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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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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한대행, 전임자 권선택 시장직 상실 (2017.11.14)[2] 권한대행, 전임자 안희정 사퇴 (2018.3.6)[3] 권한대행, 전임자 이낙연 사퇴 (2017.5.12)[4] 권한대행, 전임자 홍준표 사퇴 (20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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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e1932><colcolor=#fff> 제35-37대 서울특별시장
박원순
朴元淳 | Park Won-soon
파일:20210308000843_0.jpg
출생 1955년 2월 11일[1]
경상남도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2]
사망 2020년 7월 9일[3] (향년 65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북악산
(숙정문 인근)
묘소 경상남도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 장가1구
본관 밀양 박씨[4]
재임기간 제35-37대 서울특별시장
2011년 10월 27일 ~ 2020년 7월 9일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373a3c,#dd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ae1932><colcolor=#fff> 부모 아버지 박길보, 어머니 노을석
형제자매 2남 5녀중 차남
배우자 강난희(1957년)
자녀 딸 박다인(1983년)[5], 아들 박주신(1985년)[6]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 제적)
단국대학교 (사학 / 학사)
병역 파일:대한민국 육군기.svg 대한민국 육군 이병 소집해제 (방위병)[7][8]
종교 무종교[9]
신체 170cm, A형[10]
최종 당적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약력 춘천지방법원 정선등기소장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포스코 사외이사
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제35·36·37대 서울특별시장[11]
서울시립대학교 운영위원장
제12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별명 친절한 원순씨, 스나이퍼 박, X발아저씨, 박원숭 }}}}}}}}}}}}

1. 개요2. 상세3. 일생4. 박원순계5. 비판과 논란6. 저서
6.1. 본인 저작6.2. 타인 저작
7. 소속 정당8. 선거 이력9. 관련 유머10. 여담11. 수상 내역12.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변호사 및 시민사회운동가 출신 정치인 및 성범죄자. 제35·36·37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다. 성범죄 전문 인권변호사로 크게 이름을 날렸으나, 되려 본인이 성범죄 가해자로 피소된 이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2. 상세

1980년대 사법시험 합격 후 인권변호사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박원순은 80년대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90년대 서울대 성희롱 사건 등 대한민국 여성운동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도맡아 변호하면서 대한민국 여성운동사를 상징하는 인권변호사로서의 명망을 쌓았다.

1994년 박원순은 참여연대를 설립, 초대 사무처장을 맡으며 시민운동계에 투신했다. 그는 참여연대를 통해 '압박 시민단체' 모델을 대한민국에 태동시키고 정착시켰다.[12] 박원순은 참여연대를 통해 낙천·낙선 운동,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 검찰, 법원 개혁 등 사법개혁운동 등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낙선운동은 시민단체의 지나친 정치 개입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 박원순은 이에 대해 "현존하는 法만 지켜야 한다는 것은 공안검사의 논리와 다름없다"라며 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법이 지켜져야 한다면 시대착오적인 법률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속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13] "惡法(악법)이 法(법)일 수는 없다" 말하며 악법이라 할 수 있는 현행 선거법을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며 낙선운동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참여연대의 낙선운동은 결국 대법원에 의해 선거법 위반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기간에는 재벌 개혁과 위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낙선 운동 등을 벌였고 2001년 '아름다운재단'과 2002년 '아름다운가게', 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하여 노무현 정부가 끝나는 2008년까지 박원순은 사회적 활동에 주력했다. 이후 2000년대 동안 박원순과 참여연대는 재벌 개혁, 낙선 운동 등을 진행하고 2001년 '아름다운재단'과 2002년 '아름다운가게', 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했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에는 SOFA 개정을 외치며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 시기 민주당계 정당 등에서 정치입문에 대한 요청을 끊임없이 받아왔으나 당시 열린우리당과 민주신당에 대한 지지율이 바닥이었기 때문인지 박원순은 이를 거절하고 2010년까지 사회운동에만 주력하였다. 그러나 90년대와 달리 정부를 비판하는 일 없이 반미 운동과 시민 운동에 주력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사무실이 참여연대 1층에 마련되었다. 2010년에는 결식 제로운동을 펼치며 무상급식 실시 문제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과 마찰을 빚고 있던 서울시의회를 장외에서 지원했다. 결국 무상급식 실시 문제로 실시한 주민투표 투표율 미달로 오세훈이 서울시장직을 자진 사퇴하고 말았고, 박원순은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지지율이 5%에 머물며 사실상 당선 가능성이 없었던 군소 후보 중 한명이었지만, 당시 유력 주자였던 안철수가 박원순 후보를 지지를 선언한 후 안철수 지지자들의 표를 대거 흡수하여 제1야당 민주당과 단일화, 무소속(야권단일후보)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2012년 2월 당선 4개월만에 민주통합당에 입당하였다.

박원순이 2011년 보궐선거로 당선됨에 따라 오세훈이 추진하던 서울 공공자전거시스템이 암초를 맞게 된다. 원래는 오세훈의 계획대로라면 2011년까지 자전거도로가 완공되어 서울시민들은 2011년부터 공공자전거택시를 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이후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된 이후 오세훈이 추진한 공유자전거 사업의 전면 재검토 후 사업이 중단되었는데, 이는 박원순이 전임 오세훈과는 달리 자전거보다는 보행친화적 도시를 만들고 싶어했고, 전임 오세훈이 인구밀도와 지형, 교통량 고려없이 자전거도로를 다수 설치하여 박원순 시정 이후 다시 철거하는 등의 정책상 난맥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박원순은 서울시 자전거 사업 추진 이전에 충분한 시민과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 자전거 정책에 대해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시민과 숙의 과정을 거친 후에 정책을 보완하여 서울시민들은 2015년부터 따릉이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서울시장 집권 기간 동안 개발과 토목 공사를 극도로 싫어하여 '반토목 시장'이라 불리었다. 박원순은 서울시의 재건축재개발을 극도로 제한하며, 대신 도시재생 정책을 내세웠다.[14][15] 하지만 낡은 집을 재생하여 살기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 신축 아파트에서 살기 원하는 현실 속에서, 박원순의 개발 억제로 서울의 아파트 입주 물량은 꾸준히 줄었고 문재인 정부의 공급 제한, 세금폭탄 등 부동산 정책, 저금리 등이 맞물리면서 서울 집값은 폭등하였고, 그의 재임 기간 중 뉴욕, 도쿄, 런던을 추월하여 OECD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또 취임하자마자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전임 시장의 토건 세력이라고 비판하며 당시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다리가 ㄷ자 형태로 꺾여있던 양화대교 공사를 영구 중단, 방치하자는 시민들의 안전을 볼모로 한 충격적인 주장을 펼쳐 큰 논란을 빚는 것을 시작으로, 각종 사회기반시설 공사 예산을 대거 삭감하여 서울에 예정되어 있던 도로 신설, 확장 공사, 터널 공사 등이 대거 취소되거나, 축소, 지연되었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시절 추진했던 은평뉴타운을 맹공격하면서 원래 은평뉴타운에서 서울 도심으로 연결하기 위해 신설할 예정이었던 도로와 터널 공사를 취소하여 현재까지도 서울 서북권은 오로지 통일로 단 하나의 도로에 통행량을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교통 헬게이트가 지속되고 있다. 또한 서울 서남권의 극심한 교통 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건설되고 있던 월드컵대교의 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공사가 5년 이상 사실상 중단되어 오세훈 시장 때 시작된 공사를 10년 후 다시 취임한 오세훈 시장이 완공하게 생겼고, 이로인해 서울 도심과 서남권과 인부천, 경기 서남권을 오가는 통행량이 집중되는 성산대교와 그 인근 서울 서부 지역의 극심한 교통 체증이 지속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시내 차량 제한속도를 시속 60km에서 시속 50km로 낮추어 서울시의 교통난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서울시의 경전철 예산도 삭감하였으나, 서울시장 선거를 앞둔 2013년 7월 돌연 경전철 10개 노선을 추진한다고 깜짝 발표하여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기존에 공사중이던 우이선, 서부선을 제외하고 나머지 노선은 제대로 추진되지 않아 결국 후임자가 추진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16]

서울시장 취임 후 박원순은 거버넌스(민관 협치), 개방형 공무원을 표방하면서 이를 구실로 기존에 자신과 함께 권력을 감시·견제하던 역할을 했던 시민단체 출신들을 대거 서울시 공무원으로 채용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20대,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원 뱃지를 달게 되었으며, 원래 민주당 원내에 세력이 없었던 박원순은 이러한 방법으로 당내에서 정치적 입지를 넓혀 나갔다.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으로 당선된 이후 내리 3선을 역임하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민선 3선 서울시장으로 등극하며 정치적인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박원순계가 민주당 내에서 친문 못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을 정도.

그러나 2020년 7월 8일, 박원순 시장의 전직 비서가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고[17] 성추행 가해자로 피소당한 다음 날인 7월 9일 실종되어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자살로 결론지어졌다. 이 사건은 박 시장 본인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처리되었으나,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에서는 공식적으로 그의 성폭력[18]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

3. 일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원순/일생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1. 사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박원순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원순계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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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판과 논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원순/비판 및 논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1. 자질 및 행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원순/비판 및 논란/자질 및 행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2. 성추행 사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원순 성추행 사건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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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저서

6.1. 본인 저작

국가보안법 연구 (총 3권) - 역사비평사 (1990)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 - 박원순 지음, 아르케 (2001)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나눔 - 박원순 지음, 중앙M&B (2002)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다 - 박원순 변호사 참여연대 실천경영론 - 박원순 지음, 나남 (2004)

고문의 한국현대사 - 야만시대의 기록 (총 3권) - 박원순 지음, 역사비평사(2006)
파일:f0be2a1372f22879bb7aa8e385b23063.png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 진중권, 홍세화, 유시민 외 지음[19] (2009) #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 박원순의 희망 찾기 1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09)

원순씨를 빌려 드립니다 - 박원순 &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은? 새로운 발상으로 세상을 바꾸는 CEO! - 박원순 지음, 21세기북스 (2010)

아름다운 세상의 조건 - 나눔과 희망의 전도사 박원순 에세이 - 박원순 지음, 한겨레출판사 (2010)

마을이 학교다, 함께 돌보고 배우는 교육공동체 - 박원순의 희망 찾기 2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10)

마을 회사,공동체를 살리는 대안 경제 - 박원순의 희망 찾기 3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11)

마을 생태가 답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생활문화 공동체 - 박원순의 희망 찾기 4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11)

박원순의 아름다운 가치사전 - 박원순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1)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의 로마인 이야기 로마 천년 제국을 이룬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 박원순 지음, 석세스티브이 (2011)

올리버는 어떻게 세상을 요리할까 -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의 영국 사회혁신 리포트 - 박원순 지음, 이매진 (2011)

희망을 걷다 - 박원순의 백두대간 종주기 - 박원순 지음, 하루헌 (2013)

정치의 즐거움 - 오연호가 묻고 박원순이 답하다 - 박원순,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2013)

박원순의 어린이를 위한 응원 - 권경률, 박원순, 엄윤숙 지음, 생각을담는어린이, (2015) #
파일:6000825595_1.jpg

경청 - 박원순의 대한민국 소통 프로젝트 - 박원순 지음, 서울시청 사진, 휴먼큐브 (2014)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 박원순, 세기의 재판이야기 - 박원순 지음, 한겨레출판사 (2014) #
파일:469942g.jpg

원순씨, 배낭 메고 어디가세요? -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한 새로운 선거 이야기 - 박원순, 하승창 공저 (2015) # - 시간이 지나 제목이 매우 부적절하게 되었는데, 그의 사망 직전 배낭을 매고 어디론가 종종걸음으로 가는것이 포착 되었기 때문이다.[20]
파일:maxresdefault110.jpg

박원순과 도올, 국가를 말하다 - 도올 김용옥, 박원순, 지승호 지음, 통나무 (2016)

국민에게만 아부하겠습니다 -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박원순의 말과 생각 - 박원순, 김홍국 지음, 더봄 (2016)

박원순, 생각의 출마 - 나라다운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정책과 비전 - 박원순 지음, 더봄 (2017)

몰라서 물어본다 - 박원순의 퇴근길 청춘수업 - 박원순 지음, 행복한책읽기 (2018)
  • 박원순은 1년 안에만 2~3권 씩을 써내면서 정치인 중에 제일 다작을 하는 축에 들었다.[21] 대부분 본인 홍보용 저서인 것이 특징이다. 자신을 3인칭화하여 항상 박원순 본인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며, 표지도 자신의 사진이 크게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6.2. 타인 저작

청소년을 위한 박원순의 가상 콘서트 - 박원순의 응원 - 원순씨 청소년에 답하다 - 권경률 지음, 폴머 (2012)

박원순의 서재 - 박원순 책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찾다 - 권안 지음, 푸른영토 (2013)

박원순이 걷는 길 - 임대식 지음, 한길사 (2015)

W캠프의 비밀 - 서울시장 3선, 박원순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 이인수 지음, 21세기북스 (2018)

박원순 죽이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황세연 지음, 중원문화 (2020)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 이일영 , 이인미 , 이재경 , 도이 , 황인혁 지음, 지식공작소 (2020)

비극의 탄생 - 50인의 증언으로 새롭게 밝히는 박원순 사건의 진상 - 손병관 지음, 왕의서재 (2021)

박원순은 살아있다 - 흑서, 잃어버린 9년에 대한 서울시정 평가 - 나연준 , 여명 , 우성용 , 이순호 , 이옥남 , 이종원 , 주한규 , 허현준 , 김재원 지음, 글통 (2021)

7.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무소속|
무소속
]]
2011 - 2012 정계 입문


[[민주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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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 2013 입당


[[민주당(2013년)|
파일:민주당(2013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13 - 2014 당명 변경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2014 - 2015 합당[22]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5 - 2020 당명 변경
사망

8.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1 하반기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장

[[무소속|
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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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8,476 (53.40%) 당선 (1위) 초선[23][24]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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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2,171 (56.12%) 재선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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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9,497 (52.79%) 3선[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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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관련 유머

9.1. 씨발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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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스나이퍼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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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담

  • 2019년 국제돌봄엑스포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며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정작 본인은 성추행으로 자살하면서 모순적인 상황이 되었다.
  • 2009년 100분 토론에서 손석희 앵커의 고별 방송을 했을 때 영상으로 출연했는데 이때 손석희에게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손석희 앵커와 나이가 동갑[27]인데도 나이가 많이 차이 나 보인다며 손석희의 동안의 비결이 뭐냐고 질문했는데 이에 대해 손석희의 대답은 "굳이 답변을 드리자면, 제가 동안이라기보다는 박 변호사님이 노안이십니다"였다. 그리고, 손석희가 저 발언을 하기 전에 노회찬 전 의원을 가리키면서 "여기 노회찬 대표님도 저랑 동갑이십니다."라고 팩트로 2연타를 때렸다. 물론 분위기상 손석희와 박원순 모두 가벼운 농담을 한 것이다.[28]
이후 JTBC에 특별 출연했을 당시 또 같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때는 "나는 나이에 맞는 외모고 손 사장이 비정상인 거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참고로 현임 강원도지사최문순은 조금 더 심한 상태로 방송국 시절부터 손석희로부터 능욕을 당했다.[29] 박원순 본인은 손석희와의 해프닝이 꽤 기억에 남았는지 그 뒤로도 틈만 나면 손석희의 동안이 문제라는 말을 꺼냈다. 참고로 더 알자면 위에 언급되다시피 이때 나왔던 박원순이 1955년생, 노회찬, 손석희는 1956년생이고 얼굴로 따지면 손석희가 막내다. 여기에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자유한국당 소속인 신상진 의원도 56년생이다. 게다가 홍의락 대구광역시 경제부시장은 박원순, 노회찬, 최문순 보다 1살 더 많다.
파일:PYH2014041201490001300_P2.jpg* 문재인과 사법연수원 동기였다고 한다. # 당시에는 박원순과 문재인이 서로 변호사였기 때문에 박변 문변이라는 표현을 써서 친하게 지냈다고. 하지만 19대 대선 때 양측 간의 네거티브 전이 재개되는 등 사이가 멀어졌다.
  • 평소에 자신이 워크홀릭임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하급자에게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과중하게 업무 부담을 주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고 한다. KBS 인간의 조건에서 양상국을 만났을 때도 예전에는 책을 많이 읽었는데 시장이 된 이후에는 책을 읽을 시간이 거의 없다고 언급했다.[30]
    • 유시민의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따르면, '희망제작소'와 '아름다운재단'에 몸담았던 시절에는 실무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는데 그 이유가 보고서를 읽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새벽 2시에도 불쑥 전화를 걸어 실무자들이 멘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정의당의 공식 팟캐스트 방송인 노유진의 정치카페 시즌 2에 출연해 했던 인터뷰에서 서울시장이 된 후에도 앞서 말한 방식으로 일을 했더니 서울시 공무원들이 줄줄이 병원에 실려간다는 하소연이 많아 지금은 일하는 스타일을 바꾸어 칼퇴근을 하는 등 아랫 사람들에게 숨 쉴 틈을 최대한 열어주는 쪽으로 바꿨다고 한다. 21분 21초부터
    •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는 비서관을 새벽 6시까지 출근시켜 자신의 사적인 조깅에 동행시키더니 밤 11시, 12시까지 부려먹다가 퇴근시키는 갑질을 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 박원순은 이런 갑질 상사 짓을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워커홀릭이라고 미화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여러 비판이 있자, 자신을 스스로 옹호하다가 약간은 자제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 박원순은 자신이 워크홀릭임을 과시하며 사석이나 인터뷰에서 과로사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과로하는 것이 아니라 아랫 사람들을 과로사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2015년 한국과학기술원 방문 때 스트레스 측정을 받은 결과, 심각 단계라고 오마이뉴스 기사가 실렸다. 박시장의 일탈은 이런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다.
  • "하버드 도서관 지하3층부터 7층까지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 경상남도 출신이다 보니[31] 같은 당에서 서울특별시장에 출마할 의향을 드러냈던 민병두 의원과 PK의 몇몇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경상남도 도지사 중에 강력한 인물이 필요하다며 서울특별시장 3선 대신 경상남도 도지사에 출마할 것을 권유받은 적이 있었다. 거기다가 외모가 왠지 경남 아저씨 같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은 각자 소질 있는 분야가 다르다면서 당의 몇몇 인물들이 박원순에게 경남도지사 출마를 권유한 것을 일축하고 서울특별시장 3선으로 간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역대 최초로 민선 3선 서울특별시장이 되었다. 그리고 경남지사는 친문 김경수 전 의원[32]이 차출되었고, 역대 최초로 민주당 당적으로 경남지사에 당선되었다.
  • 그의 아들 박주신의 병역 복무에 관련해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사건으로 일베 유저 16명을 고소한 것으로 보아 박원순 서울시장 측에서도 일베를 모니터링하는 것은 사실로 보여진다. 심지어 일베에서도 비교적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게시글도 비슷한 이유로 고소당했다고 한다.
파일:sP4Ml4Q.jpg* 커원저 대만 타이베이 시장인데,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치 이념 및 행보가 비슷한 사람으로 중화권에서 유명하다.[33] 마침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2017 타이베이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최지 대표 자격으로 방문한 김에 서울에도 찾아가 회담을 가졌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친분이 있는 데다, 개인적으로도 노무현을 호평하는지라 2016년에는 서울시에 노무현 거리(노무현 루트)를 만들 계획이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2020년에 박원순이 자살할 때까지 실현되지는 않았다.
  •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사망 때, 조문을 와서 추도사를 읽기도 했었다. 상당히 슬퍼했었다고 한다. #, # 추후에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박원순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치폭력 행사로 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고 하면서 이명박 측에서 정치 보복이란 말을 쓸 자격이 있냐며 비난했다.
  • 앞에서 서술했다시피 박원순은 한때 이명박하고도 상당한 친분이 있었는데, 반 이명박 기치를 내걸고 서울시장이 된 직후로는 이명박을 맹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명박은 그래도 청와대로 박원순을 직접 불러 독대하면서까지 지난 추억을 회상하기도 했지만 박원순은 친 노무현 반 이명박으로 정치 노선을 굳히게 된다. 실제로 2017년 7월에 냄비받침이란 KBS 프로그램에 박원순이 출연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좋다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크게 반발하면서 이명박과의 관계는 '과거 지인일 뿐이다' 라는 뉘앙스로 얘기하면서 이명박을 싫어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아마 박원순 본인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명박산성 같은 것들에게서 촉발됐을 거라는 게 정설. 당시 박원순은 광화문광장을 개방하지 않았던 오세훈 또한 비판한 적이 있다.
  • 19대 대선 경선에 출마해서 서울대를 사실상 폐지하고 국공립대학교 통합 캠퍼스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또 "매년 5000억 원을 들여 52개 국공립대학교에 반값 등록금을 시행하겠다"고 공약을 걸었던 적이 있다.#
  • 문재인 정부에서 대 아세안 특사로 파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희상, 이해찬, 송영길, 박주민과 함께 외모패권주의의 희생양 아니냐는 농담을 들었다. 실제로 전술한 4인 모두 외모가 정부 관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다 보니 이런 소리가 나오는 편. 7회 지방선거 이후에는 당선자들 중에서 외모는 최하위권이라는 말도 있었다.
  • 지(知)동남아파로 분류되며, 결국 문재인 정부 들어서 아세안(ASEAN) 특사로 지명되었다. 서울시장 재임 동안 동남아 정부 관계자와 네트워크를 쌓아왔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대(對)아세안 및 인도와의 협력 관계를 미국 등 4강과 동등한 수준으로 격상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이후 외부자들에 출연하여 "아세안 국가에 도시 외교를 통해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가는 김에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가는게 좋겠다 생각하여 청와대에 먼저 연락을 했다. 그러자 청와대 측에서 이왕 가는 김에 특사로 갔다 오라고 했다."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했다.#
  • iPhone을 사용하는 것이 목격된 적이 있다. 그리고 자살사망 당시에 iPhone XS 시리즈를 사용하였다고 경찰이 보도하였다.
  • 별명으로는 '원순씨'[34]가 있다. 그 외에 '박원숭', '박원숭이'가 있는데 이는 이름(박원순)에서 따온 다소 비하적 별명으로 박원순을 싫어하는 쪽에서 거의 사용한다. 입이 돌출입인 것도 한몫한다. 박원순은 이 별명에 대해 '그 원숭이 한 번 되어볼게요'라며 받아넘겼다. 원숭이띠이기도 하다. 그리고 '씨발아저씨'라는 별명이 있는데 박원순 욕쟁이 드립이란 밈에서 나온 것이다. 박원순 욕쟁이 드립은 문서 참조 바람. 박원순이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아마 이런 대인배 행보를 보여줬기 때문인 듯 하다. 이런 점이 노무현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다. 노무현 또한 대통령 임기부터 온갖 비하에 갖은 비난을 다 받았지만 그냥 웃어넘기기도 했었다. 노무현 비서관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보다 더한 것도 겪어봐서 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하는데 아마 80년대 안기부에게 감시 당한 것을 말하는 듯.
  • 문재인 대통령이 정봉주 전 의원을 복권 조치했는데 박원순이 정봉주가 패널로 있는 외부자들 스튜디오에 직접 축하 화환을 보냈다. 그런데 그 화환에는 '서울특별시장 내리2선 웬순씨'라고 적혀 있었다.
  • 개그맨 안윤상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아저씨 패러디로 박원순 시장의 성대모사를 선보였다. 특유의 말투가 압권.#
  • 탈모가 심했었다. 시장 출마 당시에도 머리가 점점 빠지던 상황이었고 2018년초까지는 정수리가 듬성듬성했었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정수리가 풍성해져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박원순은 유튜브에 직접 출연하여 수술설을 부인하면서, 머리숱이 많아진 것은 흑채 덕분이라고 해명하면서 직접 본인의 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흑채를 뿌리는 모습을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4월 월간 조선 기사에 따르면, 박원순이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모발이식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복수(複數)의 관계자가 강남구 신사동의 모 성형외과에서 박원순이 2018년 2월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기자가 병원 측에 “박원순 시장이 그곳에서 모발이식을 한 게 사실이냐”고 물어봤더니, 병원 측은 망설임 없이 “환자 개인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고 응답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보고를 올렸지만, 개인적인 문제라 답변이 어렵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했다.[36]
  • 이른바 '박원순 유니버스'란 짤방들도 있다. 서울특별시장으로 오래 활동하면서 남긴 사진들이 하도 많아서 생긴 밈이다.
  • 과거 사법연수원 사람들과의 등산에서 "정치란 보여주는 걸 잘해야 한다고" 라고 말했다고 한다.
  • 사망한 모습으로 발견된 때인 2020년 7월 10일 0시, 공교롭게도 《박원순 죽이기》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 어그로성 제목과는 달리 박원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 및 평가를 한 책인 듯하다. 다만 어마어마한 우연의 일치라는 점. 시기가 너무 절묘했다.#

11. 수상 내역

  • 1998년 - 여성단체연합 제 1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
  • 2002년 - 제 15회 심산상 시민운동 및 공로 부문
  • 2002년 - 서울지방변호사회 공익봉사상
  • 2003년 - 시민의 신문 올해의 활동가상
  • 2003년 - 희망 이웃돕기 유공자 포상식 국민포장
  • 2006년 - 제10회 만해대상 실천부문
  • 2006년 -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
  • 2007년 - 제21회 단재상 학술부문
  • 2009년 - 제15회 불교인권상
  • 2014년 - 세계도시 전자정부평가 특별공로상 서울특별시 수상
  • 2014년 -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선거공약분야 최우수상
  • 2016년 - 예테보리 지속가능발전상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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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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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식적으로는 1956년 3월 26일이지만 실제 생년월일은 1955년 2월 11일이라고 한다. 네이버 인물정보에는 1956년 3월 26일으로 되어 있다.[2] 홍준표, 박영선과 같은 경상남도 창녕군 출신인데, 그 옆 동네 남지읍 출신이다. 출생 당시에는 남지면. 인근의 강리와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3]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 참고.[4] 규정공파 71세손 '순'(淳)자 항렬.[5] 실종 당시 실종신고를 했던 인물. 서울 법대 졸업했으나 미대에서 편입한 거라 논란이 있었다.[6] 2013년 5월, 롯데호텔 임원의 딸과 결혼.[7] 1969년 작은할아버지에게 양손으로 입양돼 부선망 독자(아버지가 먼저 사망한 외아들)로 8개월 방위로 병역을 마쳤다.[8] 관련 기사[9] 공식적으로는 무종교인이지만, 불교계와 인연이 꽤 깊었다. 또한 이 외에도 개신교, 원불교 등 타 종교계와도 다양하게 교류했었다. #[10] 중앙일보에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질문한 특집기사에서 다뤄졌다. 네이버 프로필에도 있다. 박원순의 시시콜콜 100문 100답[11] 후술하겠지만 헌정사상 최초의 무소속 (선출직) 서울시장이다. 무소속 신분으로 서울시장이 된 후 2012년 2월에 민주통합당 입당.[12] 참여연대 이전에도 국내에 여러 시민단체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다. 해외 NGO 중에서는 민간인권전선, 그린피스, 씨 셰퍼드같은 사례가 압박 시민단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13] 2001년 9월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시민사회 발전을 위한 大토론회」에서 발언한 내용[14] 특히, 재건축 아파트의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하는가 하면, 옛 아파트 건물 일부를 문화유산이라며 남겨두는 정책을 고수했다. (결국 이 층수 제한은 박원순 사후 풀렸다.) 용적률도 제한하였고, 재개발 허가 또한 대단히 받기 힘들어졌다.[15] 특히 옛 아파트 1동을 흉물처럼 남겨두는 정책으로 인해 많은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들이 박원순을 싫어한다. 개포주공1단지, 잠실주공5단지가 박원순 정책의 대표적인 피해자이다.[16] 박원순의 뒤를 이어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박영선 후보조차 문재인 정부와 박원순 전 시장의 부동산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면서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의 부동산 정책을 완전히 수정하겠다고 공약할 정도였다.[17] 박원순 성추행 사건 참조.[18] 법원은 성추행,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희롱 사실을 인정했다. 일반적으로 성희롱은 말로 하는 성폭력에 국한되지만, 법률 상의 용어로서 '성희롱'은 말로 하는 희롱 뿐 아니라 성추행, 성폭행, 강간 등의 범죄를 포괄하는 의미이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성희롱의 의미와는 약간 다르다.[19] 여러 지식인/정치인들이 노무현 前 대통령에 대해 서술, 회고한 내용인데, 박원순은 '우리는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인을 잃었다' 부분을 서술했다.[20] 몇몇 음모론자들은 책의 제목이 삼각형이라며 박원순 사망의 일루미나티 개입설을 주장한다.[21] 대만리덩후이 전 총통(1.5년에 1권 꼴)을 이겼다.[22]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23] 전임자 오세훈 사퇴(무상급식 주민투표 개표 무산)[24] 헌정 사상 최초의 무소속 선출직 서울특별시장(민주당 박영선 후보와의 단일화, 이후 2012.2 민주통합당 입당)[25] 헌정 사상 최초의 3선 서울특별시장[26] 2020.7.9 임기 중 사망[27] 당시에는 호적상으로 나이를 말해서 1956년생 동갑으로 말하였다.[28] 노회찬박원순 두 인물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29] 참고로 손석희와 최문순은 MBC 동기이기도 하다. 1984년 입사했다.[30] 이때 양상국에게 박원순이 추천해 준 책은 미생이다.[31] PK-TK의 접경지대인 창녕 출신이긴 한데 박원순 본인의 정치 성향 상 PK로 분류되는 일이 훨씬 많다.[32] 이 사람 또한 서부경남 쪽인 고성군에서 태어나 진주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33] 다만 성격과 시장 당선이후의 상황은 좀 다른데 박원순의 경우 화가 날 법한 상황에서도 말로 대응하는 반면 커원저는 시의회에서 책상을 손으로 내리칠 정도로 성깔있는 타입이다. 그리고 박원순은 높은 지지율로 유례없는 서울특별시장 3선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커원저는 낮은 지지율로 재선이 불투명하다가 0.2%P차로 겨우 이기며 매우 고전하는 중.[34]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별명이다.[35] 아마도 서울시장의 지위에 있다 보니 수도방위사령관을 많이 만나게 되고 이로 인해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은 쿠데타 주도 세력으로 의심받는 구홍모 육군참모차장이었다.[36] 여담이지만, 안철수가 탈모 비하 발언을 했을 때 달렸던 베스트 댓글 중 하나가 ???: 뭐 이 XXX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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