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05 20:14:23

정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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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 (구).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노원구 갑)
제16대
함승희
제17대
정봉주
제18대
현경병[1]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20161019_1476846672_16245200_1_99_20161019121505.jpg
이름 정봉주 (鄭鳳株)
출생일 1960년 7월 2일 ([age(1960-07-02)]살)
출생지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2]
본관 봉화 정씨[3]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 학사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병역 면제
소속 정당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 [4]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7
가족 배우자 송지영, 1남 1녀
약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장
월간 '말' 기자
제17대 국회의원
통합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민주당(2008년) 교육연수위원장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대어학원 CEO
정봉주의 전국구 진행자
공식 사이트 트위터, 페이스북, 유투브
별칭 이명박 저격수. 봉도사.
1. 개요2. 정치 입문 이전 생애3. 정치 입문 이후4. 실형선고 및 복역5. 출소 이후6. 선거 이력7. 논란
7.1. 조계사 여신도 폭행 논란7.2. DMZ 발목지뢰 경품 발언 논란7.3. 허위 예비후보 등록 논란7.4. 성추행 의혹과 정계 은퇴7.5. 한-일 경제갈등 희화화 논란
8.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국회의원. 공전의 인기를 끌었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크게 알리기 시작했다. 나꼼수 활동 중 선거법 위반으로 1년 동안 수감되었으며, 이후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의 진행자이자 정봉주계의 수장이 되었다.[5] 종교불교이며 법명은 만운이지만 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모든 이야기가 자기 자랑으로 끝나는 깔때기 스킬과 구라풀기 스킬의 마스터이다. 나는 꼼수다 열풍이 불 때는 깔때기에 싸인을 받으려는 팬들이 많았다고.

2016년 tbs TV에서 <정봉주의 품격시대>를 진행.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외부자들에 고정 출연. 2017년 3월 6일부터 SBS 러브FM에서 <정봉주의 정치쇼>를 진행하고 있다.

2007년 이후로 이명박 前 대통령의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가 허위 사실 및 과장된 사실이라는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2011년 수감, 2012년 만기출소), 피선거권이 공직선거법에 따라 2022년까지 상실되었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29일에 복권하면서 피선거권이 회복되었다.[6] 이후 정치일선에 복귀하기 위해 서울시장 출마 및 민주당 복당을 시도하였으나 후술될 성추문 의혹이 커지면서 2018년 3월 28일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2. 정치 입문 이전 생애

1960년 7월 2일,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현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출생. 아버지가 경찰서장 출신이라 나름 금수저 집안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7]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입학하여 총학생회장을 맡았으며 학생운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1983년 대학교 재학 중 ROTC 22기 후보생 신분으로 민주화 시위 주동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ROTC에서 제명되었다.[8]

대학 졸업 이후에는 민언련[9]의 기관지 지의 초창기 기자로[10] 활동을 했으며, 1989년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대학교에서 TESOL을 취득했다. 귀국 후 1991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특별시 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였고 모교 한국외대의 특성을 살려 외대어학원을 운영했다.[11] 지금이야 테솔 자격증이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정도 경력의 학원강사면 돈을 잘 벌었을 때였고 실제로 나꼼수에서 말하길 이 때 빌딩도 샀다고 한다.

3. 정치 입문 이후

민주당 성향이며 김근태 계열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12]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당적으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갑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13]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엄청난 역풍으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후보들이 비교적 쉽게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을 빗대서 탄돌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정봉주도 이 탄돌이 출신이다. 당시 다른 탄돌이 의원들은 이 말을 듣기 싫어했으나 자신은 스스로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2007년 제17대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여당 경선에서는 손학규 후보를 지지했으나, 정동영 후보가 승리하자 곧 승복하고 선거운동을 도왔다고 한다. 그런데 자서전에 의하면 당시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운동권 직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중책을 맡기지 않는 것을 보고 좌절하여 결별하였다고 한다.[14]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BBK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정치인 중 박영선을 능가하는 자타가 공인한 이명박 저격수. 또한 이명박이 당선된 직후에도 나는 꼼수다 등의 팟캐스트 방송까지 참여하며 이명박의 거의 모든 의혹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정봉주는 이명박은 김백준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방산비리 관련 문제로 걸려들어갈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명박의 최측근 김백준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유용건이 걸려들어간 직후에 이명박은 뭔가 겁먹은 듯한 태도로 사무실에서 성명을 발표했고(한 때 이명박의 측근이었으나 지금은 결별한 정두언도 이것을 보고 떨었다고 언급하며 예전에는 설마 그 약은 MB가 걸려들어가겠냐고 했으나, 그 상황을 본 직후 'MB는 종쳤다.'라는 언급을 대놓고 할 정도로 상황이 이명박에게 급속도로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사무실 성명으로부터 정확히 10일 후 진짜로 검찰이 이명박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였다.[15]

그래서인지 전현직 정치인 중에서 BBK 저격수, MB 저격수는 2018년 시점에서도 정봉주를 뜻하는 별명으로 유명하며, 구글에서도 이명박과 정봉주가 연관돼서 자동 검색으로까지 등장한다.

때문에 정봉주는 직접적으로 이명박한테 고소당했으며, 또한 친이계 중진들한테도 찍힌 모양인지 외부자들에서 친이계의 좌장이자 친이계 정당인 늘푸른한국당 대표 이재오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그 상황에서 정봉주는 이재오에게 “의리있는 건 좋지만 이제 의리 버리실 때가 됐는데” 이러면서 이재오에게 은근히 이제 그만 이명박을 버리고 떠날 때가 됐다는 투로 말을 건넸고, 이재오는 “뭐 없는 사람들끼리 의리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하면서 정봉주의 제안을 칼같이 거절하기까지 했다(외부자들 47회). 또한 이재오는 외부자들에서 정봉주의 이름을 대놓고 부르면서 지칭하면서 공격하기도 했으니(외부자들 56회) 친이계 중진들한테도 어느정도 찍혔다고 봐도 무방할 듯.

그러나 BBK 저격수 활동으로 인해 대선 종료 이후 검찰에 의해 선거법 위반,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었고 그 중 명예훼손을 제외한 선거법 위반, 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대해 2011년에 징역 1년, 선거법 위반에 따른 피선거권 박탈 10년 선고가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된 이후 각종 방송에서 패널로 활동하였고 2011년에는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과 함께 나는 꼼수다를 진행하였다. 그러다가 위의 내용처럼 대법원 확정판결이 선고되어 2011년 12월 중순에 하차하게 되었다.

4. 실형선고 및 복역

오늘은 진실이 구속되지만, 내일은 거짓이 구속될 것이다! - 수감 당시 정봉주가 했던 발언. 2018년 3월 22일 23시에 실제로 이명박 前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그리고 이명박 구속 5일 후 봉도사는 정계를 은퇴한다.
정봉주의 전과 가운데 공직선거법 위반이 있는데, 이게 바로 17대 대선에서 BBK 주가조작 사건 수사의 문제점과 의혹에 대한 내용을 기자회견 등에서 언급한 덕분에 생긴 전과이다. 검찰은 정봉주의 BBK 관련 발언들이 허위사실인데다 이명박의 대통령 선거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이유로 기소했는데, 4년간의 재판 끝에 대법원에서 1년 실형 판결이 확정되었다.[16]당시 재판부(판사)는 '정봉주의 발언은 모두 허위사실임이 넉넉히 인정되며, 확정적 고의가 아닌 미필적 고의 역시 허위사실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부분에 대해서 피고가 인지를 했다면, 허위사실공표의 죄가 성립하기 충분하므로 유죄가 성립된다' 라고 판결하며 결국 징역 1년을 확정하였다. 한편 검찰은 이 때 정봉주의 검찰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기소했으나 재판부는 국회의원으로서 검찰에게 할 수 있는 감사의 역할이라고 판단하여 이 부분은 무죄로 판결되었다.[17]

쉽게 말해서 본인이 제기한 BBK 관련 의혹이 허위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거나 인지할만한 정황이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일부러 퍼뜨렸다는 것. 집행유예도 아니고 실형 1년이면 상당한 중형인데, 고의성이 인정돼서 죄질을 나쁘게 본데다 이런 저런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가중처벌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다스 실소유주 논란이 재점화됨에 따라 판결 결과와는 다른 사실이 밝혀질 가능성이 생겼으나 아직은 미지수.

5. 출소 이후

2012년 12월 25일 정치인 최초로 사면이나 가석방 조치를 받지 못하고 만기출소하였으며, 이후 개인사업과 함께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 tbs 교통방송 TV 시사프로그램 <정봉주의 품격시대>를 진행하고 있다. 2017년부터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외부자들에도 고정 출연하고 있다.

우병우가 국정조사 청문회에 불출석하고 도망다녔을 때 최초로 현상금을 걸었다. 처음에는 개인돈 200만원으로 시작하였으나, 이후 안민석이 동참하면서 500만원으로 늘어났고, 이후 시민들이 자발작으로 현상금 기부에 참여하면서 830만원이 더 모였다고 한다.(아주경제) 결국 우병우가 자진 출석을 통보하면서 이 현상금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았고, 대법원 확정판결에 의해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2022년까지는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선거법상 대통령이 복권[18]조치를 취하면 피선거권을 회복할 수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정봉주와 정치 성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복권을 시켜주지 않았다. 박근혜가 파면되고 정치 성향이 비슷하고 인연이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복권이 기대되었고, 전체 국회의원의 무려 42%인 총 125명(더불어민주당 97명, 국민의당은 소속 국회의원 절반이 넘는 22명, 정의당은 소속 국회의원 전부인 6명)의 국회의원[19]이 2017년 11월에 정봉주 복권 요청 탄원서에 직접 서명하기까지 하여 청와대에 탄원하기도 했다. 그런 결과, 2017년 12월 29일, 마침내 특별복권되었다.[20]박상기 법무부장관의 2018년 신년 특별사면 발표 영상 2분 40초경.

사면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사하다고 밝혔으며 진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다만, 자신은 언제나 민주당이라며 민주당 복당 의사는 확실히 드러넀다. 최근,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위해 여의도에 사무실을 마련했다는 근황이 전해졌다.
사실... 그... 이런 날이 안 올줄 알았어요. 감옥 갔다 오고, 웃으면서 살긴 했지만 이런 날은 오지 않았었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죠. 멀리를 못봐요. 아주 지독한 근시예요. 본인의 재산을 찾아 주겠다는데. 얼마나 감사해요. - 외부자들 45회 中
2018년 1월 2일 YTN과의 인터뷰에서는 당적이 없다고 밝혔으며, 더불어민주당 복당 시기를 가늠하고 있다고 한다.[21]

2018년 2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으로의 복당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당초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것과 달리 당의 요청에 따라 재보궐선거 지역인 노원구 병[22]과 서울특별시장 출마 가운데 하나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8년 3월 7일, 이른바 연트럴파크에서 서울특별시장 선거 출마 선언을 하겠다고 하였으나, 기사 아래에 나올 미투에 연루되면서, 출마선언을 전격 연기했다. 기사

2018년 3월 23일, 이명박이 진짜로 구속되자 정봉주는 아침에 바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나는 무죄임이 확인됐다!" 라는 메시지를 올리고,곧 이명박이 자신을 고소해서 처벌받았던 재판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했으며 3월 27일 오전 10시 30분경에 국회 정론관에서 정식으로 입장을 표현했다. 그러나...

2018년 3월 28일, 후술할 성추행 의혹으로 인해서 잠정적으로 정계를 은퇴하게 되었다. 정계 복귀를 준비하면서 "안철수가 한 트럭이 와도 나한테는 안 된다"면서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던 적이 있고 재판이 걸려 있어 더불어민주당으로의 복당도 불허되었다.

그러나 이후, 2019년 11월에 정봉주 성추행 의혹 재판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다음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복당을 허가하면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 처리가 완료되었다.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1 1991년 지방선거
(서울시의회 노원구 제3선거구)
신민주연합당 4,769 (39.0%) 낙선 (2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노원구 갑)
열린우리당 36,992 (42.7%) 당선 (1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노원구 갑)
통합민주당 26,251 (37.62%) 낙선 (2위)

7. 논란

7.1. 조계사 여신도 폭행 논란

2016년 8월 1일 기자회견을 막는 조계사 여신도를 밀어 다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봉주 전 국회의원에게 벌금형이 내려졌다. #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오윤경 판사는 상해 혐의로 기소된 정봉주에게 7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2015년 4월 조계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정봉주는 이를 저지하려던 조계사 여신도 이모(당시 68세) 씨를 밀어 넘어뜨려 왼쪽 손목에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정봉주는 자신이 조계종김정은 집단에 비유했다는 언론 보도 내용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과정에서 정봉주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신도 이 씨가 먼저 자신을 때렸고 방어차원에서 밀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 판사는 “사건의 발생 경위, 범행방법, 당시 정황 등에 비춰봤을 때 정 씨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정 전의원이 신도들 요구대로 기자회견 장소를 옮기던 중 이 씨가 뒤따라오며 정 씨의 등을 밀쳤다”며 “정 씨가 이를 뿌리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러 범행동기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 전 의원이 피해자 이 씨를 위해 300만원을 공탁했고, 이 씨와 원만히 합의한 점을 참작했다”며 정 전 의원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7.2. DMZ 발목지뢰 경품 발언 논란

파일:정봉주 망언.png


2017년 6월 14일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DMZ에서 발목지뢰를 밟으면 목발을 경품으로 주자'는 무개념 발언을 웃음까지 터뜨리면서 했다. 기사 밟는 순간 발 하나가 확정적으로 날아가고 단기간 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경우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물건인 발목지뢰를 한낱 웃음거리로 삼아 조롱하듯이 언급한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정봉주가 이 방송을 한 시점은 2015년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이 일어난지 불과 2년 후. 본인이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이 사건의 피해 장병들에 대한 모독으로밖에 볼 수 없다.

7.3. 허위 예비후보 등록 논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봉주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여부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성추행 주장이 제기된 직후 정봉주 전 의원의 민주당 소속 여부에 대해 민주당 측에선 정봉주 전 의원의 당적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며 심사 절차가 진행 중일 뿐이라고 했다.기사 게다가 논란이 커질 경우 정봉주의 민주당 내 서울시장 경선 참가는 물론 당적 복원까지 불투명해질 전망이다.

파일:tjsrhksdnlejqnfdjalswnekd.png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방선거포탈: 예비후보자명부 - 시도지사선거 - 서울특별시

정봉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할 때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등록했다. 중앙선관위는 당적 조회를 통해 후보자로 등록하려는 사람의 실제 당적과 서류상 당적이 일치하지 않으면 등록무효를 하기때문에, 중앙선관위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등록되었다면 이미 정봉주 전 의원은 복당이 완료되었다는 뜻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다만, 이건 선거법에 관련된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예비후보자 등록에 필요한 서류에는 당적관련 서류가 없으며, 정봉주가 제출한 서류 중에서 오직 '전과기록에 관한 증명 서류'만 민주당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경찰청에 조회하는 서류는 따로 제출하는 것이며, 이 서류는 어디까지나 후보자 본인이 쓰는 것이다. 즉, 이 서류에 등록된 당적만으로는 정봉주가 진짜 당적을 갖고 있다고 판단할 수 없다. 그리고 공식법 제60조의2 9항을 보면 등록신청을 받으면 선관위 규칙에 따라 당적보유 여부를 당에 조회 요청할 수 있는데, 이 요청은 등록받을 때 바로 당에 연락을 해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등록을 받아놓은 후에 한꺼번에 몰아 받아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정봉주가 정식 후보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는 상황이다.

뭣보다 정봉주가 등록한 건 예비후보자일뿐 정식 후보자 등록을 한 게 아니다. 선거법에는 예비후보자 조항이 따로 있으며 예비후보자 등록 무효 항목도 따로 있다. 즉, 정봉주 본인이 스스로 복당 예정이라 여기고 자신을 민주당이라 등록했다고 해도 이건 엄연히 예비후보자 등록이며 결코 정식 후보자가 아니다. 애초에 경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식으로 후보자가 정해질 리가 없다.

논란이 지속되자 다시 소속을 무소속으로 변경하였다.

7.4. 성추행 의혹과 정계 은퇴

2018년 3월 7일 프레시안은 여성 A씨가 정봉주에게 2011년 성추행을 당했다는 주장을 보도하였다. 그런데 프레시안의 보도는 신뢰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할 만큼 주장이 이리저리 바뀌었고 그나마 내밀었던 증거들 마저도 확실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피해자가 곧 증거"라는 식으로 주장하며 시간대를 특정하지 않아 당일 정봉주의 전체적인 동선을 중심으로 알리바이 게임 양상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정작 A씨나 프레시안과 무관한 다른 인물에 의해 특정 시간대가 지목되었다. 이후 이 시간대에 대한 많은 추가 보도와 반박, 기자회견, 사진자료를 포함한 방송이 이루어졌으며 상황은 사진이라는 물적 증거를 통해 반론을 제기하였던 정봉주에게 매우 유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정봉주는 알리바이를 내세워 호텔에 간 사실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프레시안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며 강력한 반격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런데 정봉주의 성추행 의혹이 무고인 것으로 굳혀져 가던 와중인데도 민주당은 '프레시안과의 문제를 깨끗하게 매듭지은 뒤에 돌아오라'는 뜻에서 그의 복당을 불허하였다. 이에 정봉주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한 여론의 반발이 컸다. 차후 진짜 피해 주장자인 A씨가 당일 5시 이후라는 다른 시간대를 내세웠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차후에 반전이 일어났다.

3월 28일 SBS모닝와이드에서 정봉주가 렉싱턴 호텔에서의 카드내역을 발견하고 고소를 취하한 것을 보도한다. 당일날 문제의 호텔에 들른 적도 없다는 주장과는 달리, 당일 오후 6시경 그 문제의 호텔에서 카드를 결제했던 내역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여론이 뒤집어진 것이다. 호텔에 가지도 않았다는 주장의 전제 조건이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정봉주 측이 다시 코너 끝에 몰리게 된 것이다.

결국 정봉주는 본인 SNS를 통해 프레시안 측에게 냈던 소송을 취하하였고 정계에 복귀하지 않고 자연인[23]으로서 살겠다는 뜻을 밝히며 정계 은퇴 의사를 밝혔다.

2019년 10월 25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7.5. 한-일 경제갈등 희화화 논란

파일:Kopina.png
▲정봉주 왼쪽은 최민희, 오른쪽은 김현이다.

파일:정봉주fb.png

2019년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국내에서는 일본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한일갈등이 격화된 와중에 한일 경제갈등을 희화화하는 듯한 티셔츠를 제작‧판매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정봉주는 8월 2일 자신의 트위터에 위와 같은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리며 Go japan, ur nose bleeding(일본 가면 네 코에서 피가 난다)라는 문구를 넣었고, 또한 자기 페이스북에는 방사능 등 일본의 약점을 집중공격하자는 내용의 글을 작성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일 경제갈등의 엄중한 상황을 지나치게 가볍게 묘사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며, 경제갈등과 무관한 일본 내 방사능 피해자들을 웃음거리로 삼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정봉주페이스북 글을 보면 단순히 "안 가고 안 산다"는 불매운동의 차원을 넘어 "2020년 올림픽도 참가하면 코피나고 암 걸린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그 안에 갇혀서 니들끼리 잘 살고 코피나게 만들겠다"며 아예 일본 자체에 대해 대놓고 비하성 저격을 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봉주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현재 일본에서 방사능 세슘 오염으로 코피가 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런 사실관계를 말한 것 뿐, 희화화를 한 것은 아니다"고 변명했다. 위의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에서도 누군가가 "나는 일본 사는데 그럼 나는 매일 코피 나겠네"고 지적하자 "거긴 아직 오염 안됐나보네요"라고 변명하는 게 보인다. #1 #2 #3 #4 #5

8. 여담

체격은 50대 후반임을 감안해도 크지 않은 편이지만,[24] 오히려 체격 큰 정치인들도 기싸움에서 그를 못 이길만큼 정치인들 중에서도 상당히 한 성질하는 인물이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과 운동실력 및 깡으로 학창시절에도 싸움을 잘해서 주먹으로 학교뿐만 아니라 그 동네 전체에서 날렸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중국 무술(쿵푸)을 익혔고,[25] 고등학교 때는 권투까지 배워서 학교끼리 패싸움났을 때도 항상 앞장서서 싸우는 리더그룹 역할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상대에게 맞는 것도 별로 두렵지 않았고 '일단 싸우면 이겨야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제대로 놀아본 학생'이었던 관계로 결국 훗날 삼수를 했다.[26] 이렇게 깡다구 성향과 낙천적인 성격이 있어서 민주화운동 시기 투옥생활도 버티고, 훗날 50대의 나이로 수감되었을때도 남들보다 더 빨리 적응하여 운동까지 하면서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주진우의 말로는, '나꼼수 멤버 중 화날 때 가장 사나운 스타일인데, 속은 착하다(?)'고 한다.

미국 유학 후 규모가 큰 영어학원을 운영했던 만큼 영어는 잘한다. 나꼼수 때도 특정회차에 원래 녹음해놓은 오프닝 대신 본인이 영어로 오프닝을 한 적도 있다. 자신이 미래의 한국 대통령이 될 것이며, 이 방송은 현재의 대통령에게 바친다는 오프닝 내용.. 나꼼수는 시작부터 '가카 헌정 방송'을 표방했었다.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약칭 '미권스')이라는 팬 카페를 소유하고 있다. 회원수는 약 17만명으로, 숱한 정치인 팬 카페들 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은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다. 정계은퇴 후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선언을 한 이후에도 꾸준히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나름대로 정치인 팬덤의 한 획을 그은 카페이기도 하다.

전과 9범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2범, 국가보안법 위반 1범, 공직선거법 위반(제250조 2항, 허위사실 공표) 1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5범이다. 위의 전과 내역을 보면 알 수 있듯 집회 등의 정치 활동과 관련된 전과가 많지만, 폭력 전과 또한 5범이나 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성격이 다소 급하고 다혈절적인 측면이 있다. 이런 욱하는 성격과 관련해 나꼼수시절에 남긴 레전드 사건이 있는데, 대학강연에서 자신이 들은 소문에 대해 생각없이 말했다가[27] 그 소식을 들은 조선일보 기자가 신문기사를 안 내겠다고 자신을 속이면서 인사하러 전화했다고 하고 자신이 강연에서 말한 내용에 대해 묻고 나서, 바로 다음날 그 내용으로 '정봉주가 괴담 루머를 퍼뜨린다'며 신문기사를 내고 발뺌한 조선일보 기자에게 화가 나서 아침에 전화를 걸어 따지다가, 그 기자가 피곤한척하면서 '내가 나중에 전화할테니 다시 통화합시다'라고 하자 기만당하는 느낌을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28] 하지만 TV조선시그널이라는 프로그램에 고정 MC로 출연할 정도로 다시 원만한 관계를 보이고 있다. 평소 정봉주의 성격을 감안하면 완전히 다른 행보라는 반응. 특히 인터넷에 정봉주가 국회의원이었던 시절 돌아다니는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국회의원 때도 한 성격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호적 나이는 1960년으로 되어 있고, 1월이나 2월생도 아니지만 1959년생들과 학교를 같이 다녔다. 삼수를 하고 학교에 입학한 나이가 1980년.[29] 본인이 국회의원일 때 자주 보이던 1959년생 연예인 김흥국과도 친구를 먹었다고 하니[30] 어릴 때 출생 신고가 늦어지는 문제가 있었던 듯.[31]

감옥에서 맨몸운동만으로 몸을 만들어 헬스서적까지 펴냈다. 2013년 '골방이 너희를 몸짱 되게 하리라! (빠삐봉 정봉주의 맨손 헬스)'에 이어 2015년 '나만 따라해 (셀프 바디 성형, 살 빼는 남자, 운동하는 여자를 위한 헬스봉의 몸짱 프로젝트 2)'까지. K3 리그 천안 FC 소속으로 정식 선수로 등록하여 축구선수로 뛰었으며 대한축구협회에서 최고령 선수 기록으로 인정했다고. 그리고 자차로 벤츠 S500을 굴리고 있다.

가장 친한 정치인은 안민석. 안민석은 의리파 정치인 이미지에 맞게 정봉주가 감옥에 있는 동안 50번 넘게[32] 면회를 가서 가족보다도 조금 더 많이 갔을 정도라고 하고, 출소 한달 전에는 박영선 등 몇몇 정치인들과 함께 면회를 가서 구치소 앞에서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그 외에 정청래하고도 매우 친하다. 정봉주가 농담으로 "정봉주계 정치인으로는 안민석과 정청래, 김비오가 있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33] 박범계도 방송에서 '정봉주 선배'라고 부르지만 사적으로는 '봉주형'이라고 부를 만큼 친분이 있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도 정봉주가 복권된 직후 정봉주가 패널로 있으면서 진행하던 외부자들 스튜디오에다 축하 화환을 보내줬다.

여담으로 노회찬과도 친한 사이인데, 정봉주의 경우 고향부터 노원구이고, 노회찬의 경우는 대부분의 활동을 노원에서 활동을 많이 했던 만큼, 이 때부터 서로 친분이 생겼을 확률 또한 충분하다. 여담으로 노회찬에 대해서 사적으로 만나면 노잼이라고. 심상정, 유시민과도 상당히친하다고.[34] 사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뿐만 아니라 국민의당 의원 중에도 민주화 운동이나 정치생활 중 가까워져 친분 있는 사람이 꽤 있다. 정동영이나 박지원, 천정배같은 거물급이야 당연히 알 수 밖에 없고, 주승용, 박주선, 유성엽, 조배숙 등 중견정치인들과도 같은 당에 있던 적이 있어서 다 아는 사이.[35]

2017년 7월 25일 정봉주의 정치쇼에서 나무위키를 인용하여 김학철 도의원의 다른 막말을 언급하였다.

여담으로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정봉주 복권축하 화환을 정봉주가 패널로 출연하는 외부자들안민석과 같이 보냈는데, 화환에 '서울특별시장 내리 2선 웬순씨'라고 적혀 있었다...

여담으로 이명박이 최측근 김백준이 구속되면서 궁지에 몰린 직후 오랫동안 이명박의 거의 모든 의혹을 조사하던 정봉주가 "지금은 진실이 구속되지만 다음에는 거짓이 구속될 것이다! 잘 들었나, MB?"라고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렸는데, 곽한구가 정봉주의 그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서 화제가 됐다.#[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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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K3리그 천안 FC에 입단하면서 축구 선수로 데뷔하기도 하였으며, 당시 기준 55세로 대한축구협회 최고령등록선수로 화제가 되었다.#

2015년 서울 FC 마르티스와의 K3리그 24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전해 센터 포워드로 기용된 적이 있다.

[1] 2011. 06. 10.: 의원직 상실[2] 현재 노원구 공릉동. 지금도 공릉동에 살고 있다.[3] 삼봉 정도전의 21대손이다.[4] 더불어민주당 복당서류 제출 후 복당 심사를 기다렸으나, 미투운동 과정에서 프레시안에 의한 성추행 의혹이 불거져 나오면서 2018년 3월 19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불가 결정이 나오면서 복당이 무산되었다. 이후 2019년 11월 29일 복당이 허가되어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했다.[5] 본인말로는 안민석, 정청래, 김비오를 거느리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일단 정봉주계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최강욱 한사람 정도? 본인의 계파는 아니더라도 일단 안민석, 정청래 의원과는 꽤 친분이 두터운 걸로 알려져 있다.[6] 사면과 복권은 조금 다른데, 정봉주는 선고받은 징역형에 대해서는 이미 만기출소를 했기 때문에 복권 대상자이다.[7] 본인 말로는 80년대초 대학 다닐때 학교에서 자가용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거의 없었는데, 정봉주 본인은 갖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민주화운동(학생운동)하는 학생들 중에는 자기 밖에 없어서 전설적인 민주화 운동가 문익환 목사를 경찰에 걸리지 않게 자기 차로 시위 및 연설현장에 모셔가기도 했다고.[8] 또한 특정 기간 이상 감옥을 갔기 때문에 수형자 병역규정에 의해 자동으로 군면제(정확히는 제2국민역)가 되었다.[9] 당시에는 민언협이라 불렸다.[10] 정봉주가 방송에서 상당히 자주 하는 얘기인데 3번째 기자라고 한다. 첫번째 기자는 훗날 국회의원이 된 민언련 출신 정치인 최민희, 2호 기자는 훗날 그 최민희와 결혼한 정수웅. 사실 정수웅은 최민희의 후배였고, 최민희은 민언련 들어갈때 다른 남자친구와 연애 중이었다고 하는데, 기자 활동을 하다가 그 남자와 이별을 하게 되자 정수웅이 고백해서 연애에 성공하고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근데 훗날 정봉주와 함께 방송하면서 정봉주가 최민희에게 '기자일 하라고 했더니 2호기자랑(정수웅) 연애를 해서 결혼했다'고 놀리자 최민희가 '그때 데이트는 3호 기자(정봉주)랑 했다'고 농담으로 받아친 적이 있는데, 정봉주는 '우리 집사람이 이 방송 보니까 조심하라'고 역시 농담으로 넘겼다. 당시 최민희가 연애했다는 진짜 남자친구가 정봉주인지는 알 수 없다.[11] 선거 낙선 후에 자금력이 받쳐줘야 남에게 구속받지 않고 자신의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의 피해자 강기훈이 형량 다채우고 만기출소 이후에 생계가 막막해지자, 정봉주 자신이 운영하던 학원으로 그를 불러 강사 일자리 및 생계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당시 운동권 출신들은 시위 전과 경력으로 인해 제도권으로 취직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도와주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리고,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되는 교사들도 생계를 위해 사교육계로 많이 진출했었다.[12] 운명의 장난인지, 안타깝게 정봉주가 BBK 사건으로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감옥에 가게 되자마자 바로 일주일만에 김근태가 사망하여 김근태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13] 서울이나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 다수가 해당 지역구에 아무런 연결고리조차 없는 외지인 출신이 많다. 하지만 정봉주는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 중에서도 자신의 연고지(공릉동)에서 국회의원이 된 드문 케이스다.[14] 자서전에 손학규 시절이라고 정확하게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이 시기가 확실하다. 우연히도 이 시기에 박스떼기의 총책임을 맡던 이재명과 마주치는 일이 잦았으며 뉴스도 종종 나왔다.[15] 거기다가 정봉주는 이명박을 확실히 잡기 위해서는 김백준을 잡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김백준을 수사할 때도 반드시 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고 JTBC 뉴스룸에서 지적했다.[16] 여담이지만, 공직선거법 270조에 따르면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의 항소심 선고 이후 상고심은 3개월 이내에 반드시 해야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을 무시하고 2008년 12월 11일 항소심 선고 이후 3개월 안에 판결해야할 상고심을 2년 이상 미룬뒤 후임 대법관에게 넘긴 정봉주 상고심의 주심 대법관이 바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다. 양승태는 이 건 판결 전에 퇴임후 중앙선관위원장을 거쳐 이명박 정권때 대법원장으로 임명받았고, 정봉주 상고심은 후임 이상훈 대법관에 의해 2011년에 12월에야 원심유지 판결로 1년형이 확정된다.[17] 정봉주 본인이 수감될 때, "오늘은 진실이 구속되지만 내일은 거짓이 구속될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18] 이미 정봉주는 선고받은 형기를 마치고 만기출소했기에 사면이 아닌 복권 대상이다.[19] 강병원, 강훈식, 고용진, 기동민, 김경수, 김경진, 김관영, 김광수, 김두관, 김민기, 김병관, 김병기, 김병욱, 김상희, 김성수, 김수민, 김영진, 김영호, 김종대, 김종민, 김종회, 김진표, 김철민, 김태년, 김한정, 김해영, 김현권, 남인순, 노웅래, 노회찬, 민병두, 민홍철, 박경미, 박광온, 박남춘, 박범계, 박선숙, 박영선, 박용진, 박재호, 박 정, 박주민, 박주선, 박주현, 박준영, 박지원, 박찬대, 박홍근, 백혜련, 변재일, 서영교, 서형수, 설 훈, 소병훈, 손혜원, 송기석, 송기헌, 송영길, 송옥주, 신경민, 신동근, 신창현, 심기준, 심상정, 심재권, 안규백, 안민석, 안호영, 양승조, 어기구, 오영훈, 오제세, 우상호, 원혜영, 위성곤, 유성엽, 유승희, 유은혜, 윤관석, 윤소하, 윤영일, 윤후덕, 이개호, 이동섭, 이상민, 이석현, 이수혁, 이용득, 이원욱, 이인영, 이재정, 이정미, 이종걸, 이찬열, 이철희, 이춘석, 이학영, 이해찬, 이 훈, 임종성, 장정숙, 전재수, 전해철, 전현희, 전혜숙, 정동영, 정성호, 정재호, 정춘숙, 제윤경, 조배숙, 조승래, 조정식, 주승용, 진선미, 천정배, 최경환, 최운열, 최인호, 추혜선, 한정애, 홍영표, 홍의락, 홍익표, 황주홍. 총 125명.[20] 형을 모두 살아서 사면은 아니고 복권이었다. 정치인과 경제인 중에 정봉주 단 1명 외에는 사면이나 복권된 사람이 없었다.[21] 12:03부터 정봉주의 전국구에서도 동일한 언급을 했다.[22] 참고로 노원구 병은 정봉주와 상당한 친분을 가진 정의당 노회찬의원의 원래 지역구이다. 원래 창원 성산의 국회의원이었던 권영길이 건강 사유로 불출마하게 되자 노회찬에게 대신 출마해달라는 요청을 해서 노회찬이 잠시 창원 성산으로 내려간 것 뿐.[23] 본인이 페이스북에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실제로 사용한 표현.나는 자연인이다가 합성 밈으로 주목받게 된 이후로 자연인이랑 표현을 부정적으로 보는 늬앙스가 있지만,정계에서 자연인이란 표현은 으레 쓰이는 상투적인 표현이다.[24] 언론 인터뷰에서 본인이 밝힌 키는 168cm, 출소 후 몸짱이 되어 보디빌딩 책도 내고 보디빌딩 대회도 준비하던 시기 168cm에 74kg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국 남성 평균키는 173~174cm 정도라 정봉주 체격은 많이 작은 편이지만 과거를 감안하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정봉주가 젊었을 때 한국 남성 평균키는 169~170cm 정도 되었다. 물론 본인세대에서도 약간 작은 편이었던 것은 맞다.[25] 언론에 공개된 과거사진 중 70년대에 산에서 웃통벗고 무술연습을 하다가 찍은 발차기하는 사진이 있다.[26] 그러나 본인 말로는 싸움 잘하는 학생치고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는데 암기과목을 등한시해서 대학에 떨어졌다가 나중에 재수하던 친구가 암기과목을 더 하라고 조언을 해줘서 대학에 갔다고 한다.[27] 당시 안철수의 복심으로 불리우던 시골의사 박경철에 대해 정부가 세무조사를 했다는 루머로, 후에 밝혀진 바로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28] 본인 증언인데, 그냥 막말수준이 아니라 진짜 욕이었다. 정봉주가 전화를 걸어 "어이, 기자, 어떻게 인간적으로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고 하자, 기자가 피곤한척 목소리를 깔면서 "여보세요~ 어~제가 뭐 기사를 잘못 쓰기라도 했습니까?" 라며 피곤한척하자, 너무 화가 나서 "어? 이 개XX가 지금 어디서 개기름 바른 목소리를 깔고 있어 이 새X가, 야 이 씨XX아!"라고 했고, 기자가 "어어? 이거 너무하신거 아닙니까?"라고 항의하자, "너무하긴 이 개XX야 너 나 정봉주가 누군지 몰라서 이러는 거지? 모가지를 비틀어버릴까 이 개XX가, 뭐 내가 일부러 괴담을 퍼뜨려? 그래 내가 뭐 말하면 당연히 쫙 퍼지지 내가 (트위터) 팔로워가 20만명인데, 이 씨XX아 너 (피곤한척하는) 목소리 원래 목소리로 안 해? 이 새X가 어디 목소리에 개기름을 발라 목소리를 깔고 있어?"라고 했고, 기자가 상황을 넘기기 위해 "제가 나중에 다시 전화걸게요" 라고 하자 "전화하지마 이 쌍X무 새X야"라고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정봉주의 분노에 그냥 넘어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지 그 기자가 실제로 몇시간 뒤에 피곤한 톤이 아닌 원래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화를 건 기자가 "정봉주 선배님 저 OOO기자입니다"라고 하자마자, 분이 안 풀린 정봉주는 "너인줄 아니까 전화끊어 이 새끼야"라고 하고 끊어버렸다고. 주진우는 이 이야기를 듣고 "조선일보 기자에게 쌍욕하는 정치인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둘렀다.[29] 1959년생이 삼수했을 때 대학입학하는 나이다.[30] 과거 팟캐스트 방송에서 말할 때도 그냥 '흥국이가', '김흥국이랑 나랑 친구먹은 사인데' 이렇게 부른 걸로 보아 형동생 사이는 아니다. 근데 문제는 정봉주가 대학시절이나 정치입문 후 좀 불규칙하게 친구를 먹어서 1960년생들하고도 친구를 먹기도 하고, 1959년생과 친구를 먹기도 하고(근데 이쪽은 정치입문 후 빈도가 적다), 반대로 일부 59년생 정치인이나 지인들을 선배로 부르기도 한다는 점. 그래도 59년생과 60년생만 문제지, 대학 동기인 1961년생들과는 친구를 먹지는 않았다.[31] 출생신고가 1년 늦는 이런 케이스로는 홍준표, 안희정, 이재명 등 정치인들도 상당히 있다. 모두 빠른 나이(1, 2월생)가 아님에도, 출생신고는 1년 늦게 하고 학교는 실제나이 만6세(법적 나이 만5세), 즉 한국나이 8살(법적 나이 7살)부터 다녔다고 한다.[32] 실질적으로 매주 한번은 무조건 갔다고 한다. 또한 안민석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정봉주가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자 이명박을 강력하게 비난한 바 있으며, 문재인 정부로정권 교체가 된 직후로는 아예 이명박 구속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33] 안민석이 정봉주가 진행하는 방송인 정봉주의 뉴스쇼에 나와서 한 말로는, 정봉주가 국회의원 재선에 실패했을 때, 재선에 성공한 안민석의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안민석의 보좌관들에게 대신 정책 연구 주문을 하고 잘못하면 혼내기까지 하는 등 비선실세 놀이를 했다고 한다.[34] 정봉주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친노-범친문계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의당 주요 인사들 중 한때는 같은 정당소속이었던 참여계뿐만 아니라 진보신당계와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노회찬과 심상정, 조승수가 속해있는 계파이다). 더 놀라운 건 정봉주가 복당 원서를 제출한 더불어민주당은 일부 의원이 정봉주 복권에 개인사정으로(...) 서명을 하지 않았지만, 정의당은 소속 의원 전체가 정봉주 복권에 서명을 한 바 있다.[35] 언급된 국민의당 의원들 모두 정봉주 복권 탄원서에 직접 서명한 사람들이다.[36] 참고로 좋아요를 누른 곽한구 계정이 곽한구 본인의계정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