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의 프랑스 군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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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와 자유 프랑스의 잠수함.2. 제원
미네르바급 잠수함 Sous-marin de classe Minerve | ||
이전급 | 아고노트급 | |
다음급 | 오로라급 | |
수상배수량 | 673톤 | |
수중배수량 | 870톤 | |
전장 | 68.1m | |
전폭 | 5.6m | |
흘수선 | 4m | |
승조원 | 42명 | |
잠항심도 | 80m | |
항속거리 | 5노트 (약 9.3km/h) 잠항 시 157km | |
수상 속력 | 최대 14.2노트 (약 26.3km/h) | |
수중 속력 | 최대 9노트 (약 17km/h) | |
동력 | 기관 | 1,800BHP급 빅커스-노르망 디젤 엔진 2기 |
1,230SHP급 전기 모터 2기 | ||
무장 | 모델 1928 3인치 35구경장 갑판포 1문 (포탄 150발) | |
550mm 어뢰 발사관 6문 400mm 어뢰 발사관 3문 | ||
M1929 13.2mm 중기관총 2정 |
3. 개요
프랑스 해군이 전간기에 건조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까지 운용한 재래식 잠수함인 미네르바급은 1930년대 초에 해군성이 제시한 630 시리즈 잠수함으로 1931년부터 4군데의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가 시작되었다. 1번함이자 네임쉽인 미네르바(Minerve Q185)와 4번함인 이리스(Iris Q188)가 1934년에 진수되었고, 그 뒤를 이어 쥬논(Junon Q186)과 베누스(Vénus Q187)가 1935년, 그리고 팔라스(Pallas Q189)와 세레스(Céres Q190)가 1938년에 진수되어모두 6척이 준공되었다.630 시리즈 잠수함의 설계에서 가장 우선시된 사항은 뇌격 무장의 강화였다. 기존 배수량 1,000톤 미만의 중형 잠수함이 갖춘 함수 어뢰 발사관으로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어뢰수는 4발이 한계였는데, 미네르바급은 주무장인 550mm 어뢰 4발 외에도 함체 밖에 외장식으로 설치된 보조 발사관까지 더하면 400mm 경어뢰 3발을 더 발사할 수 있었다. 이 3연장 보조 발사관은 함내에서 조작으로 움직여 조준하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어져, 보조 무장이라기 보다는 함수 발사관과 같은 개념으로 운용되었다.
4. 운용
2차 대전 초반 연전연승을 거두던 독일 국방군이 프랑스를 침공하여 1940년 6월 25일에 프랑스 정부가 항복하자, 영국 해군은 얼마전까지 동맹국이었던 프랑스 해안을 봉쇄해야만 했다. 1940년 7월부터 영국은 해군과 공군을 모두 동원해 프랑스를 드나드는 선박을 차단했고, 함락 직전에 프랑스를 빠져나온 미네르바와 쥬논은 같은 해 9월부터 자유프랑스군에 배속되어 추축군과 싸우게 된다. 피에르 소네비유(Pierre Sonneville) 소령이 함장을 맡은 1번함 미네르바는 새로운 헐넘버인 P26을 받고 스코틀랜드의 던디(Dundee)를 모항으로 삼은 후 해안 방어 임무를 맡다가 독일군의 침공 위협이 사라진 후에는 북해와 북대서양까지 나아가 초계 임무를 수행했다.1941년 4월 19일에 미네르바는 노르웨이 선적의 유조선 티거(Tiger)를 에게르순(Egersund) 근해에서 포착하고 어뢰를 발사했지만 모두 빗나가버리고 독일 구축함에게 쫓기며 폭뢰 세례를 받았으나,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듬해인 1942년 4월 26일부터는 아이슬랜드의 레이캬비크(Reykjavík)에서 출발해 소련의 무르만스크까지 왕복하는 PQ 15 호송선단을 엄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상선 26척과 그 2배가 넘는 호위함들로 편성된 이 선단은 5월 5일에 콜라 반도를 통과할 때까지 독일 공군으로부터 무려 3차례의 공습을 받고 어뢰정 기습에 유보트까지 달려들었지만, 3척의 배만 잃는 선에서 피해를 억제할 수 있었다. 1943년 10월 10일에는 영국 서해를 항해하다가 기관 고장으로 부상해서 수리하던 도중에 이들을 독일 해군의 유보트로 착각한 영국 공군 해안 초계부대 소속의 B-24가 로켓탄을 퍼붓는 오인사격을 받았다. 이 공격으로 2명의 수병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은데다 함수쪽 선체가 크게 부서진 미네르바는 영국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며 겨우 자력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1945년 9월 15일에 수리를 위해 예인되던 미네르바는 때마침 불어온 여름 폭풍을 만나 영국 남부의 세실 해안(Chesil Beach)에 좌초되었고, 이때 암초에 부딛혀 선체가 깨진 잠수함은 그대로 가라앉았다.
2번함 쥬논은 1940년 6월 18일에 조국의 패색이 짙어지자 예인선에 이끌려 브레스트 항구를 떠나 영국 구축함의 인도를 받아 20일에 플리머스 항구에 입항했다. 함장 장-마리 퀘르빌(Jean-Marie Querville)은 배를 다룰 수병조차 모자랐지만, 자유프랑스군에 소속된 이후 승무원을 보충받고 1941년 7월부터 미네르바와 함께 자유프랑스군 제1잠수함대(1ère Division de sous-marins des FNFL)로 편제되었다. 12월부터 비스케이 만으로 초계를 나가면서 쥬논의 첫 실전 임무가시작되었다. 미네르바와 마찬가지로 북해에서 활동한 쥬논은 1942년 3월 13일에 송네 피요르드(Sognefjord)에서 초계함으로부터 폭뢰 공격을 받았지만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쥬논은 1942년이 저물기 전에 철광석을 가득 싣고 독일로 보내는 3척의 노르웨이 선박을 격침시켰고, 11월 13일에는 정찰 요원을 태우고 노르웨이 해안에 내려주고 장비를 보급하는 임무도 완수했다. 1944년 2월에 수리와 개장을 위해 도크에 들어간 쥬논은 지중해 전역에 참가했고, 종전 후에는 해방된 프랑스로 돌아가 1954년까지 소나 훈련함으로 쓰이며 현역으로 머무르다가 1960년에야 스크랩되었다.
그렇지만 프랑스에 계속 머무르기로 결정한 미네르바급의 운명은 사뭇 달랐다. 비시 정부 치하에 그대로 남게 된 4척의 미네르바급에게는 곧 독일군의 마수가 뻗쳐온 것이다. 1942년 11월에 크릭스마리네는 팔라스와 세레스를 오랑(Oran) 항에다 자침시켰고, 베누스는 툴롱 항구에 연합군 선박들의 접근을 가로막는 해저 장애물로 가라앉혔다. 그 와중에 표면적으로는 중립 노선을 표방하던 스페인으로 달아난 이리스는 카르타헤나(Cartagena)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정박된 채 억류되었고 스페인 정부는 종전 후에야 이 배를 프랑스측에 반납했다. 이리스는 1945년 11월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다음 재건된 프랑스 해군에서 1950년까지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