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6 00:07:50

만수르 야바시

<colbgcolor=#AE1932><colcolor=#fff> 제29대 앙카라 민선 광역시장
만수르 야바시
Mansur Yavaş[1]
파일:만수르 야바시.jpg
출생 1955년 5월 23일 ([age(1955-05-23)]세)
튀르키예 앙카라도 베이파자르군
국적
[[튀르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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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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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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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재임기간 제29대 앙카라 민선 광역시장
2019년 4월 8일 ~ 현직
제4·5대 앙카라 베이파자르구청장
1999년 4월 18일 ~ 2009년 3월 29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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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E1932><colcolor=#fff> 부모 아버지 아흐메트 사득 야바시
어머니 하와 야바시
배우자 누르센 야바시[2]
자녀 슬하 2녀
학력 이스탄불 대학교
신체 미상
종교 이슬람
정당
[[공화인민당|]]
}}}}}}}}}
1. 개요2. 생애
2.1. 정치인 이전2.2. 정치인 경력
2.2.1. 베이파자르 군수2.2.2. 2009년, 2014년 2번의 낙선2.2.3. 앙카라 민선 광역시장
3. 소속 정당4. 선거 이력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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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Mansur Yavaş_10 Kasım Reklam Filmi.gif
튀르키예정치인. 2019년부터 앙카라 민선 광역시장 (Ankara Büyükşehir Belediye Başkanı)을 역임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경쟁하는 가장 강력한 야권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2. 생애

2.1. 정치인 이전

만수르는 앙카라도의 베이파자르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아흐메트 사득 야바시는 전직 목수였다. 그리고 베이파자르에서 초등, 중등 및 고등학교 교육을 마치고 1979년에 이스탄불 대학교에 입학하며 법학부에서 학부 교육을 시작했다. 그리고 1983년에 법학 학위를 취득하며 졸업했다. 군 검사로 군복무를 마친 후, 고향 베이파자르로 돌아와 개인 변호사로 일하며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했다. 그리고 13년 동안 프리랜서 변호사로 일했다고 했다.

2.2. 정치인 경력

만수르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989년에 민족주의노동당에 입당하며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1989년 3월 26일에 베이파자르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며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1993년에 민족주의운동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1994년에 낙선하며 여전히 시의원으로 일했고, 1999년 4월 18일까지 의원직을 맡았다.

2.2.1. 베이파자르 군수

그리고 1994년에 베이파자르 군수직에 도전했으나 조국당의 이브라힘 데미르가 4,652표 획득, 만수르는 4,351표를 획득하는데 그치며 아쉽게 당선에 실패했고, 그렇게 이브라힘은 3선에 성공했다.[3]

1999년 4월 18일에 열린 지방 선거에서 베이파자르 군수직을 위해 또 다시 후보로 출마했으며 이번에는 8,437표를 획득하며 51.12%를 기록하며 5,418표를 획득하며 32.83%를 기록한 데미르를 누르고 당선에 성공했다.

또한 2004년 3월 28일에 열린 지방 선거에서 이번에는 10,320표를 획득하며 8,018표를 받은 이브라힘 데미르를 연속으로 제치고 재선에 성공했다.[4]

고향에서 군수로 재임한 동안 베이파자르를 당시 튀르키예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지역 중 하나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외에 베이파자르 맨션을 복원하고 베이파자르의 수천년의 역사를 보존하며 지역의 경제, 사회 및 문화 발전을 이뤄낸 덕분에 2001년에 "최고의 지역 관리자"상을 받았다. 그리고 튀르키예어 보존, 자연을 보존하며 "환경상"도 받았다. 무엇보다 2004년 9월 24일에 튀르키예 산업 및 비즈니스 협회(TÜSİAD)에 의해 "올해의 지방자치단체장"에 선출되어 베이파자르에서의 업적이 꽤 큰 걸 보여줬다.

2.2.2. 2009년, 2014년 2번의 낙선

베이파자르에서 2번 동안 성공을 맛 본 만수르 야바시는 2009년에 앙카라 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하지만 정의개발당의 멜리흐 괴크체크가 939,566표를 받으며 38.5%로 3선에 성공했다. 만수르는 667,305표를 받으며 763,081표를 받은 공화인민당의 무라트 카라얄츤에게도 밀리며 3위를 기록했다.[5]

한편 2013년 12월 21일에 민족주의운동당을 탈당하고 공화인민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2014년에 공화인민당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정으로 다시 앙카라 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으나 정의개발당의 멜리흐 괵체크가 1,416,770표를 받으며 4선을 했으며 아쉽게 당선에 실패했다. 만수르가 1,385,038표를 받은지라[6] 저번보다 차이를 크게 줄였더라 아쉬운 부분이다. 한편 이번 선거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부패와 부정행위 혐의로 유럽인권재판소로 회부되기도 하는 등 막장이었다.

만수르는 2016년 4월 17일에 공화인민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SNS에 이러한 말을 남겼다.
이번 사임은 MHP 의회와 관련이 있다. 입후보 과정이 끝난 후 서로의 호의로 정치를 접었다. 이것은 새로운 상황이 아니다. #

2.2.3. 앙카라 민선 광역시장[7]

한동안 무소속이었다가 2018년에 다시 공화인민당으로 복당했다. 그리고 2018년 12월 18일에 2019년 지방 선거를 위해 앙카라 도지사 후보로 등록했다. 만약 실패하면 3연속 낙선이다.

그런데 캠페인 기간 중에 2009년에 제기된 중복 법원 사건에 ​​대한 사기, 위조 및 공갈 혐의기소되었다. 이 주장은 경쟁당이자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이 제기했으며, 만수르는 주장을 한 개인이 아동학대에 대한 다양한 범죄 유죄 판결과 지속적인 조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반대파들은 그의 주장에 비추어 그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의 지지자들은 그 주장이 정치적으로 동기부여되고 근거가 없다고 봤다.

그리고 2019년 3월 31일에 열린 튀르키예 지방 선거에서 1,662,209표를 받으며 50.9%를 기록했고 2위 메흐메트 외즈하세키가 1.538.410표 획득, 47.1%를 기록하며 3% 넘는 차이로 당선되었다.

2019년 4월 13일에 정의개발당이 통제하는 앙카라 도의회는 도지사에게서 특정 권한을 철회하고 시의회에 위임하려고 했다. 만수르는 권력 장악 시도가 불법이며 제안된 변경 사항을 거부하기 위해 집행 권한을 사용하여 의회의 조례를 위반했다고 말했다. 또한 정치적 선호로 인해 손실을 내는 회사에 시 계약을 아웃소싱하는 이전 정의개발당 위원회의 선호도를 비판했다. #

취임식에서 이러한 연설을 했으며 평소에 케말주의자로 알려졌기에 화제가 되었다.
앙카라 자치체 간판과 무스타파 케말에 대한 존중이 상징적이더라도 "튀르키예 공화국"이라는 문구를 추가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2019년 12월 15일에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만남을 가졌다. 박원순은 두 도시 간 교류를 확대하자는 희망을 밝혔다. #

만수르의 이러한 작업으로 인해 그는 튀르키예 전역에서 큰 명성을 얻었다. 2020년 말에 튀르키예에서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2023년 대통령 선거에서 에르도안과 맞붙는다면 만수르가 승리할 것으로 나타났다. #

만수르는 튀르키예 전역에서 뉴스 보도를 본 효과적이고 신속한 "100일 계획"으로 널리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정의개발당이 사용하던 관례였던 가족이나 친구의 권력 장악 체제를 종식시켰다. 만수르 야바시는 앙카라가 공적보다는 정의개발당에 가입해 권력을 잡은 무능한 정치인들 때문에 빚을 지고 있다고 믿었다. 더 유명하게 앙카라 도지사였던 멜리흐 괴크체크가 앙카라 사무실을 위해 구입한 고급 지프와 자동차를 없앴다. 대신 이 지프를 앙카라에서 하루 동안 무료로 결혼하는 커플들에게 제공했다. 참고로 이 날이 앙카라 도지사로 부임한지 "100일"째 되던 날이었다. 또한 교통 및 기반 시설 측면에서 수년 동안이나 문제를 무시한 정의개발당을 비판했으며 이후 앙카라 시민들이 화석 연료를 줄이도록 장려하기 위해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도로를 건설하고 보존하기 위해 여러 회사에 연락했다. #

그러다 만수르는 중국 수출입 박람회[8]를 위해 무역 박람회에 투자했으며, 이 덕분에 중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무역 박람회로 앙카라가 세계 최대 무역 박람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수도의 신축 주택에 태양광 및 빗물 저장고를 설치하는 조건이 부과되었다. 학생 주택에서 물 50% 할인이 이루어졌다. 가정 프로젝트에는 태양 전지 패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19가 터지며 튀르키예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제공하는 국가 자선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이것은 에르도안 대통령에 의해 중단되었고 정의개발당 지지자들은 이 프로젝트를 해킹하려고 시도했다.

2020년 에게해 지진의 희생자들의 추모식에 참석하며 많은 찬사를 받았다.

2020년 11월 19일에는 코로나로 인한 조치 범위 내에서 원격 교육 결정을 내린 후 45일 이내에 앙카라의 928개 마을에 무료 인터넷을 구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때까지 단 51개 마을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

2020년 12월 9일에 국제투명성기구는 "12월 9일 세계 반부패의 날"의 일환으로 "2020년 투명성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

2021년 9월 14일에는 시리아의 레일라 무스타파 라카 시장, 독일의 페터 쿠르츠 만하임 시장 등과 함께 세계 시장 수도상을 수상했다.#

2024년 3월 31일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60.4%의 득표율로 정의개발당 후보로 출마한 투르구트 알트노크 케치외렌구 구청장을 누르고 여유있게 재선에 성공했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9 - 1993 정계 입문


1993 - 2013 합당[9]

[[공화인민당|]]
2013 - 2016 입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6 - 2018 탈당

[[공화인민당|]]
2018 - 복당

4.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4 베이파자르 군수 선거 베이파자르

4.351 (31.17%) 낙선 (2위)
1999 8,437 (51.12%) 당선 (1위) 초선
2004 10,320 (54.8%) 재선
2009 앙카라 민선 광역시장 선거 앙카라 667,305 (27.34%) 낙선 (3위)
2014 앙카라 민선 광역시장 선거
[[공화인민당|]]
1,385,038 (43.82%) 낙선 (2위)
2019 앙카라 민선 광역시장 선거 1,662,209 (50.93%) 당선 (1위) 초선
2024 앙카라 민선 광역시장 선거 1,997,429 (60.38%) 재선

5. 여담

  • SNS를 나름 많이 한다. 그리고 트위터를 제일 많이 사용한다.
  • 성인 야바시(yavaş)는 튀르키예어에서 느리다는 의미로 쓰이며, 파생적으로 점진적인과 같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진 성이다.


[1] 터키어의 v는 모음과 모음사이에 위치할 경우 v보단 w에 가까운 발음이 난다.[2] 누르센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으며 만수르와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는다고 한다.[3] 이브라힘이 33.3%, 만수르가 31.17%를 기록했다.[4] 만수르가 54.8%, 이브라힘이 42.58%여서 지난번 보다는 조금 적은 차이를 보였다.[5] 무라트 카라얄츤이 31.3%, 만수르 야바시가 27.3%를 기록했던지라 비율에서도 꽤 많이 밀렸다.[6] 멜리흐가 44.82%, 만수르가 43.82%를 기록하며 1% 차이였고 표는 32,187표 차이다.[7] 앙카라는 주 단위 광역자치단체 중 대도시자치단체(Büyükşehir Belediyesi)가 설치된 곳이기 때문에 앙카라시를 포함한 앙카라주가 대한민국으로 치면 광역시의 형태를 띈다.[8] 칸톤 축제로도 알려져있으며 이름대로 광둥성에서 열리는 축제다.[9] 민족주의운동당에 흡수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