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09 07:02:47

이해찬

파일:나무위키+하위문서.png   하위 문서: 이해찬/일생, 이해찬/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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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문재인
비대위
김종인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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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이해찬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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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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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통일특위이석현국방안보특위황기철
동북아평협특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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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특위강병원체육특위강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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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영입위송철호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최재성
도시재생특위박영선문화예술특위김영주
시장활성화특위
최운열미세먼지특위송옥주
여성폭력특위정춘숙검찰개혁특위박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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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총장윤호중제1부총장김경협
제2부총장소병훈제3부총장김현
법률위송기헌홍보소통위권칠승
전략기획위강훈식대외협력위김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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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위의장조정식수석부의장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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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대표이인영
원내수석부대표
이원욱
원내부대표고용진, 김영호, 김정호, 맹성규, 박경미, 서삼석, 이규희, 임종성, 제윤경, 표창원
원내대변인박찬대, 정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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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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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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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세종특별자치시)
선거구 개편
심대평[1]
변재일[2]
제19·20대
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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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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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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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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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위
박지원
2대
이해찬
대행
문재인
비대위
문희상
민주당(2008년) 대표민주당(2013년) 대표
시민통합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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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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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을)
선거구 분리
임철순[A]
김수한[A]
제13~17대
이해찬
[5]
제18대
김희철

파일:NTzLTWj.jpg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조순 시정 (1995 ~ 1998)
민선시정출범[6] 초대
이해찬
2대
최수병
}}}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해찬
파일:이해찬사진.jpg
이름 이해찬(李海瓚, Lee Haechan)
출생일 1952년 7월 10일([age(1952-07-10)]세)
출생지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중추리
본관 전주 이씨 덕흥대원군[7]
혈액형 A형
학력 서울대학교 사회학 학사
병역 면제(수형)
가족 5남 2녀 중 다섯째
배우자 김정옥, 딸 이현주[8]
소속 정당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세종특별자치시
의원 선수 7
의원 대수 13, 14, 15, 16, 17, 19, 20
소속 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직 더불어민주당 당대표[9]
제20대 국회의원
약력 돌베개출판사 대표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제38대 교육부장관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제36대 국무총리
민주통합당 대표
노무현재단 이사장
사단법인 통일맞이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대표
외부 링크 공식 사이트 트위터 페이스북

1. 소개2. 일생3. 비판 및 논란4. 여담5. 선거 이력6. 어록7. 둘러보기

1. 소개

대한민국의 정치인.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대한민국 교육부 장관,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고, 2012년 18대 대선안철수와의 대선 후보 단일화 때문에 금방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의 당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던 정계의 거물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제13대~17대, 그리고 제19대~20대 국회의원이자 더불어민주당의 제3대 당 대표이기도 하다. 13대부터 17대까지는 지역구가 서울 관악구 을 지역이었고, 2008년 18대 총선 때에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가 2012년 19대 총선 때 관악구 을에 다시 나오지 않고, 당시 신설된 지역구이자 자신이 건설을 지휘했던 세종시로 내려가 당선됐다.

민주당계 정당의 대표적인 선거 전략가 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1992년 6.27 지방선거조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선거 전략을 담당하면서 조순 후보를 당선으로 이끌어 처음 선거 기획 능력을 인정받았고, 그 후 자신이 선거 전략에 관여하면서 대통령 세 명을 배출하여 '킹 메이커'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의 요직을 지냈다.

2002년 16대 대선 때는 노무현 캠프에 참여하여 참여정부 탄생에 일조하였고 국무총리 시절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발적인 역할 분담으로 행정부 2인자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게 돼 역대 국무총리JP와 더불어 실세 총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이한 사람이 됐다. 세종시의 설계 및 추진 또한 이해찬이 총리로 일할 때 이루어졌다.

이때의 인연으로 민주당에서 문재인과 함께 친노무현계의 상징적인 큰형님이자 정신적 지주이며 투 탑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10] 그래서 보통 언론에 '친노의 좌장'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붙는 편이다. 심지어, 친문계의 리더로 불리는 문재인도 깍듯하게 형님이라 부르면서 선배로 대우한 사람이다.[11][12]

그리고 무려 7선 국회의원인데[13] 이는 민주당 현역 의원들 중 최다선이며 20대 국회를 통틀어서는 서청원 의원(8선) 다음이지만, 서청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게 드러나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7선 의원이라고 보는 것이 조금 더 타당하다.[14] 즉, 이해찬은 사실상 서청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다선 국회의원인 셈이다.

민주당의 최다선 현역 의원이지만, 최고령 의원은 전혀 아닌데다가[15], 여전히 친노계친문계의 큰 어른인 거물이기에 아직은 정계 은퇴를 말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 2018년 기준 65세로, 역대 대통령 중 그보다 많은 나이로 출마해 당선된 사람만 넷이니 그리 많은 나이라 보기도 힘들다. [16]

사회학 기초 교과서 중 하나인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공역하기도 한 사회학자이기도 하다.

2. 일생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해찬/일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비판 및 논란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해찬/비판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여담

  • 신림동에서 1978년부터 '광장서적'이라는 서점을 운영한 바 있다. 이 서점은 이해찬이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동생 이해만이 운영하였으며, 처음에는 인문사회과학 서점이었으나 1990년대 들어서는 고시서적도 많이 취급하게 되었다. 유서가 깊고 규모가 큰 서점이어서, 신림동 고시서점 중 목이 좋고 가장 유명했던 '상원서적'과 함께 신림동 고시촌랜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으나,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면서 여느 고시서점들과 마찬가지로 몰락하여 2012년 12월 31일 부도를 내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광장서적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북션' 서점이 들어서 있다.
  •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정치인이며, 지지자들 사이의 애칭은 '해찬들'[17], '찬들이형', 또는 '대장부엉이'라 불리며, 비토 세력들에게는 '해골', '해골찬'이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 파일:external/cache.clien.net/20170320171547_JITSr6pH_171780905.jpg
    대통령 선거에서 경선 후보, 대선 후보, 캠프 및 정당 관계자들이 예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말 실수를 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보일 때마다 이 짤을 사용하면서 이해찬 1승이라고 외치는 게 이 되어버렸다.
  • 이투스 수리논술 강사인 오승준과 상당히 외모가 흡사하다. 또한 묘하게 박정학 배우와 비슷하게 생겼다.
  • 당선되었을 때 캡처된 사진처럼 무표정인 모습이 많아서 포커 페이스 이미지로도 유명하다. 깐깐해 보이는 분위기까지 맞물려서 더욱 그럴싸하다.
  • 파일:1494484245075.png
    위 사진은 동료 의원인 문희상과 함께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장면이다. 문희상은 참여정부 시절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18]으로 일했던 적이 있고, 이해찬은 앞서 말했듯이 참여정부 시절 법에 보장된 권한을 마음껏 행사했던 '책임 국무총리'로 일한 적이 있어서 둘 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며, 문재인의 대선 유세를 지원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우연히 취임식 날 사진에 표정이 이렇게 찍혀서 마치 반(反)문재인 성향 의원들이 억지로 참석한 모습처럼 나와 버렸다. 물론, 이 두 사람은 친노계 - 친문계에서는 원로급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이고,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매우 열심히 뛴 인물들이다.
  • 20대 국회의원들 중 유일하게 총리 경력이 있는 의원이다. 그래서 현직은 국회의원이지만 사석에서는 '총리(님)'이라 불린다. 일종의 예우 차원.[19][20]
  • 2010년대 들어 민주화 운동 시절에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보이는 증상을 자주 보이고 있다. 2017년 김어준의 파파이스와 같은 공개석상에서 나온 모습을 보면 가끔씩 손을 떨거나 말이 끊기는데, 이는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모습으로 예전에는 말을 날카롭고 빨리 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던 인물이다. 따라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여러 모로 고문 후유증이 생긴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특히 2018년 7월 20일 민주당 당 대표 선거 출마 기자회견에서는 몸을 떨고 코를 훔치는 등 건강에 문제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8.25 전당대회 분위기가 뜨거워 지면서 당권 경쟁자인 김진표 의원과 송영길 의원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이 건강 문제를 놓고 이해찬을 공격하기도 했는데, 당장 민주당계 정당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한나라당 측으로부터 고령을 이유로 치매 등의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루머로 공격 받은 적이 있고, 또 문재인도 대선 기간에 홍준표, 안철수 지지자들에게서 치매설 공격을 받은 적이 있던 터라 이를 보는 반응은 좋지 않다. 쉽게 말해 '자유한국당이나 할 법한 공격을 이젠 당신들이 하느냐, 당신들이 그들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이다.
  • 모친인 박양순 여사는 2017년 10월 30일, 향년 100세에 별세했다. #
  • 6월 15일 tbs와 한 인터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우파, 진짜 진보는 정의당이라고 평가했으며 한편으로는 더불어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정당들은 우리나라의 사회 구조상, 깊이 뿌리내리기 어렵다고 분명히 규정하기도 하였다.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을) 평화민주당 39,950 (31.18%) 당선 (1위) 초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을) 민주당 64,035 (44.69%) 당선 (1위) 재선[21]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을) 새정치국민회의 54,049 (44.75%) 당선 (1위) 3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을) 새천년민주당 48,751 (47.48%) 당선 (1위) 4선[22]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을) 열린우리당 49,673 (41.12%) 당선 (1위) 5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세종) 민주통합당 22,192 (47.88%) 당선 (1위) 6선[23]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세종) 무소속 46,187 (43.72%) 당선 (1위) 7선[24]

보다시피 지역구 7전 7승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선거 득표율이 50%를 넘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민주당 중진인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역구 6전 6승에, 모두 50%를 넘긴 득표율로 승리한 걸 비교 대상으로 드는데, 정세균은 2012년 총선 때 서울 종로구로 지역구를 옮기기 전까지는 민주당 후보에게 압도적인 표를 몰아주던 호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었으니 적당한 비교 대상이라고 보긴 힘들다.

서울 관악구가 민주당 지지세가 서울에서 제일 강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호남만한 텃밭은 당연히 아님에도 연이어 5선을 한 것은 대단한 결과이다.

물론 비교적 유리한 지역에 출마해온 것은 사실이다. 관악구는 앞서 말한 것처럼 서울 내에서 가장 민주당 계열 지지율이 높은 지역이었다. 다만 세종시의 경우에는 본인이 국무총리 시절 수도 이전을 전면에서 지휘한 곳인데다가 자기 자신이 충청도 출신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는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이었던 것은 사실이며 19대 총선 당시 맞붙었던 상대는 충청 정치권의 거물이었다. 물론 이를 감안해봐도 7전 7승은 선거의 달인으로 평가받을만한 기록이기는 하다. 남경필이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구이기는 했어도 수도권에서 6전 6승을 한 것이 대단한 기록으로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른바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던 박근혜의 경우, 차례의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2006년 5.31 지방선거한나라당의 대승으로 이끌긴 했지만 누가 봐도 새누리의 승리가 명확해 보였던, 그것도 대통령으로서 이끌었던 20대 총선에서는 참패해 박근혜가 본인의 능력으로 선거의 여왕이 된 건지, 아니면 그동안 기울어진 운동장 덕분에 얻게 된 승리를 박근혜의 능력 덕택에 얻은 것처럼 포장이 된 건지 불투명하게되었다

반면, 이해찬은 소위 말하는 험지 출마는 해본 적이 없었고 항상 유리한 지역을 출마해왔다는 점은 박근혜와 같을지 몰라도 13대 총선에선 민주정의당김종인, 통일민주당의 거물 김수한을 꺾고 당선되었고, 19대 총선에선 충청 지역 정치권의 거물 심대평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 큰 선거를 이끌어본 경험도 서울시장 두 명[25]의 당선에 기여한 바 있고, 2012년 대선을 제외하면[26] 자신이 참여한 대선에서 모두 승리를 맛 보았으니 박근혜에게 크게 뒤쳐진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1988년 첫 출마부터 2012년 총선까지 소속 정당의 이름이 모두 다른데, 이인제김한길처럼 탈당을 밥먹듯이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가 몸 담고 있었던 민주당의 이름이 유난히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건 문희상도 마찬가지다. 물론 신민주연합당 시절과 열린우리당 입당으로 인한 탈당 및 20대 총선에서의 무소속 출마 등 3번 탈당하긴 했다.

6. 어록

아빠는 현주가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자주 그려보곤 한단다. 엄마 아빠가 학교 다니던 때와는 달리 현주의 학교생활은 훨씬 자유롭고 재미있을 거야. 그때쯤에는 세상도 훨씬 좋아지고 자유로와질 테니 말이야.
외동딸 이현주 양의 3번째 생일에 보낸 편지[27]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얘기는 제가 지금까지 공직생활하며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라고 발언하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옹호했다. 다만 저 논리라면 본인이 그렇게 까대던 이명박근혜 정권의 경제 정책도 까방권을 얻게된다. 게다가 문 정부의 정책들이 도입된 직후부터 지표가 눈에 띄게 악화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에, 차라리 다른 여권 인사들 처럼 성장통이라 주장했어야 합리적이지 저런 주장은 피장파장의 오류 그 이상도 미만도 아니다.
고용악화, 이명박·박근혜 정부 탓
민주당이 20년 이상 집권해야 한다.
이 발언 후 야당 인사들의 비판을 받았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로 이루어진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성장 모델이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게 할 것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였다.#
"정치권에서 말하는 걸 보면 저게 정상인처럼 비쳐도 정신 장애인들이 많다. 이 사람들까지 포용하긴 힘들 거라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신체 장애인보다 더 한심한 사람들은" (더불어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우리는 아주 극우적 세력에 의해 통치돼 왔다
그는 "10년을 (집권)해봤자 금강산 관광·개성공단·복지정책 등이 무너지는 데 불과 3~4년밖에 안 걸렸다"며 "복지 정책을 뿌리내리기 위해선 20년이 아니라 더 오랜 기간 (집권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독일·영국·스웨덴 등을 사례로 들며 "보통 20년씩 (집권을) 해서 뿌리내린 정책인데, 우리는 아주 극우적 세력에 의해 통치돼 왔기에 가야 할 길이 굉장히 멀다"고 덧붙였다.
정조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신 이후 2018년인 현재까지 218년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외에는 단 한번도 민주 개혁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다.정책을 뿌리내리게 하려면 2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만큼 정권을 절대 뺏기면 안된다.
이 발언은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한 말이다. 정조 이후 개혁세력이 집권한적은 있었다. 헌종흥선대원군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정권을 절대 뺏기면 안된다는 등 당대표가 독재를 연상시킬수 있는 발언을 한 점은 비판받아야한다. 대만에 예시로 보면 차이잉원이 대만 독립이라는 이념적으로 통치하고 양안관계 악화 탈원전 논란 경제 악화등 민심이 등을 돌려 지방선거에서도 완패하였다 즉 지지율이 높은 문재인 정권이라도 이념에 치우쳐 실리적인 경제와 치안 안보를 소홀히하면 민심이 등돌리고 20년은 커녕 10년도 못간다. --- 또한 민주 개혁세력과 왕조시대의 개혁세력을 혼동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민주 개혁세력이었는지는 다시금 생각해볼 일이다. 온건보수, 급진진보의 집권과정을 '민주 개혁'이라고 정의내리는 말은 단순한 이분법적 분류일 뿐이다. 한편으론 진보=개혁이라는 명제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다. 왕조시대 또한 개혁세력의 변천사를 보면 명종, 선조때의 훈구 몰락, 사림 집권인데 사림파는 개혁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300년을 훈구보수 못지않게 사림보수로 몰아갔다. 이해찬의 주장은 조선시대 사림 집권파가 오늘날의 한국당을 위시한 현대 보수파의 전신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그런데 이들은 주자학원리주의를 주장하며 소중화, 예송논쟁, 쇄국과 신분제유지 등등의 정책을 시행했으므로 오늘날의 보수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현대의 보수파는 자유와 개방, 산업수출을 주도하면서 한국의 경제적 선진화를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보라는 집단이 '민주와 정의, 공정'을 주창하면서 반대로 쇄국의 형태로 각종 규제와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민생은 더욱 어려워졌고 자영업과 소상공업은 궤멸직전에 놓여 있다. 현실을 무시한 강사법으로 인해 수많은 직업강의교수들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 이론적 '정의와 공정'은 현실적 '정의와 공정'과는 다름을 알아야 하며 더불어서 '정의와 공정'이 좌파 세력의 '집권도그마'로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볼 일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0년간의 개혁을 이명박 정부가 도루묵시켜버렸다.[28]
우리 당이 아니면 집권해서 개혁 진영의 중심을 잡아나갈 역량이 어디에도 없다고 본다
이 발언은 자신의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외의 정당을 무시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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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주시·연기군 선거구의 제18대 국회의원이다.[2] 청원군 선거구의 제18대 국회의원이다.[A] 서울특별시 제12선거구의 제12대 국회의원이다.[A] [5] 제14대 국회의원 임기 후반에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에 임명되어 잠시 의원직에서 사퇴하기도 했다. 사퇴 당시에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이었기 때문에 재보궐선거는 없었다.[6] 전임은 31대 서울 부시장 강덕기[7] 전주 이씨 덕흥대원군 14세손, 시조 43세손 '海'자 항렬이다. 순종황제의 조카뻘이자 배우 이해랑, 소설가 이해조, 네이버 총수 이해진과는 같은 항렬이고, 마라토너 이봉주의 아버지뻘이다.[8] 딸은 숭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9] 더불어민주당 자치분권정책협의회 의장, 세계한인민주회의 의장, 민생연석회의 공동의장 겸임[10] 심지어 노무현 前 대통령 사후에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정계로 끌어들인 사람이 이해찬이었다.[11] 다만 문재인은 빠른 53년생인 탓에, 52년생인 이해찬과 실제로는 동갑이다.(물론 문재인 본인이 빠른 년생임을 내세워 이해찬과 친구처럼 지내는 게 아닐 가능성도 있다.)[12] 대학 학번도 72학번으로 같은데, 두 사람 모두 재수했기 때문.[13] 노무현 前 대통령과 입사동기이며, 14대 총선을 통해 입사문희상박지원보다 선배 의원이다.[14]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8선 의원으로 쳐 준다. 20대 국회 첫 개회식에서 서청원 의원이 사회를 맡을 당시 박형준 국회사무총장이 서 의원을 8선 의원으로 소개한 것이 그 예.[15] 20대 국회 기준으로 민주당 최고령 현역 의원은 후반기 국회의장이 된 문희상 의원이다.
2019년 기준으로 [age(1945-04-14)]세.
[16] 2018년 당대표 선거에서 경쟁한 김진표보다 어린데도 출마했을 때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이니... 이게 모두 초선을 만 35세에 한 데다가 노안이라서 그렇다.[17] 고추장 브랜드에서 따온 별명이다[18]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이 바로 문재인이었다.[19] 항상 욕만 먹고 금방금방 경질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국무총리는 의전서열 5위로 굉장히 높은 자리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수장인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바로 다음 위치다. 이해찬의 경우 야당 대표(8위) 경력도 있다.[20] 장관이나 교섭단체 당 대표(비대위같은 임시 당 대표 제외, 정식 당 대표 한정)를 역임한 의원의 경우에도 사석에서는 '의원님'이 아닌 '장관님'이나 '대표님'이라 불린다. 또 다른 사례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나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 또한 사석에서는 각각 장관을 지낸 경력 때문에 의원님이 아닌 '장관님'이라 불렸다. 다만, 이 두 사람 모두 2017년 초에 각각 당 대표를 역임하였기 때문에 현재에는 장관님보단 '대표님'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21] 1995년 7월 의원직 사퇴 (조순 시장하 서울시 정무부시장 임명)[22] 2003년 열린우리당으로 당적 변경[23] 첫 세종시 국회의원. 2016.3.15 더불어민주당 탈당(공천불복)[24] 본인 선거이력상 최초로 무소속으로 당선, 세종시 재선 국회의원, 2016.9.30 더불어민주당 복당[25] 사실 서울시장은 2승 1패다. 1패는 2010년 6.2 지방선거 때 생긴 전적이다. 이때 이해찬은 한명숙 후보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한명숙 후보는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와 접전 끝에 겨우 0.6%p 차이로 떨어졌다. 그렇지만 투표함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의 지지율 차가 15~20%p 가량 차이가 났던 걸 감안하면 상당한 반전이었다. 크게 이길 줄 알았는데 크게 이기기는 커녕, 강남 3구의 몰표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떨어졌을 정도로 후들거리는 격전을 치렀으니까. 오세훈 본인도 가까스로 당선된 뒤 '내가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를 못했다.[26] 18대 대선에서는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위해 당대표직에서 중도 사퇴해 선거를 끝까지 돌보지 못했다. 당 지도부가 선거를 앞두고 총사퇴한 건 문재인의 패인 중 하나로 꼽힌다. 팟캐스트 등에서 이해찬이 한 말을 보면 본인 스스로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을 깊이 후회했던 것 같다.[27] 당시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 중이었다.[28] 재미있는 점은, 이해찬은 살면서 이 둘에게 정치적 피해를 입힌 적이 있으나 후일엔 계파로 받아들여졌단 점이다. 김대중에겐 신민주연합당 탈당 후 김대중을 비난해 1991년 지방선거에 큰 피해를 끼쳤단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해찬이 김대중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올 때, 김대중은 당을 매도해 심각한 피해를 끼쳤지만 의정활동도 잘했고 젊고 반성하는 태도가 있어서 다시 받아들여줬단 언급을 했다. 노무현때엔 총리 시절에 벌어진 월권행위, 경질로 정부의 추진력에 해를 끼쳤으나, 보수정권 시기에 여러 팟캐스트를 전전하며 친노좌장이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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