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6:04

리키 루비오/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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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수 경력
1.1. DKV 호벤투트1.2. FC 바르셀로나 바스케트1.3.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1.3.1. 2011-12 시즌1.3.2. 2012-13 시즌1.3.3. 2013-14 시즌1.3.4. 2014-15 시즌1.3.5. 2015-16 시즌1.3.6. 2016-17 시즌
1.4. 유타 재즈
1.4.1. 2017-18 시즌1.4.2. 2018-19 시즌
1.5. 피닉스 선즈
1.5.1. 2019-20 시즌
1.6.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2기1.7.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1.8. 유로 리그 복귀
1.8.1. FC 바르셀로나 바스케트 2기1.8.2. DKV 호벤투트 2기
1.9. 국가대표
1.9.1. 2005 FIBA 유럽 U-16 챔피언십1.9.2. 2006 FIBA 유럽 U-16 챔피언십1.9.3. 2007 FIBA 유럽 U-18 챔피언십1.9.4. 2008 베이징 올림픽1.9.5. 2009 유로바스켓 폴란드1.9.6. 2010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터키1.9.7. 2011 유로바스켓 리투아니아1.9.8. 2013 유로바스켓 슬로베니아1.9.9.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1.9.10.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1.9.11. 2017 유로바스켓 핀란드·이스라엘·루마니아·터키1.9.12. 2019 FIBA 농구 월드컵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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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수 경력

1.1. DKV 호벤투트

2005-06 시즌 리가 ACB의 명문 호벤투트에 데뷔했다. 14세 11개월로 역대 최연소 데뷔 기록이며, 첫 시즌에는 10경기 7.9분으로 아주 가끔 나오며 경험을 쌓았지만 U-16 국가대표를 다녀온 후 입지를 넓히기 시작했다.

ACB와 유로리그에서 백업 선수로 유로리그 최연소 데뷔 역대 5위, ACB에서 스틸 1위와 함께 FIBA 유럽 올해의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2007년을 시작으로 3년 연속 수상했다.

2007-08 시즌부터 스페인 내에서도 최상위 급의 가드로 거듭난다. ULEB 컵 우승에 기여하고 효율은 좋지 않았지만 평균 득점도 10점을 넘기며 올리가 ACB 팀에도 선정됐다. 그리고 18세에 2008 베이징 올림픽 명단에 포함되며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2008-09 시즌엔 스틸왕과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한 뒤 그대로 NBA 드래프트에 참여했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는 루비오를 원했다. 당시 미네소타는 6순위 지명권이 있었는데, 이때 루비오에 대한 평가는 못해도 5순위 안이었다. 따라서 애매한 6순위 지명권으로는 지명이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는지, 5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워싱턴 위저즈와 협상을 벌여 저 지명권을 가지고 오는데 성공했다. 미네소타는 마이크 밀러와 랜디 포이를 내주었고, 워싱턴으로부터는 이탄 토마스와 올렉세이 페체로브, 그리고 다리우스 송가일라를 받아왔다.

5순위 지명권을 받아온 미네소타는 루비오의 이름이 4순위 때까지 불리지 않자, 당연히 리키 루비오를 지명했다. 근데 여기서 또 불안했는지 바로 다음 6순위 지명권으로 시라큐스 대학의 포인트 가드 쟈니 플린[1]을 지명했다.[2] 일종의 보험이었던 셈. 불안이 현실이 되었는지 루비오 측은 NBA에 곧바로 데뷔하기보다는 고국인 스페인 리그에서 경험을 좀 쌓고 오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그의 미국 무대 데뷔는 미뤄졌다.

여기에는 좀 말이 많은 편인데, 정확히는 원 소속팀이었던 DKV 호벤투트와의 바이아웃 협상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밖에도 별별소문이 많았다. 루비오의 미국측 에이전트인 덴 패건의 음모라느니, 멤피스 그리즐리스가 그를 노린다느니..

1.2. FC 바르셀로나 바스케트

ACB로 돌아간 루비오는 명문 FC 바르셀로나 바스케트와 계약하면서 두 시즌을 더 뛰었다.

첫 시즌 올리가 ACB 팀에 선정되고 코파 델 레이와 유로리그에서 우승했다. 2010-11 시즌에는 첫 ACB 우승, 코파 델 레이 2연패 등 커리어도 채우고 드디어 미국으로 향한다.

1.3.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1.3.1. 2011-12 시즌

미네소타는 루비오를 위해서 그를 집중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해서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 올릴만큼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팬들의 기대도 대단해서, 공항에서 그를 보기 위해 공항이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 루비오도 기자회견에서 팀 승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나타내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여기서 매직 존슨이 말했다는 득점은 한 명의 선수를 행복하게 하지만 패스는 두 명의 선수를 행복하게 한다.라는 명언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었다.

드디어 2011년 12월 26일.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벤치에서 출전했지만 길지 않은 시간동안 6득점 5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준수한 신고식을 했다. 그 날 르브론 제임스는 이 데뷔전을 보고, "루비오 패스 할 줄 아네!(Rubio can pass that rock!)"라고 감탄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3번째 경기인 마이애미 히트와이 경기에는 비록 팀은 졌지만 12득점 12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3경기만에 더블더블을 기록했고, 2012년 1월 13일에 뉴올리언스 호네츠와의 경기에서 마침내 주전으로 출전. 12득점 6리바운드 9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했다.

실제로 루비오가 벤치로 출발한 경기에서 미네소타는 3승10패를 기록했지만 루비오가 주전으로 출전한 경기에서는 4승2패를 기록했다. 앞으로는 계속해서 주전으로 출전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3월10일 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서 무릎이 뒤틀리는 심각한 부상을 당해 결국 시즌아웃 판정을 받아 남은 시즌을 뛸 수 없게 되었다. 지금 미네소타는 서부컨퍼런스 9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그야말로 사력을 다하고 있는 시점에서 루비오의 부상으로 비상이 걸리게 되었다. 시즌 마감 당시 스탯은 경기당 어시스트 8.2개, 경기당 스틸 2.2개로 각각 리그 5위 이내를 기록하였고 루비오가 시즌 아웃 된 이후 미네소타는 DTD를 시전하며 또 다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다.

1.3.2. 2012-13 시즌

2012년 12월 15일에 복귀했다. 57경기에 출전해 최종성적은 10.7점 4.0리바운드 7.3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부상을 딛고 준수한 기록을 찍었지만, 여전히 야투율은 개선이 안된 모습을 보였다. 이 시즌에 NBA 데뷔 이후 처음으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1.3.3. 2013-14 시즌

시즌이 시작되면서 미네소타가 소화한 경기에 전부 주전으로 출전중이다. 별 부상없이 건강하게 뛰고 있어서 미네소타 팬들을 안심시키고 있지만, 역시나 여전히 개선이 안 된 야투성공률이 문제.[3] 2014년 3월 9일 토론토 랩터스와의 홈경기에서 판정에 불만을 품고 울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3.4. 2014-15 시즌

시즌을 앞두고 케빈 러브가 떠난 와중에, 상술했다시피 막말로 완벽한 슛고자임에도 불구하고 팀에 맥시멈 계약을 요구하면서 까이고있다. 덤으로 농구 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고국인 스페인이 8강에서 탈락하면서 더 까이고있다.[4] 그래도 슛을 제외하곤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그런지 미네소타에서 맥시멈은 아니지만 연장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계약하기가 무섭게 발목 부상을 당하며 2개월 정도는 코트에 서지 못하게 되었다.

1.3.5. 2015-16 시즌

개막전에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상대로 커리어 하이인 28득점과 14어시스트를 적립하며 승리했다. 그 다음 슛은 잘 들어가지 않지맨 특유의 패스와 리딩으로 나름 잘 끌어가고 있는데 여기에 칼앤서니 타운스와 앤드류 위긴스 역시 잘해주면서 14-15시즌보단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1점 4.3리바 8.7어시 2.1스틸. 야투율 .374에 3점슛 .326 자유투 .847 루비오 개인으로는 커리어하이 TS%와 per을 기록했으나 플옵근처도 가지 못했으니 뭐...

거듭된 플레이오프 탈락에 지친 듯한 인터뷰를 하였다. 이 때문에 미네소타와의 결별은 시간문제로 예상되었고, 팀버울브스가 크리스 던이란 유망주 포인트 가드를 영입하며 기정사실화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몇차 례 트레이드 시도가 불발된 후에는 루비오의 트레이드는 없을 것이라 구단은 밝혔다.

1.3.6. 2016-17 시즌

팀에 2016드래프트 5순위 지명자 크리스 던이 합류하여 출장 시간과 역할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 예측되었고 프리시즌 때도 그러하였다. 그런데 정규시즌에서 던의 문제점들이 하나하나 드러니면서 다시 출장시간은 작년과 동일 수준으로 돌아갔다. 본인 또한 트레이드설이 돌자 꽤나 개선된 플레이를(특히 슈팅) 선보여주고 있어서 원래 슛이 안되는 선수는 아니란걸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1월 31일 올랜도와의 경기에서 3점 6개를 성공(!)하는 등 1~2월 구간에서 평균 더블더블을 찍고 있다. 거기다 놀라운 사실은 1~2월 야투 성공률이 40.2%(!)다. 그리고 2017년 4월 5일 기준으로 루비오의 TS%는 50%후반을 기록중이다. 이는 그의 슈팅능력이 꽤나 개선되었음을 뜻하며 이 수치는 위긴스보다도 높다. 이쯤되면 미네소타 측에서는 라빈을 팔고 캐치앤슛이 좋은 슈팅가드를 새로 영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단 말이 헛소리가 아니다. 후반기 많은 출장시간으로 체력의 영향인지 시즌 막판 다시 페이스가 떨어지긴했으나 최종적으로 커리어 처음으로 야투율 40%와 9개의 어시스트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여전히 젊은 선수기에 아직 기대할 구석이 남아있다는 평가.

2017년 7월 1일 오프시즌에서 조지 힐을 붙잡을 자신이 없었던 유타 재즈에 트레이드되었다. 을 붙잡지 못한다면 여전히 선발 포인트 가드로 출전할 것으로 보인다.

1.4. 유타 재즈

1.4.1. 2017-18 시즌

득점원들이 이탈해 해결사 능력이 부족한 팀의 영향으로 평소보다 많은 슛을 던지고 있다. 초반에는 슛이 꽤나 잘 들어가며 선전했으나 이내 익히 알던 그 모습으로 돌아오며 전 시즌이 플루크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슈팅은 어느 정도 예상하던 모습이었으나 수비나 게임 운영에 있어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림어택이 안되는 가드에 픽앤팝을 할 수 없는 빅맨진들이 겹쳐 좋지 않은 모습이다.

'포텐 밀당남'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상당히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몇 주전만 하더라도 곧 KBL에서 보네마네 소리가 심심치않게 나오던 선수가 2월 들어서는 15+ 득점과 8+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2월들어 개선된 슛감과 특유의 패싱센스가 살아나며 선수 본인도 자신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최종적으로 득점, 야투율, 3점슛 성공률에서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며 데뷔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으며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다.

1.4.2. 2018-19 시즌

하지만 시즌 초반 야투율이 리셋되어 커리어 로우에 도노반 미첼마저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지면서 고전했지만. 차차 야투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다. 사실 루비오는 야투 감각을 끌어올렸다기도 뭐한것이 어떤 팀도 루비오가 공을 잡으면 슛을 쏘거나 말거나 쳐다보지도 않는 시간이 대부분이기 때문.

18-19 시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선 도노반 미첼, 조 잉글스, 루디 고베어등 팀의 주축이 모조리 부진한 가운데 페이버스와 함께 고군분투했으나 휴스턴에게 탈락했다.

시즌 종료 후 FA 시장에 나왔다.

1.5. 피닉스 선즈

1.5.1. 2019-20 시즌

6월 30일 피닉스 선즈와 3년 5,100 만 달러 계약을 하였다. 더 이상 NBA 무대에서 보기 힘들 거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선즈와 계약을 하면 서 NBA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게 되었다. 시즌 초반 비교적 약체로 평가받았던 팀의 돌풍을 이끌며 팀이 서부 컨퍼런스 중상위권에서 머물고 있다. 포인트 가드가 약한 선즈로 이적하며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리그 평균 어시스트 기록 경쟁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버블에서 각성한 데빈 부커와 함께 8승 무패로 팀의 돌풍을 이끌었지만 결국 포스트 시즌에는 진출하지 못하게 되었다

2020년 11월 17일, 크리스 폴을 상대로 타이 제롬, 켈리 우브레와 유망주 1명, 드래프트픽이랑 같이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오클라호마는 탱킹을 해야하는 입장이고 저번시즌 루비오의 활약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루비오를 원하는 팀과 다시 트레이드 될 것으로 예측되었고 결국 미네소타로 다시 트레이드 되면서 3년만에 다시 늑대군단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1.6.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2기

1.6.1. 미네소타 팀버울브스/2020-21 시즌

파일:리키루비오MIN.jpg
영입 오피셜
11월 21일 오피셜이 떴다.

츨전 시간이 떨어지면서 모든 스탯이 줄어들었다. 유타와 피닉스에서 한결 나아진 모습을 보였던 야투율은 무서울 정도로 다시 예전 모습으로 회귀했으며, 강점인 어시스트마저 줄어들었다. 제일 큰 문제는 공격 주도권을 쥔 디안젤로 러셀과의 조합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따로 나와도 여전히 프런트 코트 선수들을 잘 이용하지만, 정작 본인 공격력이 무뎌진 상황이라 시너지가 예전만큼 나지 않는다.

1.7.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21년 7월 29일에 타우린 프린스와 2022년 2라운드 지명권, 현금을 받는 트레이드를 내주는 대가로 클리블랜드로 이적했다.

지난 시즌 팀버울브스에 비하면 나은 모습을 보여주던 중, 11월 7일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상대한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 37득점 3리바운드 10어시스트 1스틸에 야투율 68.4%, 3점슛 9회 시도 8회 성공의 괴물같은 활약으로 인생경기를 펼치며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루비오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한 경기 35득점 이상, 10어시스트 이상, 3점슛 8개 이상 기록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준수한 활약을 하던 도중, 12월 말에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하며 아쉽게 시즌을 접게 되었다.

1.7.1. 인디애나 페이서스

결국, 가드가 시급한 캐벌리어스가 루비오, 2022년 로터리 보호 1라픽, 휴스턴 로키츠로부터 받은 2022년 2라운드픽, 유타 재즈로부터 받은 2027년 2라운드픽을 얹어 페이서스의 캐리스 르버트, 페이서스가 마이애미 히트로부터 받은 2022년 2라운드픽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감행하며 이적하게 되었다. 다만, 부상중이기 때문에 페이서스 소속으로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사실 페이서스 쪽에서 루비오를 진짜로 활용할 생각은 1도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부상으로 뛸 수도 없는 상황인데다가 다섯 달 뒤에는 FA가 되기 때문. 사실상 트레이드 머니를 맞추기 위해 서류상으로만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아마 루비오는 페이서스 유니폼 치수도 안 재봤을 듯하다.

1.7.2.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복귀와 NBA 은퇴

그리하여 다섯 달 뒤 2021-22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게 되었다. 3년 18.4밀의 계약 조건에 반 시즌만에 클리블랜드로 돌아가게 되었다.
22-23 시즌은 부상 후 관리 시즌이기 때문에 출장 시간이 17.2분으로 줄었다. 줄어든 시간 속에서 딱히 존재감이 없었고, 원래 안 좋은 슛은 더 안 좋아서 커리어 로우를 찍었다. 시즌 종료 뒤 본인 스스로 NBA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는 씁쓸한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23년 8월 5일, 갑작스레 정신 건강 문제로 프로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였다. stop my professional activity라는 표현으로 활동 중단이지만, 향후 NBA 커리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확실한 은퇴 의사인지는 불명이다. 루비오는 바로 코 앞에 닥친 농구 월드컵에서 스페인 대표팀 소속이었는데, 이 활동 중단 선언으로 결국 출전이 무산되었고, 스페인 대표팀이 이런 자신의 결정을 존중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어쨌든 이후에 루비오의 '프로 활동 중단'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었는데, 23-24 시즌이 개막 직후인 12월 말 경에 소속팀 캐벌리어스와 루비오가 계약해지 협상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루비오의 나이, 육체적, 정신적 부상 경력을 고려했을 때 캐벌리어스와의 계약 해지로서 루비오의 NBA 캐리어 자체가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결국 2024년 1월 5일, 공식적으로 NBA 은퇴를 발표했다. 루비오의 성명서에 따르면 7월 30일 정신 건강 쪽에 큰 문제가 발생했고, 이로인해 바로 다음날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나중에 인터뷰를 통해 밝힌 정신 건강 문제는 바로 불안장애와 만성 스트레스. 캐벌리어스와는 상호 합의 바이아웃으로 이별했으며, 불안장애의 원인이 '본인이 NBA 선수로서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의 문제였기에 다시 NBA로 복귀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1.8. 유로 리그 복귀

2024년 1월 은퇴를 선언한 후 고향팀인 FC 바르셀로나 바스케트로 복귀할 수 있다는 보도들이 계속 흘러나왔었다. 그러다가 2월 은퇴를 뒤로 하고 고향팀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1.8.1. FC 바르셀로나 바스케트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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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6일, FC 바르셀로나 바스케트 공식 홈페이지에서 영입이 발표되었다. # 무려 13년 만에 고향팀으로의 컴백이다.

현재 바르셀로나 병원에서 의료 테스트를 실시한 후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이다. 선수 자신이 적합하다고 판단될 때 대회에 복기하기로 합의가 되었다. 이미 정신 건강 회복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한다. 영입 발표 이전에 이미 1군 팀과 첫 주 훈련을 마쳤으며, 구단은 엽입한 후 ACB와 유로리그 정식 명단에 등록했다.

1기 시절 카탈루냐 리그 2회, 슈퍼컵 2회, 킹스컵 2회, 리그 1회, 유로리그 1회 등 총 8회의 우승을 획득하였고, 140경기를 뛰었던 프랜차이즈 스타의 컴백이 되었다.

1.8.2. DKV 호벤투트 2기

2024-25 시즌을 앞두고 프로 첫 팀인 호벤투트로 복귀했다.

1.9. 국가대표

NBA에서의 아쉬운 활약에 비해,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놀라운 활약을 보인다.

1.9.1. 2005 FIBA 유럽 U-16 챔피언십

스페인 농구 천재로서 처음 연령별 대표팀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15세.

라트비아와의 데뷔전에서부터 9득점 5리바운드 7스틸을 기록했고 다음 프랑스를 상대로 22득점 7리바운드 4스틸을 기록했다.

터키와의 4강에서 졌지만 11득점 11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첫 더블 더블을 달성했다.

8경기 30분 11.4득점 6.8리바운드 2.9어시스트 3.9스틸, 3위로 대회를 마쳤다.

1.9.2. 2006 FIBA 유럽 U-16 챔피언십

러시아와의 첫 경기 24득점 11리바운드 10어시스트 7스틸로 트리플 더블 달성,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상대로는 22득점 20리바운드 8어시스트 6스틸로 첫 20리바운드 기록.

크로아티아와의 4강에서 19득점 10리바운드 13어시스트 10스틸이라는 믿기지 않는 활약으로 모든 스페인 대표팀 최초 쿼드러플 더블을 달성했다.

결승에서는 무려 51득점 24리바운드 12어시스트 7스틸. 고대괴수?

8경기 32.9분 23.2득점 12.8리바운드 7.1어시스트 6.5스틸로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모두 대회 1위에 MVP 수상까지 원맨쇼로 스페인에게 대회 첫 우승을 안겨줬다.

1.9.3. 2007 FIBA 유럽 U-18 챔피언십

루비오의 마지막 연령별 대표팀 대회.

8경기 27.9분 19.1득점 5리바운드 4.8어시스트 4스틸을 기록해서 득점왕을 수상했다. 스페인은 대회 5위로 마쳤다.

1.9.4. 2008 베이징 올림픽

파일:루비오2008올림픽.jpg
18세에 올림픽 명단에 포함됐다. 어린 나이라 많은 출전 시간을 부여받진 못했지만 창의적인 패스와 과감한 플레이로 주목받았다.

주전인 호세 칼데론이 부상으로 4강에서부터 빠져서 루비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결승에서 선발로 나와 특유의 과감한 플레이로 미국을 잠시 농락하기도 했다. 이 때 매치업 상대가 제이슨 키드, 크리스 폴, 데런 윌리엄스였다. 이 때부터 NBA 관계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8경기 18.5분 4.8득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 2.1스틸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5. 2009 유로바스켓 폴란드

8강에서 토니 파커를 잘 막아내며 승리에 기여했다.

22.7분 5.9득점 2,2리바운드 3.9어시스트 1.4스틸을 기록했다. 파우 가솔의 활약에 힘입어 우승했다.

1.9.6. 2010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터키

조별 리그 2차전 뉴질랜드를 상대로 8득점 4리바운드 11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했다.

이 외 경기에선 두 자릿 수 스탯이 없고 무득점 경기도 있는 등 조금 부진했다. 9경기 25.1분 4.4득점 3.1리바운드 5.1어시스트 1.4스틸을 기록해 대회 6위로 마쳤다.

1.9.7. 2011 유로바스켓 리투아니아

호세 칼데론에게 출전 시간을 밀리며 많은 시간을 뛰진 않았지만 나바로와 가솔 형제, 이바카의 활약에 우승했다.

11경기 15.6분 1.5득점 2.5리바운드 2.1어시스트 1.4스틸.

1.9.8. 2013 유로바스켓 슬로베니아

NBA 데뷔 후 첫 국가대표 대회이다.

조별 리그 4차전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15득점 3리바운드 5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했다.

5차전 조지아를 상대로 16득점 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4강에서 연장전 끝에 프랑스에게 탈락했다. 다시 맞붙은 토니 파커에게만 32점을 내주는 동안 2득점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그래도 마크 가솔의 활약으로 3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11경기 20.7분 7.2득점 2.8리바운드 3.4어시스트 1.4스틸.

1.9.9.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

파일:루비오2014농구월드컵.jpg
개막전 이란을 상대로 3득점 9리바운드 5어시스트 5스틸을 기록하며 두들겨 팼다.

2차전 이집트와의 경기에선 6득점 5리바운드 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5차전 세르비아와의 경기에서 12득점 4리바운드 6어시스트 7스틸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8강에서 프랑스에게 4득점 2리바운드 3스틸 야투율 16.7%로 부진했다. 그리고 모국에서 열린 월드컵이지만 충격의 8강 탈락을 하게 된다.

1.9.10.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파일:루비오2016올림픽.jpg
조별 리그 3차전 나이지리아 전에서 15득점 4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4강에서 미국에게 0득점을 기록하며 박살났다. 정작 카이리 어빙클레이 탐슨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호주를 이기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8경기 17분 5득점 2.8리바운드 2.9어시스트 야투율 36.1%로 부진했다.

1.9.11. 2017 유로바스켓 핀란드·이스라엘·루마니아·터키

파일:루비오2017유로바스켓.jpg
조별 리그 1차전 몬테네그로에게 7득점 7어시스트 5스틸을 기록했다.

2차전 체코를 상대로 17득점 5어시스트로 좋은 활약을 보였다.

3위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9경기 22.6분 9.4득점 2.7리바운드 4.9어시스트 1.8스틸.

1.9.12. 2019 FIBA 농구 월드컵 중국

파일:루비오2019농구월드컵.jpg
스페인은 조별 리그 1차 라운드 C조에 편성됐다.

튀니지와의 첫 경기에선 17득점 9어시스트 2스틸로 경기 최다 득점,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푸에르토리코와의 2차전에서 17득점 8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경기 최다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란과의 1차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5득점 5어시스트로 다소 부진했지만 팀내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 3전 전승으로 2차 라운드 진출.

조별 리그 2차 라운드 J조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15득점 2스틸을 기록했다.

2차전 세르비아와의 경기에서 19득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팀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상대팀에서 보그단 보그다노비치가 맹활약했지만 스페인의 승리. 2전 전승으로 8강 진출.

폴란드와의 8강에서 19득점 5리바운드 9어시스트로 최고의 활약으로 4강에 진출시켰다. 그리고 미국이 프랑스에게 탈락하면서 우승에 근접했다.

4강에서 호주를 상대로 19득점 7리바운드 12어시스트 4스틸을 기록했고 마크 가솔의 33득점에 힘입어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 아르헨티나에게 20득점 7리바운드로 팀내 최다 득점을 기록하며 우승했다.
파일:루비오2019농구월드컵MVP.jpg
MVP
파일:2019농구월드컵올토너먼트팀.jpg
올토너먼트 팀
13년 만의 우승 1등공신으로 월드컵 MVP와 올토너먼트 팀을 수상했다. 자신이 왜 농구 천재였는지 다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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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키는 작았지만 운동능력이 좋았던 유망주로, 부상이후 소리소문없이 NBA에서 사라졌다.[2] 그리고 7순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또 다른 포인트가드를 뽑았다.[3] 그나마 스크린 타고 던지는 점퍼는 조금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엄청난 발전은 아니라는 것이 중평.[4] 심지어 스페인의 홈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