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20:51:43

마츠자키 시게루

<colbgcolor=#333333><colcolor=#fff> 마츠자키 시게루
[ruby(松, ruby=まつ)][ruby(崎, ruby=ざき)] しげる | Shigeru Matsuzaki
파일:마츠자키 시게루.jpg
본명 마츠자키 시게유키 (松崎茂幸)
출생 1949년 11월 19일 ([age(1949-11-19)]세)
연합군 점령하 일본 도쿄도 에도가와구
국적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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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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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학력 니혼대학 (예술학부)
직업 가수, 배우, 탤런트, 성우
소속사 OFFICE WALKER
데뷔 1970년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활동3. 대표곡4.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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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가수이자 탤런트, 배우. 1970년에 데뷔하여 특유의 가창력과 검게 그을린 피부로 독보적인 개성을 가진 보컬리스트이자 엔터테이너이다.

2. 활동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야구 선수를 꿈꿔왔지만 부상을 입고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니혼대학 예술학부에 진학하여 밴드를 결성하고 활동하다가 스카웃 되어 1970년부터 프로로 데뷔. 솔로 가수의 길을 걷는다.

주로 광고음악을 불렀는데 1971년 '너는 무언가를 알려주었어(君は何をおしえてくれた)'를 시작으로 글리코 아몬드 초콜릿의 CM송을 계속 부르기 시작, 1972년에 발표한 '노란색 밀짚모자(黄色い麦わら帽子)'가 인기를 끌어 그의 출세작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딱히 큰 히트곡은 없었고 술집을 전전하며 기타연주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76년에 유로팝의 등용문이었던 스페인 마요르카 음악축제에 사랑의 미소(愛の微笑)라는 곡으로 출전. 장대한 곡의 스케일과 마츠자키의 훌륭한 가창력으로 최우수 가창상 및 종합 2위라는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된다. 이때 마츠자키는 최우수 가창상 수상으로 귀국 후 일본에서도 큰 활동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976년 당시 대회 영상

하지만 정작 소속사인 빅터 레코드에서는 이 곡의 난이도가 너무 어려워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기 어렵겠다고 판단하여 앨범 발매에 소극적이었다. 결국 마츠자키 본인이 여러 곳을 발품을 팔다가 다시 글리코 아몬드 초콜렛 광고 담당자를 찾아갔고 1977년에 이 곡이 광고음악으로 채용되었다. 그 당시 최고의 인기를 달리던 미우라 토모카즈야마구치 모모에를 모델로 한 광고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고, 이 '사랑의 미소'의 가사를 조금 다듬어서 사랑의 메모리(愛のメモリー)라는 제목으로 낸 음반은 대히트를 친다. 순식간에 싱글앨범 80만장을 팔아치웠고 그해 일본 레코드 대상 가창상 수상과 함께 NHK 홍백가합전에도 출전하면서 마침내 마츠자키는 명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77년 NHK 홍백가합전 출전 영상

이후 활발한 방송 출연과 가수 활동이 이어졌고 보컬 실력으로 무장한 화려한 디너쇼가 인기를 끌어 '디너쇼의 왕(ディナーショーキング)'이라는 이명을 얻는다. 특히 1979년에 TBS 테레비형사물 드라마인 소문의 형사 토미와 마츠(噂の刑事トミーとマツ)에서 쿠니히로 토미유키(国広富之)와 함께 주인공 역으로 발탁되면서 배우로도 큰 인기를 누렸고, 이 드라마의 엔딩곡[1]을 장식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다. 오프닝/엔딩 영상

원래부터 실력파 보컬에 성량이 좋았던 목소리가 중년기를 거치며 더욱 허스키하게 바뀌면서 누가 들어도 마츠자키 시게루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개성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이러다보니 세대를 불문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서 2020년대인 현재도 예능이나 광고음악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3. 대표곡

사랑의 메모리(愛のメモリー) - 1977년
Sailing Love(セーリング・ラブ) - 1979년
FOR YOUR LOVE - 1999년

4. 이야깃거리

  • 마츠자키 시게루를 대표하는 이미지라면 검은색을 빼놓을 수가 없다. 원래부터 피부색이 검었고 야구부 활동이나 휴가를 하와이로 자주 가다보니 햇볕에 그을리는 일이 잦아서 이렇게 된 것인데 이 피부색이 마츠자키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이 피부톤을 유지하기 위해 아예 선탠 기계까지 가지고 있다고 한다.
    • 워낙 유명하다보니 인터넷에서도 2ch 시절부터 밈처럼 사용되었다. 검게 된다는 것을 마츠자키 시게루가 된다고 표현한다던지, 일본엔 옛날부터 흑인이 살았고 마츠자키는 일본 최초의 흑인 가수라는 등 온갖 드립이 떠돌고 있다. 니코니코 대백과에서 마츠자키 시게루를 검색하면 아예 검은색 배경이 나온다.
    • 후지 테레비트리비아의 샘에서 마츠자키 시게루의 피부색을 재현하여 마츠자키 시게루 색(まつざきしげるいろ)이라는 이름의 물감이 나온 적이 있다. 헥스 코드로는 #A55A4A
    • 일본 기념일 협회의 인정을 받아 2015년부터 9월 6일은 마츠자키 시게루의 날로 정해졌다. 검은색을 일본어로는 쿠로(黒)라고 읽는데 96은 고로아와세로 쿠로(くろ)라고 읽을 수 있기 때문. 이후 마츠자키 본인이 주최하는 음악 페스티벌인 쿠로 페스티벌 ~백흑가합전~ (黒フェス~白黒歌合戦~)이 주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모모이로 클로버 Z 등이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 검은 피부 덕택에 가샤폰 미니 피규어까지 발매된 적이 있다. 2015년에 발매된 커피컵의 마츠자키 시게루(コーヒーカップの松崎しげる) 시리즈와 2016년에 발매된 창가의 마츠자키 시게루(窓際の松崎しげる) 시리즈로 총 10종이 발매되었다.
  • 배우 니시다 토시유키와 절친으로 무명 시절부터 함께 술친구로 어울린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1975년 TBS 허슬 긴자라는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여 매주 즉흥곡을 만들어 부르기도 했고, 1977년 마츠자키가 홍백가합전에 출전하자 마츠자키를 응원하기 위해 니시다가 게스트로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2024년 10월 17일 니시다의 죽음 소식을 들은 마츠자키는 2주 전에도 함께 술잔을 기울였었다고 비통해 하며 평생의 절친이었던 그의 명복을 빌었다. 추도사 니시다 토시유키와 부른 夢に隠れましょ
  • 만화 러브 다이어리의 등장인물 마츠자키 코이치로의 실제 모티브가 된 인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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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덩어리(愛のカタマリー) - 괴혼 ~굴려라 왕자님~ 엔딩곡
특히 2004년 남코에서 발매한 비디오 게임인 괴혼 ~굴려라 왕자님~의 OST 앨범은 록, 랩, 엔카, 아이돌, 재즈, 발라드 등 당대의 J-POP 뮤직을 집대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마츠자키는 세계평화사랑을 호소하는 뜨거운 노래를 불러 엔딩을 장식했다. 워낙에 임팩트가 있는 곡이다보니 서양권 게이머는 물론이고 한국의 게이머덕후층에서도 마츠자키 시게루의 인지도가 생겼을 정도. 이후 마츠자키는 괴혼 시리즈 음악에 딱 한번을 제외하고 모두 참여하게 되는데 반드시 햇볕에 그을린 피부(日に焼けた肌)라는 가사가 들어가게 되었다. 괴혼 트리뷰트 엔딩곡 - SHADOW AND LIGHT
* 2019년 루팡 3세 프리즌 오브 더 패스트 주제가인 루팡 3세의 테마 ~2019년 버전~을 부르면서 마츠자키는 루팡 3세의 주제가를 부른 역대 4번째 보컬이 되었다.
* 2023년, 2024년 모바일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여름 CM송을 불렀다. 2024년 여름광고
  • 2024년 MBN 현역가왕의 준결승전 심사위원으로 내한하였다. 일본측 TROT GIRLS JAPAN의 심사위원장이었으며 이후 한일가왕전의 심사위원으로도 등장했다.
    • 현역가왕 준결승전 심사위원으로 내한 당시 방송에서 한국과의 인연을 소개했는데 1993 대전 엑스포 당시 일본 내 홍보송을 불렀고, 조용필과 듀엣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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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메모리 (2024년 MBN 한일톱텐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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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 3세의 테마 ~2019년 버전~ (2024년 MBN 한일톱텐쇼)
후속작으로 방영된 한일톱텐쇼에서 한국측 심사위원장이었던 남진과 함께 등장. 특별 무대에서 자신의 대표곡인 '사랑의 메모리'와 '루팡 3세의 테마곡'을 직접 불렀다.

[1] WONDERFUL MOMENT, MY LOVE, 愛の静けさ 3곡[ED] TBS 드라마 소문의 형사 토미와 마츠 엔딩곡[ED] [ED] [5] 한국에선 한일가왕전 때문에 엔카 가수나 트로트 가수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아니다. 학생시절부터 비틀즈의 팬이었고 냇 킹 콜의 Stardust를 듣고 충격을 받았었다는 일화처럼 그의 음악적 본류는 서양음악이며 마츠자키가 활동하던 1970년 중후반 일본 음악은 서양음악(Pops)을 의식한 뉴 뮤직(ニューミュージック)의 시대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마츠자키 시게루를 엔카 가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6] 올리비아 허시의 전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