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25 19:59:51

문수열

파일:문수열.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족보명 문병희(文炳禧)
이명 문웅명(文雄明)
본관 남평 문씨[1]
출생 1923년 7월 15일
경상남도 사천군 곤명면 금성리
사망 2008년 12월 23일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2]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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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문수열은 1923년 7월 15일 경상남도 사천군(현 사천시) 곤명면 금성리에서 측량기사인 아버지 문창식(文昌植)과 어머니 선산 김씨 김봉수[3] 사이의 4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종조부 문철흠(文哲欽)의 봉사손(奉祀孫)으로 입적한 첫째 작은아버지 문성식(文聖植)에 입양되었다.

그는 평안북도 정주군오산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고, 1943년 졸업한 뒤 친구 4명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베이징으로 간 뒤 3개월간 중국 대륙을 횡단하여 마침내 안휘성 부양(阜陽)에 있던 한국광복군 제3지대 본부에 도착했다. 1944년 10월 한국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 후 기관지 <빛>의 편집위원을 맡았고, 한미합작 훈련인 OSS훈련에 가담해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다가 8.15 광복을 맞이했다.

해방 후 귀국한 문수열은 1982년 8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광복회관 내에 <독립정신 홍보위원회>를 결성해 김국주를 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위원을 맡았다. 그리고 1989년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최고령으로 졸업하고 학사 학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이후 독립운동에 관해 홍보 활동을 벌이던 그는 2008년 12월 23일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에서 심장질환으로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에 문수열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2008년에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그의 유해를 안장했다.

3. 여담

문수열은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동료들로부터 결의를 다지는 글귀와 서명을 받아낸 태극기를 간직했다. 현재 이 태극기는 등록문화재 제389호로 지정되었다.


[1] 의안공파-시중공-연강재파 29세 병(炳) 항렬.[2] #[3] 김재기(金在基)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