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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찬 · 조형곤 · 김재홍 · 조현문 · 신해철 · 정석원[1] | |
데뷔일 | 1988년 12월 24일 |
장르 | 록 음악 |
리더 | 신해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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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해철(보컬 & 기타-서강대 철학과)/조현문(신디사이저-서울대 인류학과)[2]/조형곤(베이스-연세대 토목공학과)[3][4]/김재홍(신디사이저-서울대 치의예과)[5]/정석원(피아노-서울대 컴퓨터공학과)[6][7]/조현찬(드럼-연세대 토목공학과)[8][9]으로 구성된 대한민국의 6인조 캠퍼스 밴드.[10]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하여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이 곡은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는 명곡이다.[11] 당시 명문대생 5명이[12][13] 결합한 밴드로 대단한 화제를 모았다.
리더 신해철은 솔로로 전향하여 활동하다가,[19] 무한궤도 후기 드러머였던 이동규[20]와 함께 불세출의 록 밴드 N.EX.T를 결성한다.
한편 후기 멤버였던 정석원은 무한궤도 멤버 중에서 기타리스트 장호일, 베이시스트 조형곤, 드러머 조현찬과 함께 015B를 결성하게 된다.[21]
- 이 "015B"라는 그룹 이름은 "무한궤도"라는 이름을 감춰놓은 암호라는 설도 있는데,
0 = 無
1 = 한
5B = Orbit = 궤도
라는 논리. 015B측은 초기엔 무한궤도와 관계가 없고 아무 뜻없이 지어졌다고 말했다가, 2006년에 출간된 책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의 인터뷰에서는 무한궤도에서 나온 이름이 맞다고 하면서도 또 2집에서는 空一烏飛라고 표현했다가 또 어느 때는 그냥 U2, UB40 등을 본떠서 만든 것이고, '空一烏飛'라는 것은 뜻을 붙이기 위해 적당히 한자를 끼워맞춘 것이라고 하는 등 말이 다 달랐다.[22] 2집부터 썼던 '空一烏飛'는 015B 뜻이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쉬운 한자로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이 캠퍼스 밴드가 유명해지자 다른 대학교들에서도 이 영향을 받은 캠퍼스 밴드를 많이 만들었다.[23]
리더 신해철이 2014년 10월 27일 의료사고로 사망하고, 약 6년 후인 2020년 7월 25일에는 베이스 담당 조형곤이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결성 멤버 2명을 잃게 되었다.
2. 해체 이후
무한궤도계 음악 그룹 | ||||||||||||
무한궤도 | → | N.EX.T (1~4기) | → | Monocrom | → | 비트겐슈타인 | → | N.EX.T (5~6기) | → | N.EX.T Utd. | → | 시월 |
→ | 노바소닉 | |||||||||||
→ | 015B |
3. 관련 문서
[1] 정석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한궤도 1집 발매 전/후 즈음해서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2]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차남이지만 아버지와 형의 비리를 모두 공개한 뒤에 그룹 계열사 주식을 처분하여 형제의 난이 벌어졌으며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 중으로 본인 가족(범효성가)와는 갈라선 듯하다. 인물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3] '015B'와 '삶사람사랑'을 거쳐 버클리 음대를 졸업.[4] 2020년 7월 25일 사망[5] 현직 치과의사. 아마추어 밴드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치과의사들이 모인 '이빨스'로 'TOP밴드'에 출전하기도 했다.[6]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이후 1집 작업 시점부터 입단한 후기 멤버다.[7] 무한궤도 이후 015B의 키보디스트이자 작곡가, 프로듀서로 활동 중[8] 쌍용그룹 김성곤 창업자의 외손자로 대학 졸업후에 쌍용건설에서 일하다가, 스탠퍼드 대학교 석사, 도쿄대학 경제학 박사를 거쳐서 세계은행(World Bank) 산하 국제금융공사(International Financial Corporation)의 중국/몽골 담당 매니저로 12년간 활동하였다. 2019년 홍콩계 사모펀드로 이직하였다.[9] 대학 졸업 이후에 쌍용건설에 입사했지만, 공일오비 창립멤버로도 합류해서 한동안은 회사와 음악활동을 병행하였다. 어차피 공일오비는 방송이나 공연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반녹음 때 드럼을 치는 정도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2집 발매 이후 라이브 콘서트까지는 함께 했는데, 그래도 투잡은 힘이 들었는지 3집부터는 공일오비 활동에서 완전히 빠지게 된다. 음악을 병행하던 시기에 공일오비 라이브 콘서트에서 드럼을 치는 모습이 당시 쌍용그룹 사보에 엄청나게 크게 실린적도 있다. 이 무렵 외할아버지 김성곤은 이미 죽은 지 20년 가까이 되어 외삼촌 김석원이 경영 중이었으니 망정이지 김성곤이 살아있을 때라면 피꺼솟할 일.[10] 그 이전에 '양두현'이라는 베이시스트가 있었지만, 대학가요제 예선 전에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양두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입단한 멤버가 조현찬의 같은 과 동기 조형곤.[11] 이 노래가 탄생한지 만 27년 되는 2015년에 인기 드라마 시그널 뮤직으로 나오기도 했다.[12]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당시에는 정석원이 없었다.[13] 대학가요제 출전 당시 화면을 보면 서서 맨 왼쪽에서 신디사이저를 연주하는 흰티-청바지의 청년이 김재홍, 그 옆에서 검은 정장 자켓을 입고 베이스를 연주하는 사람이 조형곤, 보컬 신해철, 그 뒤에 드러머 조현찬이 있으며 조현문은 제일 오른쪽 끝에 앉아서 신디사이저를 연주하는 사람이다. 밴드 특성상 보컬에 포커스가 맞춰지기 때문에 중계 당시 조현문은 거의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세어보면 2번 정도?[14] 당시 신해철이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당했던 것도 해체에 한몫을 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15] 참고로 이 두 곡은 이후 N.EX.T 5.5집 ReGame? 앨범에 셀프 리메이크로 실렸다.[16] 이는 무한궤도 음반 표지 사진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신해철은 때빼고 광내고 상당히 신경쓴 코디이지만, 다른 멤버들은 평범한 대학생같이 그냥 청바지에 셔츠 차림이다. 특히 조현문, 김재홍, 조현찬은 졸업 후 진로가 이미 정해진 상황이었으니.[17] 정석원의 친형이며 015B 이후에는 장호일이란 예명을 사용.[18] 김재홍의 동생이다.[19] 무한궤도가 소속사였던 대영AV에 계약할 당시, 무한궤도가 계약기간 안에 해체할 시 남은 기간을 신해철의 솔로 활동으로 대체한다는 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신해철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솔로 활동을 했던 것.[20] 후일 신성우, 장호일과 함께 '지니'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만들기도 했다. 대표곡은 '뭐야 이건'과 '바른생활'.[21] 이 그룹은 훗날 희대의 졸업식 명곡(이젠 안녕)을 만들게 되는데[22] 015B의 이름을 지을 당시 여러 후보들이 있었고, 최종 이름을 결정할 때는 후보로 나온 이름만 보고 결정을 했기 때문에 정확한 어원은 맨 처음 015B라는 이름을 밀었던 사람만 기억할 거라고 한다. 015B의 베이스를 담당했던 조형곤의 케텔 아이디가 '01orbit'이라고 하니, 015B의 이름을 맨 처음 지은 사람은 조형곤으로 추청된다.[23] 1996년 당시 서울대의 김영무도 영향을 받아 퓨전 재즈 & 펑크 밴드(Fusion Jazz & Funky Band) 동아리 퓨즈(FUZE)를 창설했다. 그리고 그 밴드에 있던 황선영이 가요계에 데뷔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