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21 18:04:49

루키우스 코엘리우스 안티파테르

이름 루키우스 코엘리우스 안티파테르
(라틴어: Lucius Coelius Antipater)
출생 미상
사망 기원전 121년 이후
직위 수사학자, 역사가

1. 개요2. 행적3.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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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의 수사학자, 역사가.

2. 행적

그의 기원과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지만, 그리스에 수사학을 배우러 간 로마 젊은이들을 제자로 둔 점을 볼 때 그리스 출신 수사학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제자 중에는 마리우스와 술라의 시대에 활약한 유명한 정치가이자 웅변가인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있었으며,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스승이자 문헌학자인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스틸로 프라이코니누스가 그의 친구였다. 그는 친구 스틸로에게 제2차 포에니 전쟁에 관한 역사서를 헌정하면서 가이우스 그라쿠스의 죽음(기원전 121년)을 언급했다. 이로 볼 때 그는 기원전 121년 이후에도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3. 저서

그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진행 과정에 관한 7권의 책을 집필했다. 첫번째 책에서는 전쟁 개시 후 칸나이 전투까지 한니발 바르카가 승승장구한 이야기를 다뤘으며, 2번째 책에서는 칸나이 전투 후 기원전 210년까지의 사건들을 다뤘고, 3권부터 5권까지는 기원전 210년부터 기원전 205년 동안의 전쟁 과정을 묘사했으며, 여섯번째 책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아프리카 원정을 다뤘고, 마지막 7번째 책은 기원전 201년의 사건과 평화 협정 체결을 다뤘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은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 등 후대 역사가들의 여러 저서에 70개 이상의 단편이 실렸다. 그는 제2차 포에니 전쟁 이전의 사건들이나 종전 직후에 일어난 사건들을 서술하지 않고 전쟁 과정 자체만 기술했다.

그는 문학 스타일 및 이야기를 다채롭게 쓰는 방식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현재 시제를 사용했으며, 다양한 시적 표현을 활용했고, 문장을 짧은 단락들이 연이어 이어지는 방식으로 썼다. 그러면서 한니발이 신들에게 이탈리아 원정을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는 꿈을 꿨다, 하밀카르 바르카와 사위인 '잘생긴 하스드루발'이 동생애 관계였다는 등 수많은 검증되지 않은 일화와 괴물에 대한 이야기, 여러 도시와 지리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에 함께 실었다. 또한 트라시메누스 호수의 전투에서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가 한니발에게 패한 것은 플라미니누스가 신의 경고가 담긴 징조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등. 신들이 인간사에 자주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키케로는 그가 로마 역사가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서술 방식을 사용했으며, 사실을 건조하게 열거한 데서 그치지 않고 문학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전달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칭찬했다. 또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크리스푸스의 역사서보다 안티파테르의 책의 서술 방식이 훌륭하다고 주장했다. 리비우스, 플루타르코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프론티누스, 디오 카시우스 등 여러 후대 역사가들이 제2차 포에니 전쟁을 다룰 때 그의 작품을 참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