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5-31 08:15:30

알제리급 중순양함

제2차 세계 대전의 프랑스 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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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프랑스군해군 군함
잠수함 <colbgcolor=#fff,#191919>시렌급, 아리안급, 시르세급, 아고노트급, 샤피르급, 루키아급, 루드타블급, 쉬르쿠프급, 미네르바급, 오로라급, 롤랑 모릴로급
구축함 M89형+, 데 본 소함대+, 부라스크급, 라드루아급, 르 아르디급, 라 멜포메네급, 라 콤바탕트
대형구축함 데 본 대형+, 자구아르급(샤칼급), 게파르급, 에이글급, 보클랭급, 르 팡타스크급, 모가도르급
연습순양함 잔 다르크급
경순양함 프로젝트 171형+, 뒤게-트루앵급, 에밀 베르탱, 라 갈리소니에르급, 드 그라스급A
중순양함 뒤켄급, 쉬프랑급, 알제리급, 프로젝트 C5형, 생 루이급
수상기모함 코망단 테스트급
항공모함 베아른급, 조프리급
순양전함 17,500톤급+, 37,000톤급+, 23,333톤급+, 26,500톤급+, 23,690톤급+
전함 당통급, 쿠르베급, 브르타뉴급, 노르망디급+, 리옹급+, 됭케르크급, 리슐리외급, 알자스급
기타 부갱빌급 포함
취소선: 계획되었으나, 취소된 함선
※ 윗첨자+: 1차 세계 대전 전후 2차 세계 대전 이전 해체 및 계획 취소되었지만 편의상 틀에 넣은 함급
※ 윗첨자A: 전후 취역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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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nsa33.casimages.com/131105113026990759.jpg
Classe Algérie
1. 개요2. 제원3. 개발4. 특징
4.1. 무장4.2. 방어4.3. 주행
5. 한계점6. 활동7. 평가8. 매체에서

1. 개요

1934년에 브레스트에서 건조된 조약형 중순양함으로 해군 군축조약에서 허용된 프랑스의 중순양함 7척중에서 마지막 7번함이다. 그래서 알제리 1척만 건조되었다. 프랑스의 전통적인 순양함 양식을 버리고 신규설계하여 최초로 평갑판형 설계를 도입하였다.

빠른 속도와 괜찮은 무장, 적당한 방어력[1]을 제한된 배수량 하에서 뽑아내는 데에 성공하여 일반적으로 최고의 조약형 순양함이라고 평가받는다.

2. 제원

파일:Algerie-1.jpg
미국 해군에서 제작한 적국함선 분석도에 그려진 알제리
알제리급 중순양함
Croiseur lourd de classe Algérie
이전급 쉬프랑급
다음급 프로젝트 C5형 중순양함, 생 루이급 중순양함 (계획)
기준배수량 10,160톤
만재배수량 13,677톤
전장 186.2m
전폭 20.0m
흘수 6.3m
승조원 748명
출력 84,000SHP
최고 속력
(설계안)
31노트 (약 57km/h)
항속거리 15노트 (약 28km/h) 순항 시 15,000km
27노트(약 50km/h) 순항 시 7,400km
동력 기관 앙드레식 중유 전소 보일러 6기
라토 브르타뉴식 증기 터빈 4기
추진 4축 프로펠러
무장 주포 모델 1931 203mm 55구경장 2연장 주포탑 4기 (총 8문)
양용포 모델 1933 100mm 45구경장 2연장 양용포탑 6기 (총 12문)
대공기관포 모델 1925 37mm 50구경장 2연장 대공포좌 4기 (총 8문)
대공기관총 13.2mm 4연장 호치키스 M1929 중기관총좌 4기 (총 16문)
13.2mm 단장 호치키스 M1929 중기관총좌 4기 (총 4문)
어뢰 3연장 550mm 어뢰 발사관 모델 1925T 2기 (총 6문)
장갑 갑판 30mm - 80mm
측면 110mm
주포탑 전면 100mm, 측면 70mm, 후면 50mm - 85mm, 천정 70mm, 하면 40mm
장갑함교 측면 100mm, 천정 70mm
함재기 르와르 130 수상정찰기 3기
함재기 시설 캐터펄트 1기
주문 1930년 5월 15일
기공 1931년 3월 19일
진수 1932년 5월 21일
완공 1934년 9월 5일
취역 1934년 6월 15일
침몰 1942년 11월 27일
툴롱 프랑스 함대 자침

3. 개발

쉬프랑급 중순양함 4번함 뒤플렉스(Dufleix)를 건조한 프랑스 해군은 1930년도의 건함 계획으로 차기 중순양함으로 C4라는 가칭을 붙인 중순양함을 개발중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C4로는 이탈리아 왕립 해군차라급 중순양함을 상대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데다가 나치 독일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을 건조중이므로 해당 군함에 대해서도 제한적인 상대가 가능할 필요가 있었으며 중요성이 높아서 프랑스 본토로 취급하는 프랑스령 알제리의 북쪽 해안과 프랑스 본토의 남쪽 지중해 연안과의 항해로를 보호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따라서 C4에 대한 근본적인 설계 검토를 거쳐서 기존의 설계를 완전히 뒤집고 신규설계를 실시하여 무장을 증설하고 방어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신규 중순양함을 설계한 것이 알제리급 중순양함이 된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규정된 보조함의 기준배수량 한계인 10,000롱톤(10,160t)이라는 제한이 있었으므로 해당 제한 안에서 최적화된 중순양함을 만들어야 하는 고난이 있었으나 프랑스 해군은 훌륭하게 난관을 극복해서 조약형 중순양함중에서는 공격, 방어, 주행의 균형이 가장 잘 잡힌 중순양함으로 알제리급 중순양함이 만들어진다.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모두 보조함 총합 배수량 제한에 참가하지 않았으므로 이론상 중순양함의 추가 건조에 제약은 없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이 점점 국력이 커져나가는 상황에서 영국과의 협조가 필수적이던 프랑스는 알제리를 끝으로 일단 중순양함 건조를 중단하게 된다. 여기에는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중순양함의 건조를 조약체결기간중에 정지시키는 독소조항을 집어넣은 영국의 의향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프랑스는 라 갈리소니에르급 경순양함의 건조로 순양함 건조의 방향을 일단 돌리게 되지만 차기 중순양함들을 위해서 알제리에 차기 중순양함에 적용될 무장을 시험적으로 탑재해서 운용해보기로 한다. 대표적인 것이 주포인 모델 1931 203mm 55구경장 2연장 주포탑으로 차기 중순양함에서는 해당 주포를 3연장 주포탑에 탑재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4. 특징

신규설계로 기존의 프랑스 해군 중순양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4.1. 무장

주포는 모델 1931 203mm 55구경장 2연장 주포탑을 최초로 채택해서 함수방향에 계단식 배치로 2연장 주포탑 2기를 배치하고 함미방향에도 계단 식 배치로 2연장 주포탑 2기를 배치해서 총 8문을 확보한다.

주포의 성능은 중량 134.0kg의 APC M1936 철갑탄을 포구각도 45도로 포구초속 840m/s의 상황에서 31,000m까지 도달시킬 수 있으며 구식철갑탄인 중량 119.07kg의 APC M1931이나 고폭탄인 중량 119.72kg의 HE M1931은 포구각도 45도로 포구초속 870m/s의 상황에서 32,500m까지 도달시킬 수 있다. 포신수명은 600발이고 연사속도는 이론상 분당 5 - 6발이지만 실제로는 분당 4 - 5발이었다.

주포탑은 Model 1931 2연장 주포탑으로 중량은 240t이며 포신부앙각도는 -5도에서 +45도까지 가능하고 포신부앙속도는 초당 10도이며 포탑선회각도는 선체 중심선을 기준으로 좌우 90도이고 포탑선회속도는 분당 6도이다. 장전각도는 -5도에서 +10도에서 고정장전한다. 장갑이 기존의 Model 1924 2연장 주포탑보다 증가해서 전면 100mm, 측면 70mm, 후면 50mm - 85mm, 천정 70mm, 하면 40mm이므로 동력용 모터를 더 강력한 것으로 장착해야 했다.

해당 주포는 원래 존 캠벨(John Campbell)이 1985년에 출판한 2차대전의 해군 무기(Naval Weapons of World War Two)라는 서적에서 언급된 것으로 오랫동안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서 알제리급 중순양함도 기존의 프랑스 중순양함의 주포인 모델 1924 203mm 50구경장 함포를 채택하고 주포탑만 신형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존 조나단(John Jordan)이 2024년 12월에 알제리급 중순양함이 모델 1931 203mm 55구경장 함포를 사용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고 군함 2026(Warship 2026)에서 발표할 예정이므로 알제리급 중순양함의 주포는 확실한 신형 주포였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양용포는 모델 1933 100mm 45구경장 2연장 양용포탑을 채용했다. 배치방식은 함체의 양 측면에 3기씩 총 6기를 탑재해서 12문을 확보했다. 당대의 조약형 중순양함치고는 많은 수량의 양용포를 탑재했다.

양용포의 성능은 중량 14.95kg의 반철갑탄(SAP)을 포구각도 45도로 포구초속 765m/s의 조건에서 15,800m로 날릴 수 있고, 13.5kg의 대공포탄 겸 고폭탄을 각도 80도로 포구초속 780m/s의 조건에서 고도 10,000m까지 날릴 수 있다. 연사속도는 이론상 분당 16발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분당 10발이고 포신수명은 불명확하다. 리슐리외급 전함과는 달리 반철갑탄을 충분한 수량으로 탑재할 수 있어서 양용포로 사용이 가능하다.[2]

양용포탑은 Model 1931 2연장 양용포탑으로 중량은 13.5t이고 포신부앙속도와 포탑선회속도는 불명확하며 포신부앙각도는 -10도에서 +80도이고 포탑선회각도는 좌우 80도이다. 포탑의 동력은 전기식이며 인력이 보조로 들어간다.

기존에 대구경 대공포로 채용했던 모델 1926 90mm 50구경장 대공포에 비해서 구경의 확대로 포탄 중량이 늘어나고 반철갑탄의 도입으로 대수상함간의 전투에서도 사용이 가능해서 양용포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다만 대공화기로서는 대공포탄의 최대도달고도는 동일하며 포신부앙속도나 포탑선회속도에서도 수동에서 전동식이 되었을 뿐 특별한 개선점이 없어서 사실상 동등했다. 이런 문제는 전후에 리슐리외급 전함에 채용한 모델 1945 100mm 55구경장 양용포에서 해결했고 이후에도 100mm는 프랑스 해군의 주력 함포로 사용된다.

대구경 대공기관포는 37mm 50구경장 Model 1925를 2연장 기관포좌로 4기를 장착해서 총 8문을 장착한다. 성능은 0.725kg의 고폭탄을 각도 45도로 7,175m까지 날리며 대공사격시 각도 80도로 5,000m까지 대공포탄을 발사가능하다. 포신부앙각도는 -15도에서 +85도이며 포죄선회각도는 360도 자유회전이 가능하다. 연사속도는 이론상 분당 30발에서 42발까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분당 15발에서 21발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대구경 대공기관포인 37mm가 저성능인 이유는 단발 장전방식에다가 수동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량도 부족해서 취역 당시에는 2연장 기관포좌 2기로 총 4문밖에 장착하지 못했으며 1941년에 2연장 기관포좌 2기를 추가로 증설했으나 여전히 수요에 비해 부족했다. 그래서 1942년에는 대공용 중기관총을 많이 증설한 것이다.[3]

대공용 중기관총은 호치키스 기관총의 13.2×99mm 탄약 사용 중기관총인 모델 1929 13.2mm 중기관총을 단장 기관총좌 4기와 4연장 기관총좌 4기를 합쳐서 총 20문을 장착했다. 성능은 중량 51g의 중기관총탄을 각도 45도로 포구초속 800m/s의 조건으로 7,200m까지 도달시키며 대공사격시에는 각도 90도에서 포구초속 800m/s의 조건으로 4,200m까지 도달시킬 수 있다. 포신부앙각도는 -10도에서 +90도이며 포죄선회각도는 360도 자유회전이 가능하며 모두 수동으로 작동한다. 연사속도는 이론상 분당 450발까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분당 200발에서 250발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알제리급 중순양함은 다시 어뢰를 도입했는데 3연장 550mm 어뢰 발사관 모델 1925T 2기를 도입해서 총 6문을 확보한다. 어뢰발사관은 양 측면에 설치되었는데 우현 어뢰발사기는 전방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고 좌현 어뢰발사기는 후방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다. 어뢰탑재량은 9발로 6발은 어뢰발사관 내부에 장전하고 3발은 예비어뢰로 보유한다. 종합적으로는 일단 어뢰공격이 가능하다 정도의 무장이었다.

수상기를 운용하기 위해서 압축공기식 캐터펄트 1기를 좌현에 장착해서 운용했다. 수상기는 르와르 130 수상정찰기 3기를 운용한다. 1942년에 대공화력 강화를 위해 철거했다.

4.2. 방어

함체는 기존의 프랑스 순양함들이 채용하던 선수루형 함체를 버리고 평갑판형 함체를 채용했으며 전방 마스트도 삼각대 방식 마스트와 박스형 함교를 버리고 일본 제국의 파고다형 마스트와 비슷한 수준의 함교 일체형 대형 마스트를 채용했다. 연통도 1개로 단일화했으며 후방 마스트도 기존의 단각대식 마스트가 아니라 소형 삼각 마스트를 채용한다. 연통 주변에는 다용도 보트와 캐터펄트를 설치했다.

신규 함체를 도입한 김에 기존의 프랑스 순양함의 방어구조를 완전히 버렸다. 그리고 리벳접합이 사용되긴 했으나 최대한 용접을 도입해서 한정된 배수량에서 방어의 효율을 높이려고 했다. 함체 제작방식도 변경하여 기존의 도크 내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군함의 각 부분을 따로 제작한 후 도크에서 용접기술을 동원해서 합치는 방식을 사용했으며 함체를 기존의 쉬프랑급 중순양함의 194m - 196m에서 186m로 10m 단축했다.

이렇게 노력을 기울인 결과 실제로도 전체 배수량에서 방어에 사용된 배수량은 약 2,600톤으로 전체 배수량 대비 비율이 21.8%로 높고 함체 방어에 17.3%, 포탑 방어에 5.3%를 투자했다. 따라서 조약형 중순양함 중에서 실질적인 방어력이 가장 높은 군함이 되었다.

방어의 주력은 측면장갑으로 80kg 고장력강으로 제조한 110mm의 측면주장갑이다. 해당 장갑은 전방 탄약고에서 후방 탄약고까지 길게 이어져 있으며 높이는 흘수선 기준으로 전방 탄약고부터 기관실까지는 3.76m에서 4.45m까지 다양하게 변화하고 기관실에서 후방 탄약고까지는 2.45m를 유지했다. 흘수선 아래 부위는 수면 아래 1m까지 주장갑으로 보호받았다. 측면 주장갑이 끝나는 곳은 70mm 두께의 횡단 격벽으로 연결되면서 집중방호구역을 만든다. 갑판장갑은 측면주장갑과 동일한 재질로 30mm에서 80mm 두께로 만들어져 있다. 그 외에 장갑함교가 측면 100mm, 천정 70mm로 설치되었다.

단순 수치만 봐서는 파악하기가 어렵지만 기존의 프랑스 중순양함인 뒤켄급 중순양함이 측면장갑이 고작 30mm고 쉬프랑급 중순양함도 측면장갑이 겨우 54mm며 둘 다 장갑함교나 주포탑의 장갑이 30mm이므로 대응방어는 커녕 대공용 기관포에도 뚫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발전을 한 것이다.

어뢰방호구역도 프랑스 순양함 최초로 광범위을 방호하도록 만들어졌다. 이중 바닥구조는 주갑판까지 확장되었고 해당 구조 안에는 연료탱크를 넣어서 어뢰 충격에 대비했다. 기관실과 연료 탱크 사이에는 1m 정도의 공간이 추가되었고 기관실 외벽은 60kg 장력강으로 만들어진 40mm 두께의 장갑판으로 만들어졌으며 양 끝으로 갈수록 두께가 50mm에서 60mm까지 증가함으로서 만일 유폭이 발생하더라도 격벽을 넘어가서 다른 곳에 파편 피해를 주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기관부 양 측면에는 종방향으로 격벽이 많이 설치되었으므로 기본적으로 벌지를 내부에 내장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속도가 줄어들지 않는 선에서 어뢰방호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리고 증기 터빈실 내부를 나누어서 각각의 터빈을 격벽으로 분리함으로서 피격시 일부만 파손 및 침수되도록 함으로서 방호력을 증강시켰다.

4.3. 주행

프랑스 순양함중에서 최초로 고온고압보일러를 채택했고 섭씨 325도에서 380psi까지 고압의 증기를 생성하는 보일러 6기를 도입했다. 보일러를 한 곳으로 모으고 그 뒤에 증기 터빈을 붙이는 단순배치 구조를 채택하고 증기 터빈을 4기로 결정하고 4축 추진을 도입하여 84,000마력으로 31노트(57km/h)의 속도를 내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시험항해시에 93,230마력을 달성하고 32,9노트의 속도를 기록한다.

연료 탑재량은 슈프랑급 중순양함 후기형의 2,600톤에서 2,935톤으로 약간 증대되었으나 고온고압보일러와 신형 기관을 채택함으로서 항속거리는 15노트 (약 28km/h) 순항 시 15,000km 이고 27노트(약 50km/h) 순항 시 7,400km가 가능했다.

5. 한계점

영국이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둔 이웃나라라서 수시로 프랑스의 건함을 감시할 수 있으므로 보조함의 기준배수량 한계인 10,000롱톤(10,160t)이라는 제한을 유지해야 하므로 그 안에서 공격, 방어, 주행을 모두 맞추었지만 물리적 한계로 부족한 점이 나오고야 만다. 맞상대라고 할 수 있는 차라급 중순양함이 기준배수량 11,870t으로 군축조약을 몰래 위반하면서 배수량을 늘리고 성능을 향상시켰기 때문에 1대 1 대결에서는 아무래도 알제리급 중순양함이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일단 파고다 형태의 거대한 전방함교가 문제였다. 나름대로 경량화를 해서 무게중심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배수량의 한계로 인해 주요 시설이 전방함교에 밀집한 관계로 인해 직격탄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감시, 사격통제, 지휘에 큰 문제가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 배수량이 더 많았으면 분산배치가 가능했지만 그게 불가능했다는 것이 한계였다.

동력기관도 배수량의 한계가 작렬하여 피탄이 발생하더라도 일부 기관이 살아남는 기존의 시프트 배치를 하지 못하고 보일러실과 터빈실이라는 간단한 구조로 된 구식 배치를 도입할 수 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방어력을 올리긴 했으나 명중탄이 장갑을 뚫고 내부에 들어가는 순간 보일러실이 터지건 터빈실이 박살나건 간에 일거에 동력을 전부 상실하고 군함이 정지하는 사태가 일어나기 쉽다.

전간기 말기부터 2차대전 초기까지의 프랑스 군함의 공통적인 특징인 대공화력 부족도 상당한 문제점이었다. 취역시에는 1m 거리측정기를 보유한 대공사격지휘소 1기만 가지고 있어서 사실상 대공사격분야에서는 사격통제장치를 보유하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고 안그래도 성능이 열악한 대공화기를 사수가 스스로의 감으로 알아서 잘 사격해야 하는 상태였다. 그나마 이 문제는 1942년에 대공화기를 증설하면서 후부 마스트와 캐터펄트를 철거한 후 대공사격통제장치와 대공레이더를 장비함으로서 약간 해결되지만 본질적으로 비시 프랑스 소속이라서 나치 독일의 간섭과 재정 및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확실한 대공화력 증강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끝났다.

6. 활동

알제리는 1934년 6월 15일에 취역하였으나 아직 군함의 세부조정이 끝나지 않아서 완공일이 1934년 9월 15일로 취역일보다 늦었다는 특징이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탈리아 왕립 해군을 견제하기 위해서 신형 중순양함의 빠른 취역을 요구한 프랑스 해군의 의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명도 상당히 특이한데 원래 프랑스 해군의 함명들은 유명인사나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을 따서 함명을 결정하지만 알제리는 프랑스령 알제리 성립 100주년을 기념해서 알제리라는 지명을 함명에 붙였다는 이유가 작용했다.[4]

1939년에 순양함 함대의 기함으로 지브롤터에서 영국 해군과 친선방문을 한 것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알제리급 중순양함은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질 때는 제1순양함전대의 기함 자리에 있었으며 첫 임무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3번함인 아트미랄 그라프 슈페를 수색하기 위해서 프랑스령 서아프리카다카르에서 영국 해군과 합동작전을 벌였다.

1940년 3월에 프랑스 본토의 지중해 항구인 툴롱에서 정비를 받은 알제리는 프랑스 정부 소유의 금괴 3천개를 적재한 후 브르타뉴급 전함 1번함 브르타뉴와 함께 캐나다로 항해하여 프랑스의 금괴를 안전한 곳에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40년 4월에 지중해로 복귀한 알제리는 1940년 6월 10일에 이탈리아의 프랑스 침공이 개시되며 이탈리아 왕국이 적국이 되자 1940년 6월 14일에 바도 작전(Opération Vado)에 참가하여 중순양함과 구축함들을 동반하고 이탈리아 본토의 바도 리구레(Vado Ligure)를 포격했는데 해당 사례는 2차대전에서 해군 군함이 열강의 본토에 대한 함포사격을 실시한 첫번째 사례로 기록되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이 붕괴되기 전에 알제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는 호송선단 호위였다.

프랑스 침공에서 프랑스가 항복하고 비시 프랑스가 만들어지자 툴롱에 정박중이던 알제리는 비시 프랑스군에 가담했고 캐터펄트 작전에서 피해를 입은 브르타뉴급 전함 3번함 프로방스를 툴롱까지 호위하는 임무를 담당했다. 그 후에는 툴롱에 정박한채로 1941년에 대공포를 비롯한 대공화기를 강화시켰으며 1942년에는 프랑스에서 제작한 초기형 레이더가 설치된다.

2차 세계대전 시기의 대부분의 비시 프랑스 함선들이 그렇듯, 1942년에 다른 프랑스 함선들과 툴롱 프랑스 함대 자침을 툴롱에서 맞이한다. 1942년 11월 27일에 나치 독일이 비시 프랑스가 지배하는 프랑스 본토 지역을 침공할 때 알제리에는 폭파용 폭약에 부착되었으며 나치 독일군이 정전 협정에 따라서 군함의 자침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알제리의 함장은 폭약의 도화선을 작동시킬 때까지 상관의 지시를 받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시간을 끌었다. 마침내 라보르드 제독은 전 프랑스 함대에 자침을 준비하라는 명령과 함께 군함에 접근하는 비 인가자는 쏴버리라는 지시를 내린 후 알제리의 승조원들은 폭파장치가 작동하여 더 이상 침몰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퇴함하기 시작했으며 나치 독일군이 함내로 진입하려고 했으나 곧 군함이 폭발한다는 경고를 받고 다시 육지로 물러났다. 폭약이 폭발한 알제리는 침몰하며 20일간이나 잔해가 불에 탔다.

나치 독일군과 교대하여 툴롱에 진입한 이탈리아 왕립 해군은 1943년 3월 18일에 알제리를 3조각으로 나누어서 인양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수리 불가능 판정을 받고 방치하다가 알제리의 잔해는 1944년 3월 7일에 연합군의 폭격을 받고 다시 침몰한다. 전후인 1949년에 알제리의 잔해는 재인양된 후 해체를 시작하여 1951년에 마무리된다.참조

7. 평가

보조함의 기준배수량 한계인 10,000롱톤(10,160t)이라는 제한이 걸린 조약형 중순양함 중에서 공격, 방어, 주행의 삼박자를 모두 맞춘 최고의 조약형 중순양함이다. 당시의 중순양함중에서 군축조약의 규정을 제대로 맞춘 중순양함은 공격, 방어, 주행 중에서 최소한 2개 이상은 문제가 발생해서 알제리급 중순양함을 따라잡을 수 없으며 알제리급 중순양함보다 우월한 중순양함은 몰래 군축조약을 위반해서 배수량을 크게 증가시킨 것들 뿐이다.

그러나 영국의 간섭으로 인해 1척만 만들어진데다가 프랑스 침공에서 프랑스 제3공화국이 무너질 때 비시 프랑스로 넘어가서 프랑스 본토의 툴롱 항구에 정박했다는 것이 운명을 결정해버린 비운의 군함이기도 하다.

만일 프랑스가 몰락할 때 영국이 지배하는 항구에 있었거나 리슐리외급 전함처럼 프랑스령 서아프리카같은 식민지에 있었다면 짧은 교전 후에 자유 프랑스 소속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었다면 미국에서 대공화기를 교체 및 증설하고 레이더를 장착한 후 훌륭하게 활약할 수 있었을 것인데 프랑스 본토에서 정박해있다가 허무하게 툴롱 프랑스 함대 자침으로 사라지는 비극을 겪었던 것이다.

실제로도 적국 해군인 이탈리아 왕립 해군도 알제리급 중순양함에 큰 가치를 부여했는지 자침시 일어난 폭발로 20일간이나 불타며 완전히 폐함 상태에 놓인 알제리급 중순양함을 다시 인양해서 재취역하려고 노력했고 연합군도 그걸 막으려고 인양한 알제리급 중순양함을 폭격해서 다시 재침몰시켰으니 추축국과 연합국을 막론하고 알제리급 중순양함을 고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8. 매체에서

  • 네이비필드에서 프랑스 코르벳-리옹 전함트리에서 선택할 수 있다. 6인치 함포를 장착한 이벤트 경순양함 Bruix (ECL)으로도 플레이 가능하다.
파일:external/rykoszet.info/7.jpg
  • 전함소녀에서 등장했다. 203mm 55구경장 2연장포가 먼저 클라이언트에 추가되어 복선이 되었다..


[1] 당시 프랑스 함선은 방어력이 부족하다는 혹평이 자자해 이걸 반영하여 설계했다.[2] 리슐리외급 전함은 부포로 152mm 55구경장 Model 1930 3연장 부포탑을 3기나 보유하므로 100mm 양용포에는 반철갑탄을 10발 이하로만 휴대하여 사실상 대공포로 사용했다.[3] 전함 리슐리외가 1943년에 미국에서 개장을 받으면서 해당 기관포를 모조리 철거하고 보포스 40mm 포오리콘 20mm 기관포로 대공기관포를 모조리 교체한 것도 해당 대공기관포의 문제가 매우 크기 때문이었다.[4] 프랑스령 알제리는 다른 프랑스의 식민지와는 달리 프랑스 본토의 일부로 취급받았으며 실제로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에 프랑스 본토의 행정구역과 동일한 데파르트망(Départements)을 설치했고 데파르트망 지사를 파견하여 알제리 지역을 관할했다.