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4f1b87> | FC 안양 2024 시즌 스쿼드 |
'''1 이윤오 · 2 김민호 · 3 변준영 · 4 이창용 C · 5 김영찬 · 6 박종현 · 7 마테우스 · 8 김정현 · 9 니콜라스 10 야고 · 13 한가람 · 14 홍창범 VC · 15 박정훈 · 16 최규현 · 17 유정완 · 18 이동현 · 19 김운20 임승겸 · 22 김동진 VC · 23 이민수 · 28 문성우 · 31 김다솔 · 32 이태희 · 33 이재용 · 36 주현재 37 리영직 · 41 김성동 · 44 야치다 · 45 전승민 · 71 채현우 · 77 최성범 · 94 한의권 · 99 주현우''' |
유병훈 · 김연건 · 최익형 · 주현재 · 장석민 |
※본 문서는 간소화한 것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타 구단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
FC 안양 No. 37 | ||
리영직 李栄直 | Ri Yong Jik[1] | ||
<colbgcolor=#4f1b87><colcolor=#fff> 출생 | 1991년 2월 8일 ([age(1991-02-08)]세) | |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 ||
국적 | 조선적 (일본 특별영주자) | |
신체 | 187cm / 75kg | |
포지션 |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 |
주발 | 오른발 | |
학력 | 히가시오사카 조선중급학교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2006~2008) 오사카상업대학 (2009~2012) | |
선수 | 도쿠시마 보르티스 (2013~2014) V-파렌 나가사키 (2015~2016) 카마타마레 사누키 (2017) 도쿄 베르디 (2018~2019) FC 류큐 (2020~2022) 이와테 그루야 모리오카 (2023) FC 안양 (2024~ ) | |
국가대표 | 23경기 1골 (북한 / 2015~2019) | |
SNS |
[clearfix]
1. 개요
재일 조선인 4세 출신의 축구선수.현재 K리그2의 FC 안양 소속이며 조선적[2]으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한동안 선출되었던 선수이다.
2. 클럽 경력
2.1. 프로 이전
초등학교 시절 오사카 지역 클럽에서 축구에 입문하였다. 오사카상업대학에 진학하자마자 계속 선발로 출전하면서 대학 마지막 학년 때 부주장을 맡기도 하였다.2.2. J리그 무대
2013년 대학 졸업 후 도쿠시마 보르티스에 입단하여 그 해 3월 24일 FC 기후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교체 출전함으로써 J리그 첫 출전을 하게 된다. 2014년 4월 26일 알비렉스 니가타 전에서 J리그 첫 골을 기록하는 등 총 10경기 1골로 시즌을 마쳤다.2015년, 경기 출전을 위해 V-파렌 나가사키으로 이적하여 두 시즌 동안 49경기 5골 3도움을 기록했다.
2017년, 카마타마레 사누키로 이적해 24경기 2골을 기록하고, 이듬해 2018년에 도쿄 베르디로 다시 이적해 57경기 10골 3도움의 성적을 냈다. 특히 2018 시즌에는 리그 4골, 컵대회 2골로 시즌 6골을 기록하는 등 공격력을 더욱 뽐냈다.
2020년 이전부터 재일교포 선수와 인연이 많았던 FC 류큐에 이적하여 3년간 91경기 1골 1도움을 기록하였다. 이 때부터 미드필더와 수비를 오가며 좀 더 수비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2023년 J3리그의 이와테 그루야 모리오카로 이적하여 여기서는 도합 30경기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J리그 통산 261경기에 출전해 20골 8도움을 기록하였다. 비록 2014 시즌 도쿠시마 보르티스에서 짧게 J1리그를 경험한 뒤엔 1부리그에서 계속 뛰지는 못했지만, 커리어 내내 J2리그 구단을 여럿 경험하며 매 시즌 30경기 가까운 경기수를 소화한 내구성이 돋보이는 커리어를 쌓았다.
2.3. FC 안양
2.3.1. 2024 시즌
2023 시즌을 마치고 이와테와 계약이 종료된 후 한국 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FC 안양과 계약에 근접했다가 없던 일이 되고 전남 드래곤즈의 테스트에 탈락하는 우여곡절을 거쳐(# 3월 7일 FC 안양 입단이 발표되었다.# 북한 대표팀 출신자로는 량규사, 안영학, 정대세, 안병준에 이어 다섯 번째로 K리그에 진출하였다.FA컵 2라운드 시흥시민축구단과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든든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준수한 수비력을 보여줬고, 이후 4라운드 서울 이랜드 FC 경기부터 수비형 미드필더로 지속 출장하고 있다.
9라운드 전남 드래곤즈 원정경기에서 전반 15분 엄청난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이자 데뷔골을 터트렸다.#
35라운드 부산 아이파크 홈경기는 주전 센터백 이창용과 김영찬이 모두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센터백으로 기용되었다. 후반전 74분 팀의 네번째 득점인 헤더 골로 팀의 4:1 승리에 기여했다.
3. 국가대표 경력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의 북한 대표팀에 선출되어 전 경기에 풀타임 출전했다. 이 활약으로 당시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는데 결승상대는 개최국 대한민국. 양 팀 모두 팽팽한 경기를 했으나 후반 막판 추가시간에 이용재가 날린 발리슛이 골대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손을 쓰면서까지 막고자 북한판 신의 손을 시전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걷어낸 공이 임창우 앞에 떨어져 결승골로 이어지고 결국 은메달을 맞이하게 되었다.[3]2015 AFC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으로 선출되어 조별예선 첫 경기의 우즈베키스탄전에서 A매치를 데뷔했다. 첫 경기는 1실점으로 나름 수비에 분투했지만, 2차전 사우디전에선 또다시 신의손을 시전하여 PK를 헌납하고 퇴장하게 되어 팀의 대패에 일조하게 된다. 이로 인해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은 3연패를 당하며 조별 리그 탈락이 확정되었다.
2017 EAFF E-1 풋볼 챔피언십에서도 선발되어 모든경기를 출전하였다. 1차전인 일본전에서는 예상과 다르게 선전했지만 추가시간에 골키퍼 리명국의 시야를 가려 결국 실점하였다. 2차전인 대한민국전에서는 리영철이 자책골을 넣어 패배했다. 3차전이 중국전에서도 선발출전하여 무승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북한은 4등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9 AFC 아시안컵에도 선발되어 조별리그 세 경기 모두 출전했으나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전체가 저번 대회 때보다 더 실력이 떨어져 3전 대패를 당하며 바로 짐을 쌌다.
2019년 10월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치러진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남북전에서도 선발 출전하였으며, 당시 경기중 벌어진 남북 선수들간의 충돌 당시 북한선수 중에서 유일하게 다툼을 말렸다고 한다.
이후 2019년을 마지막으로 북한 국가대표팀에는 차출이 되지 않았다. 2024년 3월 월드컵 2차 예선 일본전에는 차출 제의가 왔으나 소속팀이 없어 컨디션이 떨어지는 이유로 본인이 고사했다.#
4. 플레이 스타일
187cm의 키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체구를 지녔으며, 주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모두 소화하는 자원이다. 최종 수비 라인의 보호 뿐만 아니라 탁월한 볼키핑과 패스로 빌드업 시발점의 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중거리 슈팅 능력도 있어 소위 한방을 갖춘 선수.그러나 경합 과정에서 손을 사용하는 표가 나는게 단점이다. 2024년 리그 초반부터 퇴장 위기[4]와 PK 허용[5]을 저질렀지만 김다솔의 선방으로 구사일생했다.# 2024 시즌에는 공동 2위에 해당하는 7회 경고를 받았을 정도.
5. 기록
5.1. 대회 기록
6. 여담
- 이전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몇 안되는 조선학교 출신 재일교포로 대표팀에서도 다른 북한 선수들과는 달리 확연히 눈에 뛰었는데, 일반 북한 선수들은 다 군인처럼 투박한 머리를 하고 있던 반면 혼자서만 독특한
자본주의헤어스타일을 보여주었다.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당시 결승전까지 뛰면서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 나중에 한국에서도 꼭 뛰어보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는데 #, 이후 무려 10년이 지난 2024년 FC 안양에 입단하면서 결국 현실이 되었다.
- 수비적인 포지션을 주로 소화하는 선수이지만 J리그 시절에는 7번, 17번, 9번같은 공격적인 포지션을 상징하는 등번호를 주로 사용했다.[6]
- 일본 출신으로 한국에서 활약하는 조선적 선수라는 복잡한 배경 탓에 이름의 로마자 표기가 제각각이다. 가장 공식적인 형태인 북한 대표팀 명단(#) 표기는 Ri Yong Jik이나, J리그에서는 Lee Yon-Jick(류큐) 또는 Lee Yong Jick(이와테) 등으로 표기되었다.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 또한 이와테 표기와 같다. K리그에서는 대표팀과 같은 표기로 등록되었으나, 안양의 전광판 소개영상 표기는 Lee Young Jik으로 되어 있다. 한편 일본에서의 등록은 한자로 되어 있으나 발음 표기는 한 글자 줄여 'リ・ヨンジ'(리욘지)로 했다.
- 재일교포 4세대로서 일본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다 보니 한국어가 상당히 어눌하다. 그래도 한국 생활을 이어가면서 빠르게 많이 개선되어 상당히 자연스러운 수준으로 올라왔다.
- 안양 입단 후 일본 출신 팀 동료인 야치다 텟페이의 통역을 비롯한 전반적인 적응을 돕고 있다. (#구단 영상) 일본에서 같은 팀에 속한 이력은 없지만 야치다 입단 초기 일본어 통역 채용이 늦어져(채용 후에도 파트타임이어서 경기일에만 기용) 리영직이 역할을 맡았다. 이외에도 구단 공식 유튜브에서 포카리스웨트를 열심히 어필하며# 제조사 동아오츠카[7]와 안양의 후원 협약 체결에 기여하는 등 구단 홍보에도 일조하고 있다. # 그리고 23-24 시즌, 본인 발언대로 정말로 승격에 성공했다.
[1] 로마자 표기는 국가대표 명단 기준.[2] 안병준과 동일한 케이스로, 일본 제도상 무국적자로 취급된다. 단 북한 대표팀 선출로 여권을 취득한 만큼 북한에서는 해외 공민으로 취급이 되며, K리그 등록 또한 북한 국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리그 선수 규정<제5조 ④3> 외국 국적을 보유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외국 거주 동포>상 내국인으로 취급되어 외국인 쿼터를 차지하지는 않는다.[3] 당시 이용재의 슈팅이 골라인을 넘었지만 주심과 부심은 이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주심은 리영직이 핸들링 반칙을 범하는 것은 눈으로 직접 확인했고, 세컨드 볼을 임창우가 차지해 슈팅으로 이어가자 어드밴티지를 주었지만 휘슬은 입에 물고 있었다. 여기서 임창우가 만약 골을 넣지 못했더라도 페널티킥이 선언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결승골이 터지자 북한 선수들은 단체로 페널티킥을 왜 안 주냐고 주심에게 항의를 했다. 이미 먹힌 골보다 낮은 확률로라도 막을 기회가 있는 페널티킥을 수비 쪽에서 어필한 아이러니한 경우이다.[4] 6라운드 부천 FC 1995전. 다만 주심의 감정적인 판정으로 VAR 의견청취 후 취소되었다.[5] 7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전[6] 순서대로 7번은 나가사키, 17번은 사누키와 도쿄, 9번은 류큐에서 달았고 모리오카에서 다시 17번을 달았다. 심지어 도쿄에서는 17번을 달고 2시즌 동안 10골을 넣었을 정도로 득점력도 좋다.[7] 리영직의 친정팀인 도쿠시마 보르티스의 모기업이 오츠카제약이다. 심지어 홈 경기장 이름도 포카리스웨트 스타디움이다. 여기에 동아오츠카의 본사 및 공장이 경기도 안양에 있으니 리영직 입장에서는 제대로 홍보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