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유고슬라비아 중국대사관 폭격 United States bombing of the Chinese embassy in Belgrade | |||||
코소보 전쟁 중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의 일부 | |||||
날짜 | 1999년 5월 7일 (CET) | ||||
장소 | 베오그라드 | ||||
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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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 |||||
불명(F-117의 잔해 제거로 추측) | |||||
유형 | |||||
공중 폭격 | |||||
피해규모 | |||||
없음 | 사망: 3명 부상: 20명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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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코소보 전쟁 당시 나토가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전역에 걸쳐 폭격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베오그라드에 위치한 중국 대사관을 폭격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3명의 중국 기자들이 사망했고 세르비아인도 14명 부상당했다. 대사관 건물 또한 파괴되었다.2. 반응
2.1. 미국
미국 정부는 바로 옆에 위치한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급 및 조달 이사회를 목표로 진행한 폭격 임무였다고 밝히며, 빌 클린턴 대통령은 즉각 오폭이라고 사과했다. CIA 국장 조지 테넷은 폭격 위치 입력을 잘못했다고 청문회에서 시인했다. 이후, 1999년 8월, 미국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하기로 합의를 했고 대사관 복구에 대한 보상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2000년 미중관계법 제정으로 인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승인하면서 미중관계를 증진시키려고 했다.2.2. 중국
중국 정부는 이 사건을 고의적이면서 야만적인 행위라고 비난했다. 중국인들 또한 이 사건에 대해 분개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미국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며 미국과 보상 합의를 이루면서 대대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고, 결론적으로는 세계무역기구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중국 무역 전쟁이 심화되면서 신냉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미중관계가 악화되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나토가 러시아를 비난해야 된다고 하자 중국 정부는 나토와 미국의 만행을 잊지 않았다면서 해당 사건을 다시 한번 언급하게 되었다.#3. 이후
1999년 10월 17일, 영국의 신문지 옵저버는 해당 사건을 고의적이라고 판단하는 보도자료를 내었다.1999년 10월 22일, 언론 비평 단체인 FAIR에서 해당 사건이 미국 내에서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다. 옵저버의 보도 자료 또한 미국 내에서는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옵저버는 미군의 스텔스기 F-117가 임무 도중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격추된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중국은 부족한 스텔스 기술을 보강하기 위해 잔해를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으로부터 교환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2011년 AP통신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J-20이 해당 잔해를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스텔스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며 적용한 사례라고 소개했다. BBC 또한 중국이 내전 당시 이 잔해를 분석하기 위해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기정사실로 여겨진다고 2019년에 보도했다. 이는 CIA가 중국 대사관에 나이트호크의 잔해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폭격 목표물로 지정되었을것이라는 것이다.
2011년, 장쩌민 전 중국 주석의 미발표 회고록에서 유고슬라비아군이 중국 대사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끔 허락했다는 내용과 이 실태를 미국이 지켜보고 있다면서 증거물을 중국에 보냈다는 내용을 담았다고 선데이 타임즈에서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