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라틴어: Marcus Aemilius Paull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조부)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아버지)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아들?)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302년 |
전임 |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루키우스 게누키우스 아벤티넨시스 |
동기 | 마르쿠스 리비우스 덴테르 |
후임 | 독재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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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저명한 파트리키 가문 중 하나인 아이밀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와 아버지 모두 루키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기원전 302년 마르쿠스 리비우스 덴테르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이후의 상황에 대해 기록이 많이 엇갈린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가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두 집정관은 로마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했고 독재관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가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아이퀴족을 물리친 뒤 로마로 돌아와서 살루스 신전을 봉헌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뮌처는 아이퀴족은 이미 기원전 304년에 로마군에 결정적으로 패배하여 굴복했기 때문에 이 기록은 믿을 수 없다고 간주한다.리비우스가 전하는 또다른 기록에 따르면, 스파르타의 왕자 클레오니무스(Κλεώνυμος)가 남부 이탈리아의 대도시 타라스(현재 타란토)에 기용되었다가 이곳에 정착하여 세력을 키우려 했다가 집정관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또는 독재관 브루투스의 로마군이 접근하자 배를 타고 도주했다고 한다. 뮌처는 브루투스가 클레오니무스를 잡으려 했으나 실패한 후 로마로 돌아와서 성전 봉헌만 했다고 추정했다.
기원전 301년 에트루리아인들과 마르시인들이 로마를 대대적으로 침공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원로원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를 독재관에 선임했다. 이때 선임된 기병장관이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라는 설과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라는 설이 제기되는데, 어느 쪽이 맞는 지 불분명하다. 이 '기병장관'은 코르부스가 로마로 잠시 돌아와서 조점술을 행하던 때에 에트루리아군과 맞붙었다가 패배해 많은 병사를 잃고 군기 마저 빼앗겼다. 이에 로마 시민들이 동요하자, 코르부스는 군영으로 돌아와서 군대를 성공적으로 수습한 후 에트루리아인들을 물리친 후 로마로 돌아와서 개선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기원전 255년 집정관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가 그의 아들이라고 추정하나 분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