라 나폴리 왕국과 평화 협약을 맺기로 했다. 교황청은 러요시에게 조반나 1세가 언드라시 암살 사건에 얼만큼 관여했는지를 다시 조사하겠다고 약속했고, 러요시는 헝가리로 끌고 갔던 공작들을 풀어주는 대가로 30만 플로린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러요시 1세는 여전히 자신을 살레르노의 공작이자 산탄젤로의 영주라고 칭하며, 조부인 카로이 마르텔 이래로 나폴리 왕국에 지분이 있음을 과시했다. 그러나 교황청의 언드라시 암살 사건 조사는 얼마 안가 흐지부지되었다.

1352년 3월 23일, 루이지는 교황 클레멘스 6세로부터 나폴리의 공동 왕이라는 인정을 받은 뒤 5월 27일 브라가 대주교의 주관하에 루이지 1세로서 조반나 1세와 함께 나폴리 왕관을 썼다. 1356년 루이지 1세와 조반나 1세는 시칠리아 탈환 전쟁을 단행했다. 루이지 1세가 이끄는 나폴리군은 메시나에 상륙해 시칠리아 내륙으로 진격했다. 프리드리히 4세는 카타니아로 후퇴한 뒤 그곳에서 나폴리군을 상대로 농성전을 벌였다. 얼마 후 카탈루냐 출신 귀족들이 동원한 용병대가 나폴리군을 격파했고, 아시레알레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나폴리 함대가 시칠리아 함대에게 참패했다. 결국 루이지 1세는 잔여 병력을 수습한 뒤 나폴리로 철수했다. 1357년 7월 13일, 아르노 드 세르볼레의 용병부대가 두랑 강을 건너 프로방스를 약탈했다. 루이지의 동생이자 조반나 1세의 여동생 마리아의 세번째 남편인 타란토의 필리포 2세는 프로방스 총대리로서 이들과 맞섰다. 그는 아르마냐크 백작의 지원을 토대로 이들을 몰아붙인 끝에 격퇴했다.

1362년 4월, 루이지 1세는 목욕하던 중 감기에 걸렸다. 그의 병세는 한 달간 악화되다가 1362년 5월 25일에 병사했다. 그리하여 권력을 되찾은 조반나 1세는 남편의 심복들을 궁정에서 내쫓고 자신의 사람들을 선임했다. 이후 그녀는 두 차례 더 결혼하면서도 남편들에게 추호도 권력을 주지 않고 국가를 홀로 이끌었다.

3. 가족 관계

  • 외조부: 발루아 백작 샤를: 또한 라틴 제국 공동 황제
  • 외조모: 카트린 1세: 라틴 제국 여제
  • 친조부: 카를로 2세: 나폴리 국왕
  • 친조모: 헝가리의 마리어
  • 아버지: 타란토 공 필리포 1세: 또한 라틴 제국 공동 황제 필리프 2세
  • 친모: 카트린 2세: 라틴 제국 여제
  • 친형제
    • 마르게리타: 안드리아 공작 프란치스코와 결혼.
    • 로베르토: 명목상 라틴 제국의 황제 로베르.
    • 타란토 공 필리포 2세: 타란토와 아카이아 공, 명목상 라틴 제국의 황제 필리프 3세.
  • 계모: 타마르 앙겔리나 콤니니: 이피로스 전제군주국데스포티스 니키포로스 1세 콤니노스 두카스와 동로마 황제 미하일 8세의 조카딸 안나 팔레올로기나 칸타쿠지니의 딸.
  • 이복형제
    • 카를로: 루마니아의 대리 통치자. 1315년 피사군과 맞붙은 몬테카티니 전투에서 전사함.
    • 잔: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의 국왕 오신과 결혼. 1320년 오신이 사망한 후 아들 레븐 4세의 섭정을 맡은 코리코스의 오신과 재혼.
    • 필리포: 루마니아의 데스포티스.
    • 마리아: 컨버사노의 수녀원장
    • 베아트리스: 아테네 공국의 공작 발터 6세와 결혼.
    • 비앙카: 아라곤 왕국의 국왕 후견인인 라몬 베렝케르와 결혼.
  • 배우자: 조반나 1세
    • 카타리네: 요절.
    • 프랑수아즈: 요절.


[1] 삼위일체 앞에서 무릎을 꿇은 루이지 1세와 조반나 1세. 나폴리 산 로렌초 마조레 성당 보관[2] 이탈리아어 이름은 '로베르토', 프랑스어 이름은 '로베르'로, 다 같은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