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04 20:03:27

말리스 4세

이름 말리스 4세
Malise IV
출생 미상
스코틀랜드 왕국 스트래선 백작령
사망 1327년에서 1330년 사이 (향년 미상)
스코틀랜드 왕국 스트래선 백작령
아버지 말리스 3세
어머니 아그네스 코민
형제 길버트, 로버트, 마틸다
배우자 성명 미상의 아내, 조앤 드 멘티스
자녀 말리스, 마리아
직위 제7대 스트래선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시기 잉글랜드 왕국에 인질로 보내졌고, 로버트 1세를 추적하는 잉글랜드군에 가담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로버트 1세의 부관이 되었다.

2. 생애

12세기 초부터 스트래선 백작 작위를 유지한 오래된 게일인 귀족 가문 출신이다. 아버지는 제6대 스트래선 백작 말리스 3세이고, 어머니는 제6대 부컨 백작 알렉산더 코민의 딸 아그네스 코민이다. 형제로 길버트, 로버트, 마틸다가 있었다. 1303년 스코틀랜드 반란군에 가담했던 아버지가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에게 귀순한 뒤, 그는 아버지의 충성심을 보증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잉글랜드에 인질로 보내졌다.

1306년 캐릭 백작 로버트 브루스가 스스로 스코틀랜드 국왕 로버트 1세를 칭하며 에드워드 1세에게 반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한때 로버트 1세를 따랐지만, 1306년 6월 메스번 전투에서 로버트 1세가 참패하자 다시 잉글랜드 편에 섰다. 그 후 어린 말리스는 로버트 1세를 추적하는 잉글랜드군의 일원이 되었지만, 아버지 말리스 3세가 로버트 1세의 반란을 지눤한 혐의로 그 해 11월부터 투옥되면서 인질로서 잉글랜드에 끌려왔다. 처음에는 라네르코스트 수도원에 수감되었고, 나중에는 칼라일 성으로 옮겨졌다.

아버지 말리스 3세는 마침내 1308년 풀려났고, 1310년 이후 스코틀랜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젊은 말리스도 1309년 3월 이후 풀려나 적어도 1301년 1월까지 잉글랜드 왕실의 급여를 받으며 로버트 1세에 맞섰다. 하지만 그는 잉글랜드 왕실에 계속 충성하기로 한 아버지와는 달리 로버트 1세 편으로 돌아섰다. 1313년 1월, 말리스 4세는 아버지 말리스 3세가 있던 퍼스를 공략한 스코틀랜드군에 속했다. 아버지 말리스 3세는 체포된 뒤 로버트 1세로부터 목숨을 부지하는 대가로 작위와 영지를 아들에게 넘기라고 강요당했다. 이리하여 새로운 스트래선 백작이 된 그는 로버트 1세가 잉글랜드에 맞서 싸우는 걸 확고히 지지했다.

1314년 배넉번 전투에 참전해 로버트 1세의 승리에 기여했다. 1320년 교황 요한 22세에게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청원한 스코틀랜드 귀족들 중 한 명이었다. 그 해 8월, 어머니 아그네스 코민이 로버트 1세를 암살하고 존 발리올의 아들 에드워드 발리올을 옹립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가 적발되어 종신형에 처했지만, 그는 여기에 연루되지 않았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으며, 사망년도도 알려지지 않았다. 오래된 사료에 따르면, 그는 1328년 7월 28일에 왕실 헌장을 목격했고, 늦어도 1330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최근에 발견된 사료에 따르면, 1327년에 그의 미망인 조앤 드 맨티스가 초대 아솔 백작 존 캠벨과 결혼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1327년 이전에 사망했을 것이다.

3. 가족

  •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아내
    • 말리스 5새(? ~ 1350): 제8대 스트래선 백작.
    • 마리아: 드럼사가드의 영주 존 모라비아의 부인.
  • 조앤 드 멘티스: 스코틀랜드 기사 존 드 멘티스의 딸. 말리스 4세 사후 초대 아솔 백작 존 캠벨과 결혼했고, 1339년 존 캠벨이 사망한 후에는 모리스 머레이와 결혼했다. 1343년 모리스 머레이가 초대 스트래선 백작으로 선임되면서, 그녀는 다시 스트래선 백작부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