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산 왕조의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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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페르시아어로 "변경(Marz)의 보호자(-ban)"라는 뜻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변경백과 흡사한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귀족 직책이다.
다른 샤흐르반들과 마찬가지로 왕중왕의 임명을 받아 영지를 다스리며, 행정·군사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왕중왕에게만 책임을 진다. 이 지위는 세습이 가능하지만, 왕중왕의 통제 범위 아래 종속된다는 점에서 한 나라 지붕 안에서 군웅할거하던(...) 파르티아 시대의 대귀족들보다는 좀더 중앙집권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아르슬란 전기에 등장하는 직책
만기장(萬騎將)이라는 뜻으로 만 명의 기병을 이끄는 장수이다.기병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파르스에서는 장군의 직책을 가진 독립지휘관으로 군단장이라고 볼 수 있는 직책.
여담이지만, 본래 변경의 영주를 의미하는 마르즈반을 군 지휘관의 명칭으로 사용한 것이 적절한지는... 다소 애매하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장군=영주라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 보이긴 하지만, 수취와 운송, 통신기술의 한계상 중세 사회에서는 변경의 영주=장군인 것은 당연했다. 변경의 영주들은 그 영지에 대한 행정·군사의 전권을 가지고 그 영지 내의 세금을 수취하여 그에 걸맞은 군사력을 유지할 책임 역시 짊어지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었던 것. 외국 군대가 쳐들어 올 경우 당연히 영주 자신이 자신의 영지를 방어(=자신의 영지를 거점으로 적군이 국내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반대로 적국을 공격할 경우 영주가 자기 영지의 군대를 이끌고 왕의 동원령에 응했던 것. 애초에 전근대의 행정능력으로 기병 1만 명(+보병 2만 명. 기병:보병=1:2 정도의 비율이 파르스의 전형적인 군대 구성비로 작중 묘사된다.)이나 되는 대규모의 부대를 부양하고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복잡한 일이고, 특히 양성과 유지에 비용이 많이 드는 기병 같은 경우 국가에서 일괄적으로 봉급을 지불하는 경우보다는 일정한 봉토를 나눠주고 봉토에서 얻어지는 수익을 기반으로 직접 무장과 훈련을 유지하여 참전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생각한다면 각각의 마즈르반에게 그가 지휘할 병력을 육성하기 위한 봉토가 주어진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작중의 마르즈반은 변경의 수비를 담당하는 영주-군사책임자라기보다는 수도에서 근무하는 중앙군의 지휘자에 가깝게 묘사되고, 그 임명 과정에서도 영지의 수여와 같은 절차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굳이 끼워 맞춰 보자면 본래 변경의 영주에서 시작된 마르즈반이란 관직이 중앙집권화가 이뤄지면서 영주권과는 별개로 중앙군 지휘관의 관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보다는 작가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관직명을 적당히 주워다 사용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안드라고라스 3세 휘하에 삼, 쿠바드, 샤푸르, 가르샤스흐, 칼란, 키슈바드, 마누세르흐, 바흐만, 크샤에트, 쿠르프, 하이르, 다륜의 12명이 있었다. 이들 중 키슈바드와 바흐만은 페샤와르 성, 삼과 가르샤스흐는 엑바타나에 남고 나머지 8명은 아트로파테네 회전에 참전하였다.
대 루시타니아 전쟁에서 전사, 배신, 실종 등으로 최종적으로는 다륜, 키슈바드, 쿠바드 3명 정도가 살아남았다.
후에 아르슬란은 휘하에 16익장이라는 기병지휘관들을 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