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스티올라[1] | |
라틴어 | Mustiola Clusiensis |
영어 | Mustiola |
러시아어 | Мустиола |
한국어 | 무스티올라 / 물시나 |
1. 전승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은 성모 마리아의 유품과 함께 거룩한 반지, 나자렛의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의 결혼 반지를 가지고 95년에 로마로 가져 왔다고 전해진다. 당시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박해하여 기독교도들은 지하의 카타콤에 숨어서 신앙 생활을 했었고, 거룩한 반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친척 무스티올라가 비밀리에 기독교를 믿으며 부적으로 사용했다.서기 212년, 당시 사도 요한의 손제자[2]로서 초대 교회의 대표적인 고위 성직자 중의 한 명인 성 이레네우스(Irenaeus)와 수트리(Sutri) 교회의 사제이던 성 펠릭스(Felix)가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펠릭스가 체포되었고, 감옥에서 천사의 발현 기적이 일어나, 모든 우상을 파괴해라는 지시를 받고 천사의 권능으로 해방되어 헤르메스, 포세이돈, 그리고 제우스 상의 목을 치고 다녔다. 결국 로마의 행정관이면서 기독교들을 사냥다니던 박해자 투르키우스 알마치우스가 그를 체포해, 다시 탈옥하지 못하게 다리를 부러트리고, 바퀴 형틀에서 고문을 하다 이 모든 고통에서 살아남은 그를 참수했다. 시체는 다른 기독교 신자들을 잡으려는 함정 수사를 위해 버려졌고 이레네우스는 그 유해를 장사 지내려다 체포된다.
이리하여 그와 다른 동료 신자들이 투옥되자, 이 소식을 듣게 된 귀부인인 무스티올라가 전 황제의 친적이라는 영향력으로 그들의 뒤를 보살폈다. 모든 상황을 주시하던 투르키우스는 그녀가 너무나 예뻤으므로 그녀의 환심을 사려하였지만 거절당하였고, 그 여파로 이레네우스는 곧바로 십자가형으로 순교한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무스티올라는 키우시(Chiusi])로 도망 쳤다. 하지만 그곳에서 투르키우스에게 체포되었다. 성녀 무스티올라는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이교 신전에 절하라"는 강요를 거절하여, 모진 고문 끝에 동정녀로써 순교하였다. 당시 그녀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시신 훼손없이 착용하고 있던 반지와 함께 장사지내졌고, 그곳에서 나중에 그녀를 기리는 성 무스티올라 성당을 지을 때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