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文化相對主義 / cultural relativism모든 문화에는 절대적으로 우등하거나 열등한 문화가 없으며 전부 상대적으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회학/문화인류학의 이론. 절대성이 있다는 '문화절대주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론이다. 일종의 상대주의적 관점이다. 최초의 고안자는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이며, 루스 베네딕트, 마거릿 미드 등 그의 제자들이 문화상대주의 이론을 완성해 나갔다.
문화상대주의의 대척점으로는 상기한 문화절대주의나 자문화중심주의가 일반적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문화상대주의의 진정한 대척점은 사회진화론과 문화제국주의이다. 문화상대주의는 근대 제국주의와 제국주의의 바탕인 사회진화론을 비판하면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자연환경과 사회적 환경 속에서 문화 형성은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며, 이는 문화 간에는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으로 나아가게 된다. '상대성'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주의의 입장을 문화에 접목시킨 이론이 문화상대주의로 흑인, 백인, 황인으로 대표되는 인류는 절대적인 우열이 없다. 인종에 우열이 없듯이 인류 각각이 만든 문화도 그 문화의 우월성을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문화상대주의에서는 어느 나라의 문화가 다른 나라의 문화보다 더 우등하다는 문화절대주의를 거부한다. 모든 문화는 고유한 환경에 대응하면서 얻게 되는 한 사회의 경험과 지식의 총체이며 존재 이유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문화상대주의는 어떤 특정 문화의 우월성이 아닌 여러 국가의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의미로서, 한 문화는 그 문화가 처한 환경이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문화의 절대적 우월성을 줄여 준다고 하는 점에서 세계화 시대에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현대 사회는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여러 문화의 유입과 그로 인해 다른 문화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문화상대주의가 중요시되고 있다. 국제결혼 및 다문화 사회 속에서 기존의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생각으로 인한 사회적 편견 같은 부정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에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으로 간주된다.
문화 상대주의는 본질적으로 규범적 성격을 띠지 않으며,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 개념 자체는 철학적으로 "과하다"거나 "모자라다"고 평가할 대상이 아니지만, "다른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규범적 성격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를 일반적으로 "지나친 문화 상대주의"라고 하는데[1] "지나친"이라는 표현때문에 규범적 문화 상대주의와 방법론적 문화 상대주의를 혼동하게 만들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규범적 성격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 이는 여러 문제와 비판점을 낳는다. 여성할례나 사티와 같은 몇몇 풍습은 보편 인권의 측면에서도 실용주의적 측면에서도 여러 이유로 비판받는데, 이러한 문화들을 다른 근거 없이 옹호하기도 하고, 문화적 갈등들에 대해 대안 없이 원론적으로 이해만을 요구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밑 문단에서 다루는 비판들도 대부분 이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2. 문화상대주의의 의의
문화와 문화의 산물은 각각 해당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이룩해 놓은 사고와 생활방식, 지혜의 모음이며, 보고이다. 그래서 모든 문화는 각각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다. 이런 문화를 만약 다른 집단의 잣대로 평가한다면 미개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문화라고 평가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서술했듯이 이러한 문화는 해당 문화권에서 이룩해놓은 일종의 생활방식이며, 그들의 선조와 그들이 이룩해놓은 삶의 지혜이다. 무시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예를 들어, 형사취수제에 대해 예를 들 수 있다. 형사취수제는 서구화된 현대에는 일반적으로 금기시되고 있지만 어떤 문화에서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형사취수제를 유지하고 있는 문화가 미개하거나 야만적인 것이 아니다. 이는 형이 죽으면 남은 그들의 가족이 살아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로써 그들의 가족을 부양하도록 하는 것이다.[2] 그러므로 형사취수제는 해당 문화에서 이룩해 놓은 지혜이자 생활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에는 인권침해의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예로는 익히지 않은 날고기를 먹는 문화를 들 수 있는데, 어떤 문화에서 날고기를 먹는다고 하여 식습관이나 문화가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이 역시 해당 문화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음식의 보관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추운 지방에서는 날고기를 먹을 때 위생 문제가 별로 없으며, 추운 날씨로 채소와 과일 경작이 곤란하며 땔감도 얻기 힘든 상황에서는 날고기를 먹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손쉬운 비타민 섭취법이다.[3]
이런 맥락에서 특정 문화는 그 지역의 환경이나 사정에 맞는 생활방식이기 때문에 다른 문화에 비해 절대적 척도의 가치 우위나 열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문화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3. 상대주의를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는가
문화상대주의의 등장으로 각자의 문화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전세계에 퍼졌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었다.일반적으로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화상대주의를 인정하고 있지만[4]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침해하는데도 그것이 문화라는 이유만으로 인정해 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무작정 문화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인정하는 사고방식은 '극단적 문화상대주의'라고 하여 지양하고 있다.
3.1. 인권도 상대적인 문화인가
인권, 자유 등 현대에 절대시되는 가치관이 존재한다.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는 가치들에 대해서까지 상대주의로부터 파생된 규범적 문화상대주의를 적용할 경우, 식인 풍습, 명예살인, 인신공양, 인신매매, 아동 학대, 노예제/카스트 등의 신분제도, 여성할례, 전족 등 인권을 심각하게 해치는 가치관 역시 존중해야 한다.현대의 독재국가들은 현대의 윤리관 자체를 서구문화의 일종으로 보고, 자국 내 인권침해 옹호를 위해 문화상대주의를 들먹이고 있다. 이러한 사례에는 중국, 싱가포르, 북한이 있는데, 세 국가 모두 자국 내 인권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있을 때마다 문화상대주의를 이용해 인권침해를 합리화한다. 싱가포르의 인권침해 문제가 지적받았을 때 리콴유가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우며 보편 윤리를 서구 문화로 취급한 것이 대표적이다.[5]
실제로 독재 치하의 인권 침해 등에 대해선 상대주의적으로 접근했을 때 비판이 힘든 건 사실이다. 상대주의 자체가 애초에 모든 대상에 대한 절대적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보는 입장이니 이러한 한계가 불가피하다.
그러나상대주의적 입장을 가진 철학자들 중 상당수[6]는 원론을 넘어서는 논의를 위해 현실주의 등 다른 양립 가능한 사상과 병행해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 상대주의만을 근거로 해서 옹호하려 드는 건 대상이 무엇이라도 궤변에 불과하다.
20세기 중반 이후 진화심리학, 유전학 등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유전자 단계에서 윤리 감정을 담당하는 요소가 존재한다고 밝혀졌다. 이러한 보편적 윤리를 잣대로 하여 각 문화들의 윤리적 우열을 판별할 수 있다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위에서 언급한 문화절대주의/제국주의와는 관련이 없으며 특정 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나 비난의 요소는 들어가 있지 않다. 하지만 문화상대주의를 옹호하는 관점에서는 이 또한 문화의 개별 특성을 무시할 가능성이 있어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3.2. 가치중립적으로 적용해야 하는가
학술적으로 문화상대주의를 적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이다. 문화상대주의를 가치판단에 적용할 수 있는지 세계적으로 통합된 의견은 없다. 가장 인권과 자유를 지지할 것 같은 미국에서도 미국인류학협회가 문화상대주의를 근거로 세계인권선언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적이 있다. 링크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어쩌면 '극단적 문화상대주의'가 순수 상대주의이고, 중고교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은 사정상 '절충된' 문화상대주의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사회과학은 고교 과정까지는 어느 정도의 왜곡이 있기 마련이고(이건 자연 과학도 마찬가지이지만), 제대로 된 사회과학은 대학에서나 배우기 마련이다.[7] 실제로 대학교나 연구소에서는 박사 과정이나 되어야 해당 분야의 맛을 좀 볼 정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3.3. 국제정세에 따른 이중잣대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논의는 정치외교적으로도 논쟁거리다. 각국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모든 세력에서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도 친미 국가의 인권탄압에 대해선 (강성좌파를 제외하고) 개입을 망설이는 반면, 반미 국가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규탄하고 있다.3.4.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검증된 사안에 대해서도 상대주의를 적용할 수 있는가
자연과학과 일부 경제 이론, 일부 심리학 이론들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서 객관성을 인정받았다. 어디에서 어떤 사람이 실험하든 같은 방법으론 같은 결과만이 나온다. 그러나 문화상대주의에선 이를 부정하고 있다.3.5. 문화상대주의 내적 모순
일각에서는 문화상대주의 자체도 상대주의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문화상대주의의 단위가 개별 문화이기 때문에, 개별 문화 내부에서는 문화절대주의적인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국의 인권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해서는 문화상대주의를 들먹이며 존중을 요구하는 국가들은 정작 자국 내에서는 절대주의적 태도로 소수자들의 의견을 찍어 누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시 1: 김치는 한식이지만 양념치킨은 한식이 아니다.
- 예시 2: 중국인이 치파오를 입는 것은 이해하지만, 미국인이 치파오를 입는 것은 문화적 전유이다.
- 예시 3: 미국인이 김치를 못 먹는 건 이해하지만, 한국인이 김치를 못 먹는 건 반사회적이다.
- 예시 4: 캐나다에서 퀴어퍼레이드를 하는 것은 용납되지만, 한국에서 퀴어퍼레이드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 예시 5: 미국인이 문신을 하는 것은 개성의 표현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한국인이 문신을 하는 것은 반사회적이다.
- 예시 6: 중국인,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는 것은 용납되지만, 미국인이 개고기를 먹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 예시 7: 이슬람 국가에서 무슬림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강요하는 것은 용납되지만, 비이슬람 국가에서 무슬림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3.6. 사회적 소수자와 정치적 올바름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소수자에 대한 비판은 혐오로 여겨질 수 있다. 역차별 담론은 주로 여기서 비롯된다.4. 관련 문서
- 나시르마
- 문화침략
- 알라 카추
- 히잡
- 사대주의
- 소프트 파워
- 자문화중심주의
- 다문화주의
- 개고기/금지 논란 - 개고기도 세계의 다양한 육식 문화 중 하나이므로 개고기만 특히 배척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의견이 문화상대주의에 해당한다.
- 윌 스미스의 크리스 락 폭행 사건 - 미국 본토에서의 반응과 한국 및 아시아권에서의 반응이 전혀 다른데, 이는 조크의 한도와 넘어서는 안 될 금기에 대한 문화적 차이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애초에 조크이니 저런 모욕 정도는 당연히 넘어가야 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지만, 가족에 대한 모욕을 절대적 금기로 생각하는 한국에서는 크리스 락이 당연히 맞을 짓을 한 것.
- 새로움에 호소하는 오류와 전통에 호소하는 오류
- 취향 존중
[1]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등에 나오는 표현이다.[2] 여기에 노동력 보존의 문제도 있다. 남편이 죽었다고 형수가 형의 재산과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가버리게 되면, 이는 노동력 감소와 가문의 재산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유목적 전통이 있는 경우 결혼은 그 과정에서 상당액의 금품을 지불하는 준 매매혼의 형태를 취하는데 이 경우에도 아주 부족을 떠나므로 부족에 막대한 손해가 된다. 이걸 막는 의미가 상당하다. 실제로 한국 고대사의 경우도 유목적 성향이 가장 강했던 부여와 고구려 계통에 형사취수제의 전통이 존재했다. 반면 농경사회의 경우는 형이 죽어도 형수는 그대로 본가에 머물기 때문에 굳이 동생이 결혼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런 전통이 없거나 금방 사라지게 된다. 비교적 후대인 이슬람에서 종교적 교리로 묶은 것은 본문의 의미가 큰데, 이 경우는 전사자의 가족들을 후원하는 의미도 내포한다. 일부다처제 허용과 같은 맥락.[3] 대한민국도 육회, 뭉티기, 육사시미 등을 즐겨먹는다.[4] 이 때문에 사실 문화상대주의는 상대주의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상대주의로서의 성질은 약한 편이다.[5] 이 문단에서 서술된 사례의 대부분이 사회 교과서 문화 파트에 극단적 문화 상대주의로 자주 나오는 예시다.[6] 리처드 로티, 미셸 푸코 등의.[7] 사실 사회 계열 고교 교과목들의 수준은 해당 대학 전공의 개론 수업보다도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